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스물 여섯의 첫 해를 맞으며



우선, 새해 인사부터 올립니다.

2014년이 밝았습니다. 한해를 마무리 하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매해 어김없이 반복되는 일임에도 매번 이렇게 마음이 설렙니다. 나쁜 일은 2013년과 함께 떠나보내시고, 새로이 함께하는 2014년에는 좋은 일만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어째서인지 작년엔 유독 내게 좋은 일이 많이 비껴간 것만 같습니다. 뱀의 해라더니, 모든 뱀띠에게 행운이 가득한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내게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던 모든 일들이 연말 시상식 후보처럼 스쳐지나갑니다. 마지막 2013년의 날과 새로 올 2014년의 첫 날 가운데 즈음에서, 나는 캄캄하게 불 꺼진 방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내가 놓친 것들과, 놓아줘야 했던 것들과,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인지 끝내 얻지 못했던 것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렸습니다.

어슴푸레한 천장에 아쉬움이 서립니다. 나이는 먹었는데 준비 된 것이 없어, 새로 밝아 올 내일이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나이를 먹는 것은 이리도 쉬운데, 제대로 나이 먹는 일이란 정말 얼마나 어려운지요. 준비된 사람의 당당함, 여유, 그런 것들은 닿지도 않는 먼 곳에 있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남들이 쉬이도 이룬 것들이 내게는 깨알만한 희망에 불과한 것 같다 생각했습니다. 쫓아내도 날아갈 듯 말 듯 주위에 맴도는 검은 나비 같던 불운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그 깨알 같은 희망이 조금 더 몸집을 불린 듯 할 때면 나의 검은 나비는 지긋지긋하게도 나의 희망에 나보다 먼저 입을 맞추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기운을 쏟았는데, 그것들은 어디로 다 날아가 버린 것인지 내년을 기다리는 작년의 나는, 2013년을 기다리던 2012년의 나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때에도 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이 자취방에서,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워, 어슴푸레한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눈 감았다 뜨면 내년이 밝아 옵니다. 내가 새로운 해를 맞이할 준비가 미처 못되었다는 것은 나를 약간 조바심 나게 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준비되지 못한 나조차도 포용하는 온화한 시간 앞에 까닭모를 기대를 걸어봅니다. 나는 서둘러 잠을 청합니다. 감은 눈꺼풀이 천장을 가리었지만 중구난방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은 가려지지 않습니다. 나는 내 생각의 끝을 기억하지 못한 채 잠이 들었습니다.

나와 비슷한 청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당신이 올해로 몇의 숫자로 불리게 될지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의 작년이 너무나 고되었고, 운이라는 것이 내게는 별로 따라주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도 나처럼 마지막 그 밤을, 떠나보낼 생각들을 찬찬히 마주하며 감상에 잠겼거나, 혹은 벗과 술로 잊어보려 하였겠지요.

어쨌거나 새해는 차별 없이 다가와 주었네요. 약간은 울적한 기분이 되었든, 즐겁고 유쾌하게 마지막 날을 보내셨든, 마지막 날은 빠르게 가고 새해는 금세 밝아옵니다. 나는 맑은 정신으로 새해 아침을 맞이하고 싶어 차분하게 마지막 날을 보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곤 떠오른 생각들에 울적해지기도 전에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지요. 또 다시 어제와 다름없는 아침이 밝았습니다. 어제와 같지만 같지 않은 아침이었지요. 어제는 작년이 되고, 오늘은 새로운 해의 시작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일 수 있으나, 그래도 새로운 시작이란 가슴을 부풀리게 하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옷을 껴입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1월 1일의 아침을 맞는 기분이 상쾌합니다. 그대로 우리 학교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해가 잘 보이는 뒷산으로 마저 올라가 뜨는 해를 기다렸습니다. 동쪽 산 능선이 붉어져 오는데 해는 뜰 생각을 않습니다, 해가 뜨지 않아도 세상은 이렇게 밝습니다.

나는 간밤의 생각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어두운 방안 천장을 바라보던 내가 떠올렸던 것들을 다시 떠올립니다. 잘 생각해보니, 내가 유독 운이 없었던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다시 내가 놓친 것들과, 놓아줘야 했던 것들과,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인지 끝내 얻지 못했던 것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나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걱정해 주던 가족과, 결별하는 순간까지도 서로의 안녕을 빌어준 연인과, 힘들 때 농담 건네며 웃어준 벗들. 그 고마운 사람들이 내게 얼마나 많은 힘이 되어주었나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또 어떠했습니까. 비록 오늘이 힘겹더라도, 내일은 다시 활기를 찾을 거란 것을, 다시 한 번 일어나 볼 것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운이 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한 해였습니다. 어두운 방안에서 혼자 생각해보는 것은 의외로 보이지 않는 사각이 많았습니다. 어두운 때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씩씩하게 떠오를 해를 기다려야 합니다.

