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성형수술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는 이제 옛말이다. 부모님 날 낳으시고 의느님 날 완성하시니, 같은 얼굴로 빚어진 이들 모두 형제자매라. 형제자매라는 말이 과하지 않은 게, 세상에 얼마나 닮은 사람이 많은지. 얼굴 만드는 공장이라도 있나 싶을 정도다. 아까까지는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나와 꼭 닮은 누군가를 마주하는 기분은 어떨까. 나와 똑같은 도플갱어를 발견한 것처럼 소름끼치는 일일까. 어쩌면 서로를 닮은 얼굴을 스캔하면서, 내가 쟤보다 잘 되었네 못 되었네 냉철하게 따져볼지도 모를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얼굴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이 아니라, ‘의느님’께서 선사하신 새로운 얼굴이니까 말이다. ‘의사’와 ‘하느님’의 합성어인 ‘의느님’이라는 칭호도, 새로운 삶을 선사하신 성형외과 의사의 전능함(?)을 하느님에 빗댄 것이다.

조상님들의 유전자들의 랜덤 조합을 통해 동그랗고 큰 눈, 오똑한 코, 앵두 같은 입술이 희고 매끄러운 작은 얼굴에 올망졸망 태어날 가능성도 희박하거니와, 그리고 그 유전자 잭팟이 터지는 것이 조선시대도, 80년대도 아닌 바로 21세기 지금, 그러니까 미의기준이 딱 ‘그러할 때’에 ‘그러하게’ 태어날 확률은 또 얼마나 적은가. 그러니 세상에 딱 그 시대의 미의기준에 부합하는 미인이 드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성형수술이 지금처럼 흔한 일이 되기 전까지는 예쁘다 싶으면 연예인이었는데, 이제는 동네 언니들도 죄다 연예인처럼 예쁘니 연예인 하려면 좀 예뻐서는 무리다, 무리.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시고, 끝내 완성하는 것은 성형외과 의사의 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그렇게 낯설지 않은 만큼, ‘후천적 미인’이 여기저기 범람하는 탓에 오늘날에는 참 미인이 차고 넘치게 많아진 것 같다. 사진의 기술과 이미지 편집 기술까지 더해져 SNS엔 예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예쁜 사람이 발에 치일만큼 많은 이때에, 못생긴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그렇게 또 한사람이 의느님에게 새로운 삶을 부탁한다.

사실 성형수술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 우리나라가 성형수술 강국이라고 불리는 건 어쩐지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형수술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본인이니까, 자신의 외형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도 자신의 몫이라는 부분에 동의한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육신에 칼을 대는 것이 자신 본래의 모습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 같아 꺼림칙하긴 하지만, 더 예뻐지고 싶다는 것이 자신의 지금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과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므로 그 꺼림칙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신의 삶, 외모를 결정하는 그들의 판단을 반대한다거나 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

예쁜 외모가 주는 삶의 혜택은 생각보다 많다. 잘생긴 사람이 일을 더 잘한다고 판단한다는 심리학 연구결과가 보여주듯, 외모라는 것이 단순히 겉모습으로 치부하기엔 삶의 여기저기에 깊은 영향을 주는 몇 가지 대표적 요소 중 하나다.

솔직히 나 역시 예쁜 사람이 좋다. 아름다운 여자연예인은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친구가 예쁘면 실수를 해도 화가 안 난다. 잘생긴 훈남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언제나 옳다. 훈남이 내게 길이라도 물어봐준다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친절한 여자에 빙의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설명해줄 자신이 있다.

반면 못생긴 사람에 대한 시선은 냉혹하다. 소개팅 주선을 하려해도 못생긴 친구는 성격도 묻기 전에 사진만으로 까인다. ‘난 외모 안 봐’라는 말이 ‘나는 못생긴 사람도 상관없어’라는 의미인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특별히 예쁜 여자만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뜻일 뿐이지. 더불어 거기에는 ‘그렇다고 보통 이하를 원하는 것도 아니야. 게다가 예쁘면 예쁠수록 좋지’ 라는 뜻이 포함이다.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외모가 떨어지면 취업에도 알게 모르게 불이익이 있다니, 못생긴 사람이 아무리 자신의 본래 모습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수술을 해서라도 예뻐지는 길을 선택하겠다면 그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외모에 상관없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모를까 못생긴 사람을 싫어하고 예쁜 사람을 좋아하면서 성형은 절대 안 된다며 못생기게 살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인가.

