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숲속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땀 식고, 얼린 막걸리에 애간장도 식고…”
“소나무 숲속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땀 식고, 얼린 막걸리에 애간장도 식고…”
  • 승인 2012.06.01 12: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광훈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 불광사-족두리-향로봉-비봉-사모바위




토요일 오전 9시 40분, 서울역 대합실이 제법 북적댄다. 평소 산으로 향해야하는 시간임에도 불구, 서울역을 찾은 것은 부산 사는 지인이 북한산을 타기 위해 상경하는데 마중하기 위함이다.

때마침 오후에는 옛날 전우들의 모임인 ‘XX사단RCN 상반기모임’이 예정되어 있다. 이 모임에도 참석할 겸 부산지인이 올라오는 것이다. 예전에 기자가 부산 승학산 등반할 때 함께 한 그 지인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우리는 701번 버스를 타고 연신내역에서 내린다. 3번 출구 범서쇼핑 앞에는 등산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오는 도중 불광역 인근에도 등산객들이 빽빽이 차 있었는데, 요즘 주말에 흔히 보는 낯설지 않은 풍경들이다.

연신내역에서 불광중학교를 거쳐 불광사로 진입한다. 기자가 수도 없이 가는 평범한 코스다. 우측으로 틀자마자 철쭉과 산벚이 화사하게 우릴 맞이한다. 꽃들도 손님 알아보는 모양이다.






부산 촌놈이 왔으니 족두리와 향로봉을 거쳐 비봉능선에서 대남문 까지는 돌려야 입에서 단내가 나겠지. 이 코스는 알다시피 불광사 진입부터 족두리봉까지 계속 가파른 언덕길이다. 소위 한 땀 내는 길이다. 그렇다보니 별로 얘기를 나눌 여유가 없다. 둘, 씩씩대며 오르고 또 오른다. 족두리봉 아래 도착해서야 비로소 그늘진 나무 밑에서 흐르는 땀 훔치고 물 한잔 나눈다. 물이 술인가 나누게. 그래 마신다. 정신 확 돌아온다.

저 건너편 계곡에도 울긋불긋한 복장의 사람들이 줄지어 올라간다. 나중에 우리가 가는 코스의 중간쯤인 향로봉 끝나는 지점에서 합쳐지는 무리들이다.

약간의 휴식을 끝내고 쇠줄 타고 내려간다. 족두리봉을 우회해서 가는 길이다. 사람들에 치여 지체된다. 살짝 짜증이 난다. 이래서 진짜 산꾼들은 속도조절이 가능한 평일에 주로 산을 탄다지. 그래도 순리를 따라야지. 기다리면 내려가게 되어 있는 법.

잠시 후 돌계단을 올라서니 불광역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한다. 지인과 함께 시원한 바람 맞으며 지그시 눈을 감고 심호흡한다. 기분이 상쾌해진다.


# 족두리봉


땀이 식어갈 즈음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인사를 해온다. 평소 잘 아는 지인 서너 명이 막 족두리능선을 올라서면서 기자와 마주친 것이다. 불광역에서 출발한 이들이다. 순간, 이 멤버들은 많이 가야 사모바윈데, 어째 대남문은 먼발치에서 봐야 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그리고 주량이 약한 기자에게 이 지인들 술에 관한 한 염라대왕 같은 양반들이다. 배낭에 보통 막걸리 서너 통씩 넣어 다니는 삼국지의 장비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저녁에 모임이 있는데 산에서부터 들이대면 올 상반기 군대모임 농사는 보나마나 흉작이다. 그래도 딱히 방법이 없지 않은가. 사람 농사 잘 짓는 걸 인생살이 최고의 덕목 중 하나로 알고 살아 온 기자이거늘. 갑자기 불어난 식구들과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향로봉 입구에 다다랐다. 여기서 우회하여 차마고도를 지나면서 탕춘대 끝자락에서 포금정사지를 경유, 비봉을 타기로 일행들과 의견일치를 본다. 말이 좋아 의견일치이지, 선두에 서서 내달리면 따라오게 되어있다.

등산이 사람 몸에 좋은 최고의 보약이란 입소문이 온 국민께 전파가 된 이후로 산행인구가 참으로 많이 늘어났다. 그 덕에 등산복 아웃도어 시장은 계속 활황이라지. 소비자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도 그 놈의 체면 때문에 유명 브랜드만 찾고. 남편들 등골은 휘어져만 가고. 이참에 거품 된 가격을 바로 잡겠다는 정부 당국의 뒷북을 어디 한번 지켜볼까나. 아닐  거야, 혹시나가 역시나겠지 뭐. 그냥 비싼 돈 주고 기능성 옷 사입고 에베레스트씩이나, 아니 북한산씩이나 댕겨들 오슈.


