비밀의 화원에서 만난 '매·난·국·죽'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호에선 봄 전시회를 열고 있는 간송미술관을 찾아갔습니다.


# 국보급 민간 박물관인 간송 미술관.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전시회를 개최한다.


그 곳의 문은 일년에 두 번 열린다. 이 시기를 놓치면 보고 싶어도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곳, 바로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간송미술관이다. 국립박물관과도 비교되는 손 꼽히는 `보물 창고`는 매년 5월과 10월 보름씩 그 속살을 공개한다.
이 곳에 가기 위해선 각각 삼선교와 대학로 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이 있는데 기자는 삼선교쪽을 택했다. 오월의 따스하면서도 화사한 햇살을 받으며 올라가는 길 위엔 선잠단, 옛 최순우집 등 볼거리들이 가득하다.
길상사로 가는 길목을 지나면 상북초등학교로 올라가는 보통의 골목길이 나오는데 이 끝자락에 바로 간송미술관이 있다. 평상시엔 입구에 `출입금지`라는 안내판이 가로막지만 전시회 기간 만큼은 금단의 길을 열어준다.



#석사자가 지키고 있는 미술관 정문

"일년에 두 번 문 여는 곳"

우리나라의 전통 미술품을 주로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은 한국 최초의 민간 박물관이다.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이 33세때 세웠다. 1938년 설립한 보화각이 전신으로, 1966년 간송미술관으로 개칭됐다.
1966년 당시 전형필 선생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이를 정리, 연구하기 위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부속기관으로 발족됐으며 2층 콘크리트 건물이다. 서화를 비롯 자기, 불상, 불구(佛具), 전적, 와당, 벽돌 등 수많은 유물들이 있다.
대개의 국립, 민간 박물관들이 화려한 장식과 이벤트성 전시에 치중하고 있지만 이 곳은 전시보다 미술사 연구를 주된 역할로 삼고 있다. 매년 2회에 걸쳐 논문집 <간송문화>를 발간하는 한편 봄, 가을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미술사학이나 전통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겐 "1년에 두 번은 간송에 가야한다"는 말이 일종의 불문율처럼 전해진다.
<추사명품집> <겸재명품집> 등 간송미술관에 있는 문화재 중 국보급의 문화재만 10여점에 이른다. <훈민정음>(70호), <동국정운 권 1,6>(71호), 금동계미명삼존불(72호), 금동삼존불감(73호), 청자압형수적(74호), 청자기린유개향로(65호), 청자상감포류수금문정병(66호),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149호)등 손에 꼽기도 벅차다.
국내에서 국보 및 보물, 고서화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이 간송 미술관이다.




# 전시회장 풍경과 내부 유리창을 통해 본 정원


이처럼 소중한 보물들이 일제 시대에도 암흑의 손을 피할 수 있었던 데엔 간송 선생의 피나는 노력이 숨어있었다.
간송 선생은 오세창의 지도로 민족문화재를 수집하는데 힘쓰는 한편, 한남서림을 지원, 경영하며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1940년엔 경영난에 빠진 보성고보를 인수하기도 했다. 1942년 <훈민정음> 원본을 당시로선 거금인 2000원을 주고 안동에서 구입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내년이 간송 선생 서거 50주기가 되는 해라 벌써부터 어떤 전시회가 준비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 폭의 그림에 담긴 `군자상`

2층으로 구성된 전시회 공간은 바깥 세계와 높은 담장을 쌓고 있는 느낌이다.
바람과 맞서고 있는 대나무와 이제 막 새순을 돋는 대나무들이 살아 있는 듯 하다. 5월 날씨에서도 국화꽃은 가을날의 아름다운 색깔을 분출한다. 밝은 달 밤 잔뜩 향기를 풍기는 매화도 보인다. 기암괴석들 사이에 뿌리를 내린 난의 기상 또한 굳세다.
지난 5월 15일부터 29일까지 열린 전시회는 80회라 미술관측이 더욱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사군자전`을 테마로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관련 작품들을 모두 모았다.
예로부터 `군자`란 인,의,예,지,효,제,충,신의 8덕과 학문을 두루 갖춰 위험과 곤란에 처할수록 의기가 더욱 빛을 발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식물도 이와 같은 기질을 타고난 것들을 기렸다. 다음은 이에 대한 미술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 간송 전형필 선생 흉상

