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모정





25세의 한 여성이 세상을 감동시켰다. 아니, 여성이라기보다는 ‘어머니’, 25세의 어머니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알맞을 것이다. 스물한 살에 결혼 한 그녀는 2년 만에 찾아온 임신소식을 듣고 몹시 기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부부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뱃속 아이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부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는 구개파열로 입천장이 갈라져 입을 다물지 못하고, 또한 안구가 형성되지 않아 아예 앞을 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아기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살기위해, 태어난 지 4일 만에 큰 수술을 받아야만 했던 이 아이는, 간절한 부모의 기도에 하늘이 도우신 덕분인지 간신히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두덩이 비어있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이의 어머니에겐, 수술 보다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 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을 견뎌야 했다. 심지어는 왜 아이를 유산하지 않았냐며 끔찍하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의 어머니는, 유튜브를 통해 아들의 사진을 공개하며, 아들을 낙태하지 않은 건 참 잘한 일이며 내게 기적이다. 이 아이는 앞으로 더 예쁘고 건강해질 것이라고 당당히 밝혔다고 한다. 아이의 장애, 그리고 그 장애를 대하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모정으로 이겨낸 그녀의 모습은 7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야말로 위대한 사랑의 힘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 부모의 자식사랑이라고들 한다. 그중에서도 자주 이야기 되는 것이 바로 모정이다. 당신 몸으로 열 달을 배불러 낳은 자식이니 그 정이 어찌 비교가 가능하겠는가.

모정의 위대함이라. 차에 깔린 자신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차를 번쩍 드는 기적을 가능케 하는 그 두 글자가 ‘모정’이다. 신이 모든 사람을 돌볼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든 것이라는 말도 있을 만큼,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을 감내하고, 바라는 바 없이 사랑을 베풀며, 그들의 앞날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그런 존재다.

비단 인간뿐만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들도 모정이 있어, 죽은 새끼 돌고래를 업고 돌아가는 어미 돌고래의 사진이나, 자신의 자식을 추모하는 어미 코끼리의 모습 등이 미디어를 타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곤 했었다. 어머니는 위대하다. 여자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위대한 사랑, 모정이다.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어머니.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어머니. 모정은 참으로 위대하다. 하지만 그 모정이 지나쳤음일까. ‘잘못된 모정’이라는 이름표를 단 사건들이 속속 헤드라인에 등장하고 있다.

중국 성현인 맹자가 있기까지 ‘맹모삼천지교’가 있었고, 과거를 아홉 번 급제한 율곡이이가 있기까지 신사임당의 노력이 있었다. 그녀들이 ‘좋은 어머니’로 기억되는 것은, 어쩌면 그녀들의 자식들이 그녀들의 바람대로, ‘잘’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들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어미들의 마음이야 다들 맹모이고 신사임당이겠지만, 세상에 수많은 어머니들 중에 진짜 맹모, 신사임당으로 불리는 어머니들이야 몇이나 되겠는가. 사회는 다양화 되고 있는데, 성공의 문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나아진 바도 없이 여전히, 줄곧, 계속, 좁아터지고 있다.

나아갈 길이 이다지도 많은데, 오로지 공부해서 출세하는 길만이 성공으로 치부되니, 아무리 사회가 다양화 된다 한들, 외려 성공문은 상대적으로 더 좁아지기만 할 뿐이다. 교육열은 끝간 줄 모르고 치닫고, 대학문턱은 배움의 연장선이 아니라 성공을 향한 1차 (아니 어쩌면 벌써 몇 차례나 관문을 통과한 걸지도 모른다)로 관문 정도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등록금이 수백이든 수천이든, 그게 잘못된 것 같긴 하지만 어쨌거나 길이 그밖에 없다면 도리가 없지 않은가. 내 자식만큼은 그 힘든 성공문 비집고 나가길 바라는 게, 바늘구멍 통과한 낙타가 바로 내 자식이길 바라는 것이, 그게 바로 어미들 마음이니까. 사회가 잘못 되었든, 우리네 인식이 잘 못되었든, 일단은 내 자식이 도태되질 않도록 ‘나는 맹모다.’, ‘나는 신사임당이다’ 몇 번이고 독해지고 독해질 뿐인 게다.

