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왕따’에 대한 단상




내가 알고 지내는 이들은 많아도, 실상 내가 아끼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는다. 정말 소중한 친구가 열손가락 부족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 그러하지 못한 것이 보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정말로 피 같은 친구는 그 수가 중요한 게 아니니 단 한명이라 할지라도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나 역시, 몇 되지 않는다 해도, 그러한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늘 감사하다. 이 친구들 중에는 어릴 적부터 쭉 친했던 친구도 있고, 대학에 와서 절친해진 친구도 있고, 외려 어릴 적엔 그저 알고만 지내다가 성인이 되어서야 친해진 경우도 있다. 그중 근래에 내가 제일 아끼는 한 친구는, 사실 유년 시절에 그저 그 아이가 세상에 있다는 정도만 알고지내는 정도로 데면데면했던 사이었다. 그랬던 사이였는데 지금 이렇듯 서로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그때가 초등학생 때니 워낙 어릴 적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도 있지만, 그 나이또래들이 자기가 속한 무리가 아니면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탓도 있어서, 그 아이와 마지막 6학년을 학급 친구로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 애가 2008년, 근 10년 만에 연락을 했을 때엔 나는 그 애 이름 석 자를 보고도 도저히 머릿속에 불거져 나오는 얼굴이 없어서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뒤져야했다. 그렇게 몇 번 얼굴도 보고 밥도 같이 먹고 하다 우리가 제법 말이 통하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술도 마시고 연애얘기 진로얘기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같이 울고 웃다 보니 이렇게까지 친해지게 된 모양이다. 어쩌면 이 친구랑 나랑은 같은 유년시절의 배경만을 공유했을 뿐, 성인이 된 후에 처음으로 만난 것과 다름없는 친구 사이일거다.

그래서 처음 그 애가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른 이 친구의 이야기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단지 친하지 않아서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당시에 이 친구의 존재감은 상당히 흐릿한 편이었던 모양이다. 그냥 어깨가 조금 쳐져 있던 친구, 정도로 기억했는데, 이 친구 말로는 자기가 학급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었다고 한다.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들어보니 모를만한 일도 아니었다. 학급친구들이 잘 놀아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과자를 사오라고 시키기도 하고, 없는 일을 지어내서 괴롭히거나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주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나는 그 아이와 같은 반이었으니, 아마 그런 모습을 종종 보았을 텐데, 내가 정말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아이가 언급하는 자신을 괴롭힌 친구들이라는 아이들도, 내 기억 속엔 단지 장난이 조금 심한 친구들 정도일 뿐이다. 뭔가 그 친구들이 누구를 놀리거나 뭐 물건을 뺏고 여럿이서 패스를 하면서 못 가져가게 한다거나 하는 것은 심심치 않게 봐와서인지, 그런 괴롭힘으로 누군가가 이렇게 오랫동안 그것을 나쁜 기억으로 가지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친구가 말하는 그때의 학급친구들은, 자신을 괴롭히거나, 혹은 자신을 없는 듯 무시하는 것이 전부였다고 했다. 아무도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부끄럽게도, 나 역시,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이 아이에 대해 무관심하였던 사람이었다. 이후 서로 학교로 진학하면서, 나는 그렇지 않아도 희미했던 이 친구에 대한 비중을 완전히 지웠고, 새로운 학교에서 이 친구는 지난 기억을 털고 활발하게 친구들도 사귀며 성격도 많이 달라졌다. 나중에 가서는 자신을 괴롭힌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내게 될 만큼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사실 이 친구가 이렇게 많이 변할 수 있었던 것은, 힘들었던 그의 유년시절 끝자락에 손을 내밀어준 한 친구의 영향이 컸다. 그 애의 별명은 제이. 