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2013년의 첫달을 보내고




시작이 반이라 누가 그랬던가. 지금껏 살면서 시작이 반이었던 적은, 사실 그렇지 않았던 적보다 드물다. 마음먹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지만, 초심을 이어가는 것은 마음을 먹는 것 그 이상으로 힘이 든다.

2013년 다이어리를 꺼내본다. 반년을 사용할 계획으로 산 신년 다이어리는, 아직도 보송보송 새것 냄새가 난다. 이제 2013년의 1월은 끝이 났다. 2월의 먼슬리를 훑어보면서, 어쩐지 2012년을 보낼 때보다 더 착잡한 기분이 된다. 한 달. 무언가를 이루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약 4.4주, 31일, 744시간. 그렇다고 짧다고만 보긴 힘든, 그런 시간. 별 것 아닌 기간이지만, 이 한 달들을 열두 개만 모으면 다시 2013년과 작별할 때가 된다. 2014년. 지금은 멀게만 느껴지는 2014년도, 그렇게 금방인 거다.

신년을 맞이해서 다이어트니 금연이니 여러 가지 새해 목표를 세운 사람들이, 1월 중후반부터는 신년 계획을 하나 둘 포기하고 있는 모양이다. 잠시 줄어들었던 담배 매출이 다시 오르고, 늘었던 다이어트 관련 상품들의 매출은 다시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한 달 동안 초심을 유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반증이다.

한 달. 참는 자의 입장에선 길고 또 길고, 또 긴 시간이겠지. 한 달? 사실 이렇게 길게 버티는 것도 참 드물다. 주로 3일. 길면 일주일 정도.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작심삼일의 기억 하나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주로 ‘이제는 정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겠어!’ 따위의 결심을 자주 한다. 아침형 인간이 되고야 말겠다는 굳은 다짐들은 결국 3일, 72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장벽 앞에 무릎을 꿇고 쓰라린 패배의 기억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이 다짐은 내 어린 시절부터 단골 레퍼토리였다. 초등학교 방학, 중학교 방학, 고등학교 3년 내도록, 그리고 대학생이 된 지금은 심심하면 한번씩. 진짜로 시작이 반이었다면 나는 이 과업을 거의 완성할 단계에 있어야 하겠지만, 이 경우는 결코 시작이 반이 아니었다. 슬프게도. 난 아직도 아침마다 비실비실하게 침대로 다시 기어들어가길 좋아하는 의지박약아고, 덕분에 새벽에도 말똥말똥한 내 두 눈을 뜯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매번 내일 아침은 꼭 일찍 일어나고야 말겠다고 부질없는 다짐을 하곤 한다.

사람들의 결심이 실패로 돌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연과 다이어트, 아침형 인간, 이 모든 것이 정말로 그렇게 성공하기 어려운 도전과제인 것일까. 왜, 우리 능력 밖의 일이라면 우리의 이런 잦은 실패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갈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 모두, 식후 끽연의 유혹을 참고, 먹고 싶은 것 하나를 참고, 아침 이불의 유혹을 참아내는 것이 결코 우리의 능력치로 해내지 못할 일이 아니라는 건, 우리도 알고 있다. 나보고 당장 축구선수가 되라는 것도 아니고, 원어민처럼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해보라는 것도 아니고, 하루를 25시간으로 만들어보라는 것도 아니다. 내가 못할 일을 하자는 것도 아닌데, 왜 매번 실패를 하는 것일까. 작심삼일의 벽은 왜 이렇게 높은 것일까. 의지박약이라서, 그럼 그 의지가 내 능력치의 한계인 것일까.

이쯤에서 친구의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내 가슴 아픈 실패의 기억을 논하려니 괜히 찔려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친구는 아마 매번 결심하던 것처럼 다이어트를 새로이 결심했다.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 아마도 문득 거울을 봤는데 자기의 모습이 뚱뚱해 보였다든가, 작년까지는 잘 입고 다녔던 바지가 맞지 않는다든가, 자신의 나이를 셈해보다 청춘을 살찐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아졌다든가, 뭐 그런 흔한 이유였을 것이라 추측한다.

늘 하는 다이어트 다짐이지만, 이 친구의 결심은 다른 때보다 제법 확고해 보이긴 했었다.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 그때 친구가 선택한 것이 ‘덴마크 다이어트’의 수정판이었다. 덴마크 다이어트가 무엇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빵 쪼가리랑, 자몽 쪼가리, 커피 한잔 이 따위 식단으로 하루를 버텨야 하는 뭐 그런 혹독한 시스템이었던 것 같다. 얼마간 버티면 소고기도 식단에 있다고 신나서 내게 설명해주고 그랬는데, 나는 뭐 고기를 먹든지 자몽을 먹든지 관심이 없었기에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렸었다. 이 친구가 이렇게 열 내다가 그만두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다이어트는 결국 2주 만에 실패로 끝이 났다. 이 친구가 이만큼 길게 식단을 지킨 적은 처음이었기에 성공을 조금 기대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결국은 여타 다른 ‘무슨무슨 다이어트’처럼, 입에 담지 못하는 금기어가 하나 더 추가 되는 것으로 마무리 되고 말았다.

