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취존중

취존, 혹은 취존중. 이 이상한 외계어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면, 당신은 아마도 인터넷 없는 하루를 생각하기 힘든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취존중은 취향 존중의 줄인 말, 그러니까 ‘개인의 취향이니 존중을 부탁드린다’는 뜻이다.

처음에 ‘취존중’을 댓글란에서 발견했을 때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또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군,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무슨 뜻인지 별로 크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런 새로운 용어들은 끝이 없이 등장하고, 또 금방 소멸한다. 잠시 반짝하는 유행 같은 것이다. 하나하나 궁금해 하다가는 종일토록 이런 신조어들만 연구하다 하루가 끝날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굳이 찾아보려 하지 않아도 생명력이 긴 신조어들은 저절로 그 뜻을 알게 되곤 하니, 더더욱 무심해지곤 하는 거다.

취존중도, 굳이 따로 찾아보는 수고 없이, 나도 모르는 새 알게 된 신조어 중 하나다. 짐작하건데, 취존중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웹상에 등장하자 그것이 너무나 궁금했던 누군가가 도대체 취존중이 뭐냐 묻고, 또 누군가가 그에 대해 취존중은 이런 뜻이다 친절히 답변해 주었을 테고, 나는 그저 무심하게 마우스 휠을 굴리다가 그들이 나누는 댓글 따위를 스쳐보았으리라 생각한다.

취향을 존중해 달라. 나는 이 묘한 줄임말의 속뜻에 감탄하는 대신, 이런 이상한 말이 ‘준말’까지 필요할 정도로 자주 사용된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나는 근래 내가 기억하는 몇 달동안 실생활에서 ‘내 취향이니 존중해 달라’는 말을 쓴 적이 없는 까닭이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유독 웹상에서만 이 말이 자주 사용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걸까.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 안은 공간적 한계가 존재하지 않다보니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익명성도 제법 보장되기에 자신을 드러내기도 더 쉬워서 일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 중에서도 유독 개인의 다양성을 실감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무엇에 집착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무엇에 광적으로 혐오감을 느끼고.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사람들은 다 제각각이구나 놀라곤 한다. ‘취존중’은 이러한 차이에서 오는 마찰음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 여자캐릭터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소위 ‘매니아’, 혹은 조금 더 심한 수준의 ‘오타쿠’들이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웹상에 업로드 한다고 가정해보자. 세일러문의 여자주인공 세라의 한정판 피규어(사람 형태의 모형. 로봇이나 차 따위의 모형은 프라모델이라고 한다.)를 사려고 두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 글에 누군가가, ‘인형 같은 것에 몇 십만 원을 투자하다니 제정신인가’ 하는 의견을 남기는 거다. 그럴 때면, 등장하는 것이 ‘취존중’, 내 취향이니 존중해 달라. 사실 바꿔 말하면, ‘내가 몇 십만 원을 투자하든, 몇 백만 원을 투자하든, 당신이랑은 상관없으니 신경 끄시라’ 이거다.

하긴, 그건 그렇다. 보통은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는 자신의 개인적인 공간에 업로드하기 마련이고,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공감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해서 안면부지의 생판 남에게 ‘제정신이냐’고 비난받을 만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공연히 시비를 걸어오는 누군가에 대해, 화내지 않고 제법 매너 있게 대처하는 것 같기도 하다.

모르는 누군가가 길을 걷던 내게 뜬금없이 옷이 이게 뭐냐 따지고 들면 그는 과연 나에게 정상인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 상황에서 취향이니 존중해주세요, 말할 수 있다면 정말 그 사람은 양반이다. 물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접근성의 차이는 있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본질적으론 크게 다를 것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취존중’은, 꽤나 매너 있는 대처방법이라는 게 내 생각이지만, 문제는, ‘취존중’의 오남용이다. 마치 언제나 유효한 부적인양, ‘취존중’이라는 카드를 막 던지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공용게시판에 누군가에게는 혐오감을 줄 것이 분명한 글을 게시하고는, 그에 대해 비난이 들어오면, ‘취존중’을 사용하는 경우 등이다. 비난 받을 만한 짓을 해놓고도, 비난 하지 말라고 하는 꼴이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취향 존중은, 단순히 어떤 ‘취향’ 뿐만 아니라, 사람의 개성과 특성, 다양성 등을 존중해달라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취향이 일반적이지 못 할수록 그로 인해 억울하게 비난받기 쉽긴 하지만, 분명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한쪽이 한쪽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쌍방의 것이다.

