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북한산성 유원지→중성문→북한산성대피소까지


# 원효봉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다.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에서 일행들 집결한다.
그중 한 지인이 차량을 가져왔다. 등산화를 구입해야 한다면서 우리를 차에 태우더니 북한산성 유원지입구에 차를 세운다. 불광사를 거쳐 사모바위를 갈려던 오늘 계획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간다.
북한산성 유원지 입구에는 등산용품매장들이 식당들과 함께 즐비하게 널려있다. 예전의 북한동의 식당들이 모두 철수하고 이곳으로 옮겨왔단다. 깨끗하게 정돈된 건물들이 주변에 꽉 들어찼다.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 백운대, 대남문 등으로 가는 등산객들과 둘레길을 가는 무리들이 한데 엉겨 북적인다.
옛날 풀장이 있던 오솔길로 접어든다. 자연생태길 코스다. 개천에는 드문드문 물들이 흘러 내려온다. 선두에 서서 내달린다. 간밤에 쏟아 부은 술기운을 몸에서 빼내기 위함이다. 정상주(酒)도  땀을 흘려야 제 맛이 나는 법이다. 어제 그렇게 마시고도 잠시 후 정상에서 한 사발 생각이라니 쯧쯧쯧… 가히 중병이다.


# 이날 함께 등산에 나선 지인들





중성문을 지나 30여 분을 더 가서 팔각정 쉼터에서 비로소 멈춘다. 일행들 원성이 자자하다. 다시는 이런 팀에는 참석 않겠단다.
“어제 과음한 탓에 술 깨기 위해 조금 속도를 냈습니다. 이해를 바랍니다.”
“ 그래도 그렇지. 이 나이에 유격훈련도 아니고 사람 잡는 거지.”
한바탕 웃고는 각자 물통으로 입 가져간다.
옛날 식당들이 있던 자리는 데크로 만든 쉼터가 둥글게 지어져 있다. 한결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이다. 어제도 토요일이라 산행을 했었다. 국민대 입구에서 형제봉을 탈 예정이었으나 일행 중 한명이 불참하여 가볍게 불광역에서 탕춘대 능선 거쳐 잣나무 솔밭에서 자리 펴고 술과의 만남이 시작됐다. 어제는 세 사람이 가져온 막걸리가 7병이었다. 족발과 돼지껍데기, 맛살, 고추장과 멸치, 김치 등을 놓고 가을바람 산들거리는 숲속에서의 술 맛은 그야말로 군자삼락(君子三樂)이 부럽지 않았다. 이 기분 살려서 속세에서 다시 몇 차례 자리를 옮기면서 고 고 고.


# 북한산에도 벌써 단풍이 물들고 있다.


# 중성문



다시 올라간다. 백운대와 대남문가는 갈림길에서 백운대 방향으로 접어든다. 길이 매우 가파르다. 일행들 말도 없이 거친 숨소리만 들린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다. 내장에 남아있던 알코올 기운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기분이 맑아진다.
깔딱 고개가 계속 이어진다. 허리가 아플 정도로. 중간 중간에 단풍나무들이 벌겋게 무리를 이루고 있다. 상큼함이 엄습한다.
백운대 1.7킬로미터, 용암문 0.2킬로미터 남긴 지점에 우뚝 선 건물이 ‘북한산성대피소’다.
약 5분 후에 다섯 명의 일행들 모두 도착한다. 여기서 자리 펴잔다. 백운대가 머리위에 있는데… 도저히 못 가겠다고 퍼진다. 그래, 오늘만 날인가.


# 멀리 노적봉이 보인다.




생고구마, 족발, 껍데기, 오이, 알타리 무김치, 가래떡, 사과, 막걸리, 복분자 등이 차려진다. 입안에서 군침이 돈다.
알루미늄 대폿잔에 막걸리 가득 붓고 부딪힌다. “반갑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압구정동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지인과 함께 온 두 사람은 오늘 첫 대면이다. 비로소 명함 교환한다. 서울시내 모 구청에서 근무하는 분과 대기업 협력업체를 운영하는 두 분이다.






