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비만 그리고





날씨가 슬슬 더워지고 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제법 간소해졌음이 눈에 들어왔다. 줄곧 실내에만 있다 보니 날씨개념이 무뎌지고 말았다. 긴팔 옷을 입고나온 사람은 내 시야 범위 안에서 오로지 나밖에 없다. 잠깐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동하는 그 짧은 동선 와중에서도 팔꿈치 안쪽 접히는 부분에 금방 물기가 오른다. 잘못된 선택을 했음을 후회한다.

누가 봐도 더워 보이는 몰골로 집으로 향한다. 반팔 티에 반바지를 입은 내 또래 행인들의 흘긋거리는 시선이 곁눈질로도 느껴진다. 잠깐의 더위보다 그 곁눈질이 더욱 견디기 힘들다. 집에 도착하면 옷부터 갈아입으리라, 걸음이 절로 빨라진다.

옷장 안쪽의 반팔티를 꺼내 입고, 오랜만의 여름옷이 어색하여 얇은 셔츠 하나를 덧입었다. 내 옷걸이엔 아직도 겨울 아우터가 걸려 있는데, 벌써 여름이 오고 있다. 창밖은 대여섯 시쯤 된 지금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햇빛이 밝고, 행인들은 활기차다.

학교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겨우내 옷 속에 숨어있던 팔뚝들이 허옇게, 서랍 속에서 겨우내 개켜져 있다가 지금 내 가슴께에 희미한 주름선 하날 아직 지우지 못한 반팔 티셔츠 마냥 그렇게 낯설게, 새로이 터지는 더위를 맞이하고 있다. 벚꽃이 화화하였다가 금세 녹음 짙은 캠퍼스를 보고 있자니, 과연 가지 말라 해도 가는 것이 시간이란 말이 실감난다.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가는 길. 몸 좋아 보이는 사내로부터 전단지와 명함 하나를 받았다. 생글 생글 웃으면서 새로 오픈하는 휘트니스 센터의 회원을 모집 중이라고 말하는 그 사내는, 느닷없는 낯선 이의 등장에 벙∼져있는 나와 친구에게 여름 맞이 몸매 관리 클래스를 굳이 굳이 설명해줬다.

나는 딱히 관심이 가지 않아 귓등으로 흘려들었지만, 친구는 훈남 트레이너가 하는 말이 꽤나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하긴 요즘 그녀의 관심사는 확실히 다이어트다. 더 이상 숨겨져 있던 살들을 남몰래 품고 있을 수만은 없는 날씨가 도래하고 말았다는 그녀의 푸념을 근래 심심치 않게 들어오던 터였다.

명함을 지갑 안에 갈무리해 넣더니, 6만원이면 싸다, 한다. 부끄럽지만(?) 돈 주고 운동해 본 경험이 전무한 나는 6만원이 도통 싼 건지 비싼 건지 알 수가 없어 적당히 맞장구만 쳐준다. 아, 그렇구나. 그건 그러네. 성의 없는 대답에도 아랑곳 않고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그녀다.

올해는 꼭 비키니를 입고 말겠다며 돌연 의지를 불태우는 친구를 보며, 비단 이 광경을 처음 보는 게 아닌 것만 같은 기시감이 들었으나, 이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 모처럼 의욕적인 그녀의 에너지를 꺾을 만큼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녀가 설령 비키니처럼 조막만한 천을 부끄럼 없이 걸칠 만큼 성공적인 다이어트를 못 이뤄낸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요즈음엔 다들 참 날씬하다. 비만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데 도대체 다들 어디로 숨은 건지. 카페에라도 들어가면 여자들 10에 8은 빼빼 말랐고 나머지 2도 그저 통통한 정도? 아주 뚱뚱한 여자는, 혹 길가다 발견하기라도 할 참이면 거의 신기할 수준이니, 비만이 문제라고 떠들어대는 수치에 비해 확실히 체감되는 비만도는 점점 떨어져가는 것 같다.

내 눈에 띄는 사람들이 죄 날씬하든 말든, 수치들은 나의 생활 반경으로 한정되는 나의 체감보다 훨씬 그럴싸한 근거들로 무장된, 보다 정확하고 믿음직한 통계 자료로 도출되는 것이다. 수치들이 모든 경우에 정확하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만, 어쨌거나 여러 수치들이 말하고 있는 대로,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비만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다양한 통계들의 공통된 의견이니, 아마 그것이 내 체감보다는 더 정확한 정보일 것이다.

