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일본식 라멘식당에서의 생생 알바 체험기-3회





알바를 시작한지 벌써 20여일이 지났다. 웬만한 메뉴는 다 외웠다. 손님맞이도 수월하고, 홀에서 하는 일들에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기자에게 아직 넘지 못한 벽이 있으니 바로 주문이다. 처음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며칠에 한 번씩은 꼭 실수를 한다.(ㅠㅠ) 도저히 안 되겠어서 바쁜 와중에도 메모지를 꺼내 적은 다음 주문하는 방법도 쓰지만 그마저도 바쁘다보니 대충 쓴 악필로 인해 잘못 알아봐 틀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실장님에게 눈치가 보인다. 실장님이 제일 싫어하는 주문실수를 며칠에 한 번씩 그것도 기자만 하기 때문이다. 했던 실수를 자꾸 번복하니까 정말 자존심이 상한다. 하다못해 메모를 하는데도 틀리니….

원래 처음엔 오빠 두 명에 친구 한명으로 기자를 포함해 네 명이 일을 했다. 하지만 한 주 뒤 평일 네 명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오빠 한명은 주말만 하기로 했다. 이제 평일은 총 세 명이서 일을 한다. 네 명에서 갑자기 세 명으로 줄다보니 몸은 더 바빠지고, 뭔가 허전해진 느낌이다.(재미도 없어지고;) 주중 손님이 가장 많은 금요일에는 주말알바 한명이 끼어서 네 명이서 일을 한다. 알바생도 많고 손님도 많아 아주 번잡하고 시끄럽지만 즐거운 날이다.



금요일. 주말알바를 위해 새로 들어온 기자의 중학교 때 친구가 도와주기로 했다. 이미 이 친구와 함께 일을 해 본 오빠들의 얘기론 너무너무 일을 잘한단다. 장난 반, 진심 반이었겠지만 문득 드는 열등감.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여자인 기자와 친구는 홀에서 손님맞이를 담당했다.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주문받고, 치우고, 세팅하고…. 손님이 들어올 때나 나갈 때 인사도 함께했다. 다행이도 손발이 잘 맞았다. 네 명으로도 분주한 날, 그 와중에도 기자는 친구가 일하는 모습을 계속 눈여겨봤다. 친구는 야무지게 착착 잘도 해냈다. 기자는 아직까지도 음식 내가는 것은 하지 못하는데 기자보다 늦게 들어온 친구는 그것까지도 자유자재로 해치웠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 덕분이었는지 그렇게 바빴는데도 불구하고 그날은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다. 잠깐씩 틈이 생길 때마다 친구와 도란도란 얘기도 나눌 수 있었다. 힘들 틈이 없었다. 항상 남자들 사이에서 일하다가 여자가 끼니까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친구와 일한 날 집에 와서 많은 걸 느끼고 깨우쳤다. 좀 더 착실하고 긴장해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바생들은 뒷이야기가 참 많다. 손님 앞에서 웃고 친절해도 손님이 불친절하면 같은 사람의 입장으로서 기분 나쁘긴 마찬가지. 규정상 알바생들이 잘못을 했을 때나 잘못을 하지 않았을 때나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먼저 “죄송합니다”라고 해야 된다. 변명은 절대 용납이 안 된다. 때문에 알바생들은 뒤에서 진상인 손님들을 흉보기도 한다.(다들 조심하세요^^;) 정말 웃긴 손님에서부터 짜증나는 손님까지, 알바를 하다보면 별의별 손님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 특이한 경우의 손님들을 우리 알바생들은 ‘진상손님’이라 부른다.



알바생들이 뽑은 진상손님의 유형은 이렇다. 첫째, 식사가 끝나고 마감시간이 지났는데도 좀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손님. 둘째, 주문시 이것저것 맛을 조절해달라고 지나칠 정도로 까다롭게 요구하는 손님. 셋째, 한꺼번에 주문 안하고 따로따로 주문하는 손님. 넷째, 3인 이상이 앉는 자리를 2명이서 꼭 앉으려고 하는 손님 등등. 얘기하자면 끝이 없지만 우선 여기까지다.

