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포장에 관하여




내용물만큼이나 포장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조금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틀어둔 티비에서 한참 지난 오락프로그램이 재방송되고 있다. 명절용으로 포장되어 있는 한우 선물세트가 나온다. 장난스럽게 한우 대신 옥수수를 포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금색실크로 포장된 한우선물세트엔 한우가 한 덩이, 나머지는 곱게 래핑된 옥수수들이 들어간다. 하지만 포장가격이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렇게 한우 한 덩이와 옥수수만으로 십만 원짜리 선물세트가 완성된다.

누구도 십만원 가까이 하는 돈을 내고 저 포장만을 사진 않을 테지만, 어쨌거나 저 포장이 8만원어치의 가치를 가지고 공급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가치를 기꺼이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것이 그 가격을 가지고 공급되는 것이다. ‘한우고기’를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금색 실크가 반짝거리는, 척 봐도 ‘비싸’보이고 ‘고품’스러워 보이는 ‘한우선물세트’를 선물한다는 것. 그 차이가 바로 팔 만원의 값을 하는 셈이다.

사실 저 포장재를 따지고 보면, 원가가 얼마 할 것 같진 않다. 그것을 소비하는 우리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쯤은 알고 있다. 중국산 대나무 바구니, 실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광택 나는 금색 천 한 장. 그것이 비싸다 한들 얼마나 비싸겠는가.

중요한 건, 비싼 것을 비싸 보이게끔 포장한다는 데에 우리는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가끔씩은 안 비싼 것마저 비싸 보이게끔 포장할 때도 있으니, 포장에 대한 사람들의 소비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외실 보다는 내실이라고 하지만, 내실을 보는 것보다 외실을 보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인지, 겉보기가 어떤가 하는 것은 여러 가지 경우에서 중요한 일이다. 당장 선택할 때에는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경우에선, 포장 그 자체가 경쟁이 된다.

파란색 배경색에 번쩍거리는 알갱이들이 뭔가 섬광을 뿜고 있는 디자인의 세탁 세제 포장은 어쩐지 그저 그런 밋밋한 세탁 세제보다 빨래가 깨끗하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가격이 같다면 당연히 그것을 고를 테고, 혹여 가격이 훨씬 더 비싸다 해도, 역시 깨끗하게 빨래가 되는 모양이군, 하면서 그것을 집어 들게 될지도 모른다.

두 세제의 세척 능력이 같다고 했을 때, 세련된 세탁 세제의 경우에는 소비자들의 신임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더 높은 가치로 평가되어진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같은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포장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평가 절하 되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그저 그런 밋밋한 세탁 세제는, 값을 낮추어도 잘 팔리지도 않을뿐더러, 질을 높이기 위해 아무리 많은 노력을 들인다고 해도, 그것을 정당히 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얻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장’이라는 것을 단순하게만 생각해선 안 되는 것이다. 비싼 고급스러운 병에 담겨 있는 것을 보고, 역시 비싼 화장품이군, 하고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 그 병도 로드숍의 화장품과 마찬가지로, 유리나 플라스틱, 알루미늄 따위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사실 그 화장품이 비싼 이유는 그 내용물이지만, 우리는 그 겉포장과, 그 겉포장에서 느껴지는 고급스러움, 그리고 이러한 판단이 마치 맞는 것처럼 느껴지는 높은 가격 등으로 그 화장품이 ‘비쌀 만하다’는 평가를 내리게 된다. 하지만 사실 거의 모든 아이크림이 비슷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의 이러한 판단이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포장이 중요하다’는 명제는 사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가치중립적인 명제다. 그건 어쨌거나 사실이다. 사람은 오감에 의존하여 외부세계를 인지하는 생물이고, 그중 높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시각이므로, 눈에 보이는 포장이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나쁘다 좋다 할 것도 아닌 일이다. 설령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한들, 그 영향을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랜 수련을 통해 득도한 성인이 되지 않는 이상, 보이는 것에 영향 받지 않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긴 할까. 흉악해 보이는 사람이 어두운 골목 끝에 서있다면, 그를 보고 겁을 집어먹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사람이 실은 비단결 같은 마음의 소유자일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그 사람이 정말 흉악할 사람일 확률보다는 높지 못하다. 겉모습 외에 그 어떤 정보도 주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겉모습을 판단근거로 삼는 것은, 당연하고도 현명한 일이다. 때문에 이에 대비하여 겉모습에 신경 쓰는 것은, 역시 현명한 일이라 하겠다.

