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내 선배의 결혼식




청첩장을 받았다. 친구 편에 들려 내게 도착한 청첩장. 나는 그 청첩장을 받아들고, 청첩장 위로 인쇄된 익숙한 신랑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낯설었다.

드물긴 했지만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을 따라 잘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에도 종종. 뭐 어찌 어찌 나랑 이렇고 저런 관계에 있는 분의 결혼식이라고 설명을 듣긴 했지만, 그런 것까지 기억하고 있진 않다. 가장 최근엔(그래봐야 꽤 오래 전이지만) 나이 차이 몇 나지 않는 친척 언니가 결혼했을 때도 하객으로 자리했었다.

지금까지 내가 가봤던 결혼식이라면 어머니 아버지의 딸로서 초대된 결혼식들뿐이었다. 부모님 없이 결혼식에 참석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 손으로 축의금 한번 내보지 않았던 나다. 그냥 부모님 곁에 앉아 있다가, 또 부모님과 인사 나누시는 이렇고 저런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인사하고, 식 중에 박수 치고 식사나 하면 그날의 행사는 끝인, 뭐 그런 일들. 친척도 많은 편이 아닌 나는, 결혼식에 간다는 것 자체가 그다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고, 그 중에서 신랑이나 신부를 ‘알고 있는’ 경우도, 거의 드물었다.

그랬기에, 나는 내 손 위에 올라앉은 청첩장으로부터 영 이상한 감상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내 평생 오롯하게 ‘나’에게 발송된 청첩장은 처음이었다. ‘부모님(과 그의 딸)’이 아닌 ‘나’를 초대한다는 청첩장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내 대학 선배의 이름. 나는 그의 후배로서, 그의 결혼식에 초대 된 것이다. 뭘 입어야 하는지, 축의금은 얼마나 해야 하는 건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청첩장을 전달해준 친구 역시 다를 것이 없었다. 나나 그 친구나 부모님을 대동하지 않고 결혼식에 가는 것은 처음인 병아리들이었다. 인터넷에 검색도 하고, 여기저기 자문을 구했다. 나는 가난한 학생이고 하니, 3만원을 하기로 했다. 친한 사이라면 5만원은 하는 것이라 했지만, 선배도 나같이 새파랗게 어린(?) 후배가 피 같은 용돈을 쪼갠 것을 두고 박하다 여기진 않을 거다.

일러줬던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나는 결혼식 당일까지 뭘 입어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이 낯선 결혼식을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요즘에는 그런 의식이 많이 없어졌다곤 하지만, 결혼식에 흰색이나 검은색 옷은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가진 단정한 옷이랄 것들은 죄 올 블랙 아니면 올 화이트였다. 아무래도 올 화이트(그것도 레이스로 된 흰 원피스)보다는 검은 것이 디자인도 무난하고 하여 집어 들었는데, 그래도 결혼식에 죄 검은색이면 너무 칙칙한가 하여 흰색 셔츠를 하나 걸쳤다.

학교 앞에서 대절된 버스를 탔더니 동창회가 따로 없었다. 휴학한 동안 못 보던 동기들과 선배들이 우글우글했다. 부모님 없이는 결혼식이 처음이라 떨린다는 동기애들 몇몇을 보고 선배들이 귀엽다고 웃었다.

결혼식장에 도착했더니 신랑 될 선배 오빠가 말쑥하게 입고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굳은 얼굴을 하고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굳은 얼굴에 걸린 미소가 국에 뜬 기름처럼 어울려 녹질 못하고 동동 떠다녔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성년이 된 후에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먼저 결혼을 하는 사람이다. 친척이 결혼을 하는 것과는 또 달리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속한 집단 중 누군가가 결혼을 한다는 건, 마치 내가 결혼하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이 느껴지게 한다.

상당히 오랜 기간 준비한 결혼식이었다. 내가 입학할 무렵에도 이미 고교 때부터 쭉 교제해온 여자 친구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선배가 로스쿨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시작하더니 이렇게 올해 7월, 10년 교제의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신부되는 언니도 전에 종종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그다지 귀여울 것도 없는 선배를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면서, ‘우리 OO가 참 귀엽지?’ 말하는 언니의 참한 얼굴이 퍽 인상 깊었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예쁜 모습은 처음이다. 흰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주례를 맡은 분은 로스쿨의 교수님이셨다. 마치 강의하듯 하객들을 둘러보시는 모습이 너무나 교수님다우셔서 웃음이 삐져나왔다. 사회자가 교수님의 약력을 소개하는데, 끝날 듯 끝날 듯 끝이 나질 않았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교수님의 약력에, 여기저기서 낮게 “쩐다”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참을 우루루 무슨 장, 무슨 직이 쏟아지고 나서야, 교수님께서 입을 떼셨다. 가벼운 축하와 덕담을 몇 마디 하시고는, 곧이어, 신랑 신부의 약력을 읊기 시작하셨다. 신랑 신부 부모님들의 약력도 포함해서 말이다. 여기 이OO군의 아버지는 현재 ……, 어머니는 ……, 그 슬하에서 이OO군은 …… 법과대학을 과 수석으로 졸업 …… 로스쿨에 입학…… 장래가 촉망되는……. 신랑도 신부도, 신랑신부 부모님들도, 주례를 보시는 교수님까지도 속히 ‘쩔어주는 스펙’이었다. 하지만 역시 주례의 절반 이상이 ‘스펙’들이 차지할 정도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약력들에 다시금 하객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쩐다”, 웅성웅성. 신부측 하객들은 선배의 약력을 소개할 때 유난히 웅성거렸다. 신랑이 괜찮다는 뜻일까. 모르긴 몰라도 긍정정인 반응임에는 틀림없다.



