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끓어 넘치는 탕춘대 그리고 사모바위 숲속에서의 그윽한 풍류
봄이 끓어 넘치는 탕춘대 그리고 사모바위 숲속에서의 그윽한 풍류
  • 승인 2012.05.0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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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 불광역 2번 출구-탕춘대-포금정사-비봉-사모바위-승가사-구기동


# 사모바위

일요일 아침, 봄바람이 꽤나 사납다. 불광역 2번 출구도 여전히 복잡하다. 지인과 9시3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10시가 넘도록 모습을 안 드러낸다. 전날 약속시간을 오전 10시로 제안했었는데, 굳이 30분을 앞당기자고 우기더니 이게 웬 놀부 심본지. 성질 급한 기자 마음에 신나 불이 붙기 시작한다. 잠시 후, 지인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디 있어?” “2번 출구 앞이요.”

퉁명스럽게 내던진다. 그러고도 5분이나 지난 뒤에 나타난다. 지인과 함께 온 동행인이 기자와는 초면이라, 꾹 참고 부드럽게 인사 나눈다. 그리고 우리 지인에게 넌지시 한마디 던졌다.

“우와! 정확하게 지금 시간이 9시 30분이네요.”

지인, 슬며시 한 눈 흘리고는 애써 시선을 피한다. 이왕에 피하는 시선이면 자기 팔뚝에 찬 시계를 향하든지.

‘춘양골(쥔장 남영석. 02-353-3288)’에서 홍어회와 족발을 산다. 춘양골은 2번 출구에서 구기터널 방향으로 약 30미터 전방에 있는 먹을거리 집인데, 오전에는 천막을 쳐놓은 채 등산객들에게 만남의 장소도 제공하고 어묵, 김밥, 족발, 홍어회, 닭발 등 각종 안주를 판매한다. 산행인들이 뜸한 낮 시간부터는 지하 식당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데  인심도 좋고 음식솜씨가 좋아서 주변사람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다.


# 춘양골


# 진달래꽃


거북약수터에서 두꺼운 점퍼 벗어 배낭에 쑤셔 넣고 장미동산 초입의 계단을 오른다. 여기서부터 팔각정 쉼터까지 10여 분 거리가 땀을 생산하는 코스다. 사람에 치여서 속도를 못 내면 탕춘대 능선 옛 매표소까지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곳이다 보니 더 이상의 땀은 기대하기 힘들다. 군데군데 산목련과 진달래, 개나리, 산벚 등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눈의 피로를 씻게 해준다. 탕춘대(蕩春臺)는 연산군 11년(1505)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앞 냇가에 수각을 지은 뒤 미희들과 질펀하게 놀았던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기자, 앞 뒤 안 보고 그냥 내달린다. 간밤 과음한 알코올 씻어 내야겠기에. 삽시간에 일행들의 시선을 벗어난다. 초입부터 무리하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헉헉거리면서 추월 또 추월하여 팔각정 쉼터에 도착한다. 비 오듯 흐르는 땀 훔치면서 마시는 물맛을 이 세상 어디에 비유하랴.


# 장미동산


# 향로봉과 비봉


# 향로봉


최근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북한산 일대 흩어져 기생하는 유기견들을 정리한다고 했는데 소탕작전이 끝이 났는지 애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 팔각정 쉼터 일대에도 여섯 마리의 개들이 있었다. 얼마 전부터 모습을 감췄는데 오늘도 그러하다. 산에서 유기견들과 마주치는 등산객들은 항상 불안했다. 먹잇감을 구하지 못하면 사람을 물 수도 있는 일이니, 끊임없이 민원이 제기됐던 부분이었다.

일행들 모습이 보인다. 얼굴 표정들이 죽지 못해 올라오는 듯하다. 그러게 평소에 몸 관리 하셔야지, 골프만 가지고 체력단련이 되는감.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겨우 ‘탕춘대성암문’에 도착했다. 쉬어 가잔다. 이 코스는 단박에 주파해야하는 곳인데, 이러다가 오늘 중으로 사모바위까지 갈 수는 있을는지.

오늘 처음 본 동행인에게서 등산의 내공이 느껴진다. 잘 정돈된 배낭의 모습하며, 그 배낭 속에서 나오는 내용물들이 여간 심상치가 않다. 잣, 대추, 호두, 치커리, 흑마늘 등과 우유에 꿀과 토마토를 섞은 보양주, 옛날 시골에서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그 추억의 도넛. 이 모든 것들에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산행 중 마시는 물과 목적지에서 들이키는 막걸리 한 사발 외에 별 경험이 없는 기자의 눈에는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다. 권해주는 대로 마구 먹었더니 속이 달고 더부룩하다. 이럴 때 한 사발에 김치를 먹어야 개운한데 갈 길은 멀기만 하다.


