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돼버린 파격, 가끔은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텐데…
일상이 돼버린 파격, 가끔은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텐데…
  • 승인 2012.03.3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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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파격




1.
파격은 거의 매일매일 일어난다. 내가 종일토록 외부와 단절되어 있지 않았다면야, 하루에 한번쯤이야 놀랄만한 일이 있었을 테니, 이건 거의 참에 가깝다. 어쩌면 하루 종일 한 번도 놀랄 일이 없었다는 것도 파격이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놀란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 예상하지 못한 존재가 있다는 것으로도 놀라고, 모 연예인의 사생활로도 놀라고, 정치적인 이슈로도 놀라며, 혁신적 발전들(예컨대 놀라운 기능을 포함한 IT신제품의 발매라던가, 처음 소개되는 이론이나 연구 결과라든가)에도 놀란다.

일상적인 이유로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든지, 방학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의 얼굴이 묘하게 달라졌다든지, 몸무게가 생각보다 많이 변했다든지 해서 놀라기도 한다.

모든 파격은, 이렇게 기존의 생각을 깰 때 일어난다. 이러하겠지 하는 예상을 뒤엎는 사건이나,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의 발생이나, 이것은 이래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깰 때 일어난다.

파격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던 일이 일어났다는 관념 때문인지, 흔한 일이 아니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파격적이게도, 파격은 도처에 있고, 또한 자주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자주’는 ‘생각보다 잦다’는 것이지 결코 종일토록 계속되는 일상처럼 잦다는 뜻은 아니다.

파격이 하루에 서너 차례, 많게는 열 손가락이 부족할 만큼 존재한다면, 파격이 못되는 일들은, 그 시간을 제외한 24시간 동안 계속 지속된다. 때문에 파격은 어렵다. 파격이 생각보다 잦다는 것도, 어쩌면 그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우리는 파격이 ‘거의 없으리라’ 예상하고 있는 셈이니까.

2.
파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사실 더욱 어렵다. 의도치 않은 행동이 누군가의 예상을 깨 발생되는 놀라움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파격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갑자기 식욕이 돌아 조금 많이 먹었다 했더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불어난 몸으로 파격을 선물했다든지 하는 것은 내가 애초부터 파격을 의도하고 한 행위가 아니다.

원시적이긴 하지만 소년이 소녀를 놀래게 만들기 위해서 가짜 거미 모형을 소녀에게 던진다든지 하는 것이 의도된 파격이다. 의도된 파격은 대개 치밀하다. 유치하고 원시적인 소년의 장난조차 아마 그 나이 또래가 꾸밀 수 있는 최대함의 치밀함을 요한다. 소년은 소녀가 거미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하고, 또 거미 모형이 실제 거미가 아니라는 사실도 들키지 말아야하며, 그리고 자신이 그러한 장난을 꾸미고 있다는 것 역시 들켜선 안 된다.

조금 더 복잡하게 의도된 파격은 고도의 정신력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이를 감수하는 것들은 대개 어떤 뚜렷한 목적이 있게 마련이다. 소년도, 소녀를 놀려야겠다는, 또래로는 꽤 중요한 목적이 있는 셈이다.

‘파격적인’ 가격으로 우리를 놀래게 만드는 상품들은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브랜드나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공급자는 치밀한 계산으로 그로 인해 입게 되는 손해가 그를 상회하는 이익이 있을 것으로 판단 될 때만 그러한 파격을 강행할 수 있다.

그들은 시중가와 상이한 가격으로 상품을 시장에 내어놓을 때, 소비자들이 그로 인해 놀라고, 또 그것이 파격이 되어 소란스러워 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한다. 그들은 그 소란 자체를 넘어선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노이즈 마케팅이 그러하고, 신인이나 그다지 인지도가 없는 배우들이 노출로 인구에 회자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3.
파격을 인위로 만들어내는 것도 어렵지만, 그렇게 만든 파격을 지속하는 것은 그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 일이다. 어떤 여배우가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미디어에 출현하는 것이 처음에는 파격적으로 다가올지 몰라도, 그러한 노출이 반복되면 더 이상 그녀의 노출에 대해 파격을 느끼기는 어렵다. 노출의 강도가 점점 더 심해지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만들어진 파격들이 일회성이나 이벤트 식으로 끝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파격은 예상을 깨야하는 일이다. 예상을 할 수 있다면, 파격이 되기 힘들다. 그런 식으로 많은 파격들이 일상이 된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한번 놀랐던 것에 잘 놀라지 않는다. 우리의 몇 안 되는 파격을 제외한, 비(非)파격적인 일상들은 마치 지층처럼, 지나간 파격들을 화석처럼 지니고 있다. 영악하게 계산된 일회성 파격이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파격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다시 사용되고, 그 유효성이 다하여 일부를 덧붙여 다시 사용되고, 또 그마저 결국 식상해져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다. 어떤 것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에 성공하면, 수많은 아류작들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흥미가 시들해지다가, 결국에는 그를 외면하거나, 혹은 더는 신선할 것도 없는 일상적인 것으로 보기에 이른다.

