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문지연의 나 홀로 동유럽 유람기> 8회-체코 프라하 4편



빛바랜 공산정권의 흔적이 감도는 회색빛 도시. 과거 동유럽을 떠올리면 스치는 이미지였다. 동유럽에 대한 막연한 관심이 샘솟았던 이유도 신문지면에서 발견한 회색빛 전운 때문이었다. 전쟁의 긴장을 부인할 수 없는 한반도에 살면서 어떤 동질감이 자극된 연유였을 것이다. 동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 흔적이 사라진 뒤에도 필자의 머릿속에는 한동안 이와 같은 우울한 이면들이 뿌리박혀 있었다.
서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발전했고 여행 지역으로 덜 조명 받고 있다는 호기심과 개척 정신 또한 여행지로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동유럽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펼쳐진 도전은 또 다른 나를 만드는 그릇이 되었다.
독일을 시작으로 체코,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루마니아, 그리스, 터키에 이르기까지 9개국을 홀로 거닐었던 시간들을 꺼내어 본다.




# 바츨라프 광장 양 옆으로는 레스토랑, 카페, 은행 등 수많은 광장이 빼곡하게 들어서있다.



프라하 성을 빠져나와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프라하의 명소를 훑었으니 이젠 입이 호강할 차례였다. 맛 집이라고 소개된 그곳으로 드디어 ‘고고싱’.

처음 프라하에서 지하철역에 들어섰을 때 에스컬레이터의 엄청난 빠르기에 식겁했었는데 이번 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대체 움직이는 계단에 언제쯤 발을 디뎌야할지 모를 정도로 난감한 속도였다. 자칫 움직임이 굼떴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그대로 고꾸라질 것만 같은 위험천만한 자태였다. 노약자는 물론, 중장년층도 숙련되지 않았다면 위험할 것만 같았다. 초보 외국인 역시 두 말할 것이 없었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지 말고 계단을 이용하거나 10초간 심호흡을 한 뒤 신중하게 타라’는 경고문구라도 걸어놓아야 할 판이었다.

엄청난 빠르기로 진격하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5초간 발을 내밀었다 감추길 반복했다. 잠시 동안 ‘내려갈 다른 방도를 찾을까’ 생각하던 끝에 결국 한 발을 앞으로 쭉 뻗었다. 좌우를 살펴보니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겁먹지 말고 과감히 한 발을 내미는 도전 정신을 발휘할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역시 몇 번 하다 보니 곧 적응이 되었다.

지하철역에 내려 묻고 또 묻길 반복하다 기어이 ‘맛 집’을 발견했다. 책자와 인터넷에 모두 유명하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입소문을 많이 탄 곳인지 식당에는 필자와 같은 생각으로 모여든 것이 분명한 한국인과 동양인이 넘쳐났다. 절반 이상이었다.



# 구시청사 꼭대기에서 바라본 구시가 전경


직원에게 “프라하의 대표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청했다.

그는 빵과 고기, 채소 등 여러 재료 중에 무엇을 원하는 지를 물은 뒤 “요게 아주 잘 나가는 것”이라며 한 가지 메뉴를 콕 집었다.

그의 추천대로 음식을 주문했다. 음식과 함께 곁들일 체코 전통 맥주도 요청했다. 잠시 뒤 그가 음식을 내왔다.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넓은 접시 위에 담아낸 음식과 예쁜 컵에 담긴 맥주의 모양새가 꽤 그럴싸했다.

먼저 사이드 메뉴로 나온 보라색 양배추를 한 술 떴다. 입 안에 턱하니 털어 놓는 순간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척척 감기는 낯익은 맛은 다름 아닌 김치볶음이었다.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뿐. 주 요리인 닭고기는 먹을수록 묘한 느낌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맛이지?’ 급기야 대여섯 숟가락을 더 뜨니 너무 물려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식도에 잠금장치가 걸려 도저히 안내려가는 그런 느낌이랄까. 어차피 저녁 식사를 해야 했고 돈도 아까웠지만 결국 음식을 모두 먹지 못한 채 아쉽게도 숟가락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 프라하 성 안의 빵과 음료를 파는 노점상


계산을 하기 위해 직원을 불렀다. 이때까지 찾았던 식당들은 모두 직원을 불러 계산서를 요청한 뒤 직원이 이를 들고 오면 앉은 자리에서 돈을 건네는 방식으로 계산이 이루어졌다. 돈을 받아든 직원은 카운터 등으로 가서 거스름돈과 영수증을 함께 챙겨다주었다. 성격 급한 필자는 이 과정이 참으로 답답했다. 직원들이 식당 일로 바쁠 때는 계산서를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한참을 기다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계산서를 받아든 직원이 거스름돈을 돌려주는 것을 깜빡한 일도 있었고 너무 바쁠 때는 시간이 흐른 뒤에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참으로 비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 식당처럼 음식을 다 먹고 난 뒤에 직접 카운터에 가서 담당 직원에게 돈을 건네며 계산하는 방식이 훨씬 간편하고 효율적이다.

