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빼든 ‘삼성그룹’




삼성그룹이 2014년을 앞두고 대대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인용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은 이와 관련 “삼성전자 외에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회사가 없었다‘며 변화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이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수년간 해온 고민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 ‘후계구도’를 고려해서라도 무언가 대책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요동치고 있는 삼성그룹의 내부 분위기를 들여다봤다.


# 이건희 회장의 3남매(사진 왼쪽부터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가 삼성에버랜드로 둥지를 틀게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향후 후계구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 외엔 글로벌 기업으로 내세울 만한 회사가 없다.
삼성이 뿌리 깊은 고민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최근 인사를 통해 금융 계열사의 수장이 모조리 교체됐다. 사장 승진자가 삼성생명 안민수 부사장 1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문책성 인사에 가깝다는 평가다. 

이번에 대표이사가 바뀐 금융계열사는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등이다. 삼성그룹은 이외에 증권, 자산운용, 선물 등 6개 금융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금융계열사 절반의 대표이사가 교체된 셈이다.

금융계열 ‘절반교체’

물론 교체의 배경은 조금씩 다르다. 삼성 금융 계열사 핵심인 삼성생명의 대표이사 사장엔 김창수 삼성화재 대표이사가 선임됐다. 김 사장은 1982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삼성그룹 비서실 인사팀, 삼성물산 기계플랜트본부장, 에스원 등을 거쳐 2011년 말부터 삼성화재를 맡아왔다.

삼성화재 사장은 안민수 삼성생명 부사장이 승진 이동했다. 안 부사장은 1982년 삼성전자로 입사해 2년 뒤인 1984년부터 줄곧 삼성생명에 몸담은 금융 전문가다.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엔 삼성전자 인사팀장을 맡았던 원기찬 부사장이 승진 발령됐다.

원 사장은 삼성전자 인사팀, 삼성전자 북미총괄 인사담당 상무보, 북미총괄 인사담당 상무를 거친 삼성그룹내 대표적인 인사통이다. 최치훈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은 삼성물산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그룹의 핵심이라 불리는 부회장단에도 변화가 이뤄졌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에 3명, 금융계열사에서 1명, 비전자계열사에서 1명 등 총 5명의 부회장단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 중 삼성전자의 부회장 3인(이재용,강호문,권오현)은 그대로 역할을 유지한다. 금융계열사의 부회장을 맡고 있던 박근희 삼성생명 부회장은 부회장직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삼성사회공헌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에 더해 비전자계열사의 부회장직을 맡던 정연주 삼성물산 부회장 역시 고문직으로 위촉됐다. 올해 부회장 승진자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삼성전자에만 3명의 부회장이 남아 있고 나머지 금융, 비전자계열사에는 부회장직이 모두 사라진 셈이다.

부회장단의 삼성전자 집중도는 예전부터 높았지만 이번 인사처럼 비전자계열사에서 부회장직이 사라진 사례는 없었다. 비전자계열사의 혁신을 위해 삼성전자 출신들을 대거 이동시키는 한편, 향후 후진양성을 위해 부회장 자리를 미리 비워둔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의 DNA”

무엇보다 최근 그룹의 움직임은 ‘삼성전자 출신 약진’으로 요약된다.

총 8명의 승진자 중 6명이 삼성전자 출신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보기술(IT) 모바일(IM) 사업부문 출신들의 승진이 이어졌다. 네트워크 부문을 맡고 있는 김영기 부사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네트워크 부문은 종전 부사장급 조직이었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사장 조직으로 한 단계 올라섰다.

김종호 부사장은 삼성전자 세트제조담당 사장과 함께 무선사업부의 글로벌 제조센터장을 겸임하게 됐다. 세트제조담당 역시 이번 인사를 통해 부사장급 조직에서 사장 조직으로 한 단계 격상됐다.

반도체 사업부의 조남성 부사장은 사장 승진과 함께 제일모직 대표이사를 맡는다. 소재 전문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는 제일모직과 반도체 사업의 시너지 효과 극대화에 나설 전망이다.

삼성카드로 자리를 옮긴 원기찬 신임 사장과 삼성벤처투자 대표이사를 맡은 이선종 신임 사장은 모두 삼성전자 출신이다. 두 사람 모두 삼성전자의 DNA 전파라는 핵심 임무를 부여 받았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DNA를 어떻게 다른 계열사로 전파시킬지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된 것”이라며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인사 원칙을 그대로 적용시켰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삼성에버랜드’다. 제일모직의 패션 부문을 양수한 삼성에버랜드는 이번 인사의 핵심으로 불린다. 이건희 회장의 3남매가 모두 둥지를 틀게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에버랜드 지분 25.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사실상 지배주주에 가깝다. 이부진 사장은 삼성에버랜드에서 리조트 건설 부문 경영전략담당을 그대로 맡는다. 이서현 부사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사장으로 승진해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을 맡게 됐다.
결국 장남이 회사를 지배하는 가운데 여동생들이 각각 사업을 나눠 맡게 된 모양새다. 경쟁을 통한 동기부여라는 측면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삼성에버랜드가 이 달 1일부터 제일모직의 패션사업을 품에 안은 것은 눈길을 끈다.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1일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에 대한 편입을 완료했다. 지난 9월23일 이사회에서 재일모직을 1조5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한지 70일 만이다.

“분할 승계 사전 포석”

삼성에버랜드는 제일모직이 보유한 패션 디자인 역량을 골프와 리조트 등 기존 사업에 접목할 계획이다. 삼성에버랜드가 그 동안 테마파크와 골프장 운영 등에서 축적한 노하우와 결합해 ▲아웃도어 ▲스포츠 ▲패스트 패션 등에서 시너지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김봉영 삼성에버랜드 사장은 “패션사업을 중장기 성장의 한 축으로 적극 육성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모멘텀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업구조 재편으로 삼성에버랜드의 최대 매출사업은 부동산과 건축, 빌딩자산관리 사업인 E&A(엔지니어링&에셋)부문과 급식 및 식재료 사업인 FC(푸드 컬처)부문에서 패션사업으로 바뀌게 됐다.

지난해 삼성에버랜드의 매출액은 3조36억원이다. 사업부별로 보면 E&A가 전체 매출의 약 46%인 1조3705억원을 책임졌고 FC부문이 1조2742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42%였다. 같은 기간 제일모직의 패션부문 매출은 1조7751억원으로 삼성에버랜드 E&A사업 매출보다 약 30% 높은 수준이다.

제일모직의 전체 매출(지난해 6조99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30%에 불과했던 패션 부문이 삼성에버랜드에선 최대 매출처가 되는 셈이다. 업계에선 패션사업이 삼성에버랜드의 최대 매출처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서현 사장의 이동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사장은 2002년 제일모직에 부장으로 입사해 패션 및 광고 계통에서 일했다. 일각에선 이번 사업재편이 계열사 분할 승계의 사전 포석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인사를 통해 삼성가 오너 3세가 모두 삼성에버랜드에 둥지를 틀게 됐다”며 “삼성에버랜드가 향후 후계구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삼성그룹의 대대적인 인사 이동이 어떤 후폭풍으로 이어질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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