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백 안들면 값 떨어져 보이고, 노스 패딩 안입으면 왕따 당한다?
명품 백 안들면 값 떨어져 보이고, 노스 패딩 안입으면 왕따 당한다?
  • 승인 2012.01.0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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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명품백과 노스패팅 그 사이



날씨가 춥다. 처음 겪는 겨울이 아님에도 매번 갑작스럽게 추워지는 기온에 깜짝 놀라곤 한다. 며칠 따뜻한가 싶으면 잠깐 얇아진 외투 속으로 이내 칼 같은 바람이 파고들곤 하는 것이다.

타자를 치는 손가락의 체온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있다. 그나마 무릎위에 올린 노트북의 온기가 아랫배 언저리까지도 따뜻하게 데워주는 덕분에 외풍 심한 내방에서도 글 쓰고 있기가 한결 낫다. 침대에 걸터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방에 딸린 창문 틈 어디론가 바람이 새어 나오고 있다.

푹신한 슬리퍼, 동생이 가져온 깔깔이, 극세사 이불, 그리고 노트북의 소음 섞인 뜨거운 바람. 이런 것들 덕분에 코끝과 손가락을 스치는 찬바람이 그다지 나쁘진 않다. 창문을 아무리 꽁꽁 닫아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은, 보일러 돌아가는 실내에서는 바깥처럼 그렇게 위용을 부리진 못한다. 마치 외출했다 돌아오는 어머니의 코트에서 나는 찬바람 냄새처럼, 그냥 그렇게 기분 좋은 구석까지 있는 것이다.

뉴스에서는 사람들이 옷깃을 여미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양을 연신 보여준다. 두터운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은 사람들, 털이 복슬복슬한 후드 속으로 머리를 최대한 숨긴 사람들, 손을 비비며 걷는 사람들, 그리고 근육맨 같은 패딩점퍼로 무장한 사람들. 패딩점퍼, 패딩, 패딩들….

연령층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점점 더 패딩이 많아진다. 나이 대와 반비례하는 패딩 사랑. 다른 외투들의 비율이 점점 줄어든다 싶다가, 그 연령이 십대에 이르는 순간, 그 비율은 급격하게 바닥을 친다.

중학생, 고등학생. 이 둘만의 공통분모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초등학생과 대학생에겐 없는 요소, 중고등학생에게만 존재하는 것, 바로 교복이다. 초등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 졸업생들에게는 추억의 대상인 교복. 정작 중?고등학생들에게는 그다지 반가운 존재가 아닐지 모르겠다만, 교복이야말로 중고등학생의 상징이다.

검정색이거나 혹은 남색계통의 픽픽했던 내 때의 교복과는 달리 요즈음에는 대부분의 학교들이 베이지색 등의 밝고 깔끔한 교복을 채택하고 있는 등 한눈에 보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가 다니던 모교에서도 교복이 바뀌었다. 베이지 체크무늬 치마, 흰색 니트 조끼, 붉은색 리본, 깔끔한 라인이 칼라에 들어가 포인트가 되는 베이지색 재킷. 이 상큼한 교복을 보고 있자면 난 왠지 심통이 난다. 어두운 남색의 교복이 유독 촌스러웠던 우리 학교의 교복을 나와 친구들 역시 꽤 불만스러워 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저렇게 예쁜 교복을 입고 고교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왕 바꿀 것 몇 년 만 일찍 바꾸지. 입이 절로 비쭉비쭉한다.

시샘이 절로 날만큼 예쁜 교복이지만, 정작 밖에서는 이 교복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다들 똑같은 패딩 점퍼로 꽁꽁 싸매고 다녀 스커트 자락만 조금 보일뿐이다. 조금 삐져나온 교복이 다를지언정 패딩은 똑같다. 전국 어디를 가도 비슷하다. 교복, 그리고 패딩. 게다가 가슴팍에 수놓아진 브랜드 이름도 다들 똑같다. 전국 통일 교복이라도 되는 것인가. 더 노스 페이스. 통칭 ‘노스’라고 불리는 브랜드다.

십대들의 노스 페이스에 대한 충성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노스 하나 없으면 왕따 당한다는 소리도 있을 정도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노스 페이스 패딩, 바람막이 등을 하나쯤 소지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교복이 바뀌기 전의 내 고교시절에도, 노스 열풍이 대단했다는 점이다. 교복이 바뀌어도 건재한 노스 열풍. 나는 그 유명한 노스 하나 없이 고교시절을 끝마쳤다. 다행인지 그래도 왕따 한번 당하지 않고 무사히 졸업장을 쥘 수 있었다. 내가 노스를 구매하지 않은 것은 단 한 가지 이유였다. 난 그 돈을 주고 그깟 패딩하나를 살 순 없었다.

노스 페이스는 산악 전문 아웃도어 브랜드다. 때문에 보온과 바람의 차단에는 강점을 보이는 기능성 의류다. 추운 겨울 노스 패딩 하나면 한결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능적인 부분만 고려한다면 사실 나무랄 데 없는 의류 브랜드다.