자식 잘 되길 바라는 그 마음 하나로, 자식들 학원비니 과외비니 가뜩이나 힘든 가정경제 위에 교육비라는 무시무시한 짐이 보태져도 이 악물고 버텨내고, 간혹은 고향땅 떠나 말 설고 음식 설은 이국땅에서 외톨이로 보내야 한 대도, 눈매 끝에 독기 빛내며 악착스럽게 참아내는 우리네 어머니들. 그냥 ‘이사’ 정도야 세 번 아니라 수십 수백 번이라도 해낼 준비가 되어있는 차원이 다른 ‘맹모’ 후보들이다. 그녀들 바람대로 자식이 ‘맹자’가 되어주기만 한다면야, 당장에 맹모 할머니의 할머니조차 못 할 일도 거침없이 해낼 각오가 되어있는 분들이 아닌가.

아이를 위해서 나를 희생할 수 있는 모정, 그 위대한 사랑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일종의 숭고한 무엇이다.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심지어 범법행위조차 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있다는 게, 그것이 문제다.

잘못된 모정. 그릇된 모정. 빗나간 모정. 헤드라인을 장식한 온갖 ‘모정’들. 아들이 문제를 일으켜 해고된 직장에 방화를 한 어머니, 교육청 전산망을 해킹해 자식들 성적을 고친 어머니. 아들의 임용시험을 위해서 시험문제를 유출한 교감, 같은 학교 아들의 내신 성적을 위해 시험지 빼돌려 점수를 조작한 교사, 1000만 원을 주고 아들의 수능대리시험을 부탁한 어머니, 44억을 주면 의대에 합격시켜준다는 사기에 당한 어머니, 아들의 군복무를 막기 위한 원정출산, 무리한 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성매매를 해왔던 어머니…. 수도 없이 많은 사건들이 ‘모정’이란 이름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화제의 중심에 있는 사건이 성추행 고대 의대생 어머니의 피해자 명예훼손 사건이다. 서모(52) 씨는 성추행 사건으로 실형이 확정된 아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피해 여학생이 인격 장애적 성향이라는 허위 사실이 담긴 문서를 꾸며 배포했고,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되어 모자에게 각각 징역 1년이 선고되었다. 이 형이 확정되면 아들은 성추행 사건 재판으로 확정된 징역 1년 6개월에 더해 최대 2년 6개월을 복역하게 된다. 잘못된 모정이 타인을 공격하고, 종내에는 그 화살이 자신들에게 돌아온 셈이다.

‘내 아들은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니다’는 눈물어린 어머니의 호소 앞에, 나는 차마 그녀를 소리 내어 비난하지 못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자식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마음, 그 숭고한 마음이 이렇듯 추악하게 변해버린 것은 어쩌면 내게 분노 보다는 안타까움이었다.

입맛이 쓰다. 무조건적인 모정이 피해자에게 또 다시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결국은 그 죗값을 받게 된 것이다. 내 자식이 소중한 만큼, 남의 자식도 소중하게 여겼다면 이렇듯 ‘모정’들이 길을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든 말인지. 어미에게, 어미의 마음으로, 정말 내 자식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어머니, 당신들의 자식들을 아끼는 만큼, 남의 아들을 아껴달라, 차마 그리 말하지는 못하겠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어쩌면 나 자신보다 사랑하는 당신의 자식을 아끼는 그 마음을, 어떻게 남에게도 그리 해달라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바로 그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조금 더 큰마음으로 아들을 사랑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드리고 싶다. 사랑하는 자식을, 그저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려고만 한다면 당신의 그 모정이 자칫 변질하여 도리어 사랑하는 자식을 찌르는 검이 될 수 도 있다.

당신의 자식을 인생의 성공자가 될 수 있도록, 정말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그리 가르친다면, 당신의 모정은 때로 아들에게 매가 되고, 때로는 그의 편이 되어줄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것은 자식을 완성시키는 정말 위대한 모정일 것이다.

성추행 고대 의대생 사건에서도, 그녀가 아들을 정말로 사랑했다면, 올바른 모정이라면,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그 죗값을 담담하게 받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녀의 울먹이는 얼굴에서 죽은 새끼를 업고 바다로 돌아가는 어미 돌고래가 어딘가 가라앉아 있음을 느낀다. 그녀는 어쩌면 현대 모정의 씁쓸한 초상일지도 모르겠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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