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의 뭐, 다 그∼런 거지>




사람이 좋은 것만 하고 살수는 없을까. 불혹이란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새벽녘 출근 시간을 알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짜증 섞인 몸의 반응과 함께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머릿속 생각인 “5분만…”이란 악마의 외침이 나의 몸을 잡아 끌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억지스런 기상을 경험하면 꼭 이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을까.” 난 분명히 그런다. 난 말이다.

날이 점점 더워진다. 불쾌지수가 조금씩 고개를 드는 여름날이 완연하다. 지구촌의 이상 기온 현상이 기승을 부리는 걸까. 향긋한 봄의 기운이 누구의 손에 죽었는지, 혹은 누가 그 봄을 탐했는지 얼굴을 마주하기도 전에 소리 없이 사라진 채 끈끈하고 텁텁한 여름날이 곧장 다가오고 있다. 뭐 그래도 딱 시원한 맥주 한 잔이면 끈끈함이 시원함으로 텁텁함이 상쾌함으로 바뀌니 크게 걱정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맥주도 술이란다. 고놈이 참 땡겨 한 잔 두 잔 그리고 세 잔 네 잔으로 이어지면 다음 날 어김없이 찾아오는 숙취가 머릿속을 더욱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린다. 아 짜증난다. 그냥 편하게 고민 없이 스트레스 없이 맘 편히, 하고 싶은 것 하며 여유롭게 베풀며 눈치 안보고 당당하게 시간을 즐기고 함께 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은 데 말이다. 이게 나만의 원함이 아닌 대한민국 월급쟁이들의 공통된 관심사이니 그냥 한 번 나오는 대로 혹은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컴퓨터 좌판은 손가락이 치는 것이니 손가락 움직이는 대로) 씨부려(은어 혹은 비속어다. 그냥 지금 기분에선 씨부려란 말이 좀 나을 듯하다) 보도록 하겠다.

요즘 맘이 참 급하다. 되는 일도 없이 급하다고만 느끼고 있다. 벌려 놓은 일은 많은 데 결과가 없으니 조급함을 넘어 조급증이 도진 듯하다. 나를 아는 몇몇 선배들은 “넌 ‘왁왁증’만 없으면 참 괜찮은 놈인 데 말이다”며 내게 당근을 가장한 채찍을 가끔씩 휘둘러 주신다. 요즘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아니 생각해 봤다. 몇 개의 이유가 머리에 떠오른다. 우선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증이 날 자꾸만 코너로 몰아넣고 있는 것 같다.

언론계에 발을 들여 놓은 지도 올해로 10년째.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경력을 내세우며 “나도 이러니 인정 좀 해주쇼”라고 내세우기엔 내가 너무 작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은 나 자신의 존재감을 위해서라도 또한 지나온 10년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약간의 건방을 떨며 위세를 잡아보려 한다.

직업적 생리상 나 자신의 유통기한을 잘 알고 있다. 스스로가 자신의 끝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스런 일인가.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소재가 내겐 현실이고, 당면한 과제다. 결국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고, 그 돌파구가 여러 번 언급한 ‘영화’였다.

한때 꿈이었고, 인생의 진로이자 향방을 선회케 했던 그 영화가 최근 얼어붙어 있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어차피 하고 싶던 일,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설계가 그 안에 담겨 있다고 혼자 미친 생각을 해본다. 미친 생각이란 단어에 조금은 찔끔했지만, 그 미친이 현실로 이뤄진다는 상상을 해봤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최근에 그 영화 일로 어떤 분을 만나게 됐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일종의 사기를 당했다. 편당 작게는 수억 원이 들어가는 영화의 제작비를 투자해 주는 사람과의 연결을 미끼로 접근을 해왔다. 나와 함께 진행 중인 친한 형을 연락해 자리를 마련했다. 그 사람, 참 신나게 얻어먹더라. 정말 미안하게도 그 친한 형은 이날 정말 적지 않은 돈을 지출하며 나에 대한 예의를 차려주었다. 자리가 파한 뒤 그 형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선 구분할 줄 아는 눈을 키우는 것도 능력이다. 오늘 내 지갑은 네 것이었다. 맘 쓰지 마라.”

사람을 소개해 준다는 것이 참 어렵단 사실을 이날 다시 깨달았다. 친한 형이지만 일적으로의 관계로 변한 뒤에는 서로에게 정말 조심하게 됐다. 더욱이 본의 아니게 그 형에게 10년 차 기자(그 시간과 직업이 큰 무기는 아니지만)의 허술함을 보인 것 같아서 정말 쪽팔리고 미안했다. 단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커 나름 정확하다고 생각했던 내 눈의 판단력을 나 스스로가 파악하지 못했기에 더욱 쪽이 팔리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하기 위한 이유이자 요즘 스스로 코너에 몰리는 이유는 또 있다. 아주 얼마 전에 안 사실이지만, 아들이 아픈 몸이었단 점이다. 지금도 아내 앞에선 전혀 내색을 안하고 있다. 그냥 대수롭지 않은 듯 웃고 지낼 뿐이다. 당시 아들이 아프단 병원의 진단을 처음 들은 아내는 급격히 무너지며 심적으로 혼란을 격기도 했다. 그 후 너무도 태연한 내 모습에 화를 내며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했다.

나라고 왜 걱정이 안 되는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손이 떨리고 눈이 떨리고 가슴이 떨리고 정신이 떨리는 데 말이다. 아픈 게 대수라고? 더 힘든 아이도 있다고? 혹시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는 그런 말 한 번이라도 들어보지 않았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봉사동아리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20년 째 그 모임을 나가면서 시각장애, 정신지체 장애 아이들을 많이 만나왔다. 그 아이들을 볼 때 마다 측은지심과 함께 나의 복받음을 감사해 하며 지내왔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 그에 버금가는 아픔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상상조차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아주 잠깐 눈을 깜빡한 채 내가 알고 본 모든 것이 그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상상해 보려 노력해도 결국에는 현실이다.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게 됐다. 아들놈이 아프단 사실을 알게 된 뒤 정말 너무 많은 변화가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젠 나 스스로를 지워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나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매몰차게 강제시킨다. 그러다보니 자꾸만 모든 일에 나 스스로가 성급히 덤벼드는 우를 범하게 됐다. 앞뒤 제지 않고 눈앞에서 까딱 거리는 낚시바늘을 덥석물어버리는 물고기가 된 듯이 말이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다. 하지만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주지 않는 것 같다. 혹시 그렇게 느끼는가. 난 지금 그렇다. 나 자신이 힘들고 내 주변이 힘들고. 그것을 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답은 하나다. 내 안에서 찾는 것. 그리고 그 해답을 현실화로 옮기는 것. 물론 침착하게 정확하게 그리고 현실감에 맞춰서. 결단코 꿈을 꿔서도 안되며 또한 현실에만 집착한 채 상상이 주는 달콤함의 맛도 외면하지 말고 말이다.

일요일 밤 12시 32분. 이 글을 쓰는 나 자신과 읽는 당신은 지금 원하는 것을 하며 즐겁게 또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까. 좀 더 냉정하게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난 분명 그래야 한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일이기에 꼭 그래야만 한다. 꼭!!

<김재범 님은 언론인이며, 쌍둥이의 아빠로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려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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