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미역국 끓이기





모든 것이 새롭던 2008년을 보내고, 스물 한 살의 새해를 맞이하면서,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 자취방을 갖게 되었다. 기숙사에도 그럭저럭 적응을 잘 하고 있었던 터라, 사실 자취에 대한 갈망이 어마어마한 편은 아니었다. 통금시간이 조금 불편하고, 1시 이후에는 완전히 안에서 갇힌 꼴이라 야식 먹기가 조금 불편하고, 제공되는 밥이 그다지 맛이 없고, 뭐 그래서 살이 조금 빠지는 것 말고는 불편함이라고 꼽을 만한 것도 거의 없었다. 내 소유의 사물 함 겸 옷장이 되는 캐비닛 하나, 내 책상둘레의 좁은 공간 정도를 제외하고는 세면시설이나 샤워시설, 세탁시설, 복도나 심지어 침대까지 완전히 독립된 공간은 없었지만, 그것도 그렇게 불편하다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적당히 개인주의였고, 공간들은 공유되고 있었지만 최소한의 칸막이 정도로 불편함을 느끼기 직전, 딱 그만큼의 개인성을 지켜주었다. 어쩌면 이 스무 살의 어리바리한 여자애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곁눈질해가면서, 모든 것이 낯설었던 첫 독립생활에 적응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나 혼자, 그렇게 새로운 환경과 맞닥뜨린 것이었다면, 그때의 어린 나는 그런 환경들을 그렇게 신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건 내가 처음 가족들의 품을 떠나 맞이하는 대학생활의 첫 보금자리가 기숙사 생활이었다는 게 다행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기숙사를 나와 자취생활을 하게 되었다. 기숙사 탈출을 염원한 적은 없었지만 막상 내 집이 생기니 묘했다. 룸메이트와 공유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아니 그 전에 아예 룸메이트 따위가 없는, 나만의 공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던 음식은 고작해야 계란프라이, 라면 정도가 전부였다. 요리 같은 건 하나도 할 줄 모른다는 점이 나와 잘 어울리기까지 했던 때였다. 누군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가 뭐냐 물었을 때, 라면 물을 잘 맞춘다 같은 소리를 하면, 그럴 줄 알았다, 보통은 그런 반응이었다. 나도 내가 요리를 잘 못한다는 사실이 마치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 분명한 것처럼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내 부엌이 생기니 -비록 원룸이라 부엌과 방의 경계 따윈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꽤 설렌 모양이다. 뭔가 꼬물꼬물 만들어 봐야지, 하고 조미료나 조리도구 같은 것들을 하나둘 사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엔 쉬운 것부터. 김치 볶음밥, 콩나물 무침, 콩나물 국, 만둣국…. 생각보다 먹을 만하다는 사실과, 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이 하나 둘 늘어난다는 사실, 그리고 생각보다 요리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나에게 자취의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다. 이사할 때는 심드렁하다가 뒤늦게 자취의 소소한 행복에 눈을 뜬 셈이다. 내가 한 음식은 주로 가까운 이웃에 살고 있는 내 친구와 함께 먹거나, 당시까지만 해도 많았던 -지금은 다들 바쁘다. 아 불쌍하고 또 빈약한 내 인간관계여- 내 친구들이 밤에 좀 재워 달라고 문을 두드리면 아침으로 해장용으로 제공되곤 했다. 아이들은 내 괄목상대한 발전에 놀랐다. 생각보다 그럴싸한 음식 맛을 낸다고. 아주 맛이 좋다는 칭찬은 아니었지만, 요리 초보의 귀에는 듣기 나쁘지 않은 칭찬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자신감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고배를 마신 종목이 바로 미역국이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미역국은 우리 아버지를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표 미역국은 정말, 정말 맛있다.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표 미역국보다 맛있는 미역국을 먹어본 적이 없다. 이것은 아마 우리가족 모두 동의하는 부분일 것이다. 어머니도 인정하는 아버지 미역국. 내가 끓이면 왜 이 맛이 안 날까, 하시는 어머니 말씀도 종종 들었다. 어머니 생신 때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위한 미역국을 끓일 때, 옆에 찰싹 붙어서 비법전수를 받은 적이 있다. 미역은 전날 밤에 불려놓고, 참기름으로 조개를 볶는다. 물과 미역을 넣는다. 간을 맞춘다. 끓인다. 이 간단한 레시피를 전수 받고, 나도 전설의 미역국을 끓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배가 고팠다. 미역국을 끓여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밥은 아침에 했으니, 미역국을 끓이기만 하면 되었다. 아버지가 미역국 끓이실 때 별로 오래 걸리지 않는 걸 보았던 터라, 의기양양하게 건미역과 이미 손질되어 포장된 마트표 조개를 사왔다. 미역이 혹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되긴 했지만 가장 작은 봉지를 샀다. 과자봉지보다 작은 건미역 봉지. 뭐 1인분인데 설마 부족하기야 하겠어,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알려주신 대로 조개를 볶았다. 그리고, 물과 불려둔 미역……·을 넣어야 하는데, 아뿔싸 미역이 아직 건미역 상태였다. 냄비의 불을 다급히 끄고, 미역을 불려야했다. 배는 고프고, 볶은 조개는 식어가고, 초조해졌다. 빨리 불려야 한다는 생각에 건미역 한 봉지를 다 쏟아 붓고 뜨거운 물을 들이부었다.