이제는 아무도 핸드폰 액정을 ‘터치’하는 것만으로도 버튼 없이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신기해하지 않는다. 터치 폰이라는 개념에 놀라워했던 것은 까맣게 잊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지나간 파격들은 더 이상 파격도 아니고 뭣도 아닌 채로 다른 파격의 양분이 되거나, 혹은 당연한 것으로 일상에 녹아든다. 우리의 비파격적 일상에는 과거의 파격들이 온통 가득하다. 당장 당신이 들고 있을 이 신문도, 과거의 언제에는 파격이었을 테고, 당신 손목의 시계도, 당신이 몸 실을 지하철도, 계단도 엘리베이터도, 에스컬레이터도 모두, 처음엔 파격으로 등장했을 것이다.

4.
우리가 일상에서 지나간 파격들을 일일이 헤아리고 있을 필요는 없다. 냉정하지만 그러한 성질이 시장을 움직이고, 문화를 움직이고, 정치를 움직이고,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은 뭘 더 따지고 들것도 없이 당연한 일이다. 언제까지고 친구가 던지는 가짜 거미에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파격이 목적의 수단으로 사용될 때, 파격은 파격적으로 ‘유효’해야 한다. 그를 위해 과거의 파격은 뭔가 조금씩 업그레이드 된 모양으로 돌아와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파격의 진로는 결국 전반적으로 발전을 그리는 밑그림이 되는 셈이다.

터치 폰이 놀랍지 않다면 터치 폰에 음성인식을, 그도 놀랍지 않다면 아예 3G를, 3G가 놀랍지 않다면 4G를! 사람들은 새로움에 놀라고, 그 놀라움은 그들이 목적한 대로 흥미, 구매로 이어지게 된다. 이제 그것이 더는 놀랍지 않을 때, 사람들의 지갑을 다시 열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다시 한 번 놀랄만한 새로운 무언가를 더해야만 한다.

나아가는 화살표의 꼭짓점에 서있는 우리는 행적으로만 남은 파격들을 잊고 사는 것이 당연하지만, 가끔은, 지나간 것들이 신선하게 다가올 때도 있는 법이다. 화살표의 움직임이 너무 빠를 때 불현듯 그러하고, 혹은 그 빠른 이동에 그만 꼭짓점을 이탈해 버리고 말았을 때도 그러하다.

불과 1년 전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의 화질이 지금과 비교해 영 떨어질 때, 디지털 카메라와 맞먹는 화소의 현재의 핸드폰 카메라의 성능을 당연히 여기다 새삼 놀란다거나 뭐 그런 적 있지 않은가. 그것도 아니라면 핸드폰의 발전을 따라잡길 거부하고 아직까지 폴더폰을 쓰고 있는 당신이 핸드폰을 바꾸려 대리점에 들어갔더니 LTE가 어떻고, 와이파이가 어떻고, 잔뜩 설명을 늘어놓는 직원.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한다고? 놀랄 수도 있는 일이다.

5.
내 어릴 적에는 휴대용 전화라는 게 아예 존재하질 않았다. 삐삐 정도가 있긴 했지만 그나마도 나 같은 꼬마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물건이었고. 나와 친구들이 원거리로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이메일-당시에는 정말로 편지의 의미가 강했다. 보내고 확인하는 텀도 지금보다 길었고 이메일로 소통하는 건 거의 펜팔에 가까웠다. 지금의 메신저 같은 메일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이나 집전화가 전부였다. 친구네 집에 전화해서, ‘저는 누구 친구 신영인데요, 누구 집에 있어요?’ 하고 묻곤 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랑 전화로 약속을 하고 약속장소에 나가보면 십분 정도는 기다리는 게 당연하고 그랬다. 요즘에도 핸드폰을 들고 통화를 하면서도 약속장소에서 한참을 서로를 찾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그때는 어떻게 엇갈리지 않고 잘 만나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정말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언제 어디서든지 듣고 싶은 목소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 바로 내 손위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파격은 거의 매일 매일 일어난다. 그리고 파격은 매일 매일 있어 왔다. 그 파격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지층을 발밑에 두고, 우리는 오늘도 일상을 살고 있다. 하루에도 수많은 뉴스들과 새로운 것들이 파격으로 다가오고, 또 저물어가는 것. 그런 것들을 일일이 신경 쓰며 살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가끔씩은, 그러한 것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난 생각한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오늘을 감사하게 만들어주는 소소한 이유가 될지도 모르잖은가.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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