기껏 준비한 값비싼 선물이, 그 정도의 가치로 여겨지지 못하고, 감사 받지도 못한다면 그 같이 억울한 일이 있겠는가. 때문에 선물이 가치 있어 보이도록 포장하는 것은, 비난할 수 없는 일이며, 어쩌면 ‘비싼 선물’이 ‘비싼 선물’이라는 목적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포장이 좋지 못하면, 내용물도 좋지 못한 취급을 받기 쉬우니, 포장에도 힘쓰는 것, 그 역시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포장으로 실제의 가치를 실제보다 더 부풀리려고 하는 것에 있다. 물론 어느 정도는, 크게 문제될 것이 아니다. 좋아 보이는 포장으로 실제의 가치만큼, 혹은 그보다 좀 더 훌륭하게 보이고 싶은 것은 어쩌면 ‘포장’의 본질이다. 금색 실크 천이나, 파란색 세제의 디자인 같은 것이 추구하는 바도, 사실 그것이고.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가, 그것이 바로 디자인의 의미기도 하다. 그 자체는 사실 비난의 사유가 못된다. 누구든지 자신의 물건, 혹은 자신의 과거, 때로는 자기 자신까지도 좀 더 좋게 보이길 바란다. 그런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겉모습이 자신을 ‘좀 더’ 좋게 평가하는 수많은 근거들 중 하나가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닌, 겉모습에 드러나는 가치를 바로 자신의 가치로 연결시키려 하는 것이다. 예컨대, 90퍼센트 정도 완벽한 물건을, ‘완벽에 가까운!’ 이라든지, ‘거의 완벽한!’, ‘지금까지 중 가장 완벽한’ 등으로 포장하여 실제보다 더 좋게 보이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근거 없이 ‘완벽하다’는 포장만으로 덕지덕지 감싼 물건이 사실은 50퍼센트도 못 되는 저질이라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정리 하자면, ‘좀 더’ 좋아 보이는 것이야 자연스러운 정도로 쳐줄 수 있다지만, ‘좋은 척’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포장이 중요한 이유란 것이, 내면보다 ‘겉모습’이 더 바라보기 쉬워서이기 때문에, 아니 어쩌면 그 내면이라는 것에 대한 정보가 없는 시점에서 ‘겉모습’, 즉 포장이라는 것은 모든 판단의 100%근거가 되기 때문이기에 반대로 포장으로 ‘좋은 척’만 하고 있는 것을 가려낼 방도가 없다.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공급하는 쪽에서는 ‘좋은 척’을 아니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들어있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파손 방지를 위해서라곤 하지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완충재를 넣거나, 혹은 질소 충전을 해놓아서, 과자를 사면 실제로 기대한 부피의 절반도 안 되는 과자만이 들어 있곤 한다.

감자칩을 사면, 봉지 안의 60% 이상이 텅 비어있다. 겉보기엔 빵빵해도 바늘로 구멍만 하나 뚫으면 금세 반도 안 되는 부피로 줄어들어 버린다. 두 봉지를 먹어도 한 봉지도 채 안 먹은 것만 같은 기분이 된다.

그리고 어떤 쿠키 제품은 커다란 종이상자 안에 개별포장이 되어있는데, 종이상자의 절반이 ‘완충재’로 이루어져 있다. 개별 포장된 비닐 안에도 파손 방지를 위한 질소포장이 되어있음을 감안하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일이다. 만약 종이상자에 맞게 내용물을 넣었다면, 사실 그 과자의 포장은 절반 크기가 되는 것이 맞다. 고객이 그 종이상자 가득 내용물이 들어있으리라 기대하여 합리적으로 가격 등을 판단, 소비한 것이라면 절반을 채우고 있는 완충제에 그만 속은 기분이 되었을 것이다.

화장품 역시 마찬가지다.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달팽이 크림’. 포장에 그려진 달팽이나, 홍보물, 고급스러운 케이스 등으로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지만, 실상 그 내용물에 달팽이 점액질의 함유량이 턱없이 떨어진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사람들은 달팽이 크림이라고 하여서 100%는 아니더라도 달팽이 점액질의 함유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도 그저 포장만 그럴듯하게 한 ‘사기’라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잘 팔리는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물건을 사는 사람들도 좋은 소비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포장이라는 것은 심리적인 만족뿐만 아니라 올바른 판단, 효율적인 홍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포장 역시 좋아야만 한다.

하지만, 거짓된 포장은, 사기에 불과하다. 한번 속은 사람은 다시 속지 않는다. 완충재에 속았던 사람들은 다시는 그 과자를 사지 않는다.

길게 본다면, 포장은 ‘정보가 없을 때’에나 절대적인 기준이다. 그에 속은 사람들은, 같은 판단 미스를 반복하지 않는다. 물론 포장은 좋을수록 좋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 걸맞는 내용물이 되어야한다. 좋은 내용물과, 그를 빛내는 포장. 이것이 옳은 길이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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