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환절기 그리고…





계절을 앓는 것은 어쩌면 내겐 이제 꽤 익숙해져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환절기만 되면 어떤 식으로든 한번쯤 앓고 넘어가지 않는 법이 없으니. 주로 감기를 앓는다. 평범한 환절기 감기. 콧물이 흐르고 기침을 좀 하거나하는. 감기가 아니면 장염이다. 처음 장염을 앓았을 때는 낯선 고통에 곤혹스러워 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도 걱정하시며 종일 아무 간도 되어 있지 않은 말간 흰죽을 끓여주셨다. 생각해보면, 정작 배가 아프거나 혹은 볼일 보기 힘든 것보다 흰죽만으로 3끼를 먹어야 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뭐 워낙 자주 앓다보니 그냥 그렇구나, 한다. 죽이니 뭐니 요란 떨지도 않고, 그냥 늘 먹던대로 먹는다. 장염이라면서 의연한 나 때문에 외려 함께 밥 먹던 주변인들이 깜짝 놀란다. 가끔씩은 감기와 장염이 둘이 한꺼번에 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아무리 익숙해졌다 해도, 배겨낼 도리가 없다.

물론 나도 멀쩡히 환절기를 지낼 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때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어딘지 모를 찜찜함이 남는다. 조만간 꽤 크게 앓거나 영 다운된 기분으로 한 시즌을 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가벼운 감기나 장염 같은 건 예방접종 같은 기분으로 덤덤히 지나는 편이다.

지금도 배에서 들리는 꾸륵 꾸륵 하는 소리로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보통 한 일주일쯤 앓곤 했던 장염이 이번엔 좀 오래간다. 이번 겨울이 길었던 만큼 새로운 봄의 신고식이 꽤나 혹독한 모양이다. 그나마 내가 매해 두세 번씩 겪은 장염에 이골이 나지 않았더라면 배를 붙잡고 미음만 퍼먹어야 했을 거다. 조금 심한 장염을 앓는 중이다. 배에선 천둥치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먹었다하면 당장 화장실에 헬게이트가 열리는데도 음식을 입에 넣길 망설이지 않는 걸 보면, 역시 나는 계절을 앓는 것에 익숙해진 게 틀림없다. 벌써 몸무게가 3킬로나 줄었다. 배가 핼쑥하다.

몸무게가 줄었다는 걸 처음 안 것은 친구가 초대한 저녁식사 후였다. 김치 갈비찜을 해주겠다며 친구는 자신만만하게 본인의 집으로 날 초대했다. 장염으로 인한 약간의 탈수 증세나  맵고 짠 음식 섭취 후에 있을 고통 같은 건 아랑곳 하지 않고, 오랜만에 고기를 섭취할 생각에 기쁜 맘으로 친구 집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녀의 김치 갈비찜은 우려보다(그 친구, 명성이 대단한 맛의 연금술사다. 김치와 돼지고기로 괴이한 찌개를 연성한 사건은 일대의 파란을 일으킬 정도로 유명했다) 훨씬 맛이 좋았다. (고기는 고기맛이 났고 김치는 김치맛이 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다.) 장염을 앓는 중에 맵고 짠 음식을 먹은 대가로 그네 집 화장실에서 또 한 번 헬게이트를 소환해야 했지만 매번 미음만 퍼먹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생각 없는 음식섭취를 합리화했다. 내 환절기 장염은 관리를 하든 안하든 시일이 지나면 곧 끝나기 때문에 그냥 먹을 건 다 먹어 가며 조금만 버티면 된다며. 여튼 그렇게 거한 저녁식사를 끝내고 화장실까지 다녀왔더니 친구의 푸념이 시작되었다. 다이어트 중인데 너무 많이 먹은 것 같다나. 별로 많이 먹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많이 먹은 건 나지. 뭐 그런 생각을 속으로 삼켰다. 장염에 걸렸다는 나를 부러워했다. 먹는 대로 쭉쭉 흡수하는 건강한 몸뚱이는 입으로 처넣는 것들이 족족 살로 간다나. 자신의 쓸데없이 튼튼한 장은 한번 탈도 안 난다며 배를 통통 쳤다. 어쩐지 발끈하여 이게 화장실에서 지옥을 엿보고 나서야 그딴 소릴 안하지, 하며 그녀의 옆구리를 발가락으로 찔렀다. 반격이 들어온다. 네가 먹는 대로 쪄봐야 뚱뚱이에겐 이승이 지옥임을 알지 응? 가격당한 갈비뼈 아래가 욱신거렸다. 그 밑으론 지옥의 레퀴엠이 꾸륵 꾸륵.

