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라떼아트





우리 집 앞에 작은 카페가 하나 더 생겼다. 아주 작은 카페다. 테이크아웃만 취급하는 카페. 가격대는 아메리카노가 2500원, 대부분 3000∼4000원 정도로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에 비하면야 저렴한 수준이다. 매장 안에 흔한 테이블 하나 없지만, 이 카페는 방학 중에도 꽤 많은 이들이 찾는 카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기한 일이다. 솔직히 2000원이든 3000원이든 단지 커피 한잔 가격으로 지불하기엔 어쩐지 아까운 기분이 들어서 난 한 번도 이 카페에 들러본 적은 없었다. 카페를 찾는 이유엔 ‘커피’보다는 ‘장소’의 개념이 더 크기 때문일까,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직접 내려먹으면 그만인 것이다.

카페가 개업하기 이전에 그곳에는 미용실이 있었다. 이 사실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작다곤 해도 아주 한 평짜리 테이크 아웃점만큼 작은 가게는 아니다. 굳이 만들려고 했다면, 저 안쪽으로 조리대를 훅 밀어놓고, 앞쪽으로 테이블을 놓는 대도 한 두세 개는 넣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크지 않은 원룸 정도의 크기라고 해야할까나. 대학가 근처의 카페가 흥하는 이유 중 하나가 수다 떨고, 공부하고, 과제할 ‘장소’를 제공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가게 전체를 음료를 만드는 공간으로 만들어버린 이 획기적인 가게에 대해, 나는 절대 긍정적으로 전망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근방에는 그보다 더 저렴한 가격의 테이크아웃점이 하나 더 있다. 불과 1분 거리에 말이다. 3분 거리에는 그와 비슷한 가격대의 조금 큰 카페도 있다. 물론 테이블도 많고, 의자도 푹신푹신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손님은 점점 더 늘어났고, 가뜩이나 비좁은 가게 안 ‘손님들의 자리’는 북적이는 사람들로 점점 더 좁아졌다. 오며 가며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자니 궁금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 가게는 흥하고 있는 것일까.

그 궁금증이 결국은 카페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청년 둘이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었다.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여느 카페들처럼 커피향이 향긋하고, 에스프레소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스팀이 우유를 데우는 소리, 소소한 인테리어 소품들. 딱 카페같이, 예쁜 공간이었다. 그렇지만 아주 유별난 구석이랄 건 없었다. 단지 간단한 카페라떼를 주문했을 뿐인데도 어째 조금 오래 걸리는 것 같다? 하는 생각을 슬슬 할 때쯤 주문한 라떼가 나왔다. 별다를 것 없는, 테이크아웃잔의 카페라떼. 흠 잡을 데 없는 온도와  맛이었지만, 그게 막 호들갑 떨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아주 유별날 건 없지만 가게도 예쁘고, 커피도 맛있는 카페. 아주 크게 날 설득 시킬만한 ‘한방’은 없었지만, 그래도 손님이 많을 수 있을 만하다, 하고 납득은 그럭저럭 가는 카페였다. 커피를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카페에서 우리 집까지는 정말 거짓말 안하고 1분, 그러니까 60초가 안 걸린다. 책상 앞에 앉아서 스트로우 없이 그냥 마실 생각으로 테이크아웃컵의 뚜껑을 열었는데, 나는 어쩐지 내가 찾던 그 ‘한방’을 맞고 말았다. 뜬금없는 라떼 아트. 벌써 스트로우로 몇 모금 마셨고, 또 오는 동안 좀 흔들리기도 했을 텐데, 여전히 예쁜 하트가 별로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로 나에게 인사를 날리고 있었다. 아니, 라떼아트를 했으면 라떼 아트를 했다고 티를 내야지, 이렇게 무심하게 정성들인 커피라니. 비록 테이크아웃컵에 담겨, 손님들이 자신들의 정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 없을지 조차 알 수 없겠지만, 티내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하게 한잔 한잔 정성들여 커피를 만들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감동 비스무리한 감정이 슬몃 들었다.