해가 떴습니다. 빨갛고 이글이글한 것이 능선을 삐져나오더니, 언제나 뜨려나 하던 내 조바심이 무색하게도 금세 온전한 얼굴을 내비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정말 나는 26이 되어버렸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지요. 올해는 반드시 내 몫을 해내고 말리라 하는 다짐을 합니다. 약간의 부담감보다는, 뜨는 해를 담은 듯 벅찬 희망이 폐 속에 가득한 기분입니다.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새해 소원을 빌었습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늦은 졸업이지만, 이제 졸업도 하게 될 것이고, 오랜 시간 함께했던 사람들 곁을 잠시 떠나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해 볼 생각입니다. 이 모든 시작이 새해와 함께 라는 것이 기껍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렇더군요. 우리가 하는 걱정들은, 해가 곧 뜰 듯 말 듯 뜨지 않고 애를 태울 때의 그 기분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손발은 시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아무리 붉어오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어도, 해는 곧 뜰 것만 같으면서도 한참을 얼굴을 비치지 않습니다. 이제는 정말 뜨지 않을까, 눈에 힘을 주고 능선을 째려보길 수 번 하다보면, 왜 안 뜨나, 대체 언제 떠? 볼멘소리를 하게 됩니다. 혹시 해돋이를 보러 여기까지 온 노력이 허사가 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곧 해가 뜹니다. 모두들 해가 뜬다는 것을, 결국엔 뜨고야 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괴롭지 않은 것은 그 믿음 때문입니다. 조바심이 나는 것은 다르지 않지만, 바로 그 점이 다릅니다. 해는 오 분이든 십 분이든, 결국 떠야할 때 뜨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작년의 첫 해돋이를 떠올려봅니다. 그날은 날이 흐려 떠오르는 해를 보지 못했습니다. 첫 해 대신, 새해 첫 눈이 내렸습니다. 나는 그 눈을 보며 새해의 첫 다짐을 했었습니다. 첫 일출을 보는가 못 보는가 하는 것은 기분 차이는 있어도,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구름 뒤로 해는 뜬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으니까요. 아쉽지만 그래도 정말 중요한 것은 일출이 아니라, 새해 아침이 밝았다는 그 사실입니다. 아무도 새해 일출을 보지 못했다고 괴로워하고 우울해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참 이상하지요. 우리는 왜 첫 일출을 기다리며 십여 분 간 그렇게 조바심을 냈던 것일까요. 중요한 것은 새해의 아침이 밝아왔다는 사실인데 말입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들도 사실 그런 것들이 아닐까요? 우리는 삶을 왜 살고 있습니까? 나의 삶의 가장 큰 목표를 생각해보면, 사실 ‘행복한 삶’ 그 자체입니다. 이는 마치 날이 궂든 맑든 상관없이 제 시간에 해가 떠오르는 것 같은 일입니다.

내가 행복하고자 한다면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이 당연하게도 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테지요. 우리가 조바심을 내는 것들은, 날이 궂어 일출을 보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그런 사소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마주한 상황이 얼마나 곤란하고 고단한지 하는 것들은,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은 것일 뿐입니다.

일출을 보지 못했다고, 당신의 새해 첫 해돋이를 위한 여정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는 건 아닙니다. 만약 새해 첫날부터 그렇게 불평하고 있다면 오히려 좋지 못한 기운이 생기고 말겠지요. 해를 못 본 것이 아쉬워도 그냥 떡국 한 그릇 나눠 먹으며 새해 각오를 다지는 편이 낫습니다. 구름 뒤편에서는 해가 떠오르고 있으니까요.

그처럼, 우리가 겪는 시행착오들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배울 점도 있습니다. 그리고 밝은 곳에서 찬찬히 살펴보면 어두운 곳에서 홀로 생각한 것보다 나쁘지만도 않은 부분이 보이곤 하지요. 우리는 성적을 위해, 취직을 위해, 승진을 위해, 결혼을 위해, 돈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바심 나는 건 어쩔 수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행복하고자 하면, 행복한 삶은 어렵지 않습니다. 행복하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을 놓쳤다고, 삶의 본질인 행복을 흐리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맙시다. 그냥, 우리 새해 다시 한 번 도전해 봅시다.

2014년, 새롭게 함께하는 한해. 우리 모두 바라는 일 바라는 대로 잘 풀리길 바라며, 무엇보다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한해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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