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토마토소스 스파게티에 빨간 물감을 넣으려는가?
그대, 토마토소스 스파게티에 빨간 물감을 넣으려는가?
  • 승인 2011.10.12 09: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디자인 그리고 산사태



작년 이맘때 쯤 내가 아르바이트로 과외 교습을 해 주던 꼬마 친구 중에 시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학생이 하나 있다.
시은이는 예고에서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학생이었는데, 나 역시 그때 시은이의 입시를 돕다가 미대 입시를 부분적으로나마 좀 알게 되었다.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 하는 주관적 차원이 아니라, 미대 입시도 나름대로의 엄격한 틀이 있어서 형식과 채점 기준이 명확한, ‘시험’ 준비라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어쩐지 그리는 그림들이 하나같이 비슷하더라니. 밤을 새워가며 그림을 그리고, 입상 경력을 만들기 위해 그 조그만 몸을 이끌고 지방행도 매주 마다치 않고, 그뿐인가 내신 성적이며 수능 성적을 반영하는 대학들이 많기 때문에 그림과 공부를 병행해야 했던 시은이. 매번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고 그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내게 토로하곤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그림 그리는 것이고 자신이 가야할 길이 미술, 그중에서도 디자인임에는 전혀, 한 치의 의심도 없지만, 입시 미술은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이 아니라고.
그런 얘기를 듣고 있자면 뭐하나 쉬운 게 없구나하며 새삼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위대해 보이곤 했다. 미대 입시라는 건, 내가 고교시절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수시 기간이 되어서 시은이는 일주일에 두 번밖에 만나지 않던 내가 보기에도 지나치게 무리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는데, 그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푸석푸석한 모습이 마치 버너 위에서 깜빡 잊힌 냄비가 타닥타닥 타는 소리를 내는 것처럼 위태위태해 보였다.
잠이 부족하고, 시간이 부족하고, 여유가 부족해 조그만 질책에도 그만 눈물을 보였던 아이. 나는 차마 그 아이를 혼을 낸다거나 할 수 없었다.
그저께는 경북 모 고등학교 대회에 나갔다 돌아오고, 어제는 실기 시험을 치르고, 또 밤새 그림 연습을 했다는 아이를 앞에 앉혀두고, 조금 집중을 못한다거나 가끔 꾸벅꾸벅 존다한들 내가 어찌 화를 낼 수 있겠느냔 말이다.
아이는, 퀭한 눈으로, “빨리 대학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매일 그림을, 질리도록 그리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빨리 “그림을 그릴 날”이 기다려진다고.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그런 질문은 오랜 가뭄 중의 단비처럼 아이의 눈에 생기를 부여했다. 반짝이는 눈으로, 선생님 저는 꼭,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아이는 그래서 이 지옥 같은 날들을 버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나날이 이어지다가, 드디어 면접시험을 보러가게 되었다. 실기시험 점수가 꽤 괜찮았던 덕분이었다. 나 역시 기쁜 마음으로 면접 준비를 도왔다. 그 대학 기출 문제들을 확인하고, 예상 문제를 뽑고, 답변을 정리하고…….
‘디자인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가장 출제가 잦은 질문이었고, 또 예상 문제 1순위였다. 짧고, 간단하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문제. 글쎄 디자인은 뭘까.
그 외에 몇 문제를 더 추려 종일 답변을 정리했고, 그해 면접관이 “디자인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물어준 덕분에, 지금 시은인 그토록 꿈꾸던 시각 디자인과 대학생으로 캠퍼스를 거니는 파릇파릇한 1학년이다.
오늘날 우린 생활 속에서 어렵지 않게 ‘디자인’이라는 말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디자인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려고 하면 그것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광범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디자인을 떠올리면 산업 디자인 중 포장 패키지 디자인만을 떠올리기 쉬운데, 그것이 디자인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가와소에 노보루는 디자인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디자인의 가장 일반적인 용법은 인간이 만들려고 하는 목적물을 머릿속에 그려 그 이미지를 그대로 실현하려고 하는 행위를 말한다. 디자인은 그것을 만들기 위한 재료의 선택부터 그 제작 과정을 통해 완성되어서 사용되기 까지를 처음부터 고려하여 발상하는 행위를 말한다.’