때문에 취향 존중이라는 것을 방패처럼 사용하는 것은 취향 존중을 오남용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는 ‘남에게 피해주는 것이 없는 데 내가 왜 비난을 받아야 하나’하는 기재에서 출발한다. 이런 이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타인에게 끼치는 피해가 단순히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비난 받는 것은 명백하게 ‘피해’다. 정신적인 피해도 분명 피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취존’이란 줄임말까지 생긴 게 아닌가. 헌데 자신이 공공연하게 특정 자료 등을 업로드 함으로써 타인에게 혐오감, 불쾌감을 주는 것은 ‘피해’가 아닐까? 자신의 취향을 존중해 달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타인의 취향을 전혀 존중하지 못하는 이율배반적인 일이다.

공공게시판 따위에서 주제와 맞지 않는 자료를 올리는 것 외에도, 개인적인 공간에 업로드 하는 것들도 때로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할 때, 검색어가 포함이 되어 있어 가끔 상관없는 내용을 의도치 않게 열람하게 되는 경우 등이다.

본인들이 ‘사적’인 공간에 ‘개인적’으로 업로드 하는 자료들이라고는 해도, 이런 식으로 타인에게 노출 될 가능성이 높다라면, 자료를 업로드 할 때 비공개글로 올리거나, 혹은 검색을 허용하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즐기기 위해 올린 자료라고해도 본의 아니게 접촉한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에 한번, 과제를 위해 포털사이트에서 이리저리 검색을 하고 있을 때, 개인 블로그에서 동성애를 주제로 한 자료를 올려놓은 것을 보고 꽤 당황했었던 적이 있다. 물론, 그런 동성애물을 즐기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에 내가 무어랄 성격의 것은 못 되지만, ‘문학의 이해’ 과목의 리포트를 쓰는 와중에, 갑자기 그런 자료를 강제로 감상(?)하게 된 것은 정말이지 유쾌한 일은 못 된다.

이런 일들을 비난하기라도 하면, 대번에 ‘취존’을 방어막삼아 말을 딱 잘라버리기 예사다. 글쎄, 취향을 존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하는 말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취향 존중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는 걸까. 그들이 타인의 취향, 그러니까 나처럼 동성애 자료에 갑작스럽게 노출될 경우 꽤 당황할 사람들의 입장도 조금 고려했더라면, 자신들의 ‘공간’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정말로 취향을 존중해줘야 하는 쪽은 아마 그 쪽이 아닐까 싶다.

요즘의 개인 블로그에는 보통 ‘접기’라고 해서 게시글의 일부는 한 번 더 클릭을 해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지원한다. 하다못해 그런 간단한 방식으로 의도치 않은 접근을 예방해 줬다면, 그들이 말하는 ‘취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말이다. 나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 역시 굳이 그런 것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것,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오랜 시간 다양성에 대한 일은 사회 문제가 되어오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롭게 생활하기가 이렇듯 어려운데, 혼란이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은 웹상에서는 오죽하겠는가. 정제되지 않은 언사들과 아직 성숙하지 못한 네티켓, 정도를 모르고 쏟아져 나오는 목소리들과, 논리의 상실, 마녀사냥과 온당하지 못한 비난….

익명성은 그 조화의 길을 더디게 만들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적당한 익명성이야말로 자유롭고 다양한 의견들을 교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인터넷 공간이 다양한 개성의 발로가 되기 위해서는 아마 이런 과도기를 잘 지나 조화롭게 서로를 인정하는 성숙한 공간으로서 안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웹상에 업로드하는 자료가, 타인에게는 어떤 불쾌감을 줄 수 있는지 자각하고, 조금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은 공간적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접속 지역에 한계가 없다는 뜻도 있지만, 웹 공간이 무한정한 공간이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자신이 향유하고자 하는 문화를 충분히 즐기고, 또한 발전시키면서도, 그 고유의 영역을 잘 관리한다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다. 때문에 나는 인터넷 공간이야 말로 다양한 문화, 개성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조금 더 신경 쓴다면, 자신이 관심 있는 문화를 향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끔 호의를 가지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다양한 문화교류의 장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취존중, 부탁드리겠습니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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