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대학생이 되어 부푼 마음으로 처음 상경했을 때, 나는 촌티가 뚝뚝 떨어지는 시골 계집애였다. 사투리도 뭣도 아닌 애매한 말씨하며, 육년 만에 처음 교복을 벗은 극악한 패션 센스까지. 새내기라는 파릇파릇함이 아우라가 되어 이 모든 촌스러움이 ‘풋풋함’으로 커버 되었을 뿐이지, 사진 속 2008년도 신입생 박신영은 정말 자다가도 이불에 하이킥 하고 싶을 만큼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 촌스럽던 시골 계집애는 서울로 유학 와서 그 때 처음으로 보는 것도, 해본 것도 참 많았다. 여중 여고 출신인지라 남자애들과 수업을 듣는 것도 완전 꼬맹이 때 이후론 처음이었고, 십만원이 넘는 뮤지컬도 처음, 홍대도 칵테일도 처음, 동아리 활동도 처음, 이성 교제도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다.

서울의 신식 문물(?)들에 매일 매일이 놀랍던 그 때, 나는 통 큰 선배를 따라 난생 처음,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다. 아웃백이니, TGIF, 빕스 등 이름만 들어 본 것이 다였기에 호기심이 일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주문이 복잡하다, 그런 소리를 듣고 나서야 왠지 쭈뼛쭈뼛해지곤 했던 것이다. 내가 갈 곳이 아닌 것 같은 느낌? 나중에야 런치타임이며 각종 할인카드들의 할인 혜택을 노린다면 액면가 그대로 비싼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엔 그 할인 혜택들의 복잡함 역시 패밀리 레스토랑의 문턱이 더 높아 보이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하긴 지금도 할인 카드며 멤버십 카드들의 적용 시스템은 머리가 아프니 (보통 무리 중 한 명쯤은 이런 쪽에 밝기 마련이니 나는 그냥 내 몫의 비용을 더치 할 뿐 아직도 스스로 하진 못함) 내가 ‘무지한’ 그 곳이 꽤나 두렵게 느껴질 법도 했구나 생각한다.

서넛씩 몰려가서 메인 디쉬는 둘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샐러드 바나 리필 되는 빵 등으로 ‘더는 못 먹겠다.’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배터지게 먹고 마시고 떠들다 나오는 요즘엔, 패밀리 레스토랑이 오래오래 쾌적하게 수다 떨기엔 퍽 만만한 곳이 되었으니, 그땐 참 귀여웠구나 하고 스스로가 우습 곤하다. 그도 그럴 것이 밥을 먹고, 커피 한 잔에 간식거리 몇 가지 주문하고 나면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는 것보다 결코 저렴한 비용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오래 있어도 ‘눈치’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고객이 아무리 진상이라도 그네들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죄송합니다. 고객님^^*”, 무리한 요구에도 최대한 응대를 해주는 그들을 보고 있자면, 이 정도 비용을 지불하고 이만한 서비스를 받는다면 이것이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고객님 주문하시겠어요?” 웃고 있는 내 또래 아가씨. 돈 벌기, 참 힘들구나. 남일 같지가 않다.

내 주위에서도 시급이 꽤 세다는 이유로 패밀리 레스토랑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이 꽤 되었다. 근처 학교에 다니던 고향 친구가 우리 동네 아웃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고 어느 날 연락을 해왔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센, 그야말로 장비 같은 친구였는데도 불구, 이건 뭐 거의 막노동이라며 체력고갈을 호소했다. 레스토랑의 서빙이 힘들어봐야 서빙인데, 엄살이 심하다 생각했던 내 속마음과 달리 결국 그 친구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다. 건장한 체격의 성인 남자ㅡ그것도 내가 아는 남자들 중에서도 기골이 장대한 편에 속하는ㅡ도 버티지 못할 노동량이라니 혀가 내둘러졌다.