`매화는 눈 속에서 꽃망울을 터뜨려 향기를 찬바람에 실어보낸다. 난초는 바위나 돌틈에 뿌리 박고 척박하게 살아가나 사시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고 곧은 꽃대 위에 수줍은 꽃을 피워 맑고 그윽한 향기로 산과 들을 가득 채운다. 국화는 서리 친 가을에 홀로 피어 오상고절을 자랑한다. 대는 절도 있게 수직으로 자랐으되 속비고 껍질이 단단해 겨울찬바람과 눈을 이기며 푸르름을 잃지 않으니 절도와 불굴, 허심의 상징이라 일찍부터 군자의 표상으로 꼽혀왔다.`
때문에 유교문화권의 문사들은 일찍부터 매(梅), 난(蘭), 국(菊), 죽(竹)을 사군자(四君子)로 부르며 시화의 소재로 삼아왔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사 배출이 본격화됐던 고려시대부터 사군가 그림이 유행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김부식과 조선 초의 강희안은 대나무를 잘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 전기의 사군자 그림들조차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거의 없다. 잦은 전란과 보존 소홀로 그랬다는 게 미술관측의 설명이다. 때문에 간송 선생은 일찍부터 사군자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기회가 닿는대로 관련 작품들을 수집했다고 한다.
이번 80회 `사군자전`에 전시된 작품들은 임진왜란 이후의 작품들을 거의 총망라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조선 오백년을 통틀어 묵죽의 최고라는 탄은 이정(1554-1626)을 시작으로 단안 옥봉(1913-2010)에 이르기까지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묵매의 최고라는 설곡 어몽룡(1566-1617)을 비롯 수운 유덕장(1675-1756), 단원 김홍도(1745-1806), 추사 김정희(1786-1856),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1820-1898), 운미 민영익(1860-1914) 등의 사군자 작품들이 시대를 초월하는 향기를 내뿜는다.
전영우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은 "탄은 이후 각 시기를 대표하는 사군자 그림 중 대표작만을 뽑아 전시했다"며 "그림들이 그려지던 시기의 문화성격과 사군자의 변천과정을 한눈에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2년 `전형필 선생 서거 50주기`

간송미술관으로의 나들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시회가 열리는 건물앞의 석사자를 비롯 시선이 닿는 곳마다 소중한 유산들이다. 계단을 올라가던 한 노인은 일행에게 "여기 쓰인 대리석이 바로 신세계 백화점에 사용됐던 거랑 똑같은 거야"라고 설명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근대 건축물로서의 가치도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유리창과 천정, 복도와 계단 배치까지 오래된 과거의 자취가 느껴진다. 전신인 보화각이 1938년 개설됐으니 충분히 그럴 법 하다.









미술관 앞 정원도 찾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현대식 박물관과 달리 `자연미`로 가득해 마치 비밀의 정원에 온 듯한 느낌이다. 정원 한 쪽 항아리들이 정취를 돋구고 각종 식물들 사이로 석탑과 불상이 보인다. 나무 뒤로 숲어 있는 석상은 마치 언제라도 뛰쳐나올 기세다. 한쪽에선 흰 공작이 날개를 자랑하며 간만에 모인 사람들을 맞고 있다.
이처럼 많은 선물을 안겨주는 간송미술관이지만 관람은 무료다. 혹시 여유가 되면 `도록`(2만원)을 구입할 수 있는 자금은 준비해 가는 게 좋다. 혹시 이번 봄 <사군자전> 전시회를 아쉽게 놓쳤다면 가을 전시회와 내년 전형필 선생 서거 50주기 추모 전시회를 기대해 보자.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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