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인생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험이 아닐지도 모른단다!
네 인생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험이 아닐지도 모른단다!
  • 승인 2012.11.0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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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수능





2012년 11월 7일. 입동이다. 겨울이 시작된다고 하여 입동(立冬)이다. 명성에 걸맞게 날이 추웠다. 아침 수업을 가려고 일찍 집을 나서는데 옷을 파고드는 공기가 너무 차가워 깜짝 놀랐다. 한 6~8분 채 안 되는 등굣길에서, 조금 더 따뜻하게 입고 나오는 건데 하고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챙겼다가 마지막에 내려놓은 목도리가 특히 후회스러웠다. 그놈을 가져왔어야 하는 건데. 아무리 춥다한들, 사실 본격적인 추위도 아니건만, 내 컨디션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갑작스럽게 얼굴을 디미는 겨울에 적응이 안 된 때문인지 강의실에 들어와서도 한참 몸이 싸늘했다. 가져간 텀블러에 티백을 우린 뜨거운 차도 마셨건만, 한번 차가워진 몸은 쉽사리 따스해지지 않았다. 수업을 듣고 있지만 자꾸만 따뜻한 집이 떠올랐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의 그 온기, 이불 속에서 느끼는 포근함. 여전히 차가운 손을 텀블러로 녹이면서, 집에 가면 잠깐 눈 좀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감기라도 걸리면 고생이다. 환절기니까, 특히 조심해야한다. 날씨가 이렇게 추워지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1학년 때인가, 아마 2학년 때였을 거다. 그때 수능 응원을 한다며 다른 학교 앞에서 새벽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었다. 그때도 오늘처럼 몸이 시렸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아침에 선배들을 응원하겠다고 모여서, 뭘 구호를 짜고, 뭘 나눠줘야 한다며 부산스러웠던 기억. 다른 학교의 언덕과 운동장, 나무와 건물이 주는 낯선 느낌. 동시에 특별한 날도 아닌 것처럼 어김없이 똑같은 아침 충경이 주는 익숙함. 밝아오던 하늘과, 아침의 냄새 같은 것들이 그 모든 낯선 풍경까지도 ‘같은 처지의 고등학생’이라는 것으로 죄 익숙하게 만들어 줬던, 그 짧았던 아침.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선배들의 긴장으로 굳은 얼굴들을 보는 동안, 나 역시 알게 모르게 그 긴장으로 물들었었던 건지, 몇 시간을 추운 밖에서 떨었건만, 깜깜했던 그 새벽부터 기어코 정문이 닫히는 걸 보기까지 그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지 모른다. 1교시를 시작하고 있을 그 낯선 학교의 창문들을 보면서, 다들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 있길 바란다고, 진심으로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그렇게 오래도록 깨어있었지만, 아직도 공기는 차가운 아침의 냄새가 났었다. 수능 날 아침의 기억을 떠올리면, 내가 치렀던 수능의 아침보다, 오히려 그날의 아침이 먼저 떠오른다. 나의 수능 날 아침은, 아마 뭔가를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빠르게 흘렀기 때문인 것 같다. 11월 7일, 입동. 그리고 11월 8일, 내일은, 수능이다.

