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향기 가득한, 아로마 가득한…커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아름답고 향기 가득한, 아로마 가득한…커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 승인 2012.08.1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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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커피






#1.

일어난 이후로 아직 커피를 한 잔도 못 마셨더니 정신이 맹한 것이 어째 한 꺼풀 덮어쓴 것처럼 감각이 둔하다. 커피가 일상이 된지도 어느새 꽤 되었다. 하루에 한두 잔씩은 끼니처럼 챙겨 마시다보니 어쩌다 빼먹는 날이면 이렇게 종일 정신이 덜 깬 기분이 되고 만다. 마치 당연한 듯 몸이 커피의 각성을 기다리고 있는 게다. 이정도 되면 습관이라고 말하기도 겸연쩍다. 그저 일상이다. 일어나서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머리칼의 물기를 털어내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간단하게 화장을 하고 하는 것처럼.

원두를 갈아 바스켓에 사뿐히 담고 신경 써서 물 양을 맞춰 채운다. 모카포트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두는 동안 베이글이나 식빵 따위를 데우고, 우유나 물도 이때쯤 같이 데워놓는 편이 좋다. 차갑게 마실 요량이면 얼음을 꺼내둔다. 얼음틀에서 얼음을 꺼내는 것도 미리 하지 않으면 제법 손이 가는 일이다. 그렇게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식사는 주로 커피랑 함께 먹는 간단한 것들. 냉장고가 풍성한 날이면 샌드위치를 만들고, 그렇지 않으면 식빵에 딸기잼,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커피 한 잔을 비워내고 나서야 찬물로도 깨지 않던 뇌가 드디어 쁘즈즈 하고 기지개를 켠다. 실상 변한 것은 없지만 시야
도 한층 더 개운해진 기분이다. 커피가 한 잔도 없었던 오늘은, 그런 상쾌한 아침을 그리면서 괜히 입맛을 다신다. 원두가 다 떨어졌다. 한 톨도 남아있지 않다. 주문한 원두는 아마 빨라도 주말, 어쩌면 다음 주 초나 되어야 내 손에 들어올 것이다. 중독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한 일이라고 해야 하는지, 중독된 사람치고는 그다지 초조하지도 않고 막 안달나지도 않는다. 다만 이 뻑적지근한 두뇌를 개운하게 만들어줄 그 향이 조금 그리울 뿐이다.

#2.
내가 처음으로 커피를 ‘공식적’으로 마실 수 있게 된 건 아마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그럴 거다. 그 전부터도 묘한 색과 향의 음료에 줄곧 탐을 내곤 했지만 엄마는 커피는 ‘어른이나 마시는 것’이라고 못을 박아뒀었다. 아마 어린애가 마시기엔 카페인이 든 음료가 썩 좋지 못한 때문이었을 거다. 카페인의 음용 그 자체도 어린이에겐 건강상 좋지 못할 테고, 그걸 마시고 잠이라도 설치는 날에는 이래저래 어머니도 아이도 다 피곤해졌을 테니, 현명한 처사였다.

하지만 먹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나는 더더욱 안달이 났다. 커피 두 스푼 크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 커피 알갱이와 설탕과 크림이 녹아들어 갈색과 베이지색의 중간쯤 나는 부드러운 색으로 섞여 드는 모습은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향은 또 얼마나 좋은가. 그 부드러운 색에 걸맞은 향이 코를 간지럽게 하면 커피를 마시는 어머니를 배고픈 강아지 같은 눈을 하고 쳐다보곤 했었다. 최대한 안쓰러운 표정으로 간절하게. 어떻게든 한 티스푼이라도 얻어 마셔보려 말이다. 그럼 또 어머니는 ‘너는 어려서 못 마셔, 나중에 크면 줄게’ 하셨을 테고. 나는 그런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면서 얼굴에 단호함이 서려있는지 재빠르게 읽어낸다. 오늘은 어쩐지 말랑말랑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면 강아지 눈 작전은 계속 된다. 그럼 한입만이다 하고 내민 커피 잔은 어린 나에게 얼마나 훈장과도 같은 것이었는지! 손잡이의 금테도, 커피 잔의 얇은 입술도, 그리고 그 안의 갈색 부드러운 액체도. 달콤하고 약간은 쌉싸름한 그 맛, 향기. 어린 나에게도 허락되던 커피 맛 아이스크림이랑은 다른 그 따뜻함. 진짜의 냄새.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래봐야 인스턴트커피일 뿐이었지만, 그 당시 내게는 어른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한모금의 황홀이었다. 요즘의 커피들이 아무리 고급딱지를 걸고 나선다 해도 그때의 한 모금 보다 더 감동스럽긴 힘들 거다. 밤샘 시험 준비를 핑계로 조금씩 허락된 이후부터는 그 감동도 조금씩 사그라들어 버렸다.