말이 나온 김에 그 애가 책장 밑에서 체중계를 꺼냈다. 내가 마지막으로 몸무게를 잰 것이 52킬로. 그도 내 키의 정상체중에 못 미치는 수치다. 몸무게는 잘 재지 않지만 평균적으로 50 전후 쯤 나간다. 먹는 만큼 찌지도 않고, 키에 비해 마른편인, 현대의 여성들이 꿈꾼다는, 체질적으로 마른 몸뚱이. 그게 나다. 글쎄 워낙 말랐다는 얘길 많이 들어 그런지 나는 마른 몸이 대체 뭐가 예쁘다는 건지 이해할 순 없지만, 이런 의문조차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내선 안 된다. 다이어트로 눈물 흘려본 적도 없는 애의 배부른 투정처럼 들리기 쉽기 때문이다. 사실 말라서 크게 고민인적도 없었으니 배부른 투정이란 것이 완전히 오해인 것도 아닌 셈이다.

체중계 위에 올라선다. 디지털 저울은 내 몸이 오르자 정신없이 올라간다. 잠깐을 갈팡질팡 하더니, 48.5에 멈춰 선다. 어라? 친구의 경악이 들린다. 어째서 키 차이가 10센티가 넘게 나는데 몸무게는 같냐며. 나는 체중계의 고장을 주장해 본다. 친구가 그럴 리가 없다며 혼자 구석에서 몰래 몸무게를 잰다. 이내 내려와서 내 갈비뼈를 가격한다. 고장일리 없지! 나는 두 번째로 가격당한 갈비뼈 아래를 부여잡으면서, 장염 때문에 그런가, 하고 뒷머리를 긁적 긁적 긁는다. 그 꼴에 친구가 속이 터지는 표정을 짓는다. 장염이 감기처럼 전염되는 거면 얼마나 좋을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한다. 내가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실은 장염이라는 게 꽤 괴로운 거란다. 살이 쪽쪽 빠질 만큼 힘든 거야. 친구는, 다이어트도 힘든 거야. 먹는 것을 참는 것도 힘든 거야. 지척이 24시간 편의점이고, 내 지갑엔 돈이 있는데,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이 드는 것도 힘든 거야. 라임이 돋보이는 속사포 랩을 쏟아낸다. 한창 다이어트 중이라 예민하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살이 빠지고 싶어서 장염에 걸리고 싶다는 소리가, 마치 학교에 나오기 싫어서 눈병에 걸리려 애쓰는 어린 친구를 연상케 한다. 나 고등학생 때는 살을 빼려고 변비도 아니면서 변비약을 먹던 언니도 있었다. 그렇게 몸무게를 줄여봤자, 예뻐 보이지도 않고(볼이 핼쑥해지고 안색도 나빠진다) 단순히 일시적인 탈수 증상과 영양 흡수의 저하로 몸무게가 주는 것이라 건강만 해칠 뿐 실제 다이어트의 효과가 그렇게 뛰어난 것도 아니다. 왜 그렇게 다들 몸무게에 집착하는 지. 사실 남자들 중엔 여자 몸무게는(키에 상관없이) 다 45킬로인 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내 몸무게가 50이 넘는다는 사실에 경악했던 남자 선배도 있었다. 말라 보이는 데 50킬로가 넘는다고? 그 뜨악한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난 50킬로가 넘더라도 체중 미달인데? 연예인들의 프로필이 죄 45킬로이니, 잘 모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 연예인들은 어째서 45킬로여야 했을까. 프로필 상의 45킬로가, 진실이든 아니든 말이다.

