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 구기동-이북오도청-포금정사-비봉


# 숲길


오늘은 구기동 이북오도청에서 열리는 ‘종로구 등산연합회’ 발대식에 참관한 뒤 몇몇 지인과 함께 연화사와 금선사를 거쳐 비봉에 오르기로 약속했다.

연신내에서 7211번 버스에 몸을 싣는다. 불광역 2번 출구 근처 정류장에 버스가 멈추고 구기동과 국민대 방향으로 가는 등산객들이 한꺼번에 들이 닥치니 버스 안은 순식간에 콩나물시루로 변해버렸다. 숨이 턱하니 막힌다. 벌써부터 사람 긴장시키네.


# 이북오도청


구기터널을 지난 뒤 하차하여 구기파출소 앞에서 지인들을 만난다. 지난번에 늦게 온 보복으로 오늘은 기자가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사실 등산연합회에 참석한 1000여 명의 사람들과 같이 출발하면 산을 오를 수가 없겠기에 30분 일찍 만나 산행을 서두르기로 하였다.

사모바위에서 함께 식사했던 예전의 그 ‘배낭의 달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배낭의 달인께서 자신의 간식이 담긴 가방을 기자의 배낭에 옮겨 넣는다. 먹을거리로 가득 채운 가방인지라 제법 무게가 느껴진다. 오늘은 과연 어떤 음식들이 나올지 사뭇 걱정이 앞선다. 맛좋은 행동식을 두고 무슨 걱정씩이나.


# 비봉탐방지킴터


이북오도청 마당에서는 식순에 따른 개회식이 한참 진행 중이다. 일행들, 잠깐 얼굴만 내밀어주고 무리에서 빠져 나온다. 청운양로원 골목으로 접어들어 10여 분을 가면 ‘비봉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화사한 봄날, 등산로 옆에는 광우병 걸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라도 하듯 이름 모를 풀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연분홍의 살구꽃과 산철쭉꽃이 눈을 부시게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동절기 방한복을 입고 다니면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떠올렸건만 어느새 봄을 훌쩍 뛰어넘어 여름이다. 자연의 신비로움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 포금정사터


금선사 입구를 지나면서 우측으로 돌아 올라가는 언덕길,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적는다. ‘땀의 달인’, 오늘도 변함없이 허덕인다. 쉬어가야 할 때다. 금선사가 내려다보이는 넓은 바위에서 짐을 내린다.

얼려서 가져온 차가운 얼음물을 사정없이 몸속에 부어 넣는다. 속이 얼얼하다. 배낭의 달인이 오이와 포도를 꺼낸다. 지금부터 주전부리 시작이다. 가방 안을 들여다보니 호두와 아몬드를 섞은 율무차를 필두로 찰떡파이와 프렌치파이, 다쿠아즈, 양갱에 각종 초콜릿 등 그야말로 없는 것 빼놓고 다 있다. 배낭의 달인 말처럼 오이 두 조각을 먹고 나니 간밤의 숙취가 어느 새 저만치 도망가 버렸다.


# 보현봉


어느 정도 땀이 식자 다시 출발이다. 20여분 후 포금정사지에 도착한다. 이때 긴급 제안이 들어온다. 비봉까지 가면 뭣 하겠는가? 오늘은 이북오도청에서 뒤풀이를 하는 관계로 ‘원점회귀’를 해야 하는 마당에 굳이 잠깐 올라갔다가 내려오느니 아예 이곳에 자리를 펴자는 것이다.

땀의 달인의 반대에도 불구, 전망 좋은 곳에 둥지를 튼다. 한 사발 준비하고 있는데 아뿔싸, 배낭의 달인이 자신의 배낭을 벗어 내리는 순간, 배낭에서 페트병맥주와 스테인리스 보온병이 경사면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눈 아래 보이기는 하는데 내려가는 길이 없어 난감하다. 땀의 달인 투덜거리면서 내려가서 건져 올린다. 아침 일로 인해 다분히 의도적으로 굴렸다면서. 아무튼 자리 잡고 잔에 막걸리 가득 붓고 ‘위하여’ 때린다. 예술 같은 달인의 배낭에서 귀한 음식이 나온다. 오가피김치, 오가피장아찌, 오가피무침이다. 충청북도 야산에서 캐왔다는 오가피를 오미자, 유자, 매실, 생강 등을 혼합 숙성하여 원액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가히 보약이다. 예로부터 어린 오가피는 야생 상태에서 산삼을 쏙?빼닮은 생김새 때문에 심마니들이 산삼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라고 한다. 신기한 것은 생김새도 똑같지만 효능 또한 비슷해서 오가피를 나무산삼이라고도 한단다. 민간에서 오가피는 인삼을 능가하는 약물로 애용되어 왔다. 평범하고 맛이 매우며 쓰다. 오로칠상(五勞七傷)을 보(補)하고 기운을 돕고 정력을 더해주며 근골을 강하게 하여주고 남자의 음위(陰萎:발기부전)와 여자의 음부 가려움증을 다스리며 풍으로 저린 것과(風痺) 허리, 무릎 등이 아픈 것을 다스린다고 알려져 있다.