# 향로봉





차마고도를 지나 포금정사지에서 잠시 쉰다. 여기서 돗자리 깔자는 어느 지인의 제의에 뒤도 안 보고 물개바위를 오른다. 계속 고!! 지네들이 안 따라오고 배겨?

“매주 가는 산인데 뭘 저토록 목숨을 걸까.” 투덜대는 소리들을 멀리하고 간격을 더 벌린다.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간다. 어느덧 비봉아래 능선이다. 일행들 기다린다.

삼천사 방향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산바람이 온 몸을 스치니 남아있던 땀이 삽시간에 사라진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을 꼭 붙들어 매고 싶건만 자연을 뒤엎는 자 어디 있겠는가.

일행들 올라오는 모습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ㅋ ㅋ ㅋ 아주 죽을 맛이다. 그러게 누가 이 넓은 산에서 아는 체 하라고 하였남. 증오에 찬 도끼눈들을 애써 외면하고 비봉을 묵묵히 지나간다. 부산 지인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많이 박아 놔라. 먼 훗날 멋진 추억이 될 테니.

비봉을 지나 사모바위에 오니 예외 없이 주변은 야외식당으로 변해있다. 시간도 오후 1시 가까운 출출한 때다. 그래도 30분 정도만 더 가면 목적지인 대남문이다.


# 차마고도


나이 지긋한 지인, 갑자기 기자의 배낭을 나꿔채더니 순식간에 숲속으로 숨어 버린다. 더 이상 못 가겠다는 강력한 의사표현이다. 그러지 뭐. 선심 쓰는 체한다. 비좁은 산중에서 틈새시장 찾아서 자리 깔고 준비해 온 먹을거리 쏟아 놓는다. 계절의 진미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붉은 색을 띤 상추, 시골서 담은 토속된장, 남해에서 올라온 우럭구이, 창난젓, 취나물, 가죽나물, 지리산과 강원도 오대산에서 채취해온 두릅, 그리고 데친 미역, 찹쌀을 섞은 콩밥, 보기만 해도 군침 넘어가는 홍어회 등등, 저녁 회동시 만날 목포세발낙지가 들어올 공간은 비워둬야 하는데…. 이래저래 해피데이.

자리를 펴면 수순은 언제나 식순에 의해서다. 막걸리를 잔에 붓고 조용히 구호 외치고 잔 때리고 그 다음 목 넘김이다. 부산 지인에게 특히 술잔이 많이 간다. 멀리서 온 손님을 대접하는 마음이거늘. 주변 수려한 소나무 숲속으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땀도 식고, 얼린 막걸리에 애간장도 식어가고.

하산길은 비봉을 지나 향로봉을 우회하면 나오는 아래 오거리에서 구기터널지킴터로 정한다. 거의 원점회귀 코스인데 마지막에 구기터널 방향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몇 차례 하다 보니 마신 술 다 깨고 온 몸은 뜨거운 열기로 허덕인다. 향로봉 아래 오거리서 왼쪽으로 곧장 내려선다. 한쪽은 차마고도 지나서 탕춘대 능선길이고 직진은 오전에 왔던 족두리봉 가는 길, 오른쪽은 잣나무 솔밭 가는 길이다. 계단을 내려서고 조금만 가면 여기도 잣나무 숲이 있다. 어김없이 숲 아래 사람들 옹기종기 둘러앉아 휴식들 취하고 있다.


# 사모바위


계곡으로 시냇물이 졸졸졸 흐른다. 따가운 햇살이 대지를 향해 마구 쏘아댄다. 어∼휴 덥다.

잠시 후 구기터널지킴터를 빠져나온 일행들, 장미동산 앞 전망 좋은 주막에 여장을 푼다. 맘씨 고운 쥔장의 이런저런 밑반찬이 한 사발 묵무침과 함께 테이블을 가득 채운다. 삽시간에 빈 막걸리 통들이 발아래 쌓인다. 배낭속 이동전화 벨이 울린다. 전주에서 올라오는 선배다.

“목포세발낙지 도착했는데 왜 아무도 안 보이는 것이여.”

“아이고, 형님! 지금 거의 다 왔습니다.”

부산지인과 주막을 빠져나와 급히 모임장소로 이동한다. 도보로 10여 분 남짓한 거리다. 오랜만에 만나는 군대 전우들과 뜨겁게 포옹하고 술자리 이어간다. 수십년전 사단수색대 시절 수색대장과 지대장, 선임하사, 일반사병이 모두 회동하는 흔치 않은 모임이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전우들과 어울려서 그 당시 힘들었고 어려웠던 순간들을 회상하노라면 웃음이 떠나지를 않는다. 현재는 모두 아름다운 추억일 수밖에 없다.
 
선임기자jkh4141@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