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우리 동네 이야기



우리 동네는 세 개의 대학이 밀집한 곳이다.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면 각기 다른 세 개의 학교 과점퍼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게다가 각각의 대학교들이 인지도가 없는 편도 아니어서, 이 동네에는 대학생들이 바글바글하다. 내가 살고 있는 골목에만 원룸이 몇 세대, 고시원이 몇 세대. 그런 골목들이 이 블록에만 몇 뭉텅이. 그런 블록들이 10분 거리 만에도 또 몇 뭉텅이다. 아마 이 동네의 건물들을 거꾸로 뒤집어서 탈탈 털어내면 대학생들이 새까맣게 떨어질 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곳은 여타 다른 대학가처럼 밤이 반짝반짝한 그런 맛이 없다. 그 흔한 영화관 하나 없는 동네. 대학교가 세 개. 한 20분, 30분 걸어가면 학교가 두 개가 더 있으니, 크게 보면 요 근방에 대학교만 5개다. 그런데도 요란한 술집조차 없는 우리 동네. 알게 모르게 비싼 집값과, 새벽까지 불 밝힌 창문들과, 그 안에서 새어나오는 유행하는 음악소리, 맨발에 슬리퍼만 꿰고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내 또래의 사람들을 목격하는 것 등등으로, 아 이곳이 정말 대학가이긴 하구나 하고 깨닫는다.

신촌, 홍대, 건대 같은 동네랑 비교하면 여기에 살고 있는 대학생들은 마치 바퀴벌레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아주 많은데, 요란하게 눈에 뜨이고 그러진 않는다. 수업이 있는 낮에는 과점퍼들이 오락가락하고, 척 봐도 수업 듣고 나오는 학생인 듯 보이는 전공책 무리들이 박작박작하니 누가 봐도 아 대학가구나 싶긴 하다만, 주말이 되면 정말 여긴 대학가와는 거리가 먼 그저 그런 동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왜 우리 동네는 이렇듯 대학생이 많은데도 -그것도 종류별로- 이렇게 조용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마음에 안 들진 않는다. 어느 정도는 흡족한 편이다. 내 집 주변이 시끄러운 건 질색이니까. 젊은이들의 유흥거리 같은 게 집 근처에 있는 것도 별로다. 배려심 없는 젊음의 거리의 최대피해자는 그곳 주민이니까.

아무리 조용한 동네라지만, 대학생들이 모여 사는 이곳은, 나름대로 해프닝이 많이 일어난다. 다섯 개의 대학이 모인 동네치고는 많지 않다 뿐이지, 완전히 평화롭고 조용한 그런 곳인 것만은 아니란 소리다.

이 동네의 카페는 적당히 소란스럽다. 카페 안은 대학교 내의 카페인 마냥, 죄다 학생들뿐이다. 학생이거나, 적어도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 아르바이트생부터, 카페안의 모든 사람들의 나이를 합해서 평균치를 내도, 대략 스물 중반 안팎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곳은 어쨌거나 대학가이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한창 청춘이다. 뭔가 동네마다 성격이 있는 건지 이곳은 딱 동네 분위기처럼 청춘이 불꽃 튀는 느낌은 아니다. 홍대의 청춘들은 약간 소란스럽다 싶을 만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것처럼, 이곳의 청춘들도 동네의 분위기를 닮았는가 싶다.



카페에 앉아 있을 때 누군가 말을 거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저기요” 말 거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니, 사실은 많이 일어나고 있다. 알게 모르게 말이다. 여기는 어쨌거나 대학생들이 바글바글한 대학가다.

얼마 전 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한 한 남자애가, 굉장히 자연스럽게 마치 길을 묻듯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어왔다. 그런 모양이 굉장히 조용해서, 그 길에 있던 누구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을 거다.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데 뭔가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기가 뭐해서 나는 그냥 ‘네 있어요’라고 둘러댔고, 그 남자는 그냥 가볍게 목례를 했다. 나도 함께 목례를 했다. 거리에 학생이 많았지만, 여전히 조용했고, 버스가 지나가고, 그냥 그랬다. 마치 옆집 사는 청년이나, 같은 과의 얼굴 정도 아는 후배와 잠깐 인사를 나누는 마냥. 나도 그 남자도 잠깐 청춘을 바스락 거리고 또 금세 숨을 죽인 것뿐이다.