# 비봉


# 족두리봉


탕춘대 매표소를 지나 향로봉 아래를 지나간다. 왼쪽 성곽을 끼고 일명 ‘차마고도’라고 불리는 길을 가다보면 족두리 능선과 마주한다. 일행들, 우측의 ‘포금정사지’로 향한다. 가다 서다를 몇 번 하고서야 포금정사에 당도한다. 봇짐 또 내리고 휴식에 들어간다. 이미 속도의 리듬을 잃어버린 기자는 자포자기 상태다. 자가 발전할 의지도 안 생긴다. 이번엔 향이 감미로운 차가 나온다. 도대체 마르지가 않는 저 배낭 속의 정체는 무엇인가. 바위에 걸터앉아 찻잔을 입에 대고 일주일 전을 떠올린다.

지난 일요일 산행 때도 별로 땀을 흘리지 못했다. 평소 가까운 지인의 부탁으로 동행을 하였는데 ‘재경 남해군 향우 미조면 산악회’ 월례행사였다. 기자더러 선두에서 일행들을 인솔하고 탕춘대 능선을 거쳐 잣나무 솔밭까지 가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쪽에도 산행대장이 있었으나 초행길이라 기자에게 맡긴 것이다.

연세 드신 남녀 어르신들도 계신지라 비교적 단순한 코스임에도 일사불란한 행렬을 기대하는 건 애당초 무리였다. 얼마 가다가 일행들 모으고, 다시 얼마 가다가 서고, 낯선 얼굴들이라 더욱 그랬다. 그래도 시간은 항상 우리 편이었지. 변하는 태양의 그림자에 따라, 일행들 목적지에 무사히 안착한다.

넓은 잣나무 솔밭 아래서 20여 명의 일행들이 원을 그리며 둘러앉아서 점심을 먹는다. 바닷가 분들이라 그런지 준비해 온 음식들이 서울 인근 산에서는 보기 힘든 것 들이다. 미조면 고향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갈치를 맛깔스럽게 졸인 갈치조림, 제주도의 명물인 다금바리찜, 남해 죽방 멸치조림, 해묵은 배추김치에 걸쳐먹는 홍어회 등등 모든 것들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기자, 고생했다며 권해 오는 술잔들을 해치우기에 여념이 없다. ‘에라이,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면서. 완전 장이 섰다.


# 문수봉과 보현봉


# 물개바위


하산 길에는 기자에게 산행을 부탁한 지인이 은평경찰서 인근의 ‘정동진’ 횟집에서 한 턱 쐈다. 그래, 고향을 떠나서 낯선 객지에서 외롭게 살아오면서 이제 밥 먹고 살만한 때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고향 지인들이 눈물겹도록 반갑고 살갑겠지. 후배, 동기, 선배들이 어우러져 자리를 이동하면서 서로들 안부를 묻고 또 격려한다. 보기에도 흐뭇한 모습이다. 음식 맛나게 나눠먹고 기념촬영을 한다. 사진촬영은 기자의 몫이다. “미조, 미조, 파이팅.” 찰깍. 짝 짝 짝. 재회를 기약하면서 아쉬움의 이별을 고하는 모든 분들의 정겨운 얼굴들이 이 순간, 저만치 다가온다.

그나저나 우리 선배, 이곳 포금정사에서 자리 펼 법도 한데 어김없이 또 일어선다. 지구력만큼은 높이 살만하다. 20여 년 전, 한때는 로프 줄 준비해서 백운대 뒤쪽의 험하기로 악명 높은 염초봉을 오르내린 분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다 저려온다. 기자, 그 후로 명(命) 재촉하는 코스는 일절 사양이다.

계속 더부룩해 오는 속을 물로 달래면서 힘겹게 물개바위를 오른다. 아무렴, 물개바위를 쉽게 오르면 물개가 섭섭하겠지. 모퉁이를 도니 저만치 꼭대기가 보인다. 비봉가기 전 족두리봉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이제 조금만 힘쓰면 사모바위에서 한사발이 기다린다. 벌써 가슴이 뛴다.

비봉능선에 이르니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분다. 거의 태풍급이다. 사모바위의 넓은 헬기장 마당은 그야말로 시골장터를 방불케 한다. 형형색색의 무리들이 민생고와 반주잡기에 혈안이다.


# 미조면 산악회 사진


승가사가 내려다보이는 사모바위 남벽에 자리를 편다. 그런데 웬걸, 봄바람이 매섭다. 좋은 자리 물리치고 북쪽 숲으로 옮긴다. 여기도 만원이다. 이리저리 눈을 돌려보지만 빈틈이 안 보인다. 마침 저쪽 아래 일어서는 무리를 우리 지인이 발견하곤 쏜살같이 달려가서 점령한다.

“방도 빼기 전에 오면 어떡합니까?” 투덜거리며 배낭 챙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괜시리 겸연쩍어 진다. 자리를 잡고 보니 바람의 영향이 거의 없는 완벽한 주막집이다. 두툼한 점퍼 꺼내 입고 장고에 들어간다. 족발, 홍어회, 김치 펼치고 막걸리 가득 채운다. 낯을 간질이는 봄바람에 향긋한 꽃내음이 실렸다.

“위하연, 위하세!” 평소 즐겨 듣던 건배구호다. 이런저런 세상살이 나누면서 부딪히는 잔의 횟수가 늘어간다. 승가사를 거쳐 구기동의 베이스캠프에서 가벼운 생맥주로 하산주를 대신한다.

선임 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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