뜨거운 물, 그것이 최대 실수였다. 생각보다 미역은 빨리 부피가 늘어났다. 미역국 1인분을 끓이기엔 너무 많은 양의 미역이 그릇 속에서 초록색 물을 우려내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아버지가 미역을 불릴 때는 따라낸 물 색깔이 이렇지 않았다. 이미 이것은 거의 미역국 색이지 않은가. 어쨌거나 건져낸 일부의 미역과 물을 넣고 간을 해서 끓이기 시작했다. 간을 하려 맛을 봤는데, 미역국이라기 보단, 미역차 같은 맛이 났다. 미역을 더 넣었지만 이미 뜨거운 물에 한번 우려졌던 미역들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완연한 실패작이었다. 배가 너무 고팠던 터라, 일단 상을 차리고 밑반찬들의 도움을 받아 한 끼를 해결했다. 실패작 미역국은 거의 고스란히, 음식물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나는 멀쩡한 재료들로 쓰레기를 만들고 말았다. 자취 초반, 조금씩 상승세를 그리고 있던 요리에 대한 자신감도, 함께 곤두박질 쳤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음식을 실패했다는 사실은 꽤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그리 맛있지 않은 음식, 정도가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어 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후에 파스타, 치즈 케이크 같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도전해 성공하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회복되긴 했지만, 미역국만큼은, 이후 다신 도전하지 않는 음식이 되었다.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은 탓이다. 그것이 스물한 살 때. 그리고 몇 년 뒤, 나는 다시 미역국을 끓이게 되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성공하고야 말겠다, 비장한 마음으로 요리에 임했다. 2011년의 재도전이니 이미 작년의 일이다.

이번에는 미리 미역을 찬물에 불려놓았다. 다행히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만큼 나는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인터넷을 뒤져서 미역국 레시피를 많이 찾아봤다. 참깨 가루를 넣는 사람도 있고, 들기름을 넣는다는 사람도 있고, 가지각색의 레시피가 많았다. 그 중 어떤 블로거가 ‘미역국에 들기름을 써보세요! 참기름을 쓸 때보다 맛이 좋답니다. 깜짝 놀라실 거에요^^’ 하고 써놓은 게시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차피 아버지의 레시피대로 끓인다고 해서 아버지표 미역국의 맛을 낼 수는 없다는 것을 어머니를 통해 줄곧 들어왔던 터라, 아버지의 레시피에서 참기름을 들기름으로 업그레이드시키면 그나마 그만큼 맛이 있는 미역국이 완성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들기름에 조개를 볶고, 불려둔 미역을 넣고, 간을 하고, 바글바글 끓였다.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는데, 이상하게도 미역국은 그다지 맛있는 냄새를 내지 않았다. 미역국 특유의 고소하게 입맛당기는 냄새 대신 익숙하지 않은 들기름향이 났다. 분명 들기름을 넣으면 더 맛있다고 했는데. 들기름을 넣은 것을 계속해서 후회했다. 맛이 없진 않았지만, 내가 생각하고, 또한 기대하고 있는 ‘미역국’의 맛과는 다른 맛이었다. 아버지의 레시피대로 그냥 끓일걸. 입맛은 다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괜히 다른 레시피를 차용하였다가 피를 봤다. 다른 사람의 레시피를 차용하고 아버지의 미역국과 같은 맛을 기대했으니 어쩌면 실패가 자명한 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미역국. 두 번의 실패로 나는 미역국에 한해서는, 완전히 자신감을 잃고 말았다. 실수는 한번뿐이어야 했다. 두 번이나 실패한 주제에, 실수였다며, 헤헤 넘기기는 힘들었다. 얼마 전까지도 그냥 ‘난 미역국은 잘 못해’ 생각하며 다시 도전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고향에 내려갔다가 다시 서울로 거처를 옮긴 기념으로 동네의 친구가 이것저것 챙겨 주면서, 그 꾸러미안의 건미역을 발견했다. 글쎄, 건미역을 보면서도 미역국에 다시 도전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냥, 미역국은 끓여주는 것만 먹어야해, 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배가 곧 고파질것 같고, 당장 날이 추워 장보러가기도 귀찮고 그러니, 냉장고에 있는 건미역이 생각이 났다. 