약 4분 정도 남은 다음 수업을 기다리며 내일 까지 제출해야하는 과제가 얼마나 걸릴지 가늠해본다. 대학교의 수능 전날은 매우 평화롭다. 나는 한 30분 정도 낮잠을 잔 뒤 점심으로 샌드위치랑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몇 시까지는 뭘 끝내고, 몇 시까지는 뭘 끝내고, 몇 시까지는 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오늘의 대학생은, 내일의 수능보다 내일의 과제가 더 큰 문제다. 교수님께서는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야기를 하신다. 교수님께도 내일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가장 크고 중요한 시험보다는, 미국의 대통령이 더 중요한 이슈이다. 여기에 긴장된 공기 같은 건 없다. 강의실 어딘가에서 더운 바람이 나오는 것 같다. 드디어 손에서 온기가 돈다. 결전까지 하루가 남았다. 누군가는 지금 거듭 다짐하고, 괜찮을 거라고 자기최면을 걸지 않으면 긴장으로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을 거다. 이 강의실에서 나와 같은 방향으로 앉아있는 학우들도 모두, 이렇게 다들 평화롭지만, 기억 속엔 그 하루를 다들 가지고 있다. 드디어 내일이구나, 하면서 지난 몇 년을 돌이켜보았던, 뭐라고 정의내리기 힘든 그 감정이 곧 긴장감으로 이어지던, 일찍 누운 잠자리에서 쉬이 잠들지 못하고 그냥 잠든 듯이 듣고 있던 내 심장소리…… 그런, 그랬던 하루. 그때도 우리 밖의 사람들은 평온하게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낮잠을 자고, 샌드위치를 먹고 그랬을 거다.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와서, 계획대로 낮잠을 자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책상 앞에서 먹고 있자니, 오바마가 재선 된 소식이 들린다. 곧 이 소식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랭킹 된다. 그 아래로 ‘수능’이 있다. 미국 대통령이 내일의 수능보다 더 큰 화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고등학생 때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다. 나도, 친구들도, 내 주변의 모든 어른들도-선생님 부모님- 모두 미국 대통령이든 우리나라 대통령이든 당장 내일 있을 수능이 가장 중요할 사람들이었으니까. 난 그래서 수능전날, 어딘가에 이렇듯 평온한 곳이 존재하리라고는 차마 생각하지도 못했던 모양이다.

아주 중요한 시험이다. 그건 맞는 말이다. 대입이라는 게, 대학의 이름이라는 게, 곧 당신이 가진 능력의 반증이 되는 세상은 사실 옳지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역시 현실이다. 하지만 막상 대학생이 되고 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대학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팩게임기가 하나 있었다. 나는 게임을 잘 못해서 그걸로 늘 슈퍼마리오만 주구장창 했었다. 나는 인생이 결국 슈퍼마리오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내 나이가, 아직 인생을 논할 나이는 못 된다. 나 역시 아직 인생의 진짜 맛도 채 못 본 덜 여문 애송이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만큼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불안감으로 다른 어떤 때보다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에 있는 애송이다.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조만간 다시 바뀔지도 모르겠다만- 어느 것 하나, ‘이게 아니면 하늘이 무너지는 일’ 같은 건 없더라는 거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이 가장 중요할 때에요’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첫 단추가 가장 중요하니까,  2학년 때는 이제 여러분에게도 후배가 생기니까, 3학년 때는 이제 곧 고학년이 되니까, 4학년은 고학년이니까. 5학년은 내년에 6학년이니까, 6학년은 내년에 중학생이 되니까, 중학교 1학년은 중학생의 시작이니까, 중학교 2학년은 내년이 3학년이니까, 중학교 3학년은 내년에 고등학생이 되니까, 고등학교 1학년은 이제 고등학생이니까, 2학년은 내년이 바로 고3이니까, 3학년은 수능이 코앞이니까, 그래서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라고 했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매년 올해가 제일 중요하다는 주장의 모순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느끼는 설렘과 동시에 늘어난 부담들에 그런 것을 깨달을 새도 없었는가 보다. 나는 심지어 반편성 배치고사 마저도 굉장히 중요한 시험인줄로만 알았다. 내 앞으로의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이 이 배치고사가 만들어준 첫인상으로 정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배치고사 1등으로 화려한 데뷔를 한 친구들은, 교사들과 친구들에게 ‘공부 잘하는 친구’로 각인되었지만, 그역시 새로운 전교1등이 생기자마자 곧 사라지고 말았다. 수능이, 대입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사실 이런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입이 중요하지 않은 요소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부분을 바꿔놓을지에 대해서는, 굳이 다른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는 일이다. 단지 대학교의 이름만으로 사람의 본질을 저평가하거나 고평가하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말이다. 확실히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기회가 많다’.

