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산 가스 폭탄 ‘아비규환 구미’, 지금 정부는?

경북 구미시 화공업체 불산 가스 누출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지역사회에 ‘불산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사건 발생 20여일이 지났지만 사태가 누그러지기는커녕 주민피해와 오염면적이 더욱 확산되는 등 통제 불능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에 구미 산동면 일대 주민들 300여명이 집단 이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정부의 대응력에 대해선 ‘사고 대응력 0’이라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사고대책본부는 정부 종합대책이 나올 때까지 별다른 사태 언급이 없어 이주민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피해범위가 명확하게 산출되지 않은 점은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잘 분해되지도 않는 불산의 성질 때문에 추가 피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지역사회의 성토가 잇따르고 있다.



구미판 출애굽? 

사고가 난 공장에서 불과 1㎞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구미시 산동면 임천, 봉산리 주민들은 요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마을은 황폐해지고 수확을 앞둔 포도, 멜론, 대추 등 농작물은 말라 죽어가며 가축까지 위험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 언론매체에서 불산의 위험성에 관한 보도가 잇따르면서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구환경운동연합과 시민환경연구소는 “불화수소산에 급성으로 노출된 주민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역학조사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구미 화학공장에서 누출된 불산은 실온에서 기체 상태로 존재하며 공기보다 가벼워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발암성 물질은 아니지만 부식성이 강하고 세포조직을 쉽게 통과해 흡입, 접촉 땐 폐조직과 피부, 점막 등을 손상시키고 뼈를 녹일 수 있는 위험한 독성 물질이다.

이재영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교수는 “불산은 확산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곡물이나 작물에 빠르게 피해를 주는 한편 오랫동안 잔류하기에 위험하다”고 했다. 그는 또 “불산의 양이 많지 않더라도 노약자 같은 경우에는 폐기능 저하나 심장부정맥과 같은 독성반응이 발생할 수 있다”며 “불산은 칼슘과 결합하는 특성 때문에 장기간 기준치 이상 노출되면 뼈를 약화시키고 불화칼슘이라는 돌가루 형태로 축적된다”고 했다. 



김길수 경북대 교수는 “불산은 노출허용농도가 낮은 저농도에서도 각종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매우 위험한 물질”이라며 “이 때문에 불산은 학교 실험실에도 없을 뿐더러 불산에 대해 실험을 한 사람도 없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현재 피해 규모는 사망자 5명, 병원 검진자 8000여명, 농작물 2379㏊, 가축 3275마리, 차량 1138대 등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난 6일엔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주민 300여명이 지난 6일 구미자원화시설 등으로 집단이주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봉산리 박명석 이장은 “정부가 사고발생 10일이 지나도록 주민들을 내버려두고 아무런 대책을 세워주지 않아 우리 스스로 이사하기로 했다”며 답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 심모(47. 남) 씨는 “불산으로 농작물은 잎이 다 말라버렸고 저를 비롯해 주민들은 호흡기, 피부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불산이 이처럼 위험한 것인지 몰랐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정부가 대응책을 전혀 마련하지 못하는 것 같아 한숨만 나온다”며 “부디 어린 자식들에게만큼은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주민 최모(56. 여) 씨는 “주민들은 다들 어쩔 줄 몰라 하며 불안에 떨고 있는데, 정부는 상황 설명도 없이 별 일 아닌 것처럼 대처하고 있다”며 “정부가 뒷짐 지고 있으니 주민들끼리 이주대책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봉산리 인근 산동면 임천리 일대 주민들도 “황폐화한 마을로 복귀하기 전에 확실한 이주대책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환경부는 “불산 누출사고 공장 인근 20여개 지점의 대기와 수질, 토양에 대한 조사결과 불산이 검출되지 않았거나 기준치 이내였기 때문에 주민들이 귀가하는데 별 지장이 없다”고 했다. 사고대책본부 역시 정부의 종합대책이 나올 때까지 주민들 이주와 관련된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은 점점 깊어져 가는 가운데 보상과 이주대책 등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구미시는 일단 15일을 전후해 피해지역을 대상으로 석회수를 살포, 중화할 방침이다. 시는 피해지역이 200㏊가 넘는 것을 감안, 방재용 헬기 사용을 검토 중이지만 오염 정도가 다른 지역별 석회수 농도 조절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오락가락 하는 정부