# 비봉과 코뿔소바위


잔이 몇 순배 돌면서 아침의 해프닝을 두고 두 지인 서로 티격태격한다. 종로에서 만나 길에서 배낭을 꾸리는데 선배가 자신의 배낭에 물통을 넣으면서 가로로 눕혀서 넣은 게 불행의 단초였다.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물병인지라 세워서 넣으라는 지인의 간절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눕혔다가 잠시 후 배낭에서 물이 줄줄줄…. 물 사러 마트로 달려가는 선배에게 자신에게 물통이 있으니 그냥 돌아오라고 외쳤건만 고집스레 사오는 그 우직함. 구기동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도 혼쭐은 계속 이어지고, 택시기사가 주눅이 들어서 주행 미터기를 미처 안 누르고 한참을 왔을 정도였다고.

이어지는 꾸지람, 배낭을 구입할 때 수납이 용이한 배낭으로 골라 사라고 누누이 강조해줬는데 돈은 더 비싸게 주고 기능은 영 아니올시다∼해서 또 스타일 구기고. 허걱, 이 대목에서 박장대소 안 해주면 섭섭할 것 같다. 우하하하. 땀의 달인, 이래저래 땀 날만도 했겠다.


# 금선사 목정굴


그래도 화창한 날씨는 우리들의 마음을 풍요롭게만 한다. 웃고 즐기는 가운데 어느덧 포금정사지도 등산객들로 가득, 입추의 여지가 없다.

하산길, 지인의 안내로 금선사를 둘러봤다. 금선사는 특히 조선 23대 군주인 순조의 탄생설화를 간직한 곳으로 유명하다. 기도성지로 유명한 목정굴은 불교 수행굴로 금선사와 한곳에 있다. 초입에 들어서면 입석사각형의 돌기둥에 ‘금선사 기도성지 목정굴’이라 쓰인 푯말이 나온다. 무무문를 넘어서서 보면 협소한 계곡 암석이 자리하고 있다. 목정굴은 협소한 계곡 암반석에서 낙숫물이 흘러내려 물의 세계를 관장할 수 있는 이치를 형상화하여 수월관세음보살상을 모셔놓게 되었다고 한다.






# 등산로 옆, 이름 모를 풀 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연분홍의 살구꽃과 산철쭉꽃이 눈을 부시게 한다.


절 마당에선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내외국인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목정굴 아래로는 폭포수가 흘러내려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일요일은 정오부터 1시까지 무료 국수공양도 제공한다.

비봉탐방지원센터와 연화사를 지나 이북오도청에 도착한다. 행사장 넓은 마당에는 등산단체별로 모여서 막걸리와 홍어회, 삼겹살, 김치 등 이른바 삼합을 안주로 한 주연이 한참이다. 본부석 텐트 앞에는 대형TV를 비롯 이날의 추첨경품들이 즐비하게 널려있다. 몇 군데 돌면서 서 너 잔 마시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이북오도청 아래에 위치한 맥줏집에서 시원한 생맥주 한 잔 할까 했는데 좌석이 꽉 찬 상태다. 택시를 타고 불광역 인근의 먹자골목에 내린다. 자주 이용하는 ‘목포세발낙지’(쥔장 유경숙 02-388-3552)에서 낙지연포탕에 막걸리를 주문한다. 연포탕은 살아있는 낙지는 물론, 바지락조개와 미나리. 미역 등이 어우러져 우러나는 시원한 국물 맛 또한 일품이다. 막걸리 잔 속에 오늘 하루의 행복을 듬뿍 담아 마신다.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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