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철희의 바라래 살어리랏다> 갯것 바구니

변산면 마포리 하섬 앞 갯벌은 이 지역 주민들의 찬장과도 같은 곳이다. 하섬은 사리 때가 되면 바닷길이 열려 육지와 연결되는 섬인데, 섬 주변은 해안선의 바위지대, 바위지대를 벗어나 하조대까지는 모래펄갯벌, 하조대에서 하섬으로 이어지는 칫등 주변은 자갈과 모래가 섞인 혼합갯벌, 하섬과 진여(긴여) 주변은 조수웅덩이가 발달한 바위지대 등 갯벌 스팩트럼이 펼쳐지는 곳으로 종 다양성의 보고이다.

바위지대에는 굴, 고둥류, 민꽃게, 똘장게(현지어, 무늬발게, 풀게의 통칭) 등의 게류와, 파래, 청각, 톳, 돌김, 쥐충이 등의 해조류가 서식하고, 모래펄갯벌에는 해방조개, 맛조개, 개불, 낙지 등이, 칫등 주변의 혼합갯벌에는 주로 바지락이 서식하는데 특히 사리 때 드러나는 ‘칫등’ 주변에는 많은 양의 바지락이 묻혀 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형편이 어려웠던 예전에는 시장 보아다 방상 차리는 집은 거의 없었다. 갯벌에서 나는 갯것들로 밥상을 차리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이 지역 주민들은 사리 때가 되면 웬만한 일은 제쳐두고 갯벌로 나간다. 갯벌에만 나가면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또 아무리 초보자라고 해도 빈 바구니는 없다. 뭐가 됐든 바구니는 채워져 있다.

“어디 한 번 봅시다. 뭘 얼마나 잡았나!” 그러다보니 갯벌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갯것 바구니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몇 해 전 가을 어느 날 변산반도 마포, 이 마을 사람 몇이서 마침 갯것을 해 가지고 오기에 바구니를 들여다봤다. 바구니 속에는 성게, 피조개, 가리비, 보디조개(현지명), 또 변산사람들이 소고기하고도 안 바꿔 먹는다는 돼지가리맛, 대맛, 반지락 등이 채워져 있었다.

차분하게 바지락만 잡았다면 더 많이 잡을 수 있었을 터이지만 안주거리 찾아, 산책삼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남자들은 거의가 그렇다. 갯벌에 들어서면 안주거리 뭐 없나 하고 주변을 먼저 둘러본 후, 별것 없을 것 같으면, 바지락이라도 잡고, 그것도 시원찮으면 똘장게(무늬발게, 풀게의 통칭)라도 잡고, 정이나 빈 바구니일 것 같으면 고둥이라도 주어 오는 게 보통이다. 그러기에 허탕은 거의 없다.

어쨌든 갯것 바구니는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산책삼아 이 토실한 먹을거리를 주워왔다는데 돈 주고 산다면 얼마치나 될까? ‘이렇듯 갯벌은 누가 씨 뿌리고 가꾸지 않아도 인간에게 풍요를 선사하고 있구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살조개, 변산에서는 ‘보디조개’라고 부른다.

화로불에 구워먹던 ‘보디조개’

바지락으로 채워진 바구니에는 어김없이 살조개(현지명 보디조개)가 섞여 있기 마련이다. 겨울 날 화로 불에 살조개 구워 먹는 맛이라니...,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화로 불에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먹는다면 모를까, 조개를 구워 먹는다면 의아해들 할 것이다. 그러나 의아해 할 것 없다. 원래 조개류는 구워 먹어야 제 맛이다. 양념을 할 필요도 없고, 간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

화로나 아궁이의 잔불에 조개의 꼭지부분을 넘어지지 않게 잘 꽂아두고 있노라면 ‘피이~’ 소리와 함께 조가비가 쫙 벌어지는데, 이때 쏟아지는 조가비 속의 국물로 인해 살은 온통 재를 뒤집어쓰기 마련이다. 은박지가 흔한 요즈음이야 은박지에 싸서 구우면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재 닦아내며 먹는 이 조개 맛은 일미이다.

이런 구이용 조개는 뭣보다도 살에 펄이 없어야 한다. 펄이 없는 조개류로는 백합, 가무락조개, 피조개, 굴, 살조개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변산의 하섬에 흔했던 살조개는 어려서 제일 많이 구워 먹었던 조개 중의 하나이다.

살조개(Protothaca jeodoensis, 백합과)는 조간대 중·하부 혼합갯벌에 산다. 몸의 크기는 높이 길이는 6cm 정도, 높이 6cm 정도로 둥근 조개다. 껍데기는 바지락처럼 세로로 난 골과 성장선이 교차하며 갈색에 짙은 밤색의 반점들이 불규칙하게 나 있는데 개체별로 그 무늬는 각기 다르다. 부안에서는 ‘보디조개’라고 부른다.






원래 부안에서 키조개 주산지는 위도 근해이지만, 썰물 때 하섬의 칫등 주변에서도 펄 속에 묻혀 있는 키조개가 더러 발견되기도 한다.

키처럼 생겨서 `키조개`

갯것바구니 속에는 가끔 키조개가 담겨 있기도 한다. 갯것 해가지고 집에 돌아오면 조촐한 술상이 차려지기 마련이다. 갓 잡아 온 안주거리가 술맛을 당기기에 충분한데 오늘은 그 귀한 키조개가 올라왔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원래 부안에서 키조개 주산지는 위도 근해이지만, 썰물 때 하섬의 칫등 주변에서도 펄 속에 묻혀 있는 키조개가 더러 발견되는 것이다.

키조개는 우리나라 연안에서 나는 조개류 중에서는 가장 크다. 큰 놈의 경우 30센티미터 이상까지도 자란다. 조가비의 빛깔은 회록갈색 또는 암황록색으로. 모양은 꼭지(각정, 殼頂)가 매우 좁고 아래로 점점 넓어진 삼각형이어서 마치 곡식을 까부르는 키를 닮았다. ‘키조개’라는 이름도 키처럼 생겨서 얻어진 이름이다. 부안에서는 ‘치조개’라고 부른다.

조가비는 얇고 겉면에 성장맥과 방사륵이 있다. 자웅이체의 난생으로 산란기는 7~8월이며, 발생하여 15~20일 동안은 부유생활을 하다가 곧 족사(足絲)를 내어 부착생활에 들어간다. 부착기간 1~2개월이 지나면 조간대에서 수심 300m까지의 진흙에 뾰족한 꼭지 부분을 박고 똑바로 선 상태로 일생을 사는 놈이다. 그러기에 잠수부를 동원하거나 바닥을 긁는 `형망` 또는 쇠로된 갈고리 같은 도구를 이용해 채취한다.

원통형의 키조개 관자는 회나 구이, 찌게, 볶음요리 등으로 먹는데, 워낙 큰 조개이기 때문에 관자 또한 크다. 지름 7~8센티미터, 높이 4~5센티미터가 넘는다. 일본에서는 키조개 관자를 얇게 썰어 꼬지에 꿰어 구워먹는 ‘가이바시’를 최고급 요리로 알아준다고 한다. <허철희 님은 자연생태활동가로 `부안21`을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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