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임금체불’에 뿔난 건설노동자들

건설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임금체불 문제가 재점화 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는 10년째 동결상태인 임금을 인상하자는 요구보다는 “‘쓰메끼리’만 없어도 살겠다”는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이른바 쓰메끼리(유보임금) 기간이 길어지면서 체불로 이어지는 사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면 당장 카드 값을 메우기 위해 ‘카드 돌려막기’를 하고 사채를 써야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건설노동자들 가운데는 신용불량자와 가정이 파괴된 노동자들이 많은 것도 임금체불이 주된 이유라는 분석이다.






죽어야만 관심 가져

지난 해 10월 체불임금에 항의해 시너를 온 몸에 뿌리고 분신한 레미콘노동자가 끝내 생을 마감했다. 전북 순창군에 위치한 이 현장은 ‘한국도로공사’가 발주처인 공공 공사 현장이었으며 시공사는 굴지의 대형건설사인 ‘현대건설’이었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06년 1만 9826개 건설 사업장에서 1837억원의 체불임금이 발생했다. 2009년에도 8601개 사업장에서 1555억원이 체불됐다. 사업장 수는 절반으로 줄어든데 반해 체불액수는 16%정도 줄어드는데 그쳐 건설현장 체불이 개선은커녕 고착화, 고질화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상대적으로 임금체불이 적다는 건설노조 조합원도 2010년 한 해 동안 체불액수 만도 200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만연하고 있는 임금체불이 죽어야만 관심을 갖게 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건설현장에서 만난 김모 씨의 얼굴은 상처투성이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더라도 얼굴은 고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쓰메끼리’가 결국 화근이 됐다.
“몇달 전 일한 곳에서 다쳤어요. 물론 돈을 아직 못받았어요. 300만원 정도 체불돼 있거든요. 정말 할 짓이 못됩니다. 일용직은 한마디로 ‘갈 데까지 간’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요 며칠 전엔 이곳 현장에서 인부 한명이 술 마시다가 쓰러져서 다리를 다쳤는데, 노가다라서 보험도 안 되고 해서 병원비 엄청 깨졌다고 하더라고요.”
김 씨는 현재 생계비도 떨어진 상황이라고 했다.
“준다고 믿어야지 안준다고 믿으면 머리만 아파요. 안주고 떼먹으면 솔직히 답 없어요. 노동청에 신고해서 떼먹은 사람 찾는다 해도 이미 빈털터리인데 돈이 나와요 밥이 나와요? 지금 두 달 밀린 거 다음 달까지 못 받으면 나도 더 이상 못 버텨요. 생계비도 이제 다 떨어졌거든요.”
오모 씨도 잠시 쉬는 틈을 타 깊은 한숨을 쏟아냈다. 지난해 겨울 군부대 막사 공사장에서 일했지만 업체가 임금 500만원의 지불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부터 봄까지 반찬조차 살 돈이 없어 한때 김치와 밥으로만 끼니를 때웠어요. 최근에는 일거리도 없어 얼마 전의 추석 차례상은 꿈도 못꿨죠. 빚이 2000만원까지 늘어 이자도 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들도 복학을 미루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에 쓴소리도 마다 않았다.
“말로만 개선, 개선 하지말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놔야할 거 아니에요. 일자리도 없고 게다가 쓰메끼리까지 성행하고 있으니…. 노동부 장관에게 그것부터 해결하라고 해주세요. 도대체 그런 법은 어느 나라 법입니까. 이거 원 불안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 새벽같이 부지런히 나와서 군말 없이 일하는데, 최소한 사람 대접은 해줘야 될 거 아닙니까.”
두 달째 월급이 밀렸다는 홍모 씨도 고개를 떨궜다. 김 씨와 마찬가지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지금은 업주 측에서 알아서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몇 년 전 전셋집에서 월세로 옮겼어요. 다친 곳은 완치됐지만 이미 늦었어요. 임금체불이 결국 화근이었는데, 건설사 부도나서 다들 도망가고 없더라고요.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어딜 가나 임금체불이 많아요. 지금 여기도 몇 달째 돈 못 받고 있는 노인네들 많아요.”






