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파이팅이다. 생일,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
너도 나도 파이팅이다. 생일,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
  • 승인 2011.09.2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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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내 친구 녀석


처음엔, 다들 저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했었나 보다. 08년도 수도권의 모 대학교 중국어과에 그럭저럭 잘 입학하여, 또 그 후 2년 동안 그럭저럭 학교생활 잘 하고 있던 내 친구 녀석 하나가 뜬금없이 반수를 하겠노라 선언했을 땐 말이다. 같은 학교 동기며 선배며 후배며, 다들 응원을 보내긴 했지만, 왜 꼭 굳이 그렇게 까지 하느냐 싶은 눈치였다고 한다. 수도권 4년제 대학교 정도면, 고등학교 3학년이 돼서야 공부를 시작한 것 치고는 꽤 훌륭한 성과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학교생활도 원만하게 잘 꾸려나갔었다. 대체 뭐가 문젠가 싶을 정도로 그녀의 반수 결심은 뜬금없는 일이었다. 스물 둘 핏기도 채 덜 가신 청춘 아닌가.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야지, 하는 심정으로 그녀의 부모님 역시 그녀의 반수를 허락해 주셨다. 똑같은 08학번이었던 나와 내 친구는, 2010년, 대학교 3학년과 대입 수험생이라는, 완전히 다른 1년을 보내게 되었다. 나의 2010년은 알바며, 학원, 취미활동, 시험까지. 뭔가 대충대충 살긴 했지만 바쁜 일년이었다. 새로운 사람도 많이 만나고 새로운 경험도 많이 했던 것 같아서 후회가 많이 남지 않는 2010년이었다. 반면 내 친구는, 2010년이 시작됨과 동시에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난 다시 수능을 치겠다.’며 사라진 친구는 1년 동안 술자리는 물론이요, 메신저며 미니홈피에까지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다. 주인장이 방치해둔 미니홈피엔 온갖 광고로 도배가 되었다. 간간히 광고들 사이로 안부를 묻거나 그녀를 응원하는 방명록들이 좀 보일 뿐, 그야말로 폐허 그 자체였다.

연락이 안 되는 것은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와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지라 한손에 꼽히는 막역한 사이라지만 나 역시 그녀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 많고 일도 많았던 2010년이 끝이 났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만났다. 수능이 끝난 그녀는, 마치 아직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연탄재 같았다. 그야말로 ‘하얗게 불태웠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모습. 대학 발표가 하나 둘 나기 시작하자 그녀의 안색은 더 파리해졌다. 결과는 좋지 못했던 모양이다. 성과 없이 학교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다시 한 번 더 도전하느냐의 기로에서 그녀는 많이 힘들어 했다. 정말 악착같이 보낸 1년이었는데, 다시 1년을 더 해본다고 다를 거란 확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복학결정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물거품이 되어버린 1년도 1년이지만, 그녀의 전공인 중국어라는 학문이 자신과 이렇게나 맞지 않을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고민 앞에 사람들은 ‘야 요즘 누가 자기 전공대로 살디? 다들 자기 전공과 상관없이 취업하고 그런다. 참고 졸업해’, ‘그래 뭐 하고 싶으면 하든지. 니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 식의 반응을 보였다. 풀이 죽은 그녀의 고민을 들으면서, 나는 그냥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을 바라고 물은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뭐라도 말해주고 싶어서, 그냥 되는대로 대답해주었다. 네가 뭐 어떤 결정을 하게 되든 응원해줄게. 하지만 나는 너의 지난 1년이 헛수고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뭐 그런. 결국 이 친구는 다시 한 번, 한 번 더 공부해 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2010년과 달리 2011년은 그녀와 나의 모습이 꽤나 비슷하다. 공부를 하겠다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는 나나, 기숙학원에 들어가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잊어가고 있는 그녀나. 시간은 빠르게 간다. 난 그다지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어느덧 꽃 피는 계절이 왔다. 대학가에는 중간고사로 술렁이고 있을 테지. 작년까지는 그것이 내 이야기였는데 올해는 이렇게나 아득하다. 중간고사라. 그리고 기숙학원에 들어갔던 그녀는, ‘첫 휴가’라며 2박 3일동안 고향을 찾았다. 그녀를 만났다. 살이 찐 그녀와 살이 빠진 나. 이 친구는, 기숙학원이 자기와 잘 맞는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자유도 없는 곳. 자기는 그 곳을 1분 1초도 견딜 수가 없는데, 해방일은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고.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든다고 한다. 그녀의 나이는 나와 같이 스물셋. 나 있는 도서관 열람실에선 스물셋이 많은 나이가 아닌데 대입 재수반에서는 그녀가 최고 연장자란다. 스물, 스물하나의 어린 아이들과 한 반에 앉아서 수업을 듣고, 인터넷 핸드폰 금지는 물론이요 편지조차 쓸 수 있는 기간이 제한되어 있는, 남녀 사이엔 대화조차 허락되지 않으며,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곳. 감옥과 다름없는, 아니 어쩌면 감옥보다 더 철저하게 인간 존엄이 짓밟히고 있는 곳이었다. 누가 억지로 다니라고 했나, 싫으면 당장 나가라. 그런 식으로 학원에서는 온갖 룰을 제시하고, 내 친구를 비롯한 학생들은 또 그것을 꾸역꾸역 따른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겠지 믿으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그런 억압 같은 것들을 영 힘겨워하던 친구였다. 힘들겠네? 했더니 죽겠다, 한다. CCTV 노이로제 걸리겠다며 웃는 그 애의 낯은 비록 웃는 모양이지만 피곤한 기색을 감추기 어려웠다. 너 힘들어서 어떡하냐, 물었다. 그랬더니 그러게 하며 킥킥 웃는다. 뭐 어쩌겠어. 이렇게라도 해야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별 수 있나. 그래, 그건 나도 그렇다.

