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만 울려도 겁나…너희들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휴대전화만 울려도 겁나…너희들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 승인 2012.06.15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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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진단: 극한 위기의 청소년-2> 줄지 않는 폭력, 늘어나는 자살

여전히 학벌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입시경쟁교육이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학교는 경쟁만을 강요하는 입시학원으로 전락해버렸다. 소모적이고 폭력적인 입시경쟁교육과 학벌사회는 비인간적이고 비교육적인 교육시스템을 만들어냈다. 비단 학업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교내 폭력과 왕따 문제 등도 학생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이 같은 학업 스트레스와 폭력 등의 문제는 청소년들의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학교현장의 총체적 위기’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위클리서울>은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 심층적으로 다뤄보기로 했다. 그 두 번째로,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입장과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보았다.





지난 2일 대구의 모 고등학교 1학년 K(16) 군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이 또 발생했다. 지난해 12월 중학교 2학년 A(당시 14세)군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진 뒤 대구에서만 6개월 사이에 자살한 중ㆍ고교생은 8명으로 늘었다.

경찰은 K군이 3개월 전쯤에 작성한 A4용지 3장짜리 유서 형식의 메모와 카카오톡 메시지에서 학교 폭력에 시달린 흔적을 찾아냈다. K군이 지난 2월 썼다가 찢어 놓은 메모에는 “전 더 이상 살기 힘들 것 같아요. 올해 초부터 어떤 녀석에게 조금만 잘못해도 맞고, 시키는 것은 다 하고, 매일 집까지 데려다 줬어요. 오늘도 (그 녀석이) 축구를 하자고 나오라고 했는데, 10분 늦었다고 때렸어요…” 라고 적혀 있었다.

경찰은 K군이 숨지기 전에 카카오톡으로 자신이 활동한 축구동우회 회원들에게 ‘목숨을 끊을지도 모른다’는 대화를 한 사실도 확인했다. 메시지는 “2년 정도 힘들었다. 3만원 뺏긴 적이 있다. 오늘 맞짱 뜨러 간다. 내가 죽든지 그 녀석이 죽든지…” 등의 내용이었다.

경찰은 K군이 지목한 A(15)군에 대해 조사한 결과 A군이 K군을 때린 적이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A군은 그 뒤 화해하고 친하게 지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축구 동우회 회원 20여명을 불러 K군에 대해 폭력 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고통 수준 심각

2011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고교생 35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그중 415명(11.65%)이 학교폭력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학교폭력에 의해 자살까지 고려해봤다는 응답도 적지 않게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학교폭력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학생들의 응답한 것을 분석한 결과, 자살생각이 ‘전혀 없다’(69.2%)를 제외하고 ‘1년에 1~2번’(14.7%), ‘한달에 1~2번’(4.6%), ‘1주일에 1~2번’(3.9%), ‘지속적으로(10회 이상)’(7.7%)로 나타났다.

성별로 보면, 남학생은 ‘전혀 없다’(74.2%)를 제외하고 자살생각을 최소 ‘1년에 1~2번 이상’(25.8%), 여학생은 ‘전혀 없다’(55.6%)를 제외하고 자살생각을 최소 1년에 ‘1~2번 이상’(44.4%) 한 것으로 나타나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고통의 정도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자살을 시도하는 이유로는 따돌림, 괴롭힘, 집단폭행, 1:1폭행, 금품갈취 등으로 나타났다. 자살에 이르기 전까지는 몇 가지 징후들이 있었다. 등교거부, 갑작스런 행동변화, 학교 내에서 이전생활패턴과는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것 등이다. 드문 사례지만 학부모,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수치심 때문에 주변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실제 학생들은 하나같이 “주변에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들이 있지만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기 십상”이라고 밝혔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1학년 김모 군은 “노골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학우들이 있긴 하다”며 “하지만 가해자나 피해자간 관계에 끼어들고자 하는 친구들은 없다”고 말했다. 김 군은 “괜히 남의 싸움에 끼어들어 낭패를 볼 수도 있지 않느냐”며 “다들 공부하느라 바빠서 일일이 개입하기 힘들다”고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장모 군은 “실제 다른 학교 친구들을 통해 학교폭력으로 자신의 학급 학우가 자살했다는 소식도 들은 적이 있다”며 “남의 나라 얘기 같아 이해가 안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가해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장 군은 “그런데 학교 분위기상 교사들이나 학우들이 학생들 간의 관계를 일일이 신경 쓰는 일은 드물다”며 “학교에서는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한다. 만약 피해자와 가해자간에 싸움이라도 나면, 학교에선 단순한 싸움으로 치부하고 벌점을 줄 뿐”이라고 밝혔다.    