콤플렉스를 해소하고 더 나은 삶이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성형이 지금과 같은 악명을 얻게 된 것은 아마 ‘성괴’같은 신조어가 생길 정도의 성형 풍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괴는 성형괴물이라는 뜻이다. 성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다. 그것도 ‘괴물’이라 불릴 만큼 과하게. 요즘에는 ‘강남언니’, ‘청담동언니’, ‘성형괴물’, ‘성괴’라는 신조어가 뜨거운 이슈다. 보형물로 봉긋한 이마에 동양인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빳빳하게 선 콧대, 가능한 한 크게 튼 눈과, 안젤리나 졸리 만큼이나 도톰한 입술, 뾰족하기 그지없는 턱,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입가 주변에 빵빵하게 채워 넣은 볼…. 성형한 여자들은 죄다 찍어낸 듯 같은 모습이다. 뭐랄까 쳐다보고 있으면 분명 이목구비가 다 예쁘긴 한데 전체적으로 이물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표정조차 자연스럽지 못한 얼굴은 약간 섬뜩한 느낌도 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 가지 생각이 강하게 머리에 울린다. ‘아니, 저게 예쁜가?’

사람의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때는 단순히 이목구비의 아름다움이 전부가 아니다. 물론 이목구비의 비율이나 모양이 아름답다면 그 얼굴이 예쁘긴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만으로는 호감을 이끌어내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사람이 컴퓨터라면, 얼굴은 모니터쯤 된다. 사람의 외면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지만, 외모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내면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외모이기 때문이다. 착한 마음씨가 아름다운 미소로 나타나기 때문에, 흉한 입을 가진 사람은 착한 마음씨를 상대방이 알아채려면 많은 시간과 편견 없는 관심이 필요하지만, 아름다운 입을 가진 사람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착하게 보이게 만들기 쉬운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에 집착한 나머지 아름답긴 하지만 웃지 못하는 입을 가지게 된다면 오히려 그 사람을 감정이 있는 사람으로 느끼기 더 어려워져 버리지 않을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표정도, 자신만의 개성도 찾아볼 수 없는 복제된 듯 비슷비슷한 얼굴들이 사람들을 거북스럽게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했을 때 성형의 바람직(?)한 모습은 과하지 않은 수술을 통해 자신의 콤플렉스를 없애고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성형수술은 ‘하지 않을수록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현명하게 득실을 비교하여 성형여부를 선택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코가 너무 낮아서, 눈이 단춧구멍만해서, 그런 콤플렉스를 제거할 수 있다면 성형수술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통해서라도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것인가 하는 스스로의 진지한 고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의 콤플렉스를 제거하고 스스로를 더욱 사랑할 수 있다면 성형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삶은 자신의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현재의 성형풍조는 성형수술을 ‘하지 않을수록 좋은 것’이라는 전제 조건 자체가 아예 없다. 성형수술을 하지 않고도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거나, 다른 부분을 계발함으로써 외모적인 차별을 극복해낼 수 있다면 (얼굴이 예쁘진 않지만 아름다운 미소를 연습하여 호감을 얻는다거나) 성형수술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쌍꺼풀 수술을 한다고 완전한 미녀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작은 눈에 대한 콤플렉스가 어느 정도 해소 될 테고, 그렇다면 취업도 대인관계도 연애도 그럭저럭 잘 해낼 수 있는 자신이 생긴다, 한다면 쌍꺼풀 수술만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쓸데없이 완벽한 미녀가 되기 위해 이마도 하고 눈도 하고 코도 하고 입도하고 볼도 하고 턱도 하는 건 완전히 오버다. 완벽한 성형미녀가 되는 게 평생의 소원이라 그를 이루지 못하면 삶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성형수술은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 예뻐지기 위해서 선택한 성형수술이 오히려 나의 개성과 자연스러움을 해치면, 예쁘기는커녕 상대방에게 거북스러움만 안겨주는 인조인간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다 똑같이 생긴 여자들의 과도하게 부풀려진 눈 밑 애교살이 주는 거북스러움이 그녀들을 ‘괴물’로 불리게 만든 것이다. 나 자신을 잃고 괴물이 되지 말자. 보형물로 도톰한 입술보다, 마음이 비칠 만큼 맑게 웃는 입술이 더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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