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소리로 도배된 세상, 그래도 김양은 행복하다!!
우는 소리로 도배된 세상, 그래도 김양은 행복하다!!
  • 승인 2012.10.0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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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민족 대 명절, 추석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이 있다.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다 모여서 음식도 나눠먹고, 서로의 안부도 확인하고, 덕담도 나눌 수 있는 훈훈한 날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보름달 아래 무르익는 오곡백과, 푹푹 찌던 더위가 거짓말인 것처럼 선선해진 공기, 반지르르 윤이 나는 송편. 추석, 하면 단박 풍요로움이 떠오르는 건 아마 연휴 내내 쉴 새 없었던 내 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추석이 마냥 풍요롭고, 훈훈하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나는 11시 심야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우등 버스를 예매하는데 실패해서 임시 편성된 일반 버스를 타게 되었다. 그나마도 제일 뒷자리였는데, 고속도로가 이렇게 울퉁불퉁했던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덜컹 거렸다. 캥거루 주머니에 탑승한 것만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옆자리의 청소년에게서는 청춘의 땀 냄새가 났다. 어쩐지 속이 좋지 않아졌다. 멀미는 초등학생 때 이후로 딱히 해본 적 없지만, 어쩌면 오늘은 큰일이 날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대뇌를 울렸다. 잠들어야만 했다. 덜컹거리는 차와, 코를 간질이는 땀 냄새를 무시하려고 애써봤지만, 무시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그것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핸드폰을 뒤져서 숙면 음악을 재생했다.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평화로운 음악 소리에 온힘을 다해 집중한 후에야 겨우겨우 잠들 수 있었다. 2시간 거리의 고향집은 그 늦은 시간에도 1시간쯤 더 걸려서야 도착했다. 새벽2시, 그래도, 이제부터는 훈훈한 추석의 시작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오랜만의 내방 침대에 몸을 뉘였다.

다음날 아침. 나는 당연히도 늦잠을 잤다. 거의 점심때였다. 동생은 혀를 내두르며, 누나 죽은 줄 알았다 했다. 어머니께서는 벌써 큰집에 가셔서 차례준비를 하고 계시다 하였다. (큰집과 우리 집은 10분 거리다.) 우리는 명절에도 딱히 사람이 버글버글 많은 편은 아니다. 보통 한자리에 모인 사람을 세어보면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그나마도 가장 많을 때 세어야 두 손의 손가락을 거의 다 쓸 수 있다. 그래서 명절 준비는 어머니 큰어머니 두 분께서 도맡아 하신다. 어머니께서 큰어머니와 차례준비를 하시는 동안, 나는 우리 집을 맡아야한다. 참 말만큼 커서 도움도 안 되는 딸년이다. 아버지와 동생의 점심을 챙겼다. 내가 지은 밥은 아주 때글때글했다. 입안에서 쌀알이 굴러다녔다. 딱 아버지가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밥솥이 낯설어 그런 것이라고 헛소리로 스스로를 좀 변호했지만, 딱히 효과는 없었다.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났더니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사실은 일요일까지 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지만, 당장 닥친 것도 아니고 하기 싫었다. 할 일이 없다기보다는 그냥 심심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괜히 SNS에 접속했다. 페이스북에는 평소보다 좀 더 많은 게시글이 있었다. 민족 대 명절을 맞이하는 덕담인가 했더니, 그건 극히 일부였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감상이나, 고향 친구들을 만난 사진 따위, 그리고 불평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풍요롭고 훈훈하고 행복한 이 추석에, 게시글의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불평’이나 ‘한탄’따위였다. 하긴, 이제 연휴 첫날, 도로에서 혼을 뽑고 있을 시기 아닌가. 바로 어제 내가 경험했던 콩나물시루 속 캥거루 주머니 말이다! 아직까지는, SNS에 불평이 도배가 되어있다 해도 그렇게 이상하진 않다고, 대충 넘겨버렸다.

