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진단: 극한 위기의 청소년들-3> 급증하는 가출청소년, 해법은 없나

여전히 학벌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입시경쟁교육이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학교는 경쟁만을 강요하는 입시학원으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다. 소모적이고 폭력적인 입시경쟁교육과 학벌사회는 비인간적이고 비교육적인 교육시스템을 양산해냈다. 비단 학업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교내 폭력과 왕따 문제 등도 학생들을 극한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같은 학업 스트레스와 폭력 등의 문제는 청소년들의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학교현장의 총체적 위기’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위클리서울>은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 심층적으로 다뤄보고 있다. 그 세 번째로, 급증하고 있는 가출청소년들 사례를 통해 사태를 진단해보았다.



피시방과 지하철역 전전긍긍

중·고교생 가출은 청소년 가출의 절대적 다수를 차지한다.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가 쉼터에 머무는 가출 청소년 68명을 조사한 결과 가정문제가 가출의 첫 번째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겨울 처음 가출했다는 경기도 부천의 김모(18) 군은 “부모님이 별거에 들어간 뒤 수년간 어머니를 보기 힘들었다”며 “아버지가 허구한 날 술을 마시고 집안을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 바람에 집을 나가게 됐다”고 했다.

가출 당시 김 군은 주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과 담배에 의지해 살았다. 김 군은 “친구들 중에는 가출하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고, 그중에서도 돈이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며 “이 때문에 돈이 떨어져도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3개월가량 이어진 가출 기간, 김 군은 피시방을 자신의 주요 은신처로 삼았다. 한 달 넘게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쪽잠을 잤다. 김 군은 “아르바이트는 야간에 했고, 낮 시간엔 구석 자리에 앉아 잠을 청했다”며 “나중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지하철역과 친구 집을 전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 집은 주로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날에 맞춰 가야했다”며 “친구 집에 종종 들리다보니 때론 집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얘기했다.



김 군이 가출한 때는 때마침 겨울방학 기간이어서 학교 측에서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김 군은 “방학동안 담임선생님이 수소문하고 다녔다는 얘기는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거린다”며 “휴대폰도 없어 집에서나 학교에서 경찰에 신고해도 위치추적조차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가출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김 군은 다행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상태다. 김 군의 가출 소식을 들은 어머니도 집으로 돌아왔다. 김 군은 “어머니가 돌아오신 이후 아버지가 술도 많이 드시지 않고 때리지도 않는다”며 “학교생활도 그럭저럭 만족하는 편이다. 예전부터 축구를 좋아해서 학교에서는 축구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가출을 시도한 은평구의 심모(19) 군은 “빚에 시달리며 자주 술을 마시는 부모님이 상습적으로 때려서 가출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심 군은 지금까지 매년 가출을 시도했다가 경찰에 발각됐고 그때마다 지구대로 찾아온 부모님을 맞아야 했다.

심 군은 “부모님도 절 찾아낸 그 당시에만 잘해줄 뿐”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가출했다고 다시 야단 맞는다”고 말했다. 밥 먹듯 하던 가출을 지난해를 끝으로 마감했다는 심 군은 “가출해도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친구들도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나도 많이 커서 부모님이 그렇게 무섭지 않다. 폭력을 휘두르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밤마다 전쟁을 치렀고 적응이 된 상태”라고 했다. 부모님의 햇볕처럼 따사로운 손길만이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심 군의 주장. 그는 “저도 인간이라 방문을 걸어 잠가도 불편하긴 매 한가지”라며 “고등학교 졸업하면 곧바로 취직해서 돈을 벌고 월세 방이라도 알아볼 것”이라고 했다.

급기야 초등학생까지…

가출은 중?고교생에서 초등학생으로까지 점차 확대돼가는 추세여서 충격을 주고 있다. 경기 고양시 원당동에 살던 정훈(12. 가명)과 성호(10. 가명)는 상습 가출 초등학생이다. 집을 나와 인근인 서울 은평구 연신내 쪽에서 전전한 탓에 은평경찰서 경찰관들 사이에서 골칫덩어리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경쟁하듯 가출해 경찰서를 며칠간 발칵 뒤집어 놓은 뒤에야 겨우 귀가하곤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가출은 현재 진행형이다. 정훈이는 올해 3월에도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 한 벤치에서 자고 있다가 순찰 중인 경찰관에게 발각돼 지구대로 끌려 갔다. 지하철역에서만 벌써 여러 차례 노숙하다 붙잡혀 왔다는 정훈이는 잡힐 때마다 “집에 아무도 없어 그냥 나왔다”며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다. 배가 고프면 대형마트 시식코너에서 끼니를 때우고 잠이 오면 지하철역 안에서 잤다. 가출은 12살 소년의 일상이었다.