세상이 온통 마른 여자들이 예쁘다고 한다. 연예인은, 아름다워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경제적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 남들보다 날씬하게, 조금 더 날씬하게. 그러다보니 이젠 깡말랐다, 싶을 정도로 마른 여자들이 브라운관에 가득하다. 사람들은 그들의 마른 몸에 찬사를 보낸다. 여성이라면 당연히 팔뚝이나 허벅다리, 뱃살에 지방이 많기 마련인데, 그들은 그런 사실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느다란 모습으로 미디어에 등장한다. 그들을 찍은 기자들은, ‘굴욕 없는 날씬 몸매’ 따위로 그 마른 몸을 찬양하고, 사람들은 어느 새 자신들에게도 그 기준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들의 마른 몸은 예쁘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길쭉길쭉하고, 날씬하고, 그럼에도 여성스러운 그들의 몸매. 하지만 마른 것이 아름다운가 하는 것에는 고개를 갸웃하고 만다.

체질적으로 살이 잘 찌지 않는 나 같은 경우엔, 이런 세태가 그다지 손해 볼 일도 아니다. 그닥 예쁠 것도 없는 몸매를 보고, 주변사람들이 부러워하면, 좀 어리둥절하긴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소녀시대 몸무게’라며 ‘자기 키-120’이 될 때까지 다이어트를 진행하는 모습 같은 걸 보면 조금 너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계산해 보면 알겠지만, 이건 정말 심각하게 마른 몸무게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젠 아예 건강한 몸무게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 이전에는 체중 미달 수치가 되면, 건강 상 주의를 요구하곤 했는데 이젠 어느 정도의 체중 미달은 ‘미용 체중’이라는 이름으로 은근슬쩍 ‘정상’으로 묻어가고 있다. 미용 체중이라니. 뭐가 미용이란 말인가. ‘정상’을 벗어난 체중은 ‘미용’의 영역에서도 ‘정상’이 아니어야 ‘정상’이다.

기형적인 과거의 지나치게 가는 허리(딱딱한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여 두 손에 잡히는 허리둘레를 만든다. 그 당시 여성들은 음식 섭취도 제대로 하지 못 했을 뿐만 아니라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쓰러지는 일이 왕왕 발생했다)나 전족(작은 발이 아름답다 하여 어릴 때부터 발을 동여매 기형적으로 작은 발을 만드는 것)문화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지금에 와서 전족에 대해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발가락이 접히고 뒤틀려 뾰족하게 접힌 발의 사진을 보면서 혐오스러워한다. 이것은 학대라고, 이런 것을 아름답다며 여성들에게 요구했던 문화에 대해 역겨움과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지나치게 마른 몸을 극찬하는 지금과, 그 뒤틀린 조그만 발이 요구되던 그때가 다를 게 과연 무언가. 거식증에 걸려 죽어가는 소녀들은 어떤 혐오스러운 ‘요구’의 희생양인가. 아주 먼 훗날엔, 갈비뼈 앙상한 지금 여인들의 사진을 보며 ‘이것은 명백한 학대’라며 분노할 것이다.

장염으로 만든 ‘소녀시대 몸무게’ 같은 것은, 하나도 자랑스럽지 않다. 어디 가서 칭찬 받을 것도, 또 누가 부러워 할 것도 아니다. 이것은 단지 지금 내가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죽을 좀 먹어야겠다. 하루 빨리 장염이 나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상 체중’이 될 때까지 노력해야할 것이고, 이것은 지금 ‘체중 과다’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내용이다. 지나치게 마른 몸도, 지나치게 비대한 몸과 마찬가지로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름답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 역시, 아니다. 건강을 위해, 그리고 본인의 만족을 위해 체중을 조절하여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획일적인 기준을 버리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 기준이 ‘비정상’적인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어오던 ‘비정상적 아름다움’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반성과 성찰뿐이다. 당신 역시 반성해보길 바란다. 당신이 남자라거나, 다이어트완 평생 인연이 없다 해도, 역시 반성해 봐야한다. 당신이 마른 여자, 뚱뚱한 여자, 정상 체중의 여자, 혹은 그들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는 사람 중 하나라면 말이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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