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하숙집 사라지고 원룸천국 돼가는 대학가 풍경

대학가에서 원룸 구하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반값 등록금’ 여파로 등록금을 내리거나 동결하는 대학은 늘고 있지만 대학가 전·월세 시장은 강세를 지속하고 있어 선뜻 계약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특히 빈 원룸이 남아 있다 해도 새 학기를 맞아 임대료가 껑충 뛰면서 학생들은 계약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더구나 재학생은 물론 새내기 대학생에다 신혼부부, 직장인까지 비교적 방값이 저렴하고 가전제품들이 구비된 대학가 원룸으로 눈을 돌리면서 ‘대학가 원룸 구하기’ 경쟁은 한층 더 가열되는 양상이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학가 원룸을 찾는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데 반해 공급물량이 부족해 대학가 원룸난이 고조되고 있다.



작년보다 월세 10% 이상 올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전세 원룸 매물을 찾고 있지만 지난해에 비해 전세가가 500만~1000만원 가량 올랐고, 그나마 남아있던 전세 매물 역시 월세로 속속 전환되고 있어 방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월세도 최근 급등한 물가추세 등과 맞물려 지난해에 비해 최소 10% 이상 인상되면서 원룸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또한 기존에는 보증금을 올려주면 거기에 맞춰 월세를 깎을 수 있었지만, 최근엔 집주인들이 많은 보증금보단 높은 월세를 선호하는 탓에 학생들의 부담은 늘어만 가고 있다.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일반주택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전세가 오르내리지만 대학가는 매년 오른다”며 “재학생만 움직이는 여름보다 신입생이 들어오는 겨울이 방을 구하기 더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또 “새 학기 시즌이어서 원룸을 얻기 위해 부동산중개업소를 찾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물량이 없다보니 실제 계약과 연결되는 사례는 드물다”며 “이곳에도 현재 원룸 소개를 기다리는 대기자만 30여명이 넘는다. 대학가 인근에서 원룸잡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올해 고려대에 입학한 지방출신의 정모(여. 20) 씨는 개강일이 지났지만 지낼만한 방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친구들과 매일 발품을 팔며 대학가 인근의 원룸단지를 돌아다니고 있지만, 대부분이 모두 계약 완료됐기 때문이다. 정 씨는 “학교 근처에 원룸촌이 많아 쉽게 방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현실은 완전히 딴 판”이라고 입을 열었다.

정 씨는 “전세를 얻고 싶었는데 매물이 없어 월세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이마저도 계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난해에 비해 최소 10만원 이상 월세가 올랐다고 하는데 방도 없을 뿐더러 있어도 선뜻 계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치솟은 방값에 전세 매물조차 실종되면서 학생들이 대학 기숙사로 몰리고 있으나 기숙사 역시 입주 경쟁이 치열하다. 성균관대 인근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매년 있는 일이지만, 대학 기숙사 선발에서 탈락한 학생들이 방을 구하러 나서면서 앞으로 학교 주변의 방 구하기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인근에서 만난 이 대학 재학생 한모(남. 21) 씨는 “2주일째 매일 5시간 이상 자취방을 구하러 다니고 있지만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며 “요즘은 친구 자취방에 빌붙어 사는데 여간 눈치 보이는 게 아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엔 학교 기숙사에 있었는데, 지금은 비우고 나온 상황”이라며 “당분간 얹혀 살 다른 친구집도 수소문 중”이라고 덧붙였다.

홍익대에 다니는 홍모(남. 21) 씨도 지난 해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해 원룸을 빌려 자취를 하고 있다. 한달에 60만원이나 되는 월세가 부담스러워 방값이 싼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다. 저렴한 방을 구하기 위해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발품을 팔고 있지만 언감생심이다.

원룸을 구하지 못해 고시원을 알아보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경희대에 다니며 동대문구의 한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장모(남. 23) 씨는 “월 25만 원짜리 고시원도 알아봤는데 그곳은 다 쓰러져가는 집이었다. 정말 사람 살 곳이 못되는 고시원들이 많다”며 “대학에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숙사를 확충해야한다”고 말했다.