이름이 재희라 그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J라고 부른다. 역시 나는 그 애와 친한 편은 못되었다. 하지만 제이는 외모가 준수한 편이라 워낙 인기가 많았었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주워들은 것도 꽤 되고 해서 나에게도 그렇게 낯선 인물은 아니다. 내 무리에 있던 친구들 중 몇몇도 제이를 몰래 좋아하기도 했고. 제이를 놀이에 동참시키면 제이를 좋아하는 애들이 너도나도 몰려들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선, 난 당장 제이부터 섭외하고는 “너도 열발뛰기 할래? 제이도 한다는데?”하며 부흥을 꾀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이런 상황이었으니 제이가 그닥 나서지 않고 조용한 성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에서 제이의 영향력은 결코 작은 편이 아니었다. 제이가 종종 위화감이 들 정도로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성격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 인기에 우쭐해버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제이는 언제나 유치한 편 가르기에 관심이 없었고, 그 나이또래에선 정말 핫 이슈인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더라’ 하는 소식에도 무덤덤했다. 아이들이 정말 아이답게 치근거리거나 하면 언제나 제이는 느긋하게 웃곤 했는데, 나는 그 모습이 마치 내가 놀아 달라고 떼쓸 때 그걸 싫지 않게 내려다보는 나이 한참 많은 사촌오빠의 표정이랑 거의 흡사해서 이상하게 생각하곤 했다. 오죽했으면 어렸던 내가 제이는 사실 어른인데, 어떤 사건을 통해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온 게 아닐까 하는 만화영화 같은 생각도 했겠는가.(사실 이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직까지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제이는 20대인 지금, 마치 중년처럼 굴고 있으니까!) 제이는 여러모로 어른스러웠다. 단지 친구들을 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평상시의 취미나 가치관 장래희망까지도 죄 어른스러웠다. 팝송을 즐겨들었고, 공무원이 꿈이었다. 어쩌면 또래가 가지기 힘든 그 어른스러움도 제이의 인기에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제이가 그렇듯 어른스러웠기 때문일까. 어떤 친구들은 친구를 괴롭히고, 또 어떤 친구는 친구가 친구를 괴롭히는 것에 대해 무관심했을 때, 제이는 그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이는 그렇게 왕따 당하던 내 친구의 친구가 되었다. 제이가 먼저 “같이 놀자”며 다가와 줬다고 한다. 도통 그런 일이 없었는데 말이다. 제이는 언제나 인기가 많았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가 와서 같이 놀자고 말했기 때문에 그는 그저 선택만 하면 되었었다. 게다가 제이는 딱히 아이들과 노는 것을 음악 듣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원해도 혼자 있기를 좋아했던 아이인데, 그랬던 제이가 ‘먼저’, ‘같이 놀자’며 다가갔다는 것이다. 내 친구가 그 때를 감동적인 순간으로 기억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게 제이와 내 친구가 친해지면서, 처음엔 쟤랑 놀지마, 하고 눈 흘기던 아이들도 제이가 그런 말들에 동요 없이 느긋하니 서서히 누그러들었고 덕분에 다른 친구들에게도 서서히 내 친구가 받아들여지게 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중에 해가 바뀌고, 초등학교를 벗어나 중학교라는 울타리로 옮기며 제이와 친구는 더 없이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내 친구는 왕따를 벗어나 오히려 지나치게 활달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친구도 많고 장난도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가 여태껏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중엔 어릴 적 자기를 괴롭힌 친구들도 꽤 되니 정말로 그때의 일을 다 극복한 모양이다. 그때의 일로만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만 지금까지도 제이를 참 멋있는 사람이라며, 지나칠 정도로(동성애로 오인받기도 한다!) 애정을 쏟는 모습이 아마 자신에게 제이가 퍽 고마운 존재로 남아 있는 게 틀림없다. 내가 생각해도, 참 멋있는 사람이다. 생각이 짧았던 나를 대신해 내 친구를 도와준 친구다. 그리고 또 참 고마운 사람이다. 이 친구가 아니었으면 내 친구가 그 기억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내 친구일 수 있었을까?

