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안암동 쪽에 값도 싸고 괜찮은 고기집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점심시간에 맞춰 고대 근처로 향했다. 추천받은 곳으로 향하는 중에도 엄청 많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간판에 내걸린 가격이 놀라울 만큼 저렴했다. 고대 근처에는 먹고 죽자는 술집만 있는 줄 알았는데 새로운 발견이었다. 우리 집이랑 멀지도 않으니 자주 놀러와야지, 생각하며 음식이 맛있어 보이는 간판들에 눈도장을 쾅쾅 찍어두었다. 대부분의 간판들이 불이 켜져 있지 않을 때부터 불안하다 했더니,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다. 이곳은 주말엔(어쩌면 평일도?) 저녁 언저리에야 피어나는 모양이다. 지역적 특색(?)을 미처 알지 못했던 나는 불 꺼진 가게 앞에서 약간 곤란해졌다. 물론 문을 연 가게들 중에도 제법 맛있어 보이는 곳이 많이 있었지만, 오늘은 점심부터 고기를 먹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인데 이대로 고기를 포기하기가 영 찝찝했다. 조금 더 돌아보던 중, 문을 연 고기집을 하나 발견했다. 물론 추천받은 곳은 아니지만, 비슷한 메뉴를 팔고 있고, 가격대도 비슷하여 급한 대로 그곳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가게 안은 굉장히 썰렁했다. 손님이 없었기도 했지만, 정말로 온도가 썰렁했다는 뜻이다. “장사하는 거예요?” 거의 밖과 다름없이 냉랭한 가게 안에 약간 멈칫거리고 있던 우리 앞에 어디선가 주인이 나타나서 안쪽에 앉으라고 안내를 한다. 엉겁결에 따라가 앉긴 했지만 어째 의자들이 죄 식탁위에 올라 앉아 있고 바닥에 밀대가 널브러져 있고 하여 조금 당황스러웠다. 안내에 따라 앉은 자리의 바닥도 너무 냉골이고 하여 주인아저씨에게 미닫이문이 달려있는 방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다 말하였지만 주인아저씨께서 하시는 말씀이 방금 전에 손님이 나가서 아직 치우기 전이라, 그걸 치우는 데 꽤 걸릴 테니 그냥 앉아 있으라 한다. 보일러를 켰으니 금방 따뜻해 질 것이라고. 다행히 전기 판넬이 깔린 자리는 금방 더워졌다.






대충 메뉴를 주문하고, 함께 간 일행과 우리 동네보다 훨씬 싼 가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인아저씨가 알바생을 하나 데리고 와 식탁 쪽을 가리키며 어쩌고저쩌고 지시를 한다. 그때는 손님이 왔으니 일단 밀대도 좀 치우고, 의자도 내려놓으라는 지시인 줄로만 알았다. 지시를 내리는 주인아저씨의 목소리가 소곤소곤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때마침 고기가 나와서 그런 작은(?)일에 관심을 기울일 틈이 없었다. 나는 고기가 두툼하고 얼리지 않은 생고기인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때깔도 아주 곱다. 우리 동네에선 이 가격대면 정말 누가 봐도 싼 고기가 나오는데. 고기를 불판에 올려놓으니 익는 소리가 경쾌하였다. 덩달아 내 마음도 경쾌해진다. 자타공인 육식 박신영 선생이 바로 나다. 삼시세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내 앞에서 두툼한 생고기가 익고 있는데 어찌 아니 즐거울 수 있겠는가. 불판 위에서 치지지직 비명을 지르고 있는 고깃덩이 앞에 가게가 약간 썰렁해서 약간 춥다는 것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신경을 끄고 있던 알바생이 바로 옆까지 와서 밀대 질을 한다. 너무 오픈시간에 맞춰 왔나 싶어 애써 신경을 돌리려 하고 있는데, 다시 주인아저씨가 나타나서 알바생을 부른다. 표정에 약간의 언짢음이 떠오른 것이, 손님 식사하는 바로 옆에서 그렇게 청소를 하고 있는 걸 한마디 할 모양이다 생각했다. 나는 다시 주의를 고기로 돌린다. 고기는 드디어 가위질을 받아내고 한입크기로 다시 태어났다. 당장 집어 입속으로 직행해버리고 십지만, 고기가 두꺼워 잘린 부분은 아직 붉은 빛이 돈다. 옆구리까지 신중하게 익히는 앞에서, 젓가락은 우왕좌왕 끈기 없이 밑반찬만 집어먹는다. 아, 빨리 익었으면 좋겠다. 시선을 익어가는 고기에 고정하고 있을 때였다. 바닥은 이제 따끈따끈하건만, 갑자기 너무 추워졌다. 어디선가 차가운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주인아저씨의 지시에 따라 모든 창문과 문을 열고 제대로 청소를 시작한 알바생이 있었다. 금방 마무리하시겠지, 오들오들 떨면서 잠깐 겉옷을 걸쳤다. 추운 와중에 고기가 익었고, 예상대로 실망시키지 않는 맛이었다.

