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기획: ‘차별 있는 세상’ 우리사회의 소외자들을 찾아서> 외국인 유학생들의 한숨

최첨단을 달리는 21세기, G20을 개최한 ‘경제대국’ 한국사회는 여전히 ‘전근대’의 그늘로 얼룩져 있다. 우리사회 곳곳에서 경제?문화적으로 차별받는 이들을 발견하는 일이란 그리 어렵지 않다. ‘차별 없는 세상’ 의제에서 파생된 ‘학벌 없는 사회’,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 ‘장애인 차별 철폐’, ‘성 평등 구현’ 등의 구호는 무색하기만 하다.

이유는 다양하면서도 복잡하다. 지난 반세기 양적 성장에만 매몰 돼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가 하면, 무한경쟁 체제로 돌입한 사회적 분위기에 책임을 지우기도 한다. 자성이 촉구된다. 그럼에도 무색하다. 소외자들에게 ‘차별 철폐’는 긴급하고 간절하지만, 이들을 볼모삼은 사회적 진보는 더디기만 하다. <위클리서울>은 장애인, 성 소수자, 미혼모, 양심적 병역거부자, 군미필자, 외국인 노동자 등 ‘차별 있는 세상’에서 소외받는 이들을 만나고 있다. 이번호엔 대학 캠퍼스에서 극심한 차별에 시달리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만나봤다.





“쪽바리, 떼놈들 주제에”   

유학을 보내던 한국이 어느덧 유학생을 받는 입장이 됐다.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폭력적이다. 서울의 한 대학원에 재학하는 일본인 유학생 요시무라(여. 27) 씨는 학교 식당에서 전화 통화를 하다 옆 자리 남학생들의 욕설을 듣고 식사를 채 마치지도 못하고 자리를 떠야했다.

“일본인 친구와 통화를 했어요. 당연히 일본어로 했죠. 그런데 옆자리에서 ‘쪽바리X’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는 것이었어요. 조롱하는 것 같았죠.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걸로 착각 했나 본대, 상당수 유학생들은 유창하진 않아도 소통하는 데 문제없을 정도로 한국말을 구사하거든요.” 

요시무라 씨는 일본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캠퍼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런 일이 벌어지면 학생회가 가만히 안 있죠. 만약 고소하면 학교 당국도 쩔쩔 맬 겁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아직 이런 부분에 있어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 같아요. 바로 옆 나라인데도 문화차이가 이렇게 나는가 싶더라고요. 더구나 일본 남자들은 무뚝뚝하잖아요. 남의 일에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아요. 여자들은 드세질 못해서 조용조용히 지내고요.” 

식당에서 요시무라 씨에게 가해진 언어폭력은 위안부 문제 등 반일감정이 또 다른 양상으로 드러났던 것으로 보인다. 옆자리 남학생들의 대화는 ‘우리 여성들도 일본에게 당했으니, 일본 여성들도 똑같이 당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정신대 할머니 문제를 꺼내더라고요. 일본인들이 잘못한 부분이긴 해요. 그런데 일상에서까지 이렇게 드러날 줄은 몰랐어요. 일본은 성인물이 발달한 나라니까, 자발적으로 정신대에 지원하고도 남을 사회다, 뭐 이런 식으로 성희롱에 가까운 말을 내뱉더라고요.”

요시무라 씨는 “과거사 정리가 안 된 것에 대해선 유감”이라면서도 “한국드라마를 통해 한국 남자들이 일본남자들과 달리 따뜻한 줄만 알았다. 그런데 실제 겪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에 재학중인 중국인 유학생 텐자오(남. 25) 씨는 학교 앞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 한국 학생들과 시비가 벌어진 일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 마시며 떠들었어요. 떠든다고 해도 시끄럽게 떠들진 않아요. 외국에 나오면 조심하게 되잖아요. 우리끼리 들릴 정도로 얘기한 건데 옆 테이블에서 ‘짱개’들이 떠든다고 비아냥거리더라고요. 어떤 이는 ‘떼놈’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하면서….”

텐자오 씨는 정중하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어떻게 알아들었느냐고 되묻더라고요. 어이가 없어서…. 친구들도 중국말로 욕을 했죠. 그러니 한국 학생들이 ‘저거 욕이다’며 술잔을 던지며 테이블을 장악하려 들었죠. 한 학생과 한참 멱살잡이를 하고 있는데, 술집 주인의 태도가 심히 불쾌했어요. 우리들보고 나가달라는 게 아니겠어요? 따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유학생에 대한 반감이 커질 것 같아서 참았어요. 캠퍼스에서나 캠퍼스 밖에서나, 어딜 가나 차별을 당합니다.”