앞서 내가 슈퍼마리오 얘기를 했다. 이 점이 바로 내가 인생이 마치 슈퍼마리오 같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이유다. 매 스테이지마다 점수를 올려주는 코인이 있고, 점수를 많이 모으면 목숨이 하나 더 생긴다. 각 스테이지의 마지막에는 깃발이 나오는데 깃발의 꼭대기까지 점프할 수 있으면 높은 점수를 준다. 깊게 생각해보면, 그것들이 다 얼마나 ‘중요한’ 것들인가. 내가 지금 코인 세 개를 그냥 지나치면, 나중에 그 세 개가 모자라서, 목숨이 모자라게 되고, 그로 인해 게임 오버 당하게 될지 어떻게 아는가. 동전을 모으는 것은, 만에 하나 내가 실수를 하더라도, 다시 살 수 있는 찬스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동전을 지나쳤다고 크게 후회하거나 하지 않았다. 깃발 역시 마찬가지다. 깃발의 꼭대기로 점프하면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모두들 신중하게 점프했지만, 어쨌거나 깃발에 닿기만 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그 점프가 성공해서 폭죽이 펑펑 터지든, 아니면 땅으로 곤두박질 친 후에 깃발로 다가가서 그저 손만 갖다 대든, 어쨌거나 중요한건 내가 1단계를 깼다는 점이었다. 슈퍼마리오는 ‘얼마나 높은 점수를 얻느냐’가 목표가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느냐’ 즉, ‘몇 단계까지 깨봤느냐’가 주된 목표이자 자랑거리였다. 이상하게 슈퍼마리오는, ‘나중에 이게 없다면 진행이 되지 않는 꼭 필요한 아이템’ 같은 게 별로 없었다. 내가 했던 슈퍼마리오는 아예 그런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이템을 먹지 못하면 시간은 좀 더 걸렸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점수를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좋지만, 그렇다고 점수가 모자란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한번 지나친 곳은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나는 그래서 슈퍼마리오가 꼭 인생의 진리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매 순간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마지막의 기회다. 그것들을 놓치면, 나는 좀 더 불편하고, 힘들고,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다. 그 기회를 놓쳐도, 아주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 없이도 충분히 다음 단계가 다가온다. 11월 8일 수능을 앞둔 친구들은, 1단계의 마지막 단계에 와있는 셈이다. 내신이니 모의고사니 자잘한 것까지 다 챙겨가며, 지나친 코인을 아쉬워하고, 앞서간 친구들을 보며 조바심을 냈던 건, 1단계를 망치면 남은 모든 스테이지들도 망치고 말거라고 생각해서였을 거다. 그렇게 배워왔으니까. 이제 친구들은 깃발을 향해 점프를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깃발의 꼭대기에 닿아야지 축포가 터진다. 절대로 꼭대기에 닿고 말아야지, 그렇게 두근두근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는 일이다. 점프하기 전의 개구리처럼 근육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친구들에게, 어쩌면 이 이야기는 김이 새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사실 꼭대기에 닿지 않아도, 다음 단계는 온다. 떠들어대는 것처럼, 네 인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험은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다. 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그 ‘지금’은, 나중의 ‘지금’에 밀려 ‘과거’가 되어버리고, 새로운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가 된다. 그러니까 항상 주어지는 지금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지나간 과거는, 지금 당장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게 아무리 중요하고, 오랫동안 준비했던 시험이라 해도 말이다. 내 친구도 이번에 수능을 친다. 어쩌면 굉장히 늦은 수능일지 모른다. 내 또래들에겐 더 이상 수능 같은 건 이슈도 못되는 일인데, 내 친구는 아직 긴장된 하루를 보내고 있어야만 한다. 내 친구는 “아… 내일이 수능이야….”하겠지만, 내 주위 대부분은 “아 내일이 수능이야?” 한다. 그래서 더 늦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기분이 그녀를 더욱 긴장하게 만드는 짐이 될지도 모른다. 부디 긴장하지 않고 제 실력 다 발휘하고 오길 기도한다. 다들,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길.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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