때마침 갖고 있던 동전이 많아 우리 식으로 몇 백 원 정도는 동전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어차피 동전은 환전도 안 되고 들고 다니기 무겁고 귀찮아 없앨 요량이었다. 직원에게 거스름돈을 챙겨다주는 번거로움을 덜어주자는 생각도 했다.
음식 값을 정확히 맞추어 돈을 건넸다. 그랬더니 그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고개를 한쪽으로 젖히며 시큰둥하게 돈을 받아들었다. ‘뭐가 잘 못 되었나?’

직원 표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후에 어림잡아 짐작했던 것은 누군가에게 들은 얘기 때문이었다. 계산서에 쓰여 있는 그대로 동전까지 탈탈 털어 정확히 계산하는 것은 서비스에 대한 불만족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얘기였다. 예를 들어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고 난 뒤 2만8550원을 계산할 때 500원짜리와 50원짜리까지 털어 정확히 계산하는 것은 받는 입장에서는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 프라하의 `맛 집`으로 알려진 음식점에서 종업원의 추천을 받아 요리를 주문했다. 보라색 양배추에서 김치볶음 맛이나 몹시 좋았으나 정작 메인요리인 닭다리는 물려서 몇 점 뜯어먹지 못해 참으로 아쉬웠다.


팁 문화가 존재하는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서비스가 만족스러웠을 때는 직원에게 음식 값 외에 봉사료를 따로 건네거나 혹은 동전 등의 거스름돈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 한 마디로 2만8550원짜리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고 3만원을 건넨 뒤 동전을 받지 않거나,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음식 값의 10% 가량을 팁으로 얹어 준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접하고 나니 처음 음식을 추천해준 직원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기야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체코의 전통 요리를 주문했더니 그것 보다 더 괜찮은 음식이라며 닭다리를 추천해 절반도 못 먹지 않았던가. 흠, 나름대로 조금이나마 변명의 여지는 있다고 본다.

식당을 빠져나와 다시금 지하철을 타고 익숙한 구시가지 쪽으로 향했다. ‘휴~.’ 정말이지 지하철과 친해지기까지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만 같았다.

두 어 개의 짧은 구간을 지나 지하철에서 내린 뒤 구시가로 향했다. 며칠씩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어느새 구시가가 내 집 안방마냥 편하게 느껴졌다.



# 프라하에서 처음 지하철을 탔을 때 몹시 빠른 에스컬레이터 속도에 화들짝 놀랐다. 노약자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속도에 적응하기 전까지는 필히 주의를 해야 할 듯싶다.


구시가지에는 수많은 명소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이를 중심으로 관광객들이 찾는 프라하의 또 다른 명소 또한 주변으로 뻗어있어 도보 관광이 가능하다. 덕분에 프라하에 머무는 며칠 동안 걸어서 유명 명소들을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모든 명소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또 밤낮 구분 없이 관광객들로 들끓었다. 유명한 관광 도시다운 부산함이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삽시간에 깊은 밤이 될 터이니 그 전에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구시가를 잠시 걷다가 바츨라프 광장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구시가에서 바츨라프 광장으로 가는 좁은 골목과 그 사이사이에 들어선 또 다른 골목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기다랗게 늘어선 기념품 가게와 카페, 그 사이 사이에 들어선 소극장에서는 인형극을 홍보하는 호객꾼의 호객 행위로 들끓었다. 틈을 비집고 수많은 관광객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본의 아니게 사진 찍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필자의 얼굴이 그들의 사진 속에 꽤나 여러 장 담겨 있을 것이 분명하다. 지구촌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의 추억의 한 장 속에 같은 시각, 또 다른 추억을 만들었을 나의 모습 말이다. 
좀 더 걸어갔다. 늘 그랬듯 바츨라프 광장을 지나 중앙역으로 향하는 프라하의 밤은 축제의 열기로 가득했다. 24시간 쉼 없이 축제가 계속되는 곳, 그곳은 바로 프라하였다.

ohora88@naver.com<문지연 님은 언론인이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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