내 돈 주고 산 커피 한잔에 감동을 들먹이는 것까지는 오버지만, 의외의 순간에 누군가의 정성을 발견하는 것은, 그 정성이 크거나 작거나 꽤 감동적인 일임에는 틀림없다. 신경 쓴 것은 티가 나기 마련이다.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신 서랍장 커튼 하단에 손수 수놓으신 노란 꽃 한 송이를 발견할 때. 레포트 상단에 스템플러 심을 예쁘게 감싼 종이테이프. 오늘의 패션에 맞춰 색깔을 바꿔 맨 신발 끈. 냅킨에 적혀있는 ‘맛있게 드세요’라는 손글씨.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오히려 작은 부분이라서, 작은 부분까지 마음 써준 그 마음이 고마워진다. 진심이 통하는 부분은 언제나 작은 부분이다. 그 카페, 비용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예쁘다’라는 생각이 드는 인테리어는, 사실 알게 모르게 엄청난 비용이 투자된 결과 일 것이다. ‘흠 잡을 데 없다’ 하는 그 커피 맛도, 사실은 엄청난 연습의 결과겠지. 하지만 감동은 소소한 부분에서 찾아온다. 깨끗하고 좋은 시설을 갖춘 수많은 가게들이, 언제나 감동적인 것만은 아닌 것도 같은 이유다. 의외의 순간. 당연한 것이 아닌 부분에서 발견되는 진심. 이것은 정말로 그 사람이 구석구석까지 진심인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조금 더’ 신경 썼기 때문에, 사소한 부분이 눈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교수님께서 과제를 내시면, 학생들은 어쨌거나 과제니까, 학점은 받아야 하니까 다들 과제를 ‘열심히’ 한다. 과제의 방향은 맞게 설정했는지, 내용에 비약은 없는지, 누락된 내용은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한다. 과제를 열심히 하는 것 자체도 참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건 교수님이 보시기에 전혀 의외의 일은 아니다. 학생은 과제를 열심히 해야 하니까. 하지만, 한 번 더 신경 쓴 폰트, 가독성을 고려한 문단 구성, 스템플러 심을 가려 붙인 단정한 종이테이프. 이런 부분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때로 감동적일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하지 못한 소소한 정성을 발견하는 때, 이 학생은 ‘정말로’ 열심히 하는 구나, 하고 와 닿는 순간이다. 그러고 나면, 이 학생의 모든 ‘열심’이 눈에 전부 들어온다.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건 이전부터 알고 있지만, 그것이 이 마음 깊은 데 까지 와 닿는, 그런 순간.

엉뚱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고교 물리 시간에 배웠던 최대 정지 마찰력과 운동 마찰력에 대한 이야기랑 비슷한 점이 참 많은 것 같다. 뭐 나는 문과생이고 해서, 물리는 정말 겉핥기 수준으로 익힌 게 전부지만, 그래도 아직 기억하는 부분 중 하나가 최대 정지 마찰력에 대한 부분이다. 이 부분을 배울 때, 처음으로 ‘물리’를 배우는 기쁨이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뭐 어려운 수식의 공식 같은 건 하나도,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최대 정지 마찰력이, 운동 마찰력보다 크다는 것, 이거 하나는 기억난다. 뭔 소린가 하면, 정지한 물체를 움직이려고 힘을 가하면, 물체가 움직이기 직전까지가 힘들지,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덜 힘들다는 의미다. 되게 무거운 냉장고 같은 걸 뒤에서 민다고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냉장고를 밀 때, 아무리 낑낑 힘을 써 봐도 꼼짝없다가, 이얏! 기합에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쉽게 밀어낼 수 있다. 어렸던 내게는 어려 모로 놀라운 ‘일상의 재발견’의 순간이었다. 이 하나의 원칙에, 여러 인문과목보다 더 많은 인문적 교훈을 받았었다. 엉뚱하지만, 진짜로 그랬었다. 감동도 풀어 말하자면 마음을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정도면 마음이 움직이겠지.’하는 정도로는, 정지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보다 더 많이 마음을 써야지만, 정지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처음에는 진심을 몰라주는 상대 때문에 속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해서 진심을 들이붓다 보면, 어느 순간 상대의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 온다. 그 이후부터는, 그 이전만큼 힘들이지 않고도,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게 되는 것이다. 나의 진심들을 돌아봐주고, 내가 티내지 않은 부분조차도 찾아서 봐준다.

정성을 들인 것은, 티가 나기 마련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은 티가 난다. 누군가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자. 포기하지 말고, 더 큰 진심으로,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정성을 다해보자. 7시간 8시간 공들인 레포트를 교수님께서 알아주지 않는다면, 폰트와 자간, 표지, 테이핑까지 다 신경써보라. 작은 부분이다. 이것이 무슨 힘이 있겠냐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작은 부분 만이었다면 아무런 힘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의 노력과 정성위에 그 작은 정성이 더해져, 교수님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 후에는, 당신의 7시간 역시, 알아주실 거다. 우리 집 앞의 카페를 지날 때마다, 뚜껑 안에 공들인 라떼아트가 자꾸 생각나 마음이 따뜻하다. 그 전에는 이상하게 여겨지던 가게의 구조도, 이제는 손님에게 한잔 한잔 더 좋은, 공들인 커피를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읽혀진다. 저기 서 있는 많은 손님들도, 아마 나와 같이 훈훈해진 마음으로, 또 다시 그 카페를 찾고 있는 걸지 모르겠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