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크리스마스 전의 단상

크리스마스가 머지않았다. 12월이 중반을 넘기면서부터, 어디를 가든지 미묘하게 크리스마스의 느낌이 풍기는 듯하다. 아니, ‘듯하다’ 가 아니라, 틀림없이 그러하다. 마치, 축제를 며칠 앞둔 학교의 교실에서나 느낄법한 술렁술렁함. 이 ‘술렁술렁’은 의성어도, 의태어도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 무언가도 못되는 그런 것. 왜 그런 것 있잖은가. 한창 수업 중인 교실에서 학생들이 착실하게 엉덩일 의자에 붙이고 앉아 조용히 필기만 하고 있대도, 그 필기구 사각사각한 사이로 느껴지는 뭔가 어수선한 기운 같은 거 말이다. 누군가 특별히 평소보다 더 떠든다거나, 혹은 더 분주하게 움직인다든가 하지도 않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수업이래도, 뭔가 평상시와는 분명히 다른 공기의 움직임들. 쉬는 시간에 한창 축제를 위한 춤이나 노래 따위를 연습했던 그 상기된 공기가 미처 가라앉을 새도 없이 학생들만 제자리로 돌아가 앉은 것 같다. 춤추는 공기 속에서 하는 수업들은, 조용한 와중에도 집중하기 꽤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쉽게 흐트러지고, 그 술렁한 공기를 따라 결국 아이들도 선생님도 수업의 흐름을 왕왕 깨먹곤 했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금도, 꼭 그때와 같아서, 사람들이 모두 크리스마스를 얘기하고 있진 않지만, 결국 모든 곳에 숨어있는 크리스마스가 사람들을 술렁술렁하게 만들고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하는 사람들도, 공부하는 학생들도, 하루를 시작하는 가게 주인도, 조그마한 아이들도, 사실 별로 크게 다를 것 없는 자신들의 하루를 또 다시 꾸려나가고 있지만, 저마다 얼마 안 있어 다가올 크리스마스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나, 혹은 더 막연한 감상, 혹은 구체적 계획, 혹은 그 구체적 계획의 부재로 인한 약간의 불안 따위를 한 켠에 품고 술렁술렁한 분위기를 날숨에 담아 뿜어내고 있다.

언제부터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큰 의미를 지닌 날이었을까. 수입된 외국의 명절이 가지는 의미가, 남의 땅에서도 그 의의를 또렷하게 유지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사실 뭐 나는 크리스마스의 종교적인 의미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것은 내가 신앙이 없는 탓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는 종교적인 의미보다, 축제라는 느낌이 강해서이기도 하다. 산타클로스, 캐럴, 양말 안에 넣어주는 선물, 반짝이는 트리는 크리스마스의 개성을 또렷하게 드러낼 수 있을 만큼 일상적이지 못한 요소들이다. 크리스마스의 요소들은 단지 크리스마스에만 존재하는 것들이다. 산타가 12월 25일이 아닌 다른 날에 등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게다가 그 요소들이 굉장히 서구적이라 우리의 정서로 봤을 때 조금 낯선 감이 없잖아 있다. 때문에 그런 요소들로 이루어진 크리스마스란 굉장히 ‘특별해’ 보이는 것이다. 우리의 대명절 설날과 크리스마스를 비교해보면 이런 점을 또렷하게 알 수 있다. 예컨대 설날을 상징할만한 요소를 생각해 보면 떡국이나 친척들, 차례, 세뱃돈 등등을 떠올릴 것이다. 한자리에 친척들이 다 같이 모여 음식을 차려놓고 조상을 모시고 하는 모습들은 정서적으로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일인데다가 그 요소들이 반드시 설날에만 볼 수 있는 모습들은 아니라는 점에서 (떡국이 반드시 설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니까. 아 물론 세뱃돈은 제외) 크리스마스만큼 ‘술렁술렁’한 느낌을 조성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크리스마스만큼 설날이 ‘특별’하지 않다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아니다. 크리스마스는 술렁술렁하고, 설날은 그보다는 차분하다.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축제이고, 설날은 명절인 셈이다. 고등학교 축제도, 크리스마스도, 사실 깊은 의의 같은 건 찾기가 힘들다. 술렁술렁한 것은 사실 그다지 좋은 것이 못 된다.

