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구조조정’에 동국대 학생들 무기한 농성

동국대 학생들이 학교 측의 일방적인 학과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하며 총장실 점거 농성에 돌입, 파장이 커지고 있다. 동국대는 문예창작학과, 반도체학과 등 9개 학과를 폐지하거나 통폐합하는 구조조정 추진안을 확정지었다. 
학생들은 “구조조정 논의와 결정은 그 학문 안에서 공부하는 학생들과 소통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돼 왔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조정이 취업률이라는 획일화된 잣대로 진행돼 왔고, 이는 곧 학문을 돈벌이의 수단만으로 여기는 경박한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비롯한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북한학과’ 살아남고 나머진 확정… 점거농성은 계속돼

동국대가 학생들의 반대에도 학과 통폐합을 추진키로 했다. 동국대는 9일 교무위원회를 열어 유사 학문 분야를 통합해 학부제와 트랙형 전공제를 시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 ‘미래지향적 학문구조 개편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대학 측은 국어국문학과·문예창작학과, 물리학과·반도체과학과를 각각 1개 학부로 통합한다. 이들 학부 전공생은 트랙형 전공제를 통해 자유롭게 전공과목을 선택할 수 있고 졸업할 땐 수강과목에 따라 전공을 부여받을 수 있다. 또 경영학부 내 회계학과와 경영정보학 전공은 경영학 전공으로 통합하고 영상미디어대학은 해체한다.
정치행정학부 북한학 전공의 경우 분단국가의 상징성과 사회적 관심, 정부 지원 등을 고려해 학과를 유지하되 정원을 현행 19명에서 3명 줄이기로 했다. 대학 측은 지난 4월 학문구조개편위원회를 구성해 개편 시안을 마련하고 교수, 학생, 동문을 상대로 의견수렴을 해왔다. 개편안은 2013학년도 신입생 모집부터 적용된다.

이에 통폐합 대상 학과가 주축이 된 ‘우리의 학문을 지키기 위한 동행’(동행) 소속 학생들은 학문구조 개편안 시행 중단을 요구하며 총장실 점거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학생들은 지난 5일 대학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과 구조조정안 철회와 학생·학교간 대화협의체 구성을 촉구하며 총장실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학교 측은 학교 재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의 재정 지원 사업에 부합하도록 학과 구조조정안을 확정했다”며 “이는 대학 서열화와 기업식 자율경쟁 교육을 심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학생과 학교 측 인사 각 4명이 참여하는 ‘학과발전 협의체’를 구성해 학문구조 개편안과 관련한 사항을 논의·의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떠 “학교 당국은 모든 학과를 취업률이라는 획일적 잣대로 평가하고 서열화 하는 학과 구조조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학생들의 대화협의체 구성을 제안에 학교 측은 점거 해제를 전제로 대화를 수용하겠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동국대는 즉각적인 점거 해제를 요구하는 한편 점거 학생들에 대해 징계 검토 작업에 들어가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동국대 한 관계자는 “이번 학문구조 개편안은 수년에 걸친 연구와 자문, 구성원의 의견 수렴을 거쳐 결정했다”며 “취업률을 근거로 한 상업적 학과 줄세우기라는 일각의 비판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또 “현재의 학문구조개편이 학문을 상품화한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현재의 학문구조개편 대상 학과 즉 문예창작-국문, 철학-윤리문화, 물리-반도체, 경영-경영정보-회계를 광역화하는 것이 어떻게 상업화인지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논의’의 자리 아닌 ‘설명’의 자리”

이번 농성을 주도하고 있는 동행은 교육상품화 반대, 학과구조조정 전면철회, 학생과 학교의 협의체구성 등을 위해 활동하는 학생들의 모임이다. 총장실까지 점거한 이유에 대해 동행 조승연 씨(동국대 부총학생회장)는 “2007년도부터 추진돼온 동국대학교 학과구조조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며 “동국대의 계속된 학과구조조정으로 2009년도에는 독어독문학과가 폐과되었다. 또한 동국대는 2013년부터 윤리문화학 전공은 사실상 폐과, 문예창작학과는 학부로 통합하는 내용의 ‘학문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고 성토했다. 그는 이어 “이런 논의와 결정은 그 학문 안에서 공부하는 학생들과 소통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돼 왔다”고 덧붙였다.