즉 인류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물질적 또는 실질적인 실현만이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실체의 세계 그 자체를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어렵게 말하긴 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작위적으로 실체화 되어있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란 소리다.
디자인이란 저절로 그리 생겨먹지 않은 모든 것! 그렇게 보면 우리 주위엔 디자인이 아닌 것을 찾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다. 즉, 디자인은 특별한 사람들ㅡ예컨대 미술 디자인 전공자ㅡ만의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는 뜻이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 걸치고 있는 옷 역시ㅡ당신이 지금 벌거벗은 상태가 아니라면ㅡ 오늘 아침에 뭐 입을까 고심해 디자인한 결과이며, 메뉴를 정해서 재료의 종류와 양을 고려해 요리를 하는 것도, 그리고 그것을 접시에 담는 것도, 집에 커튼을 다는 것도, 하다못해 당신의 이름을 노트 앞면의 적절한 빈 곳에다 적어 넣는 것까지 다 디자인의 범주 안에 있는 것이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물론 보기에 더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가장 눈에 띄긴 하지만, 그 만을 디자인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디자인의 일부만을 본 셈이다. 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내적인 부분까지도 포함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파스타를 만들기로 했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우선 파스타 면의 수많은 중류 중 어떤 것으로 요리를 할까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제 본 TV프로그램에서 익힌 토마토가 암 예방에 탁월하다는 정보를 입수했던 터라, 토마토소스로 파스타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는 토마토소스와 잘 어울리는 스파게티면ㅡ파스타와 스파게티가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스파게티는 파스타의 수많은 종류 중 하나다ㅡ을 동전만큼 덜어서 물에 삶았다. 조금 적은 듯한 양이지만 근래에 몸무게가 늘었으니 조금은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대신 양파와 토마토를 많이 넣어 든든하게끔 했다. 마지막으로 접시에 담아내면서 파슬리를 조금 뿌렸다. 파슬리를 뿌리면 꽤 그럴싸한 모양이 되어서 자주 애용하는 편이다.
이 일련의 과정들 중, 비단 모양을 생각했던 디쉬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스파게티면’ ‘토마토’ ‘양파’ 등과 같은 것도 모두! 디자인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만약 스파게티를 ‘모양’만을 생각하고 조리했다면, 그것이 과연 어떤 맛을 낼까? 또 그것을 먹는 것이 과연 안전한 일일까?
디자인에 대한 개념정의 쯤이야,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 평생 디자인이란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대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작용?반작용, 입사각?반사각 따위의 이론을 알지 못해도 당구 못 치는 것 아니고, 반드시 경제 이론들에 능해야지만 세일즈맨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디자인의 개념을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을 위한 것뿐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고 해서 토마토 스파게티에 빨간 물감을 넣을 사람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가끔’은 디자인의 한정적인 개념만을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보면 큰 일이 생기기도 한다. 터무니없게도, 토마토소스 스파게티에 빨간 물감을 넣는 것만큼 황당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는 말이다.
특히,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정책이 시행될 때, 디자인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부재하다면 ‘큰 일’의 스케일이 더욱 커지고 만다.
예전, ‘대륙의’ 시리즈가 유행할 때 화제가 되었던 사진 중에 산에 초록색 페인트를 칠한, ‘대륙의 녹색화 사업’이라는 사진이 있었다. 이 역시 녹지 조성을 통한 환경 개선 사업의 본질을 잊고 외적인 부분만을 생각한, 극단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워낙 황당해서 유머자료로나 돌고 있는 사진이라 비약이 심하다 생각할지 모르겠다. 녹화 사업에 녹색 페인트를 쓰는 대륙의 대담함은 디자인에 대한 잘못된 개념정의만으로 생긴 일이라기엔 지나치게 극단적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음 사례는 어떤가.
우리나라의 녹지 조성 사업과 지난여름 산사태의 상관관계. 국가 정책으로 진행한 녹색화 사업은 환경과 친한 디자인, 즉 녹색 디자인 역시 포함하는데,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은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한정적으로 받아들여진 탓이 크다.
환경 디자인은 실질적으로 파괴된 자연의 회복과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것으로, 실제로는 외형보다는 내적인 부분, 즉 자연을 어떻게 파괴되기 전과 같이 회복할 수 있는가, 또 어떻게 해야 지속 가능하고 자연스러운 복구를 하여야 하는가와 같은 더 고려해야 했다.



하지만 ‘디자인’이라는 것이 ‘외적인 부분의 개량’이라는 관념이 팽배했던 탓에, 녹색 디자인이 마치 ‘미관상 보기 좋은 녹지 조성 프로젝트’와 같이 변질 되어버린 것이다. 녹색 디자인 프로젝트는 ‘녹지조성’과 ‘스카이라인을 해치지 않는 건물 입지’가 중점 요소가 되었다.
특히 녹지조성을 위해 빨리 자라고 잎이 무성한 잣나무를 많이 심었다. 잣나무는 뿌리가 얕아 산사태에 취약하다. 물론 뿌리가 깊은 소나무 같은 나무만을 심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얕고 넓은 뿌리를 가진 수종과 깊고 좁은 뿌리를 가진 수종을 골고루 섞어야 산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 이러한 고려 없이 잣나무만을 많이 심은 것이 이번 산사태피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산사태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녹색 페인트 사진이 마냥 웃긴가?
디자인 서울. 익숙하게 느껴지시리라 생각한다. 디자인이라는 타이틀 아래, 서울은 칙칙함과 어수선함을 벗고 좀 더 화사하고 통일감 있는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디자인 서울 페어와 같은 예술?문화적 고양도 동시에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해태 등의 캐릭터 산업 등으로 세계에 대한민국, 서울을 홍보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나 역시 거리의 모습이 깔끔해지니 선진화 된 것처럼 느껴져 꽤 뿌듯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는 단순히 이러한 거리의 통일감, 미적 요소의 개량만이 아니라 조금 더 본질적인, ‘살기 좋은 도시로의 도약’을 위한 디자인으로서의 고려가 있어야 한다.
지난 수해로 디자인 서울에 대한 비판의 시각이 속속 고개를 들고 있다. 보여주기식 디자인, 겉 멋든 디자인이 아닌 진짜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살기 좋은’ 도시는 비단 간판의 통일이나 캐릭터 산업 등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살기 좋은 도시는, 좀 더 편리하고, 좀 더 안전하고, 좀 더 아름다운 디자인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디자인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역시 어려운 질문이다. 이 질문에 시은이는 작년 면접장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디자인이란, ‘더 아름답게’가 아니라 ‘더 좋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디자인, 전문 디자이너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들도 매일을 디자인하며 살고 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주인 의식이 필요하다. 디자인 서울과 같은 국가정책을 우리와 먼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반성하자. 서울을, 아니 우리나라를 디자인 하는 것은, 바로 우리 국민이 주역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