‘건설 불경기’ 엎친 데 덮친 격 

임금체불 문제 이외에도 일하는 횟수가 줄어든 점도 이들 노동자들을 힘겹게 한다. 유모 씨는 월 평균 간신히 열흘 정도 일거리가 있어 일하는 날보다 술 마시는 날이 더 많다고 했다.
“요즘 일자리 없지요. 건축 경기 엉망입니다. 한 달에 10번 나가면 많이 나가는 겁니다. 요 며칠 운이 좋아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주 지나면 또 한동안 쉬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박 씨의 경우 그래도 기술이 있어 한번 일을 나가면 13만원씩을 받는다. 보통 한 달에 100만원 이상은 버는 셈이다. 그러나 월세 및 생활비, 병원비 등을 제하면 저축할 여유는 없다. 
“먹고살려면 일이 있건 없건 한 달 30일 하루도 빠지지 말고 새벽에 인력소개소로 나와야 해요. 어떤 날은 새벽에 힘도 들고 일도 없을 것 같아 쉬었더니 그날 일이 있었던 거예요. 다음날 나와서 후회한들 늦었죠. 한 번 나가면 며칠 연속으로 나갈 수 있는 일거리를 놓친 거죠. 특히 공구리(콘크리트) 작업은 하루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며칠씩 연속해서 부르거든요. 첫날 가는 사람이 그 일자리 임자가 되는 거지요.”
최근 급속하게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성토도 이어졌다.
“70%이상이 외국인들이에요. 그 사람들 겉보기와 달리 돈도 비슷하게 받아가요. 중개인이 중간에서 얼마씩 떼먹는지 모르겠지만 거의 비슷하게 받아가죠. 일도 잘합니다. 여기서 몇 년 고생하면 고향 가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에 열심히 하겠죠. 젊고 힘도 좋아서 우리보다 일하는 횟수도 많아요. 우리도 살길이 막막하지만 앞으로 젊은 사람들도 걱정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져야할 돈을 외국 사람들이 가져간다는 걸 몰라요. 현장이 그걸 다 보여주고 있어요.” 
박 씨는 조만간 건설 일을 그만둘 것이라고 했다.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니 아직 힘이 있을 때 그나마 조금이라도 돈을 모아놓자는 심산입니다. 앞으로 몇 년만 일하면 현장에서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아요. 최근까지 돈을 적게 받아도 편안하게 꾸준히 일 할 수 있는 업종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연쇄 체불’ 구조적 모순

임금체불 현상은 건설업이 일회성 사업인데다 공사대금 지급방식이 ‘발주자→원수급인→하수급인→근로자’로 이어져 임금지급이 지연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또 입찰과정에서도 과당경쟁으로 인해 저가 낙찰, 저가 하도급이 관행화돼 하수급인이 낮은 공사비에 맞추기 위해 노무비를 삭감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도 원인으로 지적됐다.
건설노조 이영철 교육실장은 “하청업체가 한 달 치 작업물량에 대한 정산을 해 원청에 올리고, 원청은 이를 다시 발주처에 제출한다. 이것이 재하청과 재재하청을 거치기 때문”이라며 “자연적으로 한 달 또는 두 달 이상의 임금이 연쇄적으로 체불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갖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공사대금 선수금을 70%이상 지급했던 4대강 공사현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여전히 임금이 2~3개월 후에 지급되고 임금이 떼이는 것은 아이러니하지 않는가”라며 “따라서 발주처-원청-하청-재하청으로 연이어지는 유보기간을 14일 이내로 줄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실장은 “LH공사의 경우는 유보기간을 14일 이내로 하겠다는 의지를 표하기도 했다”면서도 “하지만 유보임금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대책으로 기성 중 임금 부분을 따로 떼 발주처에서 임금을 직접 지급해 노동자들이 제때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실장은 “특히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임금체불은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며 “흔히 임대료 체불로 불리고 있기는 하지만, 건설기계노동자들은 1인 1차주를 통해 직접 장비를 운전하여 특정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면 당장 카드 값을 메우기 위해 ‘카드 돌려막기’를 하고 사채를 써야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며 “건설노동자들 가운데는 신용불량자와 가정이 파괴된 노동자들이 많은 것도 임금체불이 주된 이유”라고 말했다.
한편 오는 22일엔 서울 시청광장에서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활임금과 노동3권을 모든 노동자에게! 비정규직 철폐 2011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라는 주제로 대규모 집회를 연다. 이번 대회에선 임금체불에 관한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될 전망이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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