요즘엔 동네나 잠깐 오가는 게 외출의 전부지만, 1∼2학년 때만 해도 시간만 나면 건대나 홍대로 놀러 다니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딱히 그러고 놀 나이도 아니고(?) 그런 놀이들에도 시큰둥해졌지만, 그런 놀이 문화를 싫어하게 되었냐면 그건 아니다.



대학가 주변의 활기는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그곳의 활기와 특유의 재미있는 공기를 좋아한다. 지금은 당장 할 일이 좀 있을 뿐. 그 곳의 사람들도, 거의 내 또래의 사람들이다. 학생이거나, 학생정도로 보이는 사람들. 여기서는 아무도 청춘을 숨죽여 소곤거리지 않는다. 청춘이 노래하고, 청춘이 소리치고, 청춘이 반짝반짝 하는 곳. 우리 동네의 친구들도, 이곳에서는 우리 동네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술집이나 클럽이나 그저 놀이터에 모여 앉은 사람들도 큰 소리로 청춘을 발한다. “저기요”가 옆집 사람과 하는 목례처럼 보이는 경우도 잘 없다. 대개는 꼬리를 펼친 공작새처럼 말한다. 내가 너한테 말을 걸고 있어요, 하는 걸 굳이 굳이 강조하는 것처럼, 그렇게 “저기요” 한다.

하지만 별 다른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수더분한 차림인 것도 아니겠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물 흐르듯 소곤소곤 숨어지는 것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건 그렇게 눈에 띄는 일이 되지 않을 거다.

우리 동네에서 조용한 청춘의 바스락거림이, 버스 지나가는 소리와, 크지 않게 나누는 행인들 담소 따위에 섞여 들듯이, 그 곳의 청춘은 소란스러운 대로, 거리 공연하는 사람들의 음악소리와, 빨갛고 하얀 네온사인과, 약간은 취한 사람들의 높은 목소리 사이로 섞여 들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용한 대로 활기가 넘친다. 어쨌거나 청춘들이니까.



카페 안에서 조용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내가 걔를 좋아하고, 걔가 나를 좋아하고 그런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럴 때면 이렇게 조용해도 다들 청춘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동네의 분위기에 따라간다고 해도, 어쨌거나 청춘들이 있는 곳은 다 비슷비슷한가보다.

청춘으로 사는 것이 비단 연애만은 아니니까 내 청춘의 관심사는 당장 연애사업은 아니지만, 그 풋풋함이야말로 청춘의 대표 이미지, 썸네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눈이 왔다. 제법 폭설이었다. 하얀 눈이 우리 동네의 풍경을 다 지우고 나니, 지나다니는 행인들의 청춘이 오롯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팔짱을 끼고 다니는 학생들. 눈이 오기 전이나 후나 여전히 심심한 동네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얼굴엔 청춘이 가득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장갑 낀 손이 어떤지 차갑지도 않은데 시린 기분이 들긴 하다만, 한편으론 참 보기에 흡족하다. 젊은 연인들이나, 연인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의 얼굴 같은 것은 참 말로 하기 힘든 에너지 같은 게 느껴진다. 우리 동네가 대학이 다섯 개나 되는데도 참 놀 곳도 없고, 맛집도 없고, 재밌는 일도 없고, 별것도 없는 곳이라는 게 지긋지긋하게 싫다가도, 묘하게 정이 가는 구석이 있는 게 바로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한다.



떠들썩한 청춘도 좋지만,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의 청춘도 참 곱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이 동네에 빼곡하게 들어찬 대학생들이 뱉어내는 뽀얀 입김처럼, 그렇게 혼란스럽고 또 그만큼 귀엽고 예쁜 청춘들이 뿜어내는 활기들이 아주 조용하게 깔려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눈이 와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날이 추워진다. 슬몃 연애를 조금 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조금 귀찮고, 또 나는 할 일도 많다. 기말고사가 금방이고, 그 이후로도 할 일이 태산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쥐똥만한 연애욕구가 저어만치 밀려나고 만다.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이 겨우 요만큼인 게 조금 불쌍한 내 청춘이지만, 뭐 그래도 좋다. 나는 여전히 조용하게 바스락거리고 있으니까. 심심한 우리 동네처럼 말이다. 나도 거꾸로 뒤집어서 탈탈 털어내면 청춘이 까맣게 떨어져 내릴 만큼, 그만큼 숨죽인 청춘이다. 청춘, 그리고 조용한 우리 동네. 그리고 이런 나까지도, 마음에 드는 날이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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