고등학교 2학년 신모 군은 “개인적으로 1학년 때 2~3명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는데, 그저 꾹 참고 말았다. 2학년 올라가기 전에 그 친구들과 절대 같은 반이 되지 않기를 기도했다”며 “다행히 교실에서 마주치는 일이 없다보니, 요즘은 좀 살만하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살보다는 살인의 충동을 느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런 일이 발생하면 딱히 누구한테 털어놓을 수가 없다. 수치심도 수치심이지만,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지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라며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정의의 사도’가 나타나서 교통정리 해주길 바라지만, 그런 건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제는 쉬고 싶다” 투신자살

학교폭력으로 인한 잇따른 자살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가정을 둔 학부모나 학생 입장에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A군은 같은 학교 선배 5명으로부터 괴롭힘을 받았다. 지속적인 집단폭력(각목으로 10차례)과 금품갈취를 당했다. 차비와 신발을 뺏겨 맨발로 걸어서 집에 오는 날이 많았다. 선배들은 밤늦게 전화로 불러내고, 피해사실을 알리면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결국 A군은 지속적인 폭력과 금품갈취와 괴롭힘으로 “이제는 쉬고 싶다”는 메모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고등학교 1학년 B군은 같은 반 동급생으로부터 신체폭행, 금품갈취, 괴롭힘, 언어폭력, 위협 및 협박을 당해 결국 자신의 집 베란다에서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다.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채 뇌졸중으로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입원 중 사망했다. 유서엔 평소 가해학생들이 지속적으로 툭툭 치고 피해자의 손이나 옷에 침을 뱉었다고 적었다. 또한 피해자의 슬리퍼를 찢어버리고 체육복을 가위로 잘랐으며, 그밖에 다른 학생들을 동조하게 해 가해자를 확산시키는 행동을 해왔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C양은 같은 반 동급생 3명으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하던 중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평소 가해학생들은 C양과 친분이 있었으나, 남자친구 문제로 오해가 생겨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D군은 같은 반 동급생 6명 및 선배들로부터 3개월 동안 집단폭행 및 괴롭힘을 당한 후 유서를 쓰고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유서에는 “휴대전화만 울려도 겁나. 너희들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입학한 뒤 줄곧 학교폭력에 시달려, 정말 눈물이 나고 더 살고 싶은데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고 적혀있었다.

중학교 3학년인 E군은 일명 ‘일진’으로 구성된 남녀 학생 5명으로부터 폭행, 금품갈취, 괴롭힘을 당했다. 학교가 끝난 후 피해학생은 학원 갈 시간인 오후 6시쯤 집에서 시계를 걸어놓은 못에 평소 신고 다니던 운동화 끈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진회 소속 여학생이 피해학생을 좋아해 일진회로 주목을 받아 어울리게 되었는데, 3학년 초 여학생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좋아하는 감정이 없어지자 일진회로부터 낙인과 함께 지속적인 모멸을 당하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인 F군은 같은 반 친구로부터 6개월가량 신체폭행, 위협 및 협박, 괴롭힘, 성추행을 당했다. F군은 학교폭력으로 힘든 사실을 세상을 알리기 위해 학교 남자화장실 4층에서 투신했다. 중학교 1학년인 G양은 같은 반 친구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친구들의 따돌림으로 자신이 힘들어하는 문자를 보낸 사실이 다른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에 대한 수치심으로 유서를 남겨놓고 학교 화장실 4층에서 투신했다.    


“무관심한 방관자들 방어자로 바뀌어야”

학교폭력의 특징은 다름 아닌 반복적이고 장기간 지속적으로 폭력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로 인한 복합적 외상경험으로 복합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생, 자기인식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부정적 자아개념, 정체성 저하, 자기 존중감 저하, 부정적 자기지각, 무능력, 무기력, 죄책감, 수치심, 자기비판 등으로 결국 자살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자살을 생각했을 때 실행으로 옮기는 경우가 10.1%로 성인 0.2%보다 훨씬 높다. 갈등에 대한 대처방식이 미숙한데다 충동성이 강하며 사태에 대한 분석 능력이 부족해 자살 시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 폭력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전문적인 개입을 할 수 있는 역할이 필요하며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책 강화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황이다.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면 방관자적 태도를 지닌 학생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고유경 학부모상담실장은 “학생들은 노는 아이, 평범한 아이, 공부만 하는 아이, 일명 ‘찐따(뭔가 부족한 점이 있어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 등으로 구분해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며 “학생들이 친구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명 ‘일진’들의 힘과 질서에 복종하느라 친구들이 폭행당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내려 하지 않고 외면한다는 것이다.



과거 1970~80년대 교실에서는 학교 폭력이 일어나도 피해 학생을 감싸는 다수의 의리파 학생들이 있었지만, 지금의 교실은 친구가 폭행을 당하는데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이 때문에 학교 폭력에 대해 침묵하거나 방관하는 행동도 폭력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문재현 소장은 “괴롭힘의 주범이 되는 가해자와 가해자를 돕는 동조자,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 그리고 이 상황에 무관심하거나 즐기는 방관자가 이른바 학교 폭력의 구성요소”라고 했다. 그는 “학교 폭력 사건을 대할 때 ‘가해자와 피해자’ 두 요인만 떠올리지만, 이것만으로는 학교 폭력 자체를 뿌리 뽑기 어렵다”며 “방관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들을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방어자’로 바뀌게 하는 노력이 동반돼야 학교 폭력은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 소장은 “친구의 폭력에 무관심한 방관자가 방어자로 바뀔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학교 폭력을 미연에 방지하는 최고의 예방책”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자살사건의 경우 학생들에게 함구령을 내리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더욱 더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기에 피해자 가족의 상실과 분노의 감정이 정리되고 현실적인 대처가 가능하도록 돕는 것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전담기구 또는 전문외부기관이 신속하게 조사하고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자살로 인해 심리적 충격을 받을 수 있는 교사 및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상담도 필수사항이다.

오진석 기자 ojs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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