처음 며칠간은 곁에서 지켜보기에도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다. 아침을 쪼가리들로 때우려니 도무지 힘이 나지 않는다고. 게다가 자몽은 생각보다 맛이 없다 했다. 갑자기 줄은 식사량에 적응하는 동안, 친구는 외출 자체가 아주 뜸해졌다. 바깥세상은 굶주린 처자가 나다니기에 너무 많은 유혹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학교, 집, 아르바이트. 이렇게 세 군데만 전전하며 예의 그 쪼가리들을 담은 도시락을 보물처럼 싸들고 다닌 지 1주일. 식단에 처음으로 나타난 ‘소고기’를 보며 내 친구는 감격에 겨운 나머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소금도 후추간도 없는 아주 심플한 소고기 반찬일 뿐이지만, 그를 입에 넣는 순간, 옛날 초콜릿을 처음 먹었을 선조들의 미각적 감동이 어떤 것이었을지 공감이 간다나 뭐 그런 소리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놨었다. 그런 소소하기 그지없는 맛에서 감동을 느끼게 된 그녀의 혀와, 뇌를 지켜보면서, 나는 정말로 이 친구가 이번에야 말로 체중감량에 성공할 것만 같은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또 1주가 이어졌다. 그녀의 식단에 적응이 끝난 그녀는 슬슬 외출을 하기 시작했다. 밖의 음식들에 아주 의연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 유혹에 무너지거나 하진 않았다. 지난날의 은둔 고행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마 그것들을 입에 넣을 수가 없다나. 간식도, 음료도, 일절 입에도 대지 않고 자신이 싸들고 다니는 자몽쪼가리만 고수하는 그녀.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2주 만에 그녀는 제법 살이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패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친구더러 독하다느니, 마음만 먹으면 다 해낸다느니, 칭찬인지 아닌지 모를 말을 했다. 친구도 이런 말들을 훈장처럼 자랑스러워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그녀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까닭은, 어이없게도 단 한 입의 케이크였다.

친구는 당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 카페 사장님은 일도 잘하고 싹싹한 내 친구를 아주 맘에 들어 하셨다. 원래 한 학기 동안만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었는데, 사장님께서 자꾸만 알바 더 해볼 생각 없냐고 자꾸 잡으셔서 (파트타임 알바생에게 이러는 경우를 나는 생전 처음 봤다) 친구는 거의 1년 가까이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러다보니 사장님께서 이 친구를 다른 아르바이트생보다 각별하게 챙겼었나보다. 매번 싸오는 도시락이 부실해 보이는 게 마음이 아프셨는지 한사코 사양하는데도 케이크 한 조각을 꺼내 주시더라고. 이거 조금 먹는다고 돼지 되는 거 아니야, 하시면서 가게에서 제일 비싼 케이크를 꺼내 오셔서는 맞은편에 앉으시더란다. 친구는 자신이 먹는 모습을 빤히 보시는 사장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대충 알 것 같아서 도저히 다이어트 때문에 안 먹겠다고 말을 못했다고 한다. 자신을 딸처럼 여기는 엄마 같은 마음? 잘은 모르겠지만 사장님께서 종종 친구더러 딸 같다는 말을 하시곤 했다고 한다. 친구에게 본인을 지칭하면서도 ‘엄마가’라는 말실수를 유독 많이 하셨다고. 그래서 그 케이크 한 조각을 먹었다고 한다. 별로 힘든 일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먹는 케이크는 정말 천상의 맛이어서, 한 입을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보니 접시가 말끔하게 비워져 있었다고. 하지만 그걸로 친구의 다이어트는 끝이었다. 봇물 터지듯이 친구의 식성은 폭발했고, 치킨과 기타 등등으로 회포(?)를 풀면서, 아 이번에는 성공일 줄 알았는데 아깝다, 하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오늘은 없던 일로 하고 내일부터 다시 해봐, 하고 조심스럽게 말해봤지만, 그게 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케이크 사건 이후 며칠간 깨작깨작 이어가던 친구의 덴마크 다이어트는 흐지부지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트레이너들의 말에 의하면 다이어트는 사실, 하루 폭식을 했다는 사실이나 며칠 운동을 빠졌다는 사실에 완전히 좌절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일주일동안 식단을 조절하며 매일 운동하기로 했다면, 그걸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가끔 식단과 운동 스케줄을 지키지 못했더라도, 그 후회에 잡아먹히지 말고 이를 만회하려는 마음으로 다시 원래의 계획으로 복귀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다. 어제의 실수를 만회하려 무리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것이 꾸준한 운동 스케줄을 망치는 원인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고 한다. 운동을 이틀 빠진 뒤, 그 이틀을 만회하려고 평상시 두 배로 운동을 해버린다면 다음날은 아마 다시 운동을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한번 빠지고 나면 두 번째는 훨씬 더 쉽다. 충분한 반성 후에 원래 스케줄로 복귀하는 것이 오히려 그 실수를 만회하는데 더 효율적인 방법이다.

더불어 트레이너들은 이렇게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다이어트를 마음먹기 이전에는 늘 많이 먹으면서 운동도 하지 않으며 살아왔지 않은가. 하루 이틀 그때의 생활로 돌아갔을 뿐이다. 다시 계획으로 복귀하면 그만이다. 그렇지 못하고 그 좌절감에 사로잡혀 계획을 버리고 완전히 그때 생활로 돌아가 버리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말이다.

2013년의 2월. 신년의 첫 달은 이렇게 끝이 났다. 모두들 새로운 다짐은 잘 지켜가고 계실는지? 만약 흐지부지 흩어져 버린 지 오래되었다 하더라도, 우리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다시 마음을 추슬러보자. 2013년은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작심삼일 그까짓 거, 삼일마다 새롭게 마음먹으면 그만인 것 아닌가!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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