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민영화 이어 의료민영화 논란

이번엔 의료다. 정부가 비영리법인인 병원이 전면적인 수익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의료법인에 영리법인 형태의 자회사 설립을 허용키로 했다. 철도 자회사 설립으로 철도민영화 물꼬를 튼 데 이어 이번에는 `의료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주재로 정부는 지난 13일 `제4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고 이 같은 `보건의료 서비스 투자 활성화` 대책을 확정했다. 정부는 의료기관이 자회사로 영리법인을 만들어 외부 자본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으며, 바이오·의료기기·제약산업과 합작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 의료법 시행 규칙상 병원에 허용된 부대사업은 장례식장, 구내식당, 은행업 등 8가지로 제한돼 있다. 정부는 시행 규칙을 개정해 바이오산업, 건강식품 개발, 의료기관 임대, 외국인 환자 유치를 포함한 여행·숙박업, 온천·목욕장업 등 병원 부대사업의 범위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이 부대사업들은 영리법인인 병원 자회사가 운영할 수 있다.




해외 환자 유치를 위해서는 병원이 여행사, 호텔, 해외 환자 유치업자, 해외 현지 법인 등과 함께 `해외 환자 유치 전문 영리 기업` 형태의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재무적 투자자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 비영리법인인 국내 병원이 해외에 영리법인을 둘 수 있게 한 것이다.

정부는 또 지금까지 금지됐던 병원 간 인수합병(M&A)을 허용하고, 약사가 여러 약국을 개설할 수 있도록 `법인약국`을 허용할 계획이다. 현행법상 약사 한 명은 한 개의 약국만 개설할 수 있지만, 정부는 약사법을 개정해 약사들도 네트워크 형태의 `법인약국`을 설립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번 발표에 대해 보건의료계는 `전면적인 의료 민영화이자 우회적인 영리병원 허용`이라며 극렬히 반발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성명을 내어 "박근혜 정부가 병원의 자회사라는 우회로를 통해 외부 자본 투입 → 영리 사업 → 이윤 배분` 등 주식회사 영리병원 운영체제를 갖추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는 "영리법인 형태의 병원 자회사가 할 수 있는 사업 범위는 부대사업이고, 그 수익을 의료 분야에 재투자하도록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부대사업의 범위가 확대되는데다 영리 행위를 제한하는 각종 규제가 풀리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게다가 사업 수익을 병원에 재투자하더라도, 영리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한 투자자들에게 이익 배분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전망이다. 부대사업을 통한 의료비 상승도 우려된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 방침대로 부대사업의 범위를 연구 개발, 의료 관광, 의료 연관 사업으로 확대한다면, 의료기관들이 의료 서비스 질을 높이는 대신 환자를 대상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각종 부대사업에 투자를 집중할 우려가 크다"며 "의료 연관 사업만 해도 피부 관리, 미용, 건강 증진, 목욕·온천, 헬스, 의료기기 판매 등을 모두 포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치가 법 개정 사항이 아니라는 정부의 입장도 논란거리다. 현행법상 `영리병원`은 경제자유구역 등에 한해 개설하도록 엄격히 제한돼 있으나, 정부는 `병원의 자회사 허용은 법 개정 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상반기 안에 `자회사 설립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방침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정부가 사실상 전면적인 병원 영리법인화를 하면서도 국회를 통과하지 않겠다는 것은 영리 행위를 금지한 의료법의 근본 취지에 어긋난다"며 "가이드라인만 제정해 영리 형태의 자회사를 허용한다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행정 쿠데타에 가깝다"고 맹비난했다.





우 정책실장은 "박근혜 정부가 철도도 자회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민영화하려고 하더니, 병원도 자회사를 통해 민영화를 하려고 한다"며 "비영리법인의 자회사가 영리법인인데 정부는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니, 국민을 바보로 아느냐"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와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료 영리화 정책을 강행하면 이를 저지하기 위한 범국민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안철수 의원도 최근 `의료 민영화` 논란을 낳고 있는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과 원격 의료행위 허용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앞서 대한의사협회는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서 마련된 정부 방침에 반발해 파업을 결의한 바 있다.

자신도 의사 출신인 안 의원은 24일 자신이 주최한 `원격의료 및 의료영리화에 대한 긴급토론회` 토론회 인사말에서 "원격의료와 의료 영리화 시도는 의료 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의료가 공공성보다 효율성이나 수익성을 추구하게 되면, 필수적인 의료행위라도 수익성이 떨어지면 기피하는 현상이 나오고, 저소득 계층 환자는 거부하는 현상도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의료 영리화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지금도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이 많다. 의료 영리화가 이 사각지대를 넓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의료 정책을 경제 논리로만 접근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안 의원은 지난 17일 낸 보도자료에서 "의료법인의 영리화 시도는 정부가 국민이 아닌 대형의료 법인의 편에 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안 의원은 원격 의료와 관련 "오진의 위험성과 책임 소지 등에서 큰 위험이 따른다"며 "환자를 치료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는 원격의료 대상을 `위험성이 낮은 환자`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들은 고혈압·당뇨 등 만성 질환자나 성폭력·가정폭력 환자 등 적극적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이라며 "특히 만성 질환을 앓는 분은 어르신이 많다. 이 분들께는 원격 진료가 아니라 방문 진료가 맞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창준 보건복지부 의료정책과장,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공동대표 등이 발표를 했으며, 송형곤 의사협회 상근부회장, 김철신 치과의사협회 정책이사, 김대원 약사회 부회장, 이용균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연구실장과 한미정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 등 관련 각 측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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