나는 아직도 고교 축제의 의의를 잘 모른다. 아마 학업에 지친 학생들에게 활기를 주고, 또한 그 활기를 치환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나아갈 기운을 얻길 바라는 의도에서 기획되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그런 취지를 잘 알았었다면, 반 단체 합창대회를 그렇게 필사적으로 연습하지도, 그러고도 결국 뒤에서 2등이라는 성적에 오랫동안 침울해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고등학교 축제나 크리스마스는 특별하다. 명절 역시 특별하다. 하지만 왜 특별하냐, 묻는다면 그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명절은, 그 명절이 가지는 의의가 특별한 것이고, 더 나아가 그러한 의의를 중시하며 행하는 풍습이 특별하다. 반면 크리스마스는 왜 특별한가.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이다. 산타가 있고 선물이 있고 트리가 있는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에. 물론 크리스마스도 명절이라 본래의 의의와 취지가 있을 것이다만 그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기에 우리에겐 단순히 축제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나도 크리스마스를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크리스마스는 즐거운 날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는 매력적이고 유쾌하다. 그러나 이렇게 일찍부터, 크리스마스라는 축제를 기다리는 술렁술렁한 분위기들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본질이 텅 빈 기분이다. 조금은, 차분해도 좋지 않을까. 뭔가 크리스마스의 의의 같은 것을 새길 수 있는 진짜 크리스마스로 말이다. 원래 우리 것이 아니었던 명절을, 술렁이는 껍데기만 수입해 온 것 치곤, 너무 덩치가 커다란 게 아닐 까 생각한다. 고교 축제정도로 작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알맹이가 있는 것도 아닌 크리스마스. 어딘가 입맛이 쓰다.