텐자오 씨는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겐 감정이 남아있어 싫어할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런데 중국인은 왜 싫어하는지 모르겠다”며 “이게 결국 악순환이 된다. 중국으로 유학 간 한국인 유학생들도 차별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당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흑인들은 ‘니그로’, ‘깜둥이’라는 말을 예사로 듣는다. 프랑스 유학생 카이야로(남. 25) 씨는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간접적으로 비하하는 경우가 많다. 뒤에서 수군수군 거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깜둥이’라는 말의 속뜻을 잘 알고 있기에 기분이 나쁘다”며 “길을 걷다가도 보면 아이들, 그리고 나이든 노인들이 저를 의식한 듯 막말을 한다”고 토로했다.      

영미권, 유럽 등 백인들은 그나마 차별을 덜 받는 편. 하지만 이들 역시 최근 미군범죄 증가 등 문제로 인해 간접적 피해를 보고 있다. 미국 유학생 제임스(남. 23) 씨는 “아무래도 사건사고도 많고, 더구나 서양 남성들이 건장하다 보니 괜히 피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 같다”며 “학교 식당이나 스쿨버스에서도 옆자리엔 아무도 앉지 않는다”고 말했다.      

독일 유학생 니콜라이(남. 24) 씨는 “한국에 와 있는 미군들 때문에 죄 없는 백인 유학생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며 “평소 사람들을 만날 때면 미국 사람이 아니라고 밝힌 후에야 상대방이 안도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혀를 찼다. 



강의실의 두 얼굴

강의실에서의 차별 역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과제 발표를 위한 조 편성에 있어서도 외국인 유학생들은 따돌림을 당한다. 중국인 유학생 샤오우엔(여. 26) 씨는 과제별 조 편성에서 자신이 낄 때마다 한국 학생들이 열외의 대상으로 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샤오우엔 씨는 “언어 소통에 허점이 발생하는 건 맞지만, 과제를 수행해 내는 데엔 크게 문제가 없다”며  “그런데 토론회 공지를 하지 않는 등 의도적으로 제외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노골적으로 싫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며 “‘저번 과제에도 외국인이 끼더니, 이번에도 끼었다’며 짜증을 낸다”고 전했다.

막상 같은 조가 돼도 학점과 관련된 실질적인 과제보단 허드렛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 유학생 락쿰(27. 남) 씨는 “막상 토론이 끝나면 자료 복사나 서류철 등을 시킨다”며 “그러다보니 성적이 늘 하위권을 맴돈다”고 토로했다.   

락쿰 씨는 또 “특히 영어로 된 과제일 땐 영어를 쓰는 미국이나 유럽 유학생에게는 친한 척하며 ‘과제를 같이 하자’고 제안하지만, 아시아나 3세계권 유학생들에게는 다가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같은 유학생인데도 다른 대접을 받으니 서운할 때가 많다”고 했다.





일부 교수들도 무의식중에 유학생을 차별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락쿰 씨는 “미국이나 유럽권 백인 학생들이 일어서서 발표를 하면 박수를 유도한다”며 “하지만 흑인이나 황인에겐 별다른 호응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서양과 백인에 대한 동경이나 환상이 크다”며 “이런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차별받는 가운데에서도 차별을 받는’ 상황은 계속될 것 같아 우울해진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외국인 유학생들의 국내 생활 만족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의 ‘외국인 유학생 실태 분석과 효과적 지원방안 연구’(이인영) 석사 논문에 따르면 유학 기간이 6개월 미만인 학생은 만족도가 4.2점(5점 만점)이었지만 1∼2년은 3.44점, 2년 이상은 3.29점이었다.

전문가들은 개발도상국 출신 유학생에 대한 차별에 대해 빠른 성장 과정을 거치며 경제 규모 순위로만 외국인을 평가하는 습성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우리 교육에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라며 “조기 교육에서부터 모든 국적의 외국인에 대해 동일한 인격체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다문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지성이라고 하는 대학생들에게조차도 우리와 다른 문화와 인종을 평가절하 하는 태도가 만연해 있다”며 “유학생들을 통해 다른 나라 학생의 생각과 가치관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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