그럼 그 수치들이 말하는 대로 비만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그 비만인구들은 왜 내 눈에 띄질 않아 이 수치들이 과연 ‘정말’일까 의심하게 만드는 것인가.

뚱뚱한 이들은 다 어디 숨었기에? 무엇이 대체 ‘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데 통계 속에서는 분명 존재하는 비만인구의 증가를 있게 하는가. 대체, 무엇이,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격리하는가!

뚱뚱과 날씬 중에 하나를 고르라 한다면 역시 뚱뚱 보다는 날씬이 낫다. 본인에 대하는 잣대는 물론이거니와, 자신과 하등 상관없는 타인에 대해서도 역시 뚱뚱 보다는 날씬이 낫다. 이러한 생각 자체는 비난 받을 것이 못된다. 날씬하다는 것은 단지 미관상만이 아니라 건강을 고려해서도 뚱뚱한 것보다는 훨씬 좋은 일이다.

하지만 대개, 이러한 생각은 정도를 넘어 나아간다. 자신에게 들이대는 잣대라면이야 약간 엄격해도 상관이 없는 일이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심미적으로도 아름다운 존재가 되고자 하는 것. 혹은 그것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이로운 채찍질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완전한 타인에 대해서도 너무 심하게 ‘오지랖’을 발휘해 버린다. 이 오지랖은 사실 다른 분야에서는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담배를 피우든, 술을 마시든, 여성편력이 지나치게 심하든, 자신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그들을 대놓고 비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상체중의 사람은 은연중 뚱뚱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그렇게 비만한 상태로 몰고 간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이 타인을 정당하게 비난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님에도 사람들은 오로지 비만한 사람들에 대해서만 이 경계를 종종 침범한다.

그들이 뚱뚱해서 나에게 피해를 준 것이 무엇인가. 그들이 식욕을 약간 절제하지 못하여 비만이 되어 건강을 조금 잃었다고 해도, 그들은 정당하게 자신이 번 돈으로 음식을 샀고, 정당하게 그것을 소비했으며, 그리고 또한 그것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거의, 없다. 술과 담배를 과히 즐기다 자신의 건강을 망친 사람을 비난하는 것보다 더욱 강도 높게, 그리고 더욱 거침없이 비만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이유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비만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탐욕적인 사람으로 으레 짐작되며 또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시선 앞에 마치 죄인처럼, 어떠한 억울함도 호소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떨굴 밖에 도리가 없다. 그 어떤 경우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차가운 시선들. 앞서 비교한 술 담배, 또는 그 어떠한 비난 받기 쉬운 경우보다도, 비만은, 그저 비만이므로, 비만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 받는다.
이것은 누군가 술 담배를 너무 지나치게 즐기다 건강을 잃은 것으로 지탄받는 것과도 조금 다르다. 당신은 누군가가 폐암을 앓고 있다고 해서, 그러게 담배 좀 작작 피우지, 하고 비난하는 사람인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폐암 환자들이 모두 절제 없는 흡연으로 병을 얻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보다 더 연관성이 짙어 보이는 일에도 ‘혹시 개인의 사정이 있을지 모르므로’ 사람들은 타인을 함부로 비난하진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비만한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게을러서, 지나치게 많이 먹어서 그런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리고 어째서 자신이 그것을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생각하기까지 하는 걸까. 나는 스스로 매우 편견 없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 혹은 그녀의 몸집이 비대하든, 또 얼마나 많은 양을 먹든, 나는 그들을 색안경 끼고 보지 않을 것이라 자부했다. 하지만 막상 뚱뚱한 사람들을 만나면 무의식적으로 그들은 많이 먹을 것이라 멋대로 추측하는 내 모습, 속으로 ‘운동 좀 하지’ 하고 혀를 차고, 혹 다이어트 콜라를 주문하는 그녀들을 보면서 피식 비웃는 나를 발견한다. 나 역시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씁쓸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진정 게으른 인간인가. 진정 참을성이 부족한가. 폐암에 걸렸다는 이유로 앞뒤 상황도 모른 채 그 사람은 지독한 흡연가임이 틀림없다 지레 짐작하고 비난하는 것과, 이 경우가 대체 뭐가 다른가! 심지어 그것이 완전한 남이라면! 그들은 어쩌면 마른 나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인내심도 뛰어난 인간일지 모른다. 그들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바뀌어야 한다. 대놓고 비난하였든 남몰래 비난하였든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들을 비난할 자격도 없을뿐더러, 그들을 비난할 근거도 없지 않은가. 그들을 통계 속으로만 숨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차가운 시선일지 모른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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