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며칠 전 자른 머리가 어색했는지 자꾸만 옆머리를 쓸었다
동생은, 며칠 전 자른 머리가 어색했는지 자꾸만 옆머리를 쓸었다
  • 승인 2011.11.0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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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동생 그리고 군대




동생이 훈련소에 들어간다. 마냥 아기 같기만 하던 녀석이 벌써 군인이라니, 참 애매한 기분이 든다. 동생은 며칠 전에 자른 머리가 어색했는지 자꾸만 옆머리를 쓸었다. 모자를 써도 안경을 써도 영 태가 안 난다. 군인이 되기도 전에 군인티를 내고 있다. 어머니는 그런 동생을 볼 때마다 기분이 영 이상해지는 모양이다. 쟤를 어떻게 보내나, 저게 벌써 저렇게 컸나 하시는 어머니의 혼잣말은 수건을 개키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불쑥불쑥 드밀곤 했다. 나는 그때마다 동생의 낯빛을 살핀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나마 의연하게 있는 동생의 모습을 봐야지만 나도 마음이 놓이고 그랬다.
동생이 친구들을 만나고, 머리를 깎고, 종일토록 잠을 자고……, 그런 식으로 약간은 싱숭생숭하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동생 핸드폰의 디데이 알림은 빠르게 가까워왔다. 내 친구들은 이미 제대를 거의 다 했고, 내 나이는 더 이상 군인 아저씨가 아니라 군인 동생들이라 불러야 될 나이가 되었음에도 두 살 터울인 동생이 입대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에 묘하게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이다.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동생도 나이를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친구들이 입대가 내일이라며 빡빡 깎은 머리로 사회야 잘 있거라, 밤새 술로 달리는 자리를 못 겪어 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생이 마냥 오냐오냐 막둥이로 자란 것도 아닌데 이렇듯 기분이 이상한 것은 어쩐 일일까. 동생은 마지막 날까지 별로 평상시와 다를 것 없이 늘어져서 축구중계를 보고, 인터넷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만 유일하게 초조한 모습이었다.  본인이 저렇듯 태연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겐 동생이 입대한다는 사실이 별로 와 닿지 않았다. 가끔 어머니가 동생을 위해 차려주시는 밥상의 때깔이 급이 다르구나 하는 걸로나마 동생이 먼 여정을 떠나긴 하는 구나 하고 깨닫곤 했다. 그냥 깎은 머리가 우습고, 저 어린놈이 군인이라는 게 우습고, 어머니가 미리부터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 역시 우습고, 뭐 그랬다.

드디어 디데이, 신병훈련소 입대 날의 아침이 밝았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서둘러 나를 깨우셨다. 나는 아침잠을 방해 받는 것에 볼이 조금 부었다. 춥고 귀찮았다. 친구들은 혼자서도 잘 가드만, 아니면 친구들이랑 떼로 가든가. 아버지가 워낙 이런데 엄격하시니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이건 뭐 유난스럽게 온가족이 출동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동생 입대에 나도 따라간다 하니 내 친구들로부터 ‘너는 왜 가냐’ 하는 질문을 꽤 받았다. 뭐 딱히 빠질 만큼 중한 다른 일도 없고 하니 순순히 따라 나서긴 하지만, 아침잠에 취한 정신에는 약간 불만스럽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내가 먼저 씻고, 동생이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내가 머리를 다 말릴 동안 동생은 꽤 오랫동안 샤워를 했다. 초광속으로 씻고나오던 녀석의 습관을 생각해보면 특이한 일이긴 했다. 자기도 착잡하긴 한 모양이다. 동생이 나오고 아침 식사를 했다. 한동안은 이렇게 가족 전부가 모여앉아 식사 할 일도 없을 테니, 입맛이 없는데도 밥상머리를 지키고 있었다. 젓가락이 깨작깨작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침식사를 하는 가족 전원이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비단 아침이라 식욕이 돌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아버지 차를 타고 신병 훈련소까지 가는 길, 동생은 별 말이 없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두 분이서 얘길 나누셨다. 차 안이 따뜻하여 나는 잠이 들었다. 잠결에 누나는 자니, 저것도 누나라고, 하는 소리와 동생이 낮게 흐흐 웃는 소리 같은 것을 들은 것 같으나 깨지 않고 쭉 잤다. 한 시간 반쯤 걸렸나 해서, 꽤 낯선 곳에 도착했다. 차는 세워져 있었고 동생은 없었다.
어디 갔냐 물으니 화장실에 갔단다. 내가 떨리냐 물었을 때는 아니라 하였지만 역시 긴장한 게 틀림없다. 다 왔냐 물었더니 도착했단다. 저쪽 위로 가면 신병훈련소니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들여보낼 것이라고 했다. 뭐 준비물, 하는 간판들도 보이고 여기 저기 머리 깎아놓은 청년들도 보이고, 내 동생 같은 처지의 어린 양들이 많기도 많구나, 하며 화장실에 갔다는 동생을 기다렸다.