꽤 넓은 가게였지만, 나는 손님을 앉혀두고(그것도 문 가까운 자리로 안내해서 앉혀놓고) 그렇게 오랫동안 청소를 할 줄은 몰랐다. 고기 한 접시를 거의 다 비울 때까지, 청소는 계속되었다. 그나마 청소도 하다가 말다가 하다가 말다가 하는 바람에 그렇게 길어진 모양이다. 문은 계속 열어둔 채였다. 식사를 하는데 밀대가 오락가락하는 것이 사실 조금 불쾌하긴 했지만, 오픈시간에 맞춰 온 것이라면 어느 정도는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열어둔 문이 너무 춥고, 청소도 후딱 하고 빨리 치우면 될 것을 손님도 우리 밖에 없는데 자꾸 주방, 카운터를 오락 거리느라 우리 식사하는 내내 청소를 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의자도 계속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이럴 거 같으면 치우는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미닫이문이 있는 방 쪽으로 안내를 해줄 것이지. 손님이 금방 나간 것 같아 보이던데, 그럼 거긴 춥지도 않을 것 아닌가. 그러고 보니 오픈한지 얼마 안 된 것도 아닌 모양이다. 손님이 식사를 하고 나갈 정도로 시간이 있었다는 소리 아닌가. 같이 간 일행의 얼굴이 불쾌함에 찌푸려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죄송한데 너무 추워서 그런데요. 문 좀 닫아주시면 안될 까요?” 아저씨는 대답 없이 느릿느릿 문을 닫았다. 한 두 점쯤 더 먹었을까. 아저씨가 무슨 생각에서 인지 다시 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들어오는 쪽을 바라보니, 다시 문을 열어 둔 아저씨가 ‘어쩌라고’하는 표정으로 우릴 본다. 청소가 계속 된다. 짜증이 훅 난다. 이럴 거면 손님은 왜 받았는지! 그리고 손님이 식사하는 데 옆에서 내도록 밀대  질 하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참다 참다, 같이 간 일행이 “청소는 나중에 하시면 안 될까요? 밥 먹는데 옆에서 문 열어 놓고 걸레질 하고 있으니까 좀…” 주인아저씨 표정에 불만이 훅 인다. 아저씨는 말없이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문은 닫아 주었지만, 아저씨는 다시 알바생을 보낸다. 밀대 질은 멈추지 않았다. 아 이런 것이 ‘푸대접’이구나. 고기 맛이 떨어져 버렸다. 나를 따라 여기 온 일행은 또 무슨 죄인가.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죄책감이 든다.

공짜로 얻어먹는 밥도, 이것보단 나은 대접이겠다 싶었다. 자기들 청소하는 데 방해꾼 마냥 눈치를 주고, 내 돈 내고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화가 솟았다. 확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상호랑 같이 불만을 올려버릴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또 너무 못할 짓인 것 같아 참았다. 배는 부르지 않지만, 그냥 나가기로 했다. “계산이요.” 굳어진 우리 표정만큼 굳은 아저씨의 얼굴이 더 화를 돋운다. 아무 말도 없이 화난 표정으로 카드를 긁는다. 심지어는 서명하라는 말도 없이 그냥 손짓으로 대충 서명할 곳을 가리킨다. 대체 아저씨가 화낼 일이 뭐란 말인가. 나중에 청소하라고 하는 말도 무시하셨으면서. 우리가 그래서 진상을 떨면서 다시 시작된 청소를 막아서기라도 했나. 순전히 문 닫아 준 게 주인아저씨가 한 양보의 전부다. 가게를 나서고도 한참을 기분이 나빴다. 작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사장님은 나에게 손님이 있을 때는 청소를 하면 안 되니까, 오픈시간에 손님이 들어오면, 꼭 양해를 구하고 청소가 끝난 2층 자리 쪽으로 안내하라고 당부하셨다. 딱히 손님사랑이 지대하지 않았던 사장님도 그것이 ‘기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가게마다 오픈 준비시간이 괜히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유 한 방울도 아까워하시던 짠순이 사장님이 준비시간 1시간을 따로 배정해 알바 시급만 나가는 것이 어찌 아깝지 않았겠는가. 그런 사장님도 청소를 하면서도 손님을 받으려고 하는 건 ‘기본’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심지어 양해도 구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식당에서 당연히 왕 같은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손님에게 굽실거리는 것이 손님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친절함이 가게 주인이 선택한 경쟁력일 수는 있지만 손님이 강요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니니까. 하지만 기본은 존재한다. 손님이 왕은 아니지만, 손님을 무시하는 태도로 영업을 하려한다면, 그것이 제대로 될 리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무엇을 파는가 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인상을 쓰고 이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그 곳의 고기질이 어땠던가 하는 것은 머릿속에서 증발되어 버리고, 불쾌함만이 남았다. 그리고 난 그곳에 다시는 가지 않을 것이다. 나 같은 손님이 많아지면, 결국 가게는 문을 닫아야만 할 것이다.

장사를 하든 뭘 하든, ‘태도’는 중요하다. 아버지 말씀이, 기본적인 태도도 갖추지 않은 사람은, 다른 부분에서도 그것이 티가 난다 하셨다. 학생인 나에게 해준 조언이다. 학생으로 갖춰야할 태도를 갖추지 않으면 그것이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미쳐 결국에는 모든 것을 그르치고 만다. 아주 기본적인 태도를 지니지 못한 사람은 의지나 목표, 성실함, 성적, 모든 면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모자라게 된다. 아주 보잘 것 없는 일이라 무시하다가는 겉으로 보이는, 중요한 부분에서 브레이크가 걸리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 더 큰 일을 도모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1층이 없는 2층은 없고, 피라미드도 밑면이 가장 넓다. 기본이라는 말 자체가, 토대와 뿌리라는 뜻이다. 기본이 없이 열매 맺는 나무는 없다. 사람에게 태도라는 것은 모든 일의 바탕이 되는 기본인 셈이다. 무언가 해내고자 한다면,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기본이 되어 있는가. 나의 태도는, 과연 옳다고 할 수 있는가. 과연 나는, 뿌리가 제대로 된 나무인가. 오늘의 작은 성찰이 미래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다줄지 모르는 일이다. 언제나, 기본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겠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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