학교 측은 “학생들과 학사지원본부장과의 면담, 학술부총장과의 면담 등 지속적인 의견교환이 이루어졌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조 씨는 “그 면담자리는 ‘논의’의 자리가 아니라 ‘설명’의 자리였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조 씨는 “사전에 대화로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공문 전달한 것 만해도 몇 번인지 모를 정도이다. 항상 ‘싫다’, ‘안하겠다’ 도 아니고 묵묵부답이었다”며 “총장실을 점거하니까 총장께서 다들 중강당으로 내려오라고 말씀했다. 점거를 해서야 총장께서 대화하려는 액션을 취했다”고 말했다. 그는 “진작 그런 자리가 있기를 바랬다. ‘너희와 얘기해보겠다’가 아니라 공식적인 논의 테이블에서 학생과 교직원이 동등한 자리를 갖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최모 씨는 “총장실 점거는 어쩔 수가 없었다”며 “2007년부터 학생들이 학과구조조정에 관해 문제제기를 했다. 또 이번 연도만 해도 10월 14일부터 총장께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12월 말이면 ‘학문구조개편안’이 완전히 통과될 수 있다. 그 때까지 소통이 안 되면 돌이 킬 수 없게 된다”며 “학교 측의 비민주적인 의사결정방식에 화가 난다. 학과 통합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학생들은 그 논의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같은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인데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리문화학과 장모 씨는 “윤리문화 전공 학생이긴 한데 단순히 우리 과가 없어져서가 아니라 과를 없애고, 줄이고, 합치는 과정 속에서 학생의 의견이 전혀 반영이 안 되는 것 자체가 큰 문제”라며 “결국 학문을 상품화는 것이다. 취업률이란 획일적인 잣대로 학문을 판단할 수 없는 건데 그런 잣대들로 평가를 해서 학과 인원을 줄이거나 학과를 없애는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토로했다.

문예창작과 심모 씨는 “현재 학교 측의 태도를 보면 처음에 문예창작과를 만든 이유도 결국 돈 때문이었던 것이라고 판단된다”며 “학교 간판인 국문학과 인원을 갑자기 늘리기는 힘드니까, 문창과를 만들어 장사를 한 게 아니냐”고 따졌다. 그는 “상황이 이러니까 일반 사람들은 국문과랑 문창과랑 무엇이 다른지 혼란스러워 한다. 아니 국문과의 일부분에 불과한 줄로만 안다”며 “엄연히 다른 학문이라는 관점에서 탄생한 과인데, 이런 식으로 통폐합 하는 것은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토로했다.  

총장실 점거사건에 대해 법학과 서모 씨는 “자신의 학과에서 구조조정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총장실을 점거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면서도 “같이 투쟁하자니, 입장차가 있는 것 같고, 모른 채 하자니 같은 학우로서 안타까워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한편 동국대학교 홍보실 한 관계자는 “피교육자의 신분인 학생이 스스로 교육받을 교육과목과 전문적인 영역인 미래학문의 예측까지도 학생들이 교수와 직원과 동등하게 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교육법은 학생대표가 등록금 심의나 학내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참여권한을 보장하고 있으나 이를 학교와 동수로 하겠다는 것은 초법적인 일로 대학이 수용할 수 없는 문제”라고 밝혔다.



“스스로 꿈꿔 왔던 진로 계획하고 실현시켜야”

구조조정 개편안을 확정한 가운데 학생들의 반발은 주말에도 이어지고 있다. 동행 소속 학생 10여명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에서 ‘릴레이 108배’ 집회를 열고 학문구조개편안과 학과구조조정의 전면 철회를 촉구했다.

동행은 집회에서 “학문을 상품화하는 비교육적인 현재의 학과 구조조정을 전면 거부한다”며 “스스로 꿈꿔 왔던 진로를 계획하고 실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1시께에도 서울 중구 필동로 동국대 본관 앞에서 ‘배움의 학 화형식’을 진행하는 등 반발 움직임을 이어갔다.

시민사회의 반발도 거세다. 사회당은 논평을 통해 “문제는 이러한 구조조정이 취업률이라는 획일화된 잣대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는 학문을 돈벌이의 수단만으로 여기는 경박한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했다.

조영권 사회당 대변인은 “교과부는 지난 9월 대학구조조정이란 핑계로 부실대학을 선정했고 이 과정에서 예술을 취업률로 평가하는 몰상식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며 “동국대는 물론 히브리학과를 폐지하는 건국대, 독어독문학과 등을 폐지하는 단국대, 한국어학과를 폐지하는 호남대 등 수많은 대학이 이에 편승해 기초학문 죽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대학과 학문의 본질이 취업에 있지 않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을 외면한 경쟁력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며 “시민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교양의 습득은 없어지고 ‘스펙’ 등 단순히 노동사회로 편입하는 과정만 남은 대학의 현실을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대변인은 “동국대는 지금 즉시 학과 구조조정을 철회해야 한다. 또한 정부도 신자유주의적인 대학 구조조정을 중단하고 대학이 `진리탐구’라는 본연의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