그렇게 내게도 커피믹스의 시대가 왔다. 어머니가 마트에서 100개들이 커피믹스(스틱형)를 사오시는 날엔, 그 중 절반은 내 것이었다. 11시, 혹은 더 늦게까지 이어지는 야간 자율학습 덕분에 몇 잔이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자습실의 아이들은 저마다 사물함에 커피믹스를 한 움큼씩 저장해두고 있었다. 분명 맛있긴 했지만, 뭐라고 할까, 그건 마치 게임 속 힐링포션같은 것이었다. 빨간 물약. 떨어져가는 HP를 보충하기 위해서 마셔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책상머리에서 곯아떨어지기 일쑤였으니까. 그때쯤엔 맛보다는, 잠들지 않기 위해 마시는 커피였다. 맛이 대수가 아니었다. 종이컵과 믹스커피를 들고 정수기로 모여드는 얼굴들은 다들 졸음과의 싸움으로 피곤한 몰골이었다. 아이들이 전혀 아이답지 못하게 서로 서로를 경쟁상대로 눈 흘기면서, 마치 ‘어른’처럼 싸우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어른들도, ‘어른들의 음료’를 아이들에게 허락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어쨌거나 그때 커피믹스는 정말 실컷 마셨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만해도 원두커피가 지금처럼 일반화 되어있지 않았다. 카페도 이렇게 많지 않았고, 가격도 내겐 결코 싸지 않았다. 고등학생인 내가 즐겨 갈만큼 한가하지도 못했고 말이다. 카페엔 고작해야 파르페나 팥빙수를 먹으러 가는 것이 전부였다. 당시에 내게 커피는 곧 커피믹스였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카페라는 신문물(?)을 접하게 되었다. 온갖 달큰한 커피들의 세계. 캐러멜 시럽, 초코시럽, 달콤한 휘핑크림 그리고 그 위에 화룡점정으로 오르는 토핑까지. 에스프레소는커녕 아메리카노도 쓰기만 했던 나였지만 그랬던 내게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을 만큼 달콤하고 또 달콤한 커피의 세계가 펼쳐졌다. 나의 힐링포션, 믹스커피와 사이가 소원해진 것도 아마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3.
Freshman을 졸업하면서, 내 입맛도 점점 신입생으로부터 멀어져갔고, 온갖 시럽 크림들로 뒤덮인 달콤한 커피보다, 아메리카노가 더 향긋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아메리카노도 마시고 마시다보니 점점 더 진한 것이 좋아져서 어느새 에스프레소도 가끔 마실 수 있는 경지에 올라있었다.

나는 점점 더 커피가 좋아졌다. 카페도 좋았다. 철저한 개인주의가 서로 같은 공간에 포개져 있음에도 분위기가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 특유의 분위기가 주는 에너지와, 그것이 만드는 효율도 좋았다. 느긋함과 예리함이 공존하는 것이 좋았다. 그 어울리지 않을 듯 서로 부드러이 섞여드는 공기는, 마치 어릴 적 감탄했던 커피 잔 안의 짙은 갈색과 흰 크림의 소용돌이처럼, 결국 부드러운 색과 향으로 공간을 채웠다.