끼니를 부실하게 먹는 것은 안 된다는 주의라, 미역국에 다시 도전하는 것도 조금 꺼려지는 일이지만 대충 김이랑 밥이랑 해서 먹는 것도 싫었다. 명태살도 조금 있고, 참기름도 있고, 간장도 다진 마늘도, 소금도 미역도 죄다 있으니, 마음먹기만 남았다. 나는 미역국에 재도전할 것인가. 결국 나는 배고픔에 지고 말았다. 어느새 나는 미역을 불리고 있었다. 그렇게 세 번째 미역국에 도전하게 되었다. 명태살을 볶고, 미역과 물을 넣고, 간을 하고, 조금 오래 끓인 미역국. 비주얼이나 향은 일단 합격점이다. 맛있을 거라고 감히 내가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만, 미역국맛이 나는 음식이기만 하길 간절히 바랐다. 세 번이나 실패하고 싶진 않다. 그것도 고작 미역국에 말이다.

다행하게도, 세 번째 미역국은, 미역국이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미역국이었다. 심지어 조금 맛있기까지 했다. 단지 내가 시장했던 때문인지, 정말로 미역국이 맛내기 쉬운 음식이기 때문인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나는 두 번의 실패를 거쳐 성공적인 세 번째의 미역국을 창조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소소한 감동에 흠뻑 취해,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더 이상, ‘난 미역국을 잘 못해’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신이 난다. 그러고 보면, 세상엔 실패들이 참 많다. 많은 실수와 실패들. 혹은 이유조차 알 수 없는 실패들. 일부의 성공을 제하고 나면, 대부분은 실패인 셈이다. 미역국 같이 소소한 실패들은 딱히 표나지도 않을 정도로 세상에는 많은 실패들이 있다. 시장에서 성공하는 사업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하지만, 그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실패하고, 그중 아주 드문 경우만 살아남는 것이다. 모두 그 성공을 바라보고, 또 그것에 희망을 걸고, 때로는 성공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신념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실로 몇 되지 않는 것이다. 실패하는 사람들이 다 실패할 만한 사람들은 아니다. 성공할 만한 사람들이 성공할 만한 사람들이었을뿐, 성공할 만한 사람들도 실패할 수 있다. 성공할 만한 사람들의 일부만이 성공하기 때문이다. 실패하는 사람들은, 실패할 만한 사람들과, 그리고 성공할 뻔 했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나는 이 말은 실로 참, 참말이라고 생각한다. 실패는 성공을 낳는다. 다만 실패가 성공만을 낳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실패는 다산의 여왕이다. 실패가 실패를 낳고, 다시 실패를 낳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성공을 낳을 것이다. 실패에 좌절하지 말자. 실패를 무서워하지도 말자. 실패는 다만 성공의 어머니이자, 성공의 형제이며, 성공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오랜 실패를 거쳐 얻은 성공은, 가벼이 얻은 성공과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성공으로 돌아오니, 사실 이 모든 과정들이 시간낭비거나, 또는 쓸모없이 힘들기만 한 고통인 것도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모든 실패들은 피가 된다. 단지 성공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뒤늦게 성공한 미역국이 그렇게 감동적인 맛이 났을리도 없다. 단지 미역국을 성공했다는 단순한 사실로 기쁜 것이 아니다. 나는, 이제 다른 요리가 혹 실패하더라도, 몇 번 더 도전해보면 성공하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원하는 맛이 아니라고 해서 다신 그 음식을 요리하지 않는 사람에서, 한 단계 발전한 셈이다. 이렇듯 소소한 실패도 사람을 발전시킨다. 하물며 큰 실패는 어떻겠는가. 많은 것을 걸었던 것이 실패했다고 슬퍼하지 말자. 당신이 그 실패를 넘어설 수만 있다면, 당신은 그 실패가 큰 만큼, 더 큰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니까.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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