십대들은 노스가 따뜻하기 때문에 노스만을 고집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만이 고려 대상이라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른 여러 브랜드의 패딩점퍼가 많음에도 노스 페이스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등산을 할 것도 아닌 학생들은 타 브랜드의 패딩점퍼로도 충분한데다가, 다른 브랜드가 노스보다 보온면에서 기능이 떨어진다는 근거 역시 없다. 실은 비슷한 소재의 비슷한 두께 패딩은 기능이 다 고만고만하다. 그렇다고 디자인이 매우 매력적이냐고 하면, 글쎄 내 눈에는 그다지. 유행이기 때문에 이상해 보이지 않을 뿐, 노스 패딩의 외형은 기능에 중점을 둔, 근육맨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예쁘다거나 아름답다거나 한 것과는 거리가 좀 멀다.

그럼 기능도, 심미성도 아니라면, 대체 왜 하필 노스인가. 노스가 다른 패딩들과 차별화 되는 점은 바로 가격이다. 45만원이 훌쩍 넘는 패딩. 이 대단할 것도 없는 외투 하나의 가격이 학교 앞 한 달 월세보다 비싸다는 건 나같이 간이 작은 사람에겐 꽤 놀라운 일이다.

학생 때의 나는, 학교-집-학교-집뿐인 내 생활에서 그 정도의 사치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에게 어떨 진 모르지만, 적어도 밖에 별로 돌아다닐 일도 없는 내게는 그 돈을 주고 패딩을 사는 것이 아깝게 생각되었다. 친구들이 지금처럼 죄다 노스 페이스만을 입고 다니던 때가 아니라서 일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을 가지고 싶지도, 또 이해가 되지도 않았다.

시간이 흘러서 나는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고, 노스 열풍은 사그라들기는 커녕 점점 더 거세졌다. 가격 역시 조금 더 비싸진 것으로 알고 있다. 필요한 사람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소비생활을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고등학생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비난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비싼 패딩이 유행하다 못해 없으면 안 되는 지경까지 왔다는 데에 있다.

45만원이라는 돈이 십대에게 있을 리가 없다. 용돈을 그만큼씩 받을 리도 없으니, 주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혹은 부모님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탐탁히 여길 부모가 어디 흔한가. 하물며 그것이 유행하는 옷을 사기 위한 아르바이트라면 말이다. 몰래 아르바이트를 한다 해도 갑자기 노스같이 비싼 점퍼를 입고 다니기 시작하면 그 출처에 대한 추궁이 있을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이렇다 보니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부모님에게 노스를 사 달라 ‘떼쓰기’ 시작한다. 요즘 노스 없으면 왕따 당해요. 그 소리 앞에 부모들은 고민 할 수밖에 없다.

아이가 대체 왜 45만원이나 하는 비싼 아웃도어 브랜드의 패딩점퍼가 필요한 것인지. 왜 그것을 교복처럼 입고 다니면서 소속감을 찾는 것인지. 그런 몰개성한 유행에 혹한 자식을 꾸짖는 게 맞는 것인지 혹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맞는 것인지. 꾸짖는 것은 단지 내가 자식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부모이기 때문인지. 패딩을 사주는 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옳다고 볼 수 있는 일이지. 머릿속이 절로 복잡해진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가정의 경우는 더 심하다. 한 편모가정의 어머니는, 당장 월세를 걱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스패딩을 사 달라 떼를 쓰는 아이를 위해 일을 더 늘려야만했다. 무리 중에 노스가 없는 아이는 나뿐이라고 조심스럽게 입을 떼는 아이가 마음이 아프지만 당장 다른 형제들의 학비 마련하는 것도 빠듯해 어쩔 수 없다는 아버지의 고민이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적도 있다.

노스로 고민하고 있는 부모들은 생각보다 꽤 많다. 어디까지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어디까지가 바로 잡아야 할 일인지 감이 잡히질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러한 노스의 유행에 대해서는 이렇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안 좋은 소리를 하자니 아이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턱대고 비난만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아이들의 문화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비단 아이들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의 노스에 대한 충성을 이해 못하겠다고 말하는 우리 역시 비싼 명품이 아무래도 훌륭하고 좋다 생각하지 않는가. 아이들에게 합리적이지 못한 소비를 운운하기 이전에 과연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떠했는가, 또 어떠한가를 반성해 보아야한다.

과연 자그마한 손가방이 백단위가 넘어가는 것이, 구두 한 켤레가 몇 십만 원이 넘는 것이, 더 나아가 형편에 맞지 않는 비싼 차가, 넓은 집이, 이 모든 것들이 과연 ‘노스’와 다를 것이 있는지 말이다. 비싼 백을 들지 않으면 내 값어치가 낮아지는 것 같다는 우리네와, 노스 패딩이 없으면 왕따를 당한다는 십대. 씁쓸한 젊은이들의 초상이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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