그 일이 있고 한 학기 후, 같은 과 한 학번 선배 언니가 TGIF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나는 내 친구 사례를 들어가며 만류했지만, 파트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까진 힘들지 않을 것이라며 걱정하는 날 안심시켰다. 생각보다 무거운 접시 나르기, 산더미 같은 설거지 같은 것보다ㅡ물론 완전히 피할 수 있지는 않을 테지만ㅡ 주로 ‘주문 받는’ 업무를 맡게 될 거라고. 그 말을 듣고 보니 그저 친절하게 웃으며 주문 받는 것 정도야. 시급이 그 정도 되면 할 만하겠군, 그 땐 그렇게 생각했었다.

두 달쯤 지났을까, 밥도 먹을 겸해서 친구와 함께 언니가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 TGIF 매장에 들렀다. “나 일하는 데에 놀러와” 하는 표정이 어쩐지 밝지 않아 이상하더라니, 처음 입구에서 우리를 반겨주던 표정과 대조적으로, 구석 진 테이블 앞까지 오자 언니는, 시급만 아니면 이딴 알바 따윈 절대 하지 않았을 거라고, 분개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요? 그렇게 힘들어요? 하고 물었더니 언닌 팔을 걷어 부치며 자신의 팔뚝을 이렇게 접어 알통을 자랑하는 듯한 자세를 지어 보인다. “힘든 건 나한테 문제가 안 돼. 그치만 이러다 성격 다 버리겠어.” 학교 앞 호프집에서 서빙 알바를 했던 경험이 있었던 언니는, 그 때에 비해 이번 알바가 특별히 몸이 더 고되진 않다고 했다. 외려 각오했던 바에 미치지 못한다고. 다만, 집에 가면 쓰러지듯 잠드는 이유는, 외려 육체적 피로가 아닌 정신적 스트레스 탓인 것 같다고 하였다.

나는 언니의 말에 조금 놀랐다. 말을 꺼내는 언니의 표정이 너무 수척해 보인 탓이다. “그럼 맛있게 먹어.” 마치 좀비와 같이 비척비척 일어나 일터로 돌아가는 언니. 파리한 얼굴은 돌아섬과 동시에 변신로봇이라도 되는 듯 상큼하고 친절한 미소가 만연한 얼굴로 바뀌었다.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기위해 무릎을 꿇는 언니. 미소로 반짝이는 얼굴이 측은하다.


현재 전국 20개 매장을 운영 중인 는 ‘고객 환상 체험 레스토랑’ 이라는 슬로건 하에 고객 만족 서비스를 가장 중시하고 있다. 이는 TGIF에서 직원들이 주문을 받을 때 손님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경청하는 퍼피독(Puppy Dog) 서비스에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명칭부터 ‘퍼피 독’ 강아지 같은 서비스라는 거다. 가끔 이런 서비스에서 부담감을 느낄 때도 있는 것은, 서비스를 받는 입장임에도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의 자존감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나는 고객이고, 또 고객을 위한 서비스가 절대적으로 기업의 이윤을 위한 것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지만 역시 내 앞에서 `퍼피 독`이 되어버리는 정도가 되면, 역시 불편할 수밖에 없다. 서비스도 경쟁이 되면서 `다른 곳보다 더욱 친절하게`는 과열화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비단 영수증의 금액 절반 이상이 음식 값이 아닌 `서비스 비`라는 패밀리 레스토랑뿐만 아니다. "안녕하세요. 공주님"하고 손님을 맞이하는ㅡ 옷도 매장도 휘양 찬란한 핑크색인ㅡ 화장품 매장, 사용하던 제품을 이유 없이 환불 해달라는 손님 앞에서도 미소를 잃어선 안 되는 백화점, 공연히 화풀이를 당해도, 가끔씩은 장난 전화에 시달린대도 친절하게 응대해야 하는 콜센터. 서비스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져 새로운 서비스 업종이 신설되기도 하고, 기존의 직업군에 더욱 고도화된 서비스 마인드가 요구되기도 한다.