돌아오는 동생의 안색은 출발할 때보다 훨씬 더 파리했다. 긴장이 안 될 수는 없을 거다. 잔뜩 쫄아 있는 얼굴이 안쓰러워 어머니와 아버지는 더 쾌활하게 말을 걸었다. 동생은 자기가 무슨 대답을 하는 줄 도 모르고 그냥 되는 대로 뱉는 모양이다. 대개는 네, 아니오, 정도로만. 어머니는 동생의 그런 모습이 마냥 안타깝고, 아버지는 내가 늬 마음 안다, 하는 눈으로 동생을 바라본다. 동생은 입맛이 없다며 점심을 먹지 말자 했다. 얼굴색이 좋지 못한 것이 억지로 먹였다가는 탈이라도 날 것 같다만, 아버지는 굳이 고기를 먹여 들여보내고 싶은 모양이셨다. 아무리 봐도 동생이 고기를 잘 씹어 넘길 것 같지 않은데, 무리였다. 아버지의 고집으로 고기 집에 들어가긴 했지만, 역시 고기를 먹는 것은 무리였다. 대충 곰탕 같은 국물을 시켜놓고 잘 갔다 오라느니 하는 말을 나눴다. 사실 동생은 워낙 말수도 적고 해서 그다지 초조한 모습이 잘 눈에 띄진 않는다만, 가족 아닌가. 동생의 눈동자 굴러가는 모양만 봐도 얘가 지금 정상이 아니구나 알아챌 수 있었다. 식당에 앉아 있는 머리 깎은 청년들이 죄 얼굴색이 좋지 못했다. 훈련소 앞 밥집은 아무리 훌륭한 맛집이어도 맛이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소리는 아닌 모양이다. 대체로 스물 하나, 많아도 내 또래다. 이 젊디젊은 청년들이 나라를 지키러 간다 생각하니 참 안 봐도 그 맘 얼마나 막막할는지 싶다. 밥을 적당히 먹고 훈련소로 올라가는 언덕길. 미리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면면이 다 이색적이다. 내 동생뻘 여자애는 남자친구의 깎은 머리를 보며, 한숨을 폭폭 쉰다. 너무나 심각한 얼굴로, 깍지 낀 손을 바라보며 무어라 귓속말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흥미롭기도 하다. 지금만큼은 세상에 가장 슬픈 비극의 여주인공이 된 그녀가 눈물이 그렁그렁하면, 또 마찬가지로 남주인공은 그녀의 눈물을 훔쳐 주고, 곧 올게, 조금만 기다려 하는 모습이 워낙 딴 세상 같아서 묘하게 우습기까지 하다. 둘의 위치가 지척임에도 까마득하게 먼 듯 한 느낌이다. 이미 그네들의 눈에 나 같은 건 아웃포커싱 돼버린 건지,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도 둘만의 세상에서 껴안고 울고 난리가 났다.

어쨌거나 몇몇 영상을 보여주고 신병들은 앞으로 나갔다. 또 한 번 여기저기서 눈물이 터졌다. 잘 갔다 오라느니 기다리겠다느니, 뭐 이런 목소리들이 소란한 가운데 우리 가족은 조용히 작별인사를 했다. 동생은 군인의 신분으로 남고,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어머니는 돌아오는 차에서 결국 눈물을 보이셨고, 나는 에~엄마 운대요, 하면서 그런 어머니를 놀렸다. 엄마는 약간 붉어진 눈으로, 너도 아들 낳아봐라! 하셨다. 사실 나는 별로 슬프진 않았다. 당연히 가야하는 것 아닌가. 동생이 고생할 것 생각하면 안쓰럽긴 하지만, 자랑스러운 대한의 남아로 돌아올 날이 기대가 된다. 예민한 성격도 조금 둥글둥글해지고, 자세도 꼿꼿하게 고치고, 애기마냥 앵앵거리는 목소리 대신 굵은 목소리로 ‘충성!’ 외칠 동생의 모습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엄마 아들은 군대 꼭 가야해, 저거 뭐 어따써? 사람 돼서 와야지 써먹죠” 했더니 어머니 눈을 흘기면서, 너 같은 애나 군대를 보내야 하는데 하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또 별 말이 없었다. 나는 또 잠이 들었다. 아직도 기분이 이상하다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달래는 아버지, 무심하게 잠이나 자는 누나. 또 이제는 군인으로서 훈련소에 남은 동생. 남자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게다가 아직 푸릇푸릇한 젊은이들이다. 새로운 환경은 누구나 두렵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자유나, 수많은 권리들도 보장이 힘든 낯선 환경. 남자로 태어나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이러한 당위를 속으로 차분히 되뇌어 본다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누리던 모든 것들과 격리되어 군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달가울 수는 없다. 친구를 보내는 사람도, 연인을 보내는 사람도, 가족을 보내는 사람도, 그리고 누구보다 자기 자신도, 이러한 두려움이나 안타까움, 슬픔 따위를 애써 다독이는 것이다. 보내는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고, 또 감사해야한다. 그 모든 것을 이기고 두려움으로 나아가는 젊은 걸음이 자랑스럽다. 잘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내 동생. 아무쪼록 잘 견디고, 많은 것을 얻어서 돌아오길 바란다. 종종 편지할게. 건강히 잘 지내라.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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