여기서 에피소드 한 가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된’ 진상손님을 만나보지 못했던 어느 날 때는 오고야 말았다. 저녁시간, 역시나 가게는 붐볐다. 비가 와서 날씨는 선선했지만 작은 가게 안을 이리저리 바쁘게 다니다보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다. 턱밑에는 곧 떨어질 듯 땀방울이 맺히고, 앞머리는 축축하게 젖어 축 늘어진 상태다. 가게는 손님으로 꽉 차있고, 모든 테이블이 만석이다. 그렇게 약 한 시간이 지나니 어느 정도 손님들이 나가고 약간의 여유가 찾아왔다.



“어서 오세요!” 연인으로 보이는 두 손님이 들어온다. 기자는 “두 분 안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저희 가운데로 앉으면 안돼요?”라는 남자. “죄송합니다. 가운데 자리는 3인 이상 자리입니다. 안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라고 웃으며 양해를 구했다. 남자가 갑자기 화를 내더니 안내한 자리로 이동하며 불만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니, 저기 두 사람은 뭔데. 우린 왜 못 앉게 하는 건데? 어이가 없네, 진짜.” 어이없긴 기자도 마찬가지. 자리가 거기서 거기지 여자 친구가 옆에 있어서 떵떵거리는 건가….

그래도 끝까지 웃으며 물을 갖다 주는 등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가 벌떡 일어서더니 “저기 사람들은 뭐냐고요. 차별하는 거예요?” “저, 손님 그러시면 자리 바꿔드릴게요”라고 졌단 듯이 자리를 옮겨드렸다. 그런데도 자리를 옮기면서 까지도 “아, 진짜 어이가 없네”라며 끝까지 불평을 해대는 남자. 평소 같았으면 잡고 있던 물통이라도 내던졌겠지만 여긴 내가 사장이 아니다. 참아야 하지만 화는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변명을 해선 안 되는 입장이니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상황설명을 했지만 남잔 듣지도 보지도 않고 그저 불만만 내뱉었다. 딱 봐도 내가 알바생이고 어려보이니까 큰 소리를 치는 듯 했다. 주문을 기다리는 내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됐으면 좋게 좋게 얘기를 하던가, 나이도 좀 있어 보이는데 여자 친구 앞에서 저러면 좋나?’ 정말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욕까지 속으로 되새기며 열을 내고 있었다. 그때 옆으로 다가오는 알바오빠. “다은아, 너 왜 그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무 일도 아니라하고 자리를 피했다.



도저히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 저런 사람은 아주 민망하게 만들어줘야 돼’라고 생각한 기자.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 딱딱하게 굳어진 내 표정을 처음 본 다른 알바생들은 눈치만 슬금슬금 볼 뿐.(후에 얘기론 굉장히 기자가 굉장히 무서웠다나 뭐라나^^;)

기자는 ‘그래, 여기서 내가 표정이 굳어지면 저 남자와 똑같아지는 거야. 웃음으로 복수하자!’라고 생각했다. “주문이요.” 기자가 갔다. 주문을 받은 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손님∼죄송합니다. 아까는 손님이 꽉 차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저기 두 분은 가운데로 안내해드렸던 거예요.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주문 도와드릴게요!”

이렇게 친절한 기자에게 뭐라고 더 할 말이 있을까. 자리 옮길 때부터 미안해하며 남자를 말리던 여자는 더욱더 미안한 표정이다. 남자는 부끄러운 듯 얼굴이 빨개져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허허∼괜찮습니다. 괜찮아요”라고 한다.

주문을 하러 계산대로 향하는 중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 ‘흐흐. 내가 승자다!’ 진상손님을 친절로 따끔하게 받아친 기자에게 다른 알바생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뿌듯했다.

이제 손님을 맞는 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 남은 것은 주문. 주문만 완벽히 받을 수 있게 되면 어느 정도 갖춰진 알바생이 될 것 같다. 실수 한 번 하지 않고 무사히 넘어간 날도 물론 있지만 이제 좀 더 완벽해져야 된다. 첫 알바를 하는 곳인 만큼 애정이 더 간다. 더 열심히 하고 싶고, 더 배워가고 싶다. 공부하듯이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은 어떻게 대하는 것인지, 단체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 것인지를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몸소 깨우치고 느끼고 있다. 첫 알바인 만큼 돈 말고도 얻는 것이 많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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