어제는 그녀의 생일이었다. 생일 축하한다, 그 한마디를 전해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있는 기숙학원은 아주 철저하게 고립된 곳이다. 내 목소리는 거기까지 닿지 않는다. 정말 감옥이 따로 없다. 그 안에서 그녀는 매일 매일 수업을 듣고, 밤늦게까지 자습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들 것이다. 그것은 오늘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닐 것이다. 볕이 얼마나 좋은지 창가자리에 햇살로 커튼이라도 해 단것 마냥 빛으로 아롱아롱하다. 날씨가 좋아 그 친구는 오늘이 더 서러울지 모르겠다. 아마 다음 휴가까지 읽어 보지도 못할 테지만, 장문의 생일 축하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더불어 햄버거세트 쿠폰도 SMS로 쏘아 보냈다. 아인아, 볕이 좋아 의자 위에 앉아 있는 것이 꼭 나만큼 곤욕스럽겠구나. 어쨌거나 좋은 날이다. 생일 축하해. 이걸 읽을 때는 아마 생일이 까마득하게 지난 후일 테지만, 어쨌거나 말이다. 학원에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끼니 거르지 말고. 아인아. 공부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힘든 건 공부 자체가 아니라 공부를 하는 상황이 아닐까. 너나 나나, 참 힘든 결정을 내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견한 거다. 그렇지 않니? 우리 스스로를 좀 더  자랑스러워합시다. 결과야 어찌되든, 심지어 뜻한 바를 끝내 못 이룬다 하더라도 우리 고민스럽고 힘들었던 시간은 절대로 가치 없어지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꼭 힘내자. 젊을 때 고생스럽게 뭔가 몰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어쩌면, 그조차 할 수 없는 사람보다 훨씬 복된 입장일지도 모른다. 아인아. 조금만 참자. 청춘을 책상머리에서 허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말자. 꿈을 좇는 청춘은 반짝반짝 예쁘다. 우린 예뻐. 질끈 동여맨 머리에 기름이 끼어 추접한 폐인 꼬락서니를 하고 있더라도, 그래도 우린 눈이 반짝여 예쁜 청춘이 아니냐. 우리 힘내자. 다음 휴가 때 보자꾸나. 그때까지 너도 나도 파이팅이다. 생일,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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