‘말뚝 박은’ 졸업생, 후배들은 괴로워
  

전세로 머물던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학교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재계약을 하는가 하면, 취직을 해 대학가를 떠났던 졸업생들이 귀환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도 방을 구하기 힘든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치솟는 물가와 부동산 임대료 탓에 직장 근처의 보금자리를 정리하고 주거비가 싸고 생활비 부담이 적은 대학가 원룸촌으로 귀환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취업했다는 연세대 졸업생 손모(남. 28) 씨는 서대문구 연희동 원룸촌에서 살고 있다. 그는 “2000만원이 넘는 학자금 대출을 갚기도 힘든데 수천만원짜리 전세 오피스텔로 이사 갈 수는 없다”며 “지방 출신 동기들 상당수가 비슷한 처지”라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직장에 다니는 강모(남. 35) 씨는 얼마 전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근처의 원룸으로 이사했다. 회사와 가까운 곳에 있던 기존 원룸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70만원을 냈지만 새로 이사한 곳은 비슷한 크기의 방임에도 보증금 500만원에 50만원의 월세면 충분했다. 주차장 이용료도 월 20만원에서 10만원으로 줄어들어 매달 30만원을 아낄 수 있게 된 셈이다. 



대학가는 주거비뿐 아니라 생활물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졸업 후에도 안암동에서 2년 넘게 거주한 신모(남. 29) 씨는 “회사 근처에서 한 그릇에 7000원 하는 설렁탕을 학교 앞에서는 4500원이면 먹을 수 있고, 발품을 조금만 팔면 학교 식당에서 2000원에 한 끼를 해결할 수도 있다”며 “밥값은 싸지만 음식의 질은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대학가 인근은 세탁 등 각종 서비스업종의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강남과 명동 등 도심에선 와이셔츠 한 벌을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데 2000~3000원이 들지만 안암동 등 성북, 강북 일대 대학가에서는 1500원이면 가능한 곳도 있다. 이외에도 대학가는 싱글족들이 생활하는데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기에 졸업생들의 귀환사례는 늘어만 가고 있다.

안암동에서 고시원 생활을 하는 고려대생 최모(남. 22) 씨는 “제대하고 왔더니, 이 동네에선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났는지 원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는 것보다 힘들어졌다. 고시원 생활은 참 괴롭다”며 “취업해서 돈 잘 버는 졸업생들은 그에 걸맞는 집을 찾아 떠나야 하는 게 후배들을 위하는 길 아니겠느냐”고 토로했다.



하숙은 옛말?

한편 추억과 정이 넘쳐나는 하숙집은 학생들의 외면과 치솟는 물가로 인해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은 모습이다. 대학가에서 하숙집만이 가지고 있었던 추억과 낭만 역시 차츰 잊히고 있다. 생활공간이 좁고 비용이 비싼 하숙보다 혼자 살기 편하고 생활도구까지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 ‘풀 옵션’ 원룸을 선호하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자연히 하숙집의 수요가 줄어들었고 결국은 하나 둘씩 사라져 가고 있다.

성북구의 한성대 인근에서 25년간 하숙집을 운영해 온 유모(여. 60)씨는 지난해를 끝으로 하숙집 문을 닫았다. 더 이상 찾지 않는 학생들과 치솟는 물가 때문에다. 정씨의 하숙집 가격은 1인실 기준 월 40만원이었다. 이는 4년 전부터 바뀌지 않는 가격. 물가는 날이 갈수록 올랐지만 하숙비를 올리면 학생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4년 동안 동결해온 것이다.

결국 문을 닫기로 한 유 씨는 하숙집 부지에 새로 원룸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실제로 인근에선 하숙집 등 오래된 건물을 헐은 뒤 새로 들어선 원룸건물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유 씨는 “우리 집엔 한성대 학생뿐만 아니라 성신여대, 성균관대, 고려대 학생들도 많이 오고 갔다”며 “예전에 학생들과 부모-자식처럼 지낸 추억 때문에 계속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은 어려울 것 같다. 하숙집이 사라져가는 만큼 사람들 간의 정도 사라져버릴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유 씨는 하숙집에 여학생들을 주로 받았고 유 씨와 친하게 지내는 다른 하숙집 주인은 남학생들을 받았다. 그래서 두 주인이 연계해 하숙집 간에 집단 미팅도 자주 이뤄졌단다. 그는 추억을 떠올리며 “그렇게 해서 연인으로 이어진 커플도 있었고 결혼까지 한 커플도 있었다. 요즘도 종종 연락을 한다”고 말했다. 하숙집 실종,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월세 문제 등과 궤를 같이 하는 ‘원룸 천국’ 대학가의 몸살앓이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