자취집 근처의 자그마한 개인카페의 단골이 되면서 내 얇은 주머니도 적지 않게 깨졌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취미였다. 거기서 공부도 하고 과제도 하고 책도 읽고 수다도 떨고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커피만 음미하기도 하면서, 나는 카페와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하루에 한두잔씩 마신 커피가 점차 습관에서 일상이 되어간 것도 이와 함께였다. 당연하게 나의 하루는 커피의 자리를 비워두었고, 너무 당연하게도 커피가 없는 하루는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는 휴학을 했고, 고향으로 잠시 내려오게 되었다. 고향에는 카페열풍에도 불구하고 카페의 수가 여전히 많진 않았다. 문화가 전파되는 데는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 시간차가 조금 있다더니, 한 블록 건너 한 블록 카페가 우글우글하던 곳에서 지내다가 커피 한잔 마시려면 한참을 걸어 나가야 하는 이곳에 오고 나니 처음엔 적응이 조금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대개의 가게들은 저녁 9,10시면 완전히 영업을 종료했다. 내 동선에 맞춰서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갈 수도 없고 설령 멀리까지 찾아간다 해도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느긋함, 여유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이것뿐이 아니었다. 아직 우리 동네에는 카페의 테이블 순환이 너무 빨랐다. 몇 시간이고 앉아 있는 건 약간 민폐처럼 느껴졌다.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개 약속장소로 사람을 기다리거나, 혹은 잠시 수다를 떨며 티타임을 가지거나 했다. 이런 분위기니 그 거리를 걸어간 보람을 느끼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지 않은가. 어느 날 밤에 갑작스럽게 원두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은 거다. 아직 9시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 나간다 해도 커피를 마실 수 있을지 확신하기가 힘들었다. 고민하는 동안 10시가 되어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찬장을 뒤져 인스턴트커피만으로 아메리카노 흉내를 내어보았는데, 도저히 그 맛이 나지 않았다. 그때의 상실감이란!

그날부로 인터넷을 뒤져 내 첫 모카포트(가정에서 에스프레소를 간편하게 추출할 수 있는 포트)를 구매했다. 아주 저렴한 것이었다. 핸드밀과 모카포트 거품기까지 해서 특가로 샀었다. 한 몇 만원 들었던 것 같다. 커피는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도서관에 가는 길에 텀블러에 가져가는 커피 한잔. 커피가 있는 곳이면 어설프게나마 카페가 되었다. 조금 더 소박해지긴 했지만, 커피는 그 전보다 더 내게 가까운 것이 되었다. 구입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내 손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으로.

#4.
그 후로 벌써 1년이 넘었다. 정확하진 않아도 아마 1년하고도 반년이 더 지났을 거다. 내 커피도 사소한 변화가 있었다. 초보자용 값싼 모카포트에서 조금 더 견고한 제품으로 갈아탔다가 지금은 모카포트의 꽃이라는 브리카(압력추가 달려있어서 일반 모카포트보다 더 풍부한 추출이 가능함)를 쓰고 있다. 핸드드립도 조금 배워보고, 원두 종류, 물의 온도, 원두가 얼마나 곱게 갈아졌는가 하는 것에 따라 맛이 어떻게 다른지도 어렴풋 느껴가고 있다. 근래에는 더치커피를 접하고 혼자 기구를 만들어 보기도 하면서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무언가가 일상이 된다는 것은, 내 인생에 어떤 새로운 역사가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새로운 세상의 홀씨가 날아와 싹을 틔우고, 뿌리와 줄기를 뻗어내고, 끝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렇게 나를 채색하는 그런 것이라고 말이다.

아름드리나무의 나무껍질을 쓰다듬으며 그의 역사를 떠올리는 것처럼, 나는 이 짧고도 오래된 커피라는 습관 앞에, 그와 흡사한 감성을 느낀다. 커피가 내 일상이 된 것처럼, 다른 어떤 것들도 새로이 내 일상으로 자리 잡고, 또 발전하고 하는 동안 내 삶은 그들로 더욱 풍성한 향기를 뿜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커피가 없으면 허전한 이 기분조차 사랑한다. 뱃속에서 지금까지 마신 커피들이 향을 내는 것만 같다. 내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커피와 같은 홀씨들이 더 많이 날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우연한 기회이든 어쩌면 필연으로 통한 것이든, 어떤 식으로라도 날 찾아주었으면 한다. 열린 마음으로 기꺼이 그들이 내 안에 뿌리내리게끔 할 것이다. 진가를 알아보고 성심성의껏, 그들을 돌보리라. 나는 다양한 종류로 만개한 꽃다발처럼 아름답고 향기가득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마치, 여러 가지가 부드럽게 섞여들어 아로마 가득한, 커피 같은 사람이.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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