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말 천리 간다’ 카더라~?!
‘발 없는 말 천리 간다’ 카더라~?!
  • 승인 2013.12.0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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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진의 문화계 이모저모>


연예부 기자를 하면서 가장 많이 주변에서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이번 사건의 배후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연예인들의 섹스스캔들, 도박연루 사건, 또는 마약 스캔들의 배후에 존재하는 진실을 묻는다. 대체 무슨 소리인가. 노골적으로 하니 날 것 그대로의 단어로 얘기하자. 자기가 좋아서 섞은 몸일 것이고, 자기가 좋아서 뛰어든 판때기 일 것이고, 자기가 좋아서 빨고(대마초)고 꼽고(필로폰) 먹어댄(정제형태의 마약) 것일 진데 대체 무슨 배후 타령인가. 결국 대중들이 좋아하고 궁금해 하고 또 진실이 되기를 기대하는 단 한 단어가 질문 속에 압축돼 있다. ‘음모론’이다. ‘딴따라’로 천대 받는 유교 사상이 21세기인 지금에도 대중들의 인식 밑바닥에 깔려 있는 대한민국 사회 연예인들이 대체 무슨 음모론이 있다는 말인가. 웃겨서 콧방귀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파고들면 대한민국의 독특한 사회 구조가 낳고 있는 출처 불명의 아이러니이자 희대의 연속된 해프닝들이다.

몇 년전 국내에 개봉한 영화 한 편이 있었다. ‘모비딕’이란 영화다. 실체 없는, 아니 실체가 있지만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정부 위의 정부’ 즉 ‘초 정부론’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였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생각조차 불가능했던 스토리가 ‘상업영화’란 테두리 속에서 나름의 해석으로 대중들의 오감을 자극했다. 1990년 노태우 정권 시절 실제 있었던 이른바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을 모티브로 한다. 당시 내용은 이랬다. 보안사가 수천 명의 민간인들을 사찰하고 있다는 게 주요 핵심이다. 얘기를 중심을 어디로 놓느냐에 따라 당시 사건은 ‘보수와 진보’(사전적 개념이 아닌 우리 사회가 보는 개념의 시각을 말한다) 경계선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주요한 사건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사건이 상업적 코드로 풀리며 ‘모비딕’이란 영화를 만들었고, 추후 수많은 음모론의 기본 베이스로 작용했단 점이다.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혹은 추측은 할 수 있지만 그 실체에 대한 증명은 불가능한 그것 자체가 어떤 식으로든 설명 여하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질될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 그래픽=정다은 기자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아니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인터넷 강국이다. 소문은 빠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은 어쩌면 한반도 내의 한민족의 특성을 간파한 가장 창피한 속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남의 뒷말에 쾌감을 느끼고,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극도의 이기주의적 발상에서 시작된 인간 본성에 대한 증명을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하더라’ 또는 ‘~카더라’란 첫 말을 내 뱉는 즉시 온라인을 통해 이는 삽시간으로 퍼져 나간다. 특히 ‘온라인’을 넘어 소셜네트워크(SNS)로 연결된 지금의 사회는 우습게도 루머나 소문이란 단어의 존립 자체를 지워버리는 효과마저 낳게 한다. 문자 그대로 소문이나 루머는 ‘출처가 불분명한’으로 정립된다. 그런데 요즘의 루머나 소문은 그렇지가 않다. 통신 서비스의 발달 자체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어떤 지점을 ‘결과’로 찍느냐에 따라 역으로 추척을 해 나가면 그 시작은 분명히 밝혀지게 된다. 쉽게 말해 이렇다. 어떤 소문이 퍼졌다. 그 소문이 총 100명에게 퍼져나갔다고 치자. 10번째 사람부터 추적을 하든 15번째부터 하든 아니면 50번째 또는 100번째부터 시작을 하든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통신서비스의 역추적을 통해 그 시작점을 찾아내 응징을 한다. 가수 ‘아이유’ ‘백지영’ 등이 최근 여러 악플러들을 추적해 단죄란 이름으로 벌을 했다고 의기양양하다.

이런 분위기, 즉 연예계 루머 사건의 정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악플러들의 단죄가 마무리되는 얼마 전 고점을 찍게 된다. 비슷하지만 다른 또 다르지만 비슷한 사건인 연예인 도박 파문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 사건은 수면위로 떠오르기 몇 달 전부터 증권가 찌라시를 통해 전파되기 시작했다. 뭐 놀랍지는 않았다. 어차피 ‘11월 아닌가’.