이번 사태는 애초 성급하게 주민들을 복귀시킨 환경부의 ‘경보 해제’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다. 사건 발생 당일 ‘심각’ 경보 조기 해제에 대해선 적절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각’ 단계 해제(9월 28일 오전 3시 30분)와 주민대피령 해제(9월 28일 오전 10시)가 이뤄진 시점에서 대기 중 불산 농도는 1ppm으로 높은 상태였고, 이 때문에 안심하고 귀가한 주민들에게 2차 피해를 야기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사고 당시 밸브를 잠그지 못해 가스가 계속 노출되는 상황에서 ‘심각’ 경보를 발령했고, 이후 밸브를 잠그고 불산 농도가 낮아져 ‘경계’로 낮췄다”고 밝혔을 뿐, 작업장 기준(0.5ppm)보다 높은 농도에서 주민을 복귀시킨데 대해선 해명하지 않았다.

환경부는 오히려 사고 초기 물을 뿌린 것이 부적절했다는 일각의 지적에 “물에 잘 녹아 공기 중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때문에 오염면적 확산을 막는다”며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놓아 빈축을 사고 있다.





김정수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은 “환경부가 사고 지점과 주변의 대기질 오염만 측정하고 주변지역 침투로 인한 피해를 확인하기 위한 잔류오염은 측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심각 단계를 해제했다”며 “심각 단계가 해제됐어도 경계 단계 경보가 적용 중이었기 때문에 주민 대피령을 유지하거나 대피 범위 반경을 축소하는 정도의 대처를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오염도 조사와 대책을 발표했지만 알맹이가 빠졌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환경부 중앙사고수습본부는 ▲10~11월 정부 합동 위험물질 특별점검 ▲기업의 화학사고 방제 장비ㆍ약품 비치 및 관련 교육 강화 ▲위험물질 정보관리 네트워크 구축 ▲오염된 농작물 적정 처리 ▲실내공기질 오염이 우려되는 주택ㆍ공장 재입주 전 추가 측정 등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안전지침을 지키지 않은 작업자의 과실로 빚어진 이번 누출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할 강력한 대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환경부는 피해 지역의 불산 검출량이 기준치 이하로 줄었다고 발표했지만, 장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정수 소장은 “피해 지역에 대한 모니터링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가장 큰 문제”라며 “우선 주민들을 장기 대피시킨 뒤 피해범위를 산출해야 한다. 또한 농작물 반출을 금지하고, 단기적으로는 중화제를 광범위하게 살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3차 피해 가능성도

한편 엄청난 피해를 입혀 국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게 만든 이번 불산가스 누출 사고는 어이없게도 안전규정을 따르지 않은 공장 직원들의 작은 실수 때문으로 밝혀졌다. (주)휴브글로벌 불산 누출사고를 수사 중인 구미경찰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복원한 CCTV를 통해 사고 당시의 상황을 정밀 분석한 결과 작업자들의 과실로 원료탱크의 밸브가 열리는 바람에 불산이 누출됐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 당시인 지난달 27일 최모(30. 사망)·이모(26. 사망)·박모(24. 사망) 씨 등 공장 직원 3명이 불산 원료 20톤이 실린 탱크로리 위에서 작업을 하던 중 드럼펌프 수리기사 이모(41. 사망) 씨가 오자 최 씨가 탱크로리에서 내려왔고, 위에 남아있던 2명이 에어호스를 연결하던 도중 밸브가 열리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

당시 공장 직원들은 에어밸브가 잠긴 상태에서 관 이음의 접속부분인 플랜지를 제거한 뒤 에어호스를 연결하고, 다시 원료밸브가 잠긴 상태에서 플랜지를 제거한 뒤 원료호스를 연결해야 하는 공정 순서를 따르지 않고 에어밸브와 원료밸브의 플랜지를 동시에 제거한 뒤 에어호스를 연결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업체 대표와 공장장 등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평소 직원들이 작업속도를 높이기 위해 에어밸브와 원료밸브의 플랜지를 모두 열어놓고 작업하는 등 작업 지침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안전관리 등을 소홀히 한 업체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하는 한편 사고 당시 관리·감독기관의 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조사해 혐의가 드러나면 모두 사법처리키로 했다.

한편 사고로 누출된 불산의 양은 20톤 탱크로리 적재량의 거의 3분의 2나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당량의 불산이 주변 토양 등에 스며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잘 분해되지도 않는 불산의 성질 때문에 ‘3차 피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