나와 같이 온 지인 소개한다. 모 대사관에 근무하는 양반이다.
압구정동 지인, 기자에게 불만이 대단하다. 산을 그렇게 다니면서 자신을 이제야 불러줬냐고. 그러고 보니 2년 전인가, 불광역에서 백운대 종주 후 처음 산행이다.
자신의 병원도 압구정역 근처로 옮겼고 간판도 본인의 이름을 딴 성형외과에서 ‘다미인 정형외과(多美人 整形外科)’로 바뀌었단다. 중국인 손님을 위한 변화란다. 병원가족도 20여 명에 가까운 대가족이 되었단다. 미안한 마음에서 한잔 더.
음식을 한참 맛있게 먹던 협력업체 지인, “이러다가 차량 주차해 둔 식당에서 뭘 먹지요. 배가 불러 큰일인데….” 
하산 길은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간다. 구청의 지인, “아까 우리가 올라왔던 길 맞나요.” “그럼요, 이 길로 땀 흘리면서 올라왔죠.” “국장님 따라 옆도 안보고 정신없이 가다보니 이 길이 처음인양 느껴집니다.”




또 미안한 마음 들게 한다. 오늘은 이래저래 미안한 마음뿐이다.
오전에 차량 주차해 둔 ‘만석장(이근, 43세, 02-385-2093)’에서 하산의 기쁨주를 나눈다. 만석장은 예전엔 어머니가 하던 걸 자리를 옮기면서 아들이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메뉴도 다양하다. 두부버섯전골(中30,000원), 두부김치전골(中30,000원) 한방백숙(35,000원), 흑돼지두루치기(2인이상 12,000원), 두부삼합보쌈(中30,000원), 홍어무침(25,000원), 더덕무침(20,000원), 파전(12,000원), 도토리 묵(10,000원) 등이고, 기타 백반과 잔치국수도 있다.
큰 두부삼합보쌈과 도토리묵을 주문하고 막걸리 마신다. 돼지고기가 연한 게 입안에서 개운한 맛을 전해온다. 음식들이 정갈하고 맛이 있다.
협력업체 지인이 어느새 식대를 지불해 버렸다. 회비 모아도 되는데. 차량 땜에 술도 못 마시고 술값을 계산해 버리니 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안한 마음 가시기 전에, “우릴 태우고 불광역에 내려 주시죠. ‘목포세발낙지’에서 가볍게 한잔 더 하게요.”
차는 떠나고 나머지 네 명이서 불광역 2번 출구 뒤의 먹자골목 초입에 있는 ‘고흥나로도 횟집(02-388-3551)’에서 낙지 연포탕으로 술상을 본다. 이 집은 바로 옆에 있는 목포세발낙지와 같은 주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 만석장과 맛깔난 음식들


유씨 성을 가진 40대 여인이 운영하는 식당인데 장안의 명소로 이름이 자자하다. 전남 고흥출신의 여 주인은 말도 걸쭉하고 성격도 화끈하여 남녀 모든 손님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주인이 양 쪽을 오가면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 집의 낙지가 힘이 아주 좋아 식도락가들의 발길이 사시사철 끊임이 없다. 기자와도 인연이 20년이 넘는 일명 ‘첫사랑’의 주인공이 바로 낙지다.
어느덧 취기가 오른다. 이곳은 우리 압구정 지인이 계산을 해 버렸다. 마음속에 미안함이 남아 있나? 없으면…또 미안하면 그만이지.
전철역에서 일행들 배웅하고 대사관 지인과 단 둘이서 근처의 동네선배가 운영하는 ‘길 카페(마트)’를 찾아 파라솔 아래서 시원한 맥주로 마무리 목 추김을 한다.
난데없이 전화가 걸려온다. 매월 둘째 주 일요일에 산행하는 멤버들이다. 목포세발낙지에 도착하니 기자가 조금 전 다녀갔다는 얘길 듣고 부랴부랴 연락한 것이라며 빨리 오란다. 꾼은 꾼을 찾아 주는 법. 불러 줄 때 사양 말고 잘 가줘야 한다.
세발낙지를 거쳐 마지막으로 간 곳이 메들리 집이다.

 고향에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 러∼뇨
 두견화 피는 언덕에 누워 풀피리 맞춰 불던 옛 동무여
 흰∼구름 종달새에 그려보던 청운의 꿈을
 어이 지녀 가∼느∼냐 어이 새워 가느∼냐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약간 무겁게 느껴진다.
전광훈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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