크리스마스 날의 단상

크리스마스였다. 모든 미디어가 크리스마스에 대해 떠들어댔다. 포털 사이트들의 로고는 제각각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것들을 넣어 꾸며져 있었고 그 안에 빼곡한 웹페이지들도 종일토록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종알종알 하는 것들이었다. 날씨가 추운 것도 크리스마스로 이어지고 오늘 세례 받는 아기도 크리스마스, 오늘의 맛집도 크리스마스, 웹툰도 크리스마스, 교통 상황도 크리스마스, 죄다 크리스마스 얘기였다. 크리스마스의 본질이니 껍데기니 잔뜩 써놨지만 나라고 뭐 다를 수 있었겠는가. 뭐 결국 어쩔 수 없이 늘 그렇듯 크리스마스를 그냥저냥 보냈고, 다른 사람들도 아마 그러했을 거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친구와 친구의 여자 친구를 만났다. 천안에서 서울까지 어려운 발걸음을 한 그네들은, 종일토록 인파에 치이고, 또 추위에 떨었다고 했다. 나는 참 사서고생이다 하면서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건네고 그들도 그냥 어쩔 수 없지 뭐 하는 표정으로 그냥 웃었다. 그 밤중에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 그냥 집에 있었다. 할 일이 없어 컴퓨터를 켰더니 크리스마스 용품mall,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원피스 특가, 크리스마스에 갈만한 데이트 음식점 쿠폰, 따위가 인기 포털사이트 메인에 소개 되어 있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상업적이라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도 몇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교묘하게 메리크리스마스라는 탈을 쓰고 구매를 유도하는 장사꾼들은, 인터넷세상 밖에도 존재했다. 내가 아까 본 것이라며 크리스마스의 상업화에 대해 얘기를 꺼내자 그에 대해서는 자기도 할 말이 있다며 친구가 운을 떼었다. 친구 커플은 천안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하룻밤 묵을만한 숙소를 잡아야했다. 당일에는 아마 숙소를 구하기 힘들 것이라 미리 예약을 해야 했다고. 뭔가 어마어마한 것을 말할 것 같은 표정이기에 긴장하며 들었다가 겨우(?)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것에 맥이 빠진 나는, 당연한 거 아냐? 하고 쏘아붙였는데, 이어지는 친구의 말에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그렇게 예약한 숙소가 19만원이라고. 호텔도 아니고 모텔이, 하룻밤에 19만원! 그렇게 부르는데도 당일엔 구하기 힘들단 말인가. 너무 비싼 거 아니냐 하고 항의를 했더니, 수화기 너머에서 그러더란다. “크리스마스잖아요?^^” 크리스마스에 나눔과 따뜻함은 어디로 가고, 커플과 상업주의밖에 남지 않은 것인지.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명동에 갔다. 사람이 득실득실 할 테지만, 스무 살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되새기며(?) 명동 행을 강행한 것이다. 만원지하철에 몸을 싣고 겨우겨우 명동 거리로 나왔더니, 경찰이 동원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꽤 늦은 시간에 나왔음에도 도저히 한산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와중에 눈에 띄는 것들은 홍보물, 홍보물, 홍보물. 명동이야 원래 평상시에도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판촉홍보가 심한 편이지만, 특히나 더 심했다. 크리스마스 복장을 한 사람들이 가뜩이나 혼잡한 거리를 누비며 뭔가 커다란 피켓이나 홍보물들을 이고지고 소리를 질러댔다. 크리스마스 특수를 노리고 나온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무엇이 얼마다, 이것이 얼마다, 크리스마스로 들뜬 사람들의 지갑을 호시탐탐노리고 있었다. 그 혼잡한 명동거리에서 정말 우연히도 어제 만났던 친구 커플을 재회했다. 너희 어떻게 여기 있냐, 물었더니 동대문에서 오는 길이라고. 크리스마스라고 남산도 갔다가 인사동도 갔다가 서울 정복할 기세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번엔 명동을 정복하러 온 그 두사람을 데리고 명동 성당을 구경시켜줬다. 날이 날이니만큼 성당은 경건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비록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 소란스럽지 않게 성당을 구경했다. 성당 옆에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재현해 놓은 곳과, 나무에 예쁘게 전구를 둘러놓은 곳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도 사진을 찍으려 나무쪽으로 다가갔는데, 갑자기 뒤에서. “폴라로이드 찍으세요! 즉석사진 찍으세요! 삼천원에 찍어드려요!” 성당 안 까지 들어와서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가히 좋게 보이진 않았다. 물론 성당 안이 예뻐 사진을 찍기에 좋은 장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창 예배를 드리고 있는 성당 앞에서 즉석 사진 장사를 하는 건 조금 문제가 있지 않은가. 기분이 조금 상한채로 성당을 빠져나왔다. 시간이 늦었는데 아직 저녁을 먹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늦게 식당을 찾았다. 어렵사리 찾은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나왔더니 어느새 꽤 늦은 시간이었다. 11시가 넘어가자 명동거리도 조금씩 한산해지고 있었다. 상인들도 하나 둘 정리해서 빠져나간 뒤라 거리에는 고등학생들이 프리 허그Free Hug라며, “그냥 가지 마시고 한번만 안아주세요!” 절대 프리 허그 정신이 아닌 허그 구걸 정신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막바지 열을 올리고 있을 뿐, 전반적으로 명동은 폐장 분위기였다. 바닥에 떨어져있는 온갖 쓰레기들과, 홍보물 등이 나뒹굴었다.

크리스마스가 1시간이 채 안남은 시점, 크리스마스 인파로 북적이던 명동엔 억지스러운 따뜻함과 온정이 없는 이벤트성 프리 허그와 쓰레기들만이 남아있었다. 존나, 존나, 어쩌구하는 소리가 들려오던 고등학생 무리 중 누군가가 부르던 캐롤. 크리스마스엔 축복을, 크리스마스엔 사랑을. 글쎄 그런 크리스마스의 마지막이 이런 모습이라는 것이 축복과 사랑을 담뿍 나누었던 곳이라고 보긴 힘들어보였다. 부디, 당신들 떠난 자리는 이렇게 더럽고 또 흉하더라도, 당신 돌아간 곳에는 진짜 크리스마스의 사랑과 축복이 가득하길.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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