성호의 일과도 정훈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성호는 올해 초 한 공터에서 추위를 피하려고 불을 피웠다가 방화범으로 몰려 지구대에 잡혀 가기도 했다. 보다 못한 성호 아버지는 아들을 강제로 휴학시킨 뒤 강원도로 이사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러나 성호를 찾아야 하는 물리적 거리만 늘어났다.

인터넷 등 통신환경 변화도 한몫

전문가들은 가족 간의 소통 부재를 근본적인 요인으로 꼽으면서도 아이들의 정신적 성숙이 점점 빨라지는데다 인터넷 등 통신환경의 변화가 저연령 가출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 ‘가출’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 보면 수백 개가 넘는 카페가 검색된다. 해당 카페에는 가출 희망자를 찾는 글에서부터 집을 나오면 어디서 어떻게 지내면 되는지, 적은 돈으로 어떻게 하면 오래 버틸 수 있는지 등의 이른바 ‘가출 노하우’가 즐비하다.

지난 4월에도 한 가출 카페에 한 초등학생이 “가출을 준비하고 있다. 손에는 현금 15만원 정도 쥐고 있다. 어디로 가면 이 돈으로 먹고 잘 수 있을까”라는 글을 올리자 답글이 순식간에 줄을 이었다. “PC방 괜찮지만 의외로 돈이 금방 떨어진다”, “찜질방 가서 어른들 옆에 빌붙어 버티면 된다”는 등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송원영 건양대 심리상담치료학과 교수는 “인터넷의 발달로 초등학생이 과거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접하기 때문에 그만큼 사춘기도 빨리 찾아와 내외적인 갈등으로 가출도 빨라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송 교수는 “가출의 의미는 ‘너무 힘들다, 나 좀 봐 달라’는 표현의 일종”이라며 “상습가출로 이어지기 전에 다그치지 말고 이야기를 경청하며 고민을 들어줘야한다”고 했다.

가출 여학생 성매매 수렁으로

한편 가출한 10대 여성 청소년들이 겪는 가장 힘든 점은 숙식 해결을 위한 돈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5명 중 1명 정도는 성매매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서울·경기지역의 여성쉼터 25곳에 거주하고 있는 10대 가출 여성청소년 17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가출 후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69.8%가 숙식 해결을 위해 돈이 필요했다고 답했다. 이들은 가출기간 생활비 마련을 위해 갈취(26.3%), 성매매(17.5%), 구걸(13.8%), 절도(10.6%) 등 범죄를 저지르거나 위기 상황에 노출돼 있었다.

가출 후 한 달 동안 사용한 평균 생활비는 5만원 이하가 44.8%로 가장 많았다. 특히 ‘성매매 경험이 있다’고 답한 10대 여성 가출자는 25.1%에 달했다. 가출 후 돈을 벌어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54.4%로 절반을 넘었고 이들의 55.5%는 ‘성산업 관련 일자리와 성매매’를 통해 돈을 번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성산업 관련 일자리와 성매매’ 유형은 조건만남(25.5%), 노래방(10.6%), 보도방(9.6%), 단란주점·룸살롱(3.2%), 키스방(3.2%), 성매매 집결지(2.1%), 티켓다방(1.1%) 순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잘 곳과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 돈벌이 수단으로 조건만남, 룸살롱, 노래방 도우미 등 성산업 관련 업종과 성매매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최초로 성매매를 한 시기는 15∼18세가 88.1%로 대부분이고 최초 성매매 유형은 조건만남(83.7%)이 가장 많았다. 성매매를 하게 된 계기(중복응답)는 ‘잘 곳이 없어서’(44.2%), ‘배가 고파서’(30.2%), ‘강요에 의해’(30.2%),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30.2%), ‘다른 일자리가 없어서’(25.6%) 등의 순이다.

가족관계와 관련 가출 10대 여성들은 대부분 가정형편이 어렵고(58.8%), 부모 간 불화가 있으며(52.7%), 보호자가 자신이 가출하지 않도록 설득하지 않는 편(46.2%)이라고 답했다. 가장 많이 겪는 부모와의 문제는 부모 간 불화와 함께 부모의 폭력과 학대도 38.5%나 됐다. 이들 10대 가출 여성은 ‘이런 문제가 개선된다면 집으로 돌아갈 의사가 있는지’에 대해 44.6%는 “돌아갈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조현옥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설문조사 결과는 가출 10대 여성들이 가정폭력, 학대, 성폭력, 성매매 등 폭력의 희생양인 동시에 범죄와 폭력을 재생산하는 주체가 되는 ‘폭력의 악순환’을 보여준다”며 “가출 10대 여성의 위기상황이 악화되고 재생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폭력 피해를 치유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전문화된 지원정책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진석 기자 ojs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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