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자취방에 방문하셨다. 앞으로 1년간, 국내학술 연수과정을 위해 아버지는 다시 서울 생활을 하시게 되셨다. 내일이 입학식이다. 경쟁률이 꽤나 높았다고 들었다. 그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시는 아버지. 아버지의 얼굴에는 긴장 같은 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어려운 일을 참으로 담담하게 해낸다. 우리 아버지는, 참 멋있는 사람이다. 슈퍼맨같이 느껴지던 아버지도 자식이 자라는 만큼 점점 작게 보이게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아버지를 작게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성년이 된 지금까지도, 아버지는 여전히 대단하고 멋있는 사람이다. 아버지와 저녁을 먹었다. 마주 앉아서, 아버지가 고기를 구워주는 모습을 바라본다. 분명 아버지도 나이가 드셨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세월이 앉아 있다. 날씬했던 몸매도 어딘지 약간 푸근해지셨고, 매섭던 눈매나 짙은 눈썹도 많이 부드러워지셨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직 늙지 않으셨다. 내 눈에 비친 아버지는 언제나 젊은 아버지, 커다란 아버지, 무엇이 옳은 지 아는 아버지, 눈이 반짝이는 아버지다. 우리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다.

어릴 때 나는 모든 어른 남자들은 친구와 지인이 많고,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평판이 좋은 줄로만 알았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기 때문이다. 조금 더 커서 교복을 입고부터는, 우리 아버지의 센스를 부러워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 부러움에 어쩐지 우쭐거리기도 했다. 젊은 마인드의 아버지 덕분이었는지, 내 학창시절은 별다른 사춘기도 없이 지나갔다. 스무살, 내가 새내기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아버지는 고향과 서울을 오가는 차 안에서 딸의 인생 멘토가 되어 주셨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하는 질문에 늘 “우리 아버지 같은 남자요”하고 대답하고 그랬었다. 내 눈에 아버지는, 내 아버지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객관적으로도 멋있는 사람이다.

나는 아버지의 딸이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내게도 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아버지를 오랜만에 뵈어서 그런 것일까.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저녁이다. 이룬 것, 가진 것에 발을 붙이고, 못 가진 것을 향해 팔을 뻗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 우리에게 늘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은, 얼마나 잊기 쉬운 것인가. 나는 그것들이 함께 해주기에 비로소 온전히 내가 된다.

나의 유년시절의 아버지와, 내 학창시절의 아버지와, 새내기 때의 아버지와, 그리고 지금의 아버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 역시 없다. 내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아버지들이 고스란히 내 안에 벽돌처럼 쌓여 있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모습과, 아버지의 말씀과, 아버지의 표정과, 아버지와의 기억을 벽돌삼아 다리삼고, 팔을 삼고, 벽돌은 다시 내 눈이 되고 입이 되고 뇌가 되어서 나는 아버지의 딸로서 세상에 이렇게 있게 된다. 그렇기에 설령 아버지의 피를 받지 않았더라도, 나는 아버지의 딸이다.

그렇게 가만히 내 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수많은 벽돌들이, 내가 나로 있게 해준 그 소중한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 친구들, 선생님들, 내 생각과 느낌들, 후회와 깨달음 그 모든 것들이. 늘 곁에 있어 소중함을 종종 잊게 되는 것들. 감히 이런 것을 모두 잊고, 내 스스로를 혼자라고 생각했던 어리석음을 반성한다. 나는 스스로를 감히 못났다고 함부로 비난해서도 안 되었다. 나는 단지 나 하나가 아니다. 내 안에는 내가 정말로 존경하는 사람들 역시 들어있다. 나의 전부가 못났을 수는 없다. 내 안에 있는 아버지를, 내가 내 밖으로 끄집어 내지 못함을 반성할 수는 있어도, 내가 내 전부를 덮어두고 비난할 순 없는 거다.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단지 내가 그 사실을 줄곧 잊을 뿐이다.

곁에 있는 것의 소중함을 완전히 잊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는 이견이 없을 테지만, 도무지 얻는 것도 없이 전진 자체에만 목숨을 거는 삶이 바람직하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삶은 언제나 도전이다. 내가 가진 것 중에는 쥐고 태어난 것도 있고, 내가 스스로 팔 뻗어 손 안에 쥔 것도 있다. 내 손에 들어온 것들은 다시 내 발판이 되어 다른 도전에 팔 뻗을 수 있는 계단이 되어준다. 사람은 그렇게 끊임없이 나아갈 때 보람과 만족감을 느낀다. 바람직한 삶의 형태라는 걸 정형화할 수는 없을 테지만, 정체된 삶에서 괴로움을 느낀다는 점은, 진보하는 삶이 바람직하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세속적인 성공으로 달려가는 것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가치관으로 목표를 정하고 삶의 폭과 깊이를 넓혀가는 모든 것이 바로 발전이다. 폭과 깊이를 넓혀간다는 것. 내가 아버지의 삶을 벽돌 삼았듯, 여러 경험들이 벽돌이 되어 ‘나’라는 집을 더 크고 넓게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안에 남아 나를 만들어 주는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무언가 더 얻는 것에만 집착한다면, 그저 나는 벽돌 무더기일 뿐이다. 잊혀지고 깨진 벽돌 무더기. 아무리 많은 벽돌이 있다고 한들, 자그마한 집 한 채 보다 못하다.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잊으면, 그저 커다란 벽돌 무더기의 인생을 살 뿐이다. 돌이켜 보면, 내 안에 제대로 된 집한 채 짓지 못한 인생.

곁에 있는 것은 언제나 잊기 쉽다. 가진 것에 제대로 감사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늘 함께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거죠” 하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남의 빈곤을 보지 않고서 내가 곤궁하지 않음에 감사하는 것은 어쩌면 제대로 된 감사가 아닐지 모른다. 내 여자 친구보다 예쁘고 착한 여자가 이렇게 차고 넘치는 이 세상에서, 내 여자 친구가 얼마나 괜찮은 여자인지 상기하는 이유가 고작 친구의 여자 친구가 지나치게 추녀여서라면, 그게 과연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제대로 감사하는 것일까. 그런 마음으로는, 그녀와의 관계에 제대로 된 의의를 찾지도 못 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이별을 후회하는 노랫말에 공감하면서 속절없이 눈물이나 짜야지 어쩌겠는가. 내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이 든다거나, 내가 손 뻗고 있는 그 무언가가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그 순간에도 내게는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기억들이 함께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그 사실 자체에 감사할 줄 알아야한다.

우리는 모두 분명 아주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멋있는 아버지와, 또 그만큼 멋있는 어머니, 내 가족, 친구들, 선생님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힘이 되고 감사한지 모른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 후에 내가 가진 것들을 계단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면, 분명 이 길의 끝에서는 후회 없이 근사한 건물 한 채씩 마음속에 지어져 있을 테니까.    

오랜만에 아버지를 뵈어서 그런가, 옛날노래가 생각난다. 요즘 애기들은 아마 들어보지도 못했을 거다. H.O.T의 빛. 딱히 이 노래를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었는데 글을 쓰고 있는 내내 이 노래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늘 함께 있어 소중한 걸 몰랐던 거죠.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준 소중한 사람들을. 가끔씩 내가 지쳐 혼자라 느낄 때 언제나 내게 힘이 돼 준 사람들을 잊고 살았죠. 이제는 힘들어도 지쳐도 쓰러지지 말고 당신의 내일을 생각하며 일어나요.” 이래저래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나는 저녁이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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