맞벌이 부부들이 자녀를 맡기는 유치원 등에도 기존보다 더 심화된 서비스가 추가되고 있다. 자녀가 유치원에 있는 동안 회사 등에서 언제든지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자신의 자녀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 할 수 있는 원격 동영상 서비스 등이 바로 그것이다. 보육원 전체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학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교육원이 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그 곳에서 일하는 선생님은 그 서비스로 인해 생긴 노이로제를 호소하고 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오는 시각이 다 다르니 오전부터 아주 늦은 오후까지 카메라의 감시 하에 모든 행동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 처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일은 당연한 일이고, 또 가끔 양심 없는 유치원들로 인해 학부모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님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 한다고. 실제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체력 소모가 많은 이리라 신체적으로 상당히 피곤한데, 언제 어느 순간에 학부모들이 자신을 보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잠시도 표정이 굳거나, 아이들을 꾸중할 때 언성이 높아지거나 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근로환경에 장시간 노출 되자 결국에는 몇몇 선생님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분노를 표출, 심하게는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하는 폐단이 나타났다. 아동 학대를 막고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 도입된 서비스가 선생님들의 정신 건강을 피폐하게 만들고 그 영향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가 오히려 없던 문제도 야기해 버린 것이다.


이렇듯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 짐과 비례하여 감정 노동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감정 노동이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규제하는 행위로, 고객을 중시하는 직종에 근무하는 직업군은 개인의 감정보다 고객의 감정을 존중한다고 해서 `감정 노동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감정 노동이 과중해지면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약자에게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감정 노동이 과중해지면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은 약자에게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급 직원이나 나이든 부모에게 짜증을 부리고, 기혼 여성의 경우엔 아이들에게 화풀이를 한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마음은 침체의 늪에 빠지는 가면(假面)우울증, 내가 남이 된 것 같은 이인화(異人化)현상도 겪는다. 자신이 못나 이런데서 일한다는 자기 비하를 하거나, 자기 존중심이 사라지는 것도 이들의 특징. 심한 경우 감정 불감증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궁극에는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풀지 못해 나타나는 일종의 화병에 시달리게 된다.

의욕상실로 심신의 피로를 호소하는가 하면 소화불량, 불면증, 생리불순,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같은 심인성(心因性)질환을 호소하기도 한다는 것. 하지만, 서비스 경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뿐만아니라 이 흐름을 바꾸어 과거로 회귀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는데 불친절한 응대를 받았다고 생각해보라. 기업들이 고객들을 생각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한 `발전`이며, 그 덕분에 기분 좋은 소비가 가능해진 것이다. 서비스의 질이 갑자기 떨어진다면, 고객은 분노하게 될 것이다.

소비자에게 더욱 친절한, 또한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경쟁은 사회적으로 봤을때 바람직한 경쟁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문제는, 서비스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비스직 근로자들을 서비스를 창출해내는 도구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감정 노동 스트레스의 폐단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외국의 기업들은 `서비스 정신`을 강조함과 동시에 직원들이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근무시간을 적정하게 조정하고ㅡ직원 수를 늘리는 등의 방법으로ㅡ 정기적으로 직원들의 정신 건강 검사도 병행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고객 만족`만을 강조하는 감정 노동으로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을 퍼피로 만들고 있다. 나는 이것이 일종의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의 사례를 참고하고, 우리만의 특수성을 잘 살려 우리나라만의 서비스업을 만들어 간다면, 이러한 성장통은 금방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고객을 왕처럼`을 강조하되, 직원이 노예가 아님을 인식 시켜주는 `직원 만족`에도 노력해야 한다. 고객과 직원, 모두의 만족을 위한 서비스업, 직원들의 `인권` 역시 고려하는 건강한 서비스업으로 나아가야 하겠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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