내가 생각해도 선배의 스펙은 참 쩐다. 지금 소개된 것 말고도 더 많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선배와 함께 학교를 다닐 때, 학점이나 어학, 기타 자격증 등등, 여러모로 준비되어 있는 선배의 모습이 존경스러울 정도였으니까. 아마 선배는 취업을 준비했더라도 충분히 잘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준비한 것도 많고, 선배 자체도 성실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선배는 집안도 꽤 부유한 편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줄줄 읊는 것을 듣고, 또 그 때문에 술렁거리는 하객들을 보니 새삼 실감이 났다. 주례시간은 스펙들과, 웅성거림으로 결혼식장을 가득 메웠다. 그 모습이 결혼식과는 거리가 멀어, 오히려 빨간 카펫과, 그 위로 다소곳한 순백의 신부가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흡사 명사의 특강이 있는 강의실 같았다.

결혼식은 두 사람의 혼인을 사회에 알리는 ‘식’이다. 그렇기에 사회적 시선을 무시할 수는 없다. 어떠한 신랑, 신부를 얻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식’의 목적 중 하나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전에 결혼이란, 두 사람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혼자였다가 이제는 둘이 함께 하게 되었음을 알리고 이를 인정받으며 또한 축하와 격려를 받는 자리가 바로 결혼식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랑이라는 ‘사람’과 신부라는 ‘사람’이, 이제 부부의 인연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바로 그 점이다. 결혼은 현실이라며, 자로 재듯 스펙들을 따져보고 나에게 걸 맞는지 아닌지를 감별해내서 합격시키거나 탈락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1등 신랑감, 1등 신붓감이니 뭐니 해서 의사 판검사 변호사 공무원 선생님 뭐 따지는 것도 많다. 외모는 몇 급인지, 직업은 몇 급인지, 집안은 몇 급인지…. 그렇게 합격점을 다 받고 나서야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있다. 이게 흔히 말하는 ‘현실’의 결혼이다.

결혼의 현실이 이래서일까? 결혼식에서도 신랑이 뭐하는 사람인지, 신부가 뭐하는 사람인지가 관심사로 대두되는 모양이다. 덩달아 어떤 스펙의 사회자님 주례사님을 모셨는지 귀가 쫑긋쫑긋하다.

현실이라는 것이, 녹록하지 않다는 건, 사실 아직 나 같은 애송이가 채 느껴보지 못한 그 어떤 것이다. 그저 계속 들어왔기에 현실은 무서운 것이겠거니 어렴풋 느끼고 있을 뿐이다. ‘아직 학생’이라는 울타리로 가호를 받고 있는 우리들은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선배들의 치열한 뒷모습이나 ~카더라 하는 이야기들로 막연하게 저 너머에는 뭔가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소름이나 오소소 돋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두들 ‘현실’이라며 스펙만을 궁금해 하는 이 결혼식이 못내 인정 없다고 느끼게 되고 만다. 두 사람이 주인공인 이 예식장에, 지금 이 순간, 어찌 정작 두 사람은 스펙에 밀려 외면 받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가정이라는 것은, 흡사 외발다리로 서로서로를 의지해 서있는 사람들과 같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나 동생, 네 개의 다리로 서로를 버팀목삼아 이렇게 화목하게 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와 동생에게, 우리 역시 버팀목이라는 것을 언제나 상기시켜 주셨다. 부모님의 무한한 희생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아이들이지만, 가정을 유지시키는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언제나 존중받아왔다. 자식들에게 부모가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자식들이 없이는 부모님도 무너지고 만다. 구성원이 하나하나 자신의 역할을 알고, 해내지 않으면 화목한 가정이란 있을 수가 없는 거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는 것도 가정을 이루는 일이다. 그들은 남편과 부인이라는 역할, 후에는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스펙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집에 돈이 많거나 아버지의 직업이 훌륭하거나 하는 것, 어머니가 얼마나 아름답고 또 얼마나 안정된 직장을 가졌느냐 하는 것이 곧 행복의 척도가 아니듯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장래의 아버지, 어머니가 될 상대방이 과연 내가 바라는 행복을 줄 수 있을 만큼 ‘화목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는 재목인지를 따져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배우자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을까? 때로는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고 배우자를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일까? 이 남자는 과연 아이를 존중해 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될 만한 사람인가? 이 여자는 과연 가정을 위해 현명한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어머니가 될 수 있을 사람인가? 이 사람은 행복한 가정의 배우자, 부모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만한 인재인가? 이런 질문들이 이 사람이 한 달에 얼마를 벌어다 줄 수 있을까? 얼마나 큰 집에 살 수 있게 해줄까? 하는 질문보다, 더욱 ‘현실’적인 것이 아닐까. 결혼의 목적에 비추어 본다면 말이다. 결혼이란 건, ‘더 많이 벌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

어쨌거나, 내 선배의 결혼 생활에는 행복만이 가득하길!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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