추석 당일.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왔다. 설거지를 좀 도왔지만, 내 느린 손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머니께서 차라리 빨리 끝내는 게 낫겠다며 당신께서 다시 고무장갑을 끼고 싱크대 앞에 서셨다. 설거지에서 밀려난 나는, 대신 청소기나 돌리고, 신발이나 정리하고 그랬다. 그리고 곧 할 일 없이 소파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말만큼 커서 도움도 안 되는 딸년이 아닐 수 없다. 페이스 북을 뒤적거렸다. 추석 당일이니 어제와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다지 다르진 않았다. 친척들의 잔소리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친척 동생들 돌보기가 힘들다, 음식 준비나 설거지가 힘들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뉴스피드. 간간히 송편 얘기나, 보름달 얘기, 소원, 덕담 같은 것이 발견 될 뿐이었다. 풍요로운 추석의 이미지를 들춰보면 이런 이면이 존재한다. 하긴 그러고 보면 명절이 마냥 행복한 날인 것만은 아닌 걸 깨달은 것은 꽤 되었다. 특히 ‘여자’들에겐 말이다. 어머니들에게 이만큼 고된 날이 또 있으랴. 하지만 내 페이스북의 뉴스피드를 채우는 것은 거의 내 또래들이다. 스크롤을 쭉쭉 내려 추석 이전, 그리고 더 이전의, 꽤 오래된 게시글까지 읽는다. 역시나 불평이 가득이다. 행복하고 즐거운 게시글도 많지만, 거의 60:40의 비율로 ‘힘들고 고통스럽고 짜증나고 화나는’ 일들이 깨알같이 적혀있다. 텔레비전에서는 재미없는 추석특집을 하고 있고, 부엌도 거의 정리되고 있고, 청소는 끝났고, 뉴스피드에 내가 읽지 않은 글은 없으니, 쓸모없게 소파에서 뒹굴 거리면서, 매일매일이 불만스럽고, 심지어 이 좋은 날 조차 고통스러운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나는 거꾸로 드러누워서, 곧 단 하나 남은 ‘할 일’에 착수했다. 어째서일까. 단체로 부정적 마인드 바이러스에라도 감염된 것일까.

SNS나, 인터넷을 하다보면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죄다 불평불만을 해댄다. 뭐가 어쨌고, 뭐는 어떻고. 속히 말해 ‘찡찡거리는’ 얘기들로 가득하다. 나라가 문제고 정책이 문제고 뭐가 문제고 심지어는 본인 스스로를 가리키면서, 나 자체도 문제라고 한다. 나는 쓰레기라고 자책하는 사람들, 네가 쓰레기라고 날이 선 사람들. 눈 닿는 곳마다 짜증이 넘친다. 분명히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데, 왜 사람들의 만족은 그것에 비례하지 않는 걸까. 사고를 전환하여, 이렇게 도처에 부정적 마인드가 깔려있는 와중에도 사막 속 오아시스처럼 행복 가득한 게시글을 올리는 친구들이, 대체 무엇을 얘기하곤 하는 지 생각해보자. 내 친구 김 모 양은, 시시콜콜 ‘행복하다’, ‘화이팅’, ‘좋다’, ‘신난다’, ‘마음이 따뜻하다’,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감사하다’ 같은 글을 올리기로 유명한 친구다. 그런 글을 읽고 있자면, 내가 다 마음이 훈훈해진다. 사람들 생각은 비슷비슷한 건지, 죄 불평만 뱉어내는 사람들조차도 김 모 양 페이스북은 뭔가 ‘정화되는 느낌’이라며 즐겨 찾곤 한다. 그 친구가 올리는 이야기의 주제는 대개,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것들이다. 코코아가 맛있거나, 햇살이 좋거나, 갑자기 친구가 아침에 전화해 주었다든가, 오랜만에 서점에 갔더니 서점 냄새가 좋게 느껴졌다거나, 뭐 그런 것들이다. 이 친구도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고, 잔소리를 듣고, 가끔은 자기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그런 똑같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생각으로 살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욕심을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욕심은 포부와 다르다. 꿈의 크기가 욕심의 크기는 아니다. 많이 가지고 싶은 것이 욕심이고, 정말로 원하는 것만 가지고 싶은 것이 꿈이다. 단지 많이 가지고 싶은 사람은 자꾸만 내게 없는 것이 보인다. 채워야하는 모자란 부분만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좋은 생각을 하기엔, 터무니없이 열악한 환경이다. 욕심을 줄이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가 보인다. 내가 진짜 가지고 싶은 것을 위해 노력하는 오늘, 뜻하지 않게 얻게 되는 모든 것들이 감사하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 당장 손에 잡히지 않더라도 충만하게 살 수 있는 이유다.

어딜 가나 우는 소리로 도배되어 있는 요즘, 웃는 낯으로 ‘행복하다’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보배로운지. 스스로의 하루를 행복으로 채우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를 나눠줄 수 있는 사람. 사실은 가지는 것에 욕심 부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가지려 욕심 부리는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관심을 구걸하는 다른 게시글 보다, 혼잣말처럼 ‘행복하다’ 말하는 김 모 양의 게시글에 더 많은 ‘좋아요’와 댓글이 쌓여있는 것처럼 말이다. 취직, 남자친구, 결혼, 다이어트 잔소리 때문에 죽겠다는 게시글이 도배하고 있는 뉴스피드 속, “여러분 오늘은 달이 가장 크고 밝은 날이에요! 고맙게도 날씨가 맑아서 보름달을 잘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행복한 추석이네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ㅎㅎㅎㅎ”라는 김 모 양의 게시글이 빛나 보이는 이유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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