왕따도 진화하는지 요즘엔 왕따도 내 어릴 적처럼 단순하진 않은 모양이다. 단지 같이 놀아주지 않고 짓궂은 장난을 하는 정도였던 그 때에도 어린 친구들이 왕따의 상처로 고통을 겪고 이것이 사회 문제로 이어져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걱정 하곤 했는데, 요즘의 뉴스들을 보면 이러한 걱정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음식이나 돈을 빼앗는 건 기본이고, 비싼 패딩을 빼앗고 잃어버렸다고 하라는 둥, 데이터요금 무제한 요금제를 억지로 들게 해서 와이파이를 공급하게 만드는 둥. 이런 일이 워낙 비일비재하니 신조어도 생겼다. 빵 사오는 사람이라는 뜻의 ‘빵셔틀’은 이미 내 학창시절부터 있어왔던 말이고, 요즘엔 ‘와이파이셔틀’이라는 것도 생겼다고. 이건 그래도 귀여운 수준이다. 각종 흉악한 소식들도 뉴스를 채우고 있다. 폭언과 폭행, 어떤 물건을 도둑질해오지 않으면 죽이겠다며 절도를 교사, 심지어는 집단 성폭행까지.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고 따돌린다는 것만으로도 당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큰 상처가 된다. 그에 더해 이런 무시무시한 일까지 일어나고 있으니 피해자가 자칫 무서운 생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안타까운 목숨들이 창창한 나이에 지고 말았다. 가해자들에게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과, 그리고 반성을 모르는 가해자들과 그의 부모들, 때문에 한 사람의 생은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저물었음에도 의미조차 없이 버려지고 말았다. 한탄할 일이다. 슬픈 일이다. 하지만 가장 슬픈 것은, 단지 발악처럼,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슬프다. 어린 목숨은 이리저리 내몰리다 결국은 벼랑 끝에서 몸을 던졌는데, 왜 우리들은 가해자를 욕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가. 욕설로 가득한 댓글 창엔 이 나라의 법과 가해자와 가해자의 부모들을 욕하는 글이 전부다. 어째서 반성의 글은 없는가. 벼랑 끝에 내 몬 것은 괴롭힌 가해자만이 아니다. 무관심으로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도 잘못이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도, 그것이 누군가를 괴롭게 만든다면, 충분히 잘못된 행동일 수 있다. 과거의 나는 무관심했고, 때문에 그것이 내 친구를 직접적으로 아프게 하진 않았지만, 결국 그것이 친구를 왕따로 만들었다. 왕따를 왕따라고 생각하는 것도, 괴롭힘이다. 나는 그 친구에게 아무것도 한 게 없으니 무죄인 것이 아니다. 당신 주변에 왕따가 있다면, 당신은 유죄다. 도와 줄 수 없다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제가 당하면 어떡해요. 그렇지만 그런 외면이, 결국엔 피해자가 피해자이게 만드는 것이다. 가해자만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제이는, 그런 것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었을까. 알았더라도, 그것을 자신이 혼자 바꿀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일까. 나는 아무리 어른스러웠던 제이라도, 그런 복잡한 것을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아니 어른스럽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다만 제이는, 내 친구의 친구가 되어 주려했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스스로 마저 왕따라고 생각하는 왕따를, 제이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생각이 내 친구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줬다. 나는 덕분에 이 친구를 내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반성한다. 내 학창시절에 있었던 모든 왕따들과, 내가 모르는 지금의 어린 왕따들과 그리고 내가 남일 같이 생각한 그 많은 피해자들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다만 분노의 화살을 가해자라는 몇 명의 학생들에게만 돌린다면, 그것은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반성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한다. 왕따를 돕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게 만든 건 우리 모두가 한 짓이니까. 나의 모든 무관심과 외면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어린 친구들에게 안 좋은 소식이 다신 없길 바란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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