연예계에 불문율처럼 떠도는 루머의 달 11월이 됐다. 11월이면 누군가 죽고 또 누군가 사고를 치고 때론 누군가의 섹스 스캔들이 터져 나온다. 아닌게 아니라 에일리라는 이름조차 생소한(연예부 기자인데 가요 쪽에는 관심이 없어서) 여자 가수의 누드 사진이 유포됐다. 이수근, 탁재훈, 토니안, 붐, 양세형 등의 연예인들이 이른바 ‘맞대기 도박’으로 대거 검찰에 붙잡혔다. 아주 비슷한 시기에 연예인 사건이 연달아 터지며 연예부 기자들은 발에 땀이 나는 일만 남았다며 불평이 쏟아졌다. 그렇게 요런 시기에 연예부 기자들은 아주 귀찮은 질문을 주변에서 연이어 붓는다. 질문이 아니라 무언가를 꼭 증명해 보고 싶은 욕구의 탈출구처럼 주변 지인들은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이게 다 국정원의 조작이라면서요?”

이건 대체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최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가기록 폐기 지시, 이석기 통진당 의원의 간첩 혐의, 통진당 해산 논의 등 대한민국을 들썩이는 사건들이 우후죽순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얼마 전에는 동네 단골 술집 사장님에게 허무맹랑한 소리까지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정 선거를 인정 했다면서요” “네!!!!?????” “인터넷에 기사도 떴어요” “대체 무슨 말씀인지?” “그런데 기사가 나온 뒤 몇 분 만에 포털사이트에서 삭제가 됐어요. 국정원에서 그랬나 봐요.”
결국 요지는 사회의 분위기를 흐리는 사건이 터져 나올 때마다 국가에서 주도해 연예인 관련 사건들을 하나씩 터트려 국면 전환용으로 사용한다는 뭐 믿거나 말거나 식의 루머가 실체처럼 떠도는 얘기다. 앞서 언급한 ‘모비딕’이란 영화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부당거래’란 영화에서도 나온다. “조금만 참아 검찰 쪽에서 연예인 사건 하나 준비하고 있다니깐”이란 대사를 통해 이런 루머가 “혹시 그럴 수도 있다”는 무언의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줬다.

사실 이런 루머는 분단이란 상황 속에서 ‘종북’(우리 사회가 진보를 잘못 부르는 형태)이냐 ‘친미’ 혹은 ‘독재’(이것 역시 우리 사회가 부르는 보수의 다른 말)로 양분되는 극단의 사상 개념 형태에서 출발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한국전쟁이란 희대의 민족적 비극을 경험하고 남과 북으로 갈린 형태에서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 사회가 ‘통일’에 대한 방향을 어떻게 보는 지를 두고 갈라진 일종의 시각차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특권계층의 힘을 대중들에게 돌려 진정한 서민적 국가를 꿈꾸는 한 쪽, 자유란 허울을 강조한 채 가진 자들의 재력을 권력과 동일시하며 그 기득권을 유지하려 드는 반대쪽. 이 두 가지가 부딪치며 일으키는 파열음이 여러 사건을 일으키고, 대중들의 귀는 그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반응을 조정하는 일종의 특수 집단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음모론의 실체이자 과거부터 지금까지 떠돌고 있는 이른바 ‘정부 위의 정부’ 혹은 ‘초 정부론’의 수박 겉핥기 식 실체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취재 차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통진당 김재연 의원이 머리를 삭발한 채 108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 현 정부가 조작한 사건으로 인해 지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정당 해산이 임박했다며 “민주주의를 지켜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취재를 마치고 여의도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다. 회사 근처에 새누리당 당사가 있다. 여러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있었다. 대부분이 ‘박근혜 대통령은 부정 선거로 인해 당선된 범죄자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회사로 들어와 노트북을 켜고 기사 마무리를 준비했다. 회사에 켜진 TV로 검찰의 ‘연예인 도박사건’ 종합 보고 뉴스가 나온다.

대한민국 참 어지러운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제 정신으로 살아갈 사람이 대체 누가 있겠나. 그냥 ‘~카더라’ 통신의 루머가 사실인양 믿고 각자가 느끼는 지금의 부당한 현실의 화살을 돌릴 누군가를 찾고 싶은 욕구가 말도 안 되는, 하지만 생각여하에 따라 말도 될 수 있는 ‘음모론’을 양산하고 있는 것 같다. 참으로 웃긴 현실이다.   

<김범진 님은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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