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그 이문동을 떠나다!
스물여섯, 그 이문동을 떠나다!
  • 승인 2014.02.2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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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정든 곳을 떠나는 사람의 마음. 이곳이 낯설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내일이면 나는 눈감고도 그릴 수 있는 이 동네를 떠난다. 이불조차 없는 휑한 매트리스위에 앉아, 몇 년 정든 집을 눈으로 훑었다. 작은 화장실이며, 천장이며, 싱크대, 옷장으로 가려있던 벽 모서리까지, 동네에서 동네로 이사하던 옛날 같으면 이사가 이렇게까지 절절한 기분은 아닐 터인데, 이 동네를 아주 떠날 생각을 하니 집을 훑는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졸업 후에 몇 년간은 아마 이문동을 찾기 어려울 거다. 이문동 구석구석이 학부생 시절의 추억으로 의미가 각별하다. 언젠가, 나이가 더 먹고, 내 젊은 시절을 돌아보면 이문동이 있을 거다. 그리울 것 같다. 이맘때의 젊음과, 내 순수했던 청춘과, 그를 함께해준 사람들. 불안하지만 행복했던 기억들. 여기까지 흘러 온 것이 신기하다.

어떻게 여기까지나 오게 된 것일까. 스무살-. 이문동에 오게 된 것도, 지금까지 함께해주는 친구를 만나게 된 것도, 내 20대의 절반을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어준 사람을 만났던 것도, 그래 모든 것이 너무나 우연하게 일어난 일들이었다. 어느 것 하나 필연처럼 그리 흘러가리라는 보장도 없이, 물이 갈래 갈래 흘러가듯 어쩌다보니 그리 흘러온 것이다.

때로 분에 넘치는 듯 과한 행복을 받는 것 같아, 고맙고도 불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내가 쥐고 있는 이 행복이 나의 것이 아닌 것만 같고, 짧은 생각으로 자칫 실수하기라도 하면 놀란 잠자리처럼 포르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집착은 그렇게 조바심으로부터 생겨난다. 내 좁은 생각으로 내 소중한 사람들을 아프게 그러쥐고 있을 때도, 이 고마운 사람들은 그런 내 조바심마저도 이해하고 보듬어 주었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마치 가족처럼 내 곁을 이렇게 굳건하게 지켜준다는 사실이 내게 얼마나 많은 위로가 되어주었는지.

기껏해야 거처를 이문동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뿐이지만, 내 몸이 이곳에서 떠남과 함께 여기에 붙박인 나의 사람들이 손 안에서 푸스스 빠져나가 버릴 것 같아 마음이 허하다. 그들이 빛내준 내 스무 살, 그리고 스물다섯. 내 빛나는 시절. 이들이 없이 맞는 스물여섯은, 여기, 이문동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빛날 수 있을까.





고교시절의 오랜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 왔다. 한참을 뜸했던 터라 반갑게 인사를 하고 보니 남자친구가 바뀌었단다. 바뀐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니 그렇게 ‘신상’ 뉴스는 아닌 셈이다. 오랜만에 연락해 와서 늘어놓는 이야기가 꽤 흥미진진한 것이 얼굴 맞대고 술 한 잔 걸쳐야 할 것 같은데, 이사도 있고 하여 아쉬운 대로 모바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가 새로 만나고 있는 남자 A씨는 나이 차이가 꽤 나지만 나름 젊은 감각의 중소기업 사장님. 그 전까지 만나고 있던 남자 B씨는 집안 출중, 스펙 출중, 성실함으로 똘똘 뭉친, 약간은 답답할 정도로 우직한 대학원생이었다. 남자 B씨와는 꽤 오랜 시간 교제하였고, 또 결혼 생각도 있었을 만큼 진지하게 만났었는데 돌연 남자 B씨와 결별하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남자 B씨는 참으로 우직한 남자로, B씨의 연애도 우직하기 그지없었다.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자신을 사랑해주는 B씨와, 연애는 약간 밋밋할지 몰라도 결혼한다면 최고의 신랑감이겠다, 생각하며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었다고. 별것 아닌 것 같았던 그 사소한 문제는, 생각보다 더 큰 문제가 되었는데, 오랜 연애기간동안 친구는 B씨와 제대로 공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B씨가 자신을 사랑해 준다는 것은 의심되지 않지만, 연애는 혼자 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친구는 종종 외로움을 호소하곤 했었다. 이런 문제로 몇 번의 갈등이 있은 후에야, B씨와 결혼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소통’이 없는 부부생활을 하게 된다면 자신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으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친구는, B씨와 헤어지게 되었다. B씨는 헤어진 후에도 친구를 계속 사랑했고, 친구 역시 오랫동안 새로운 사랑을 찾는데 실패했다. 그러던 중, A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다른 것보다, A씨와의 만남은 늘 ‘교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다고 했다. 아직은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A씨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진 못하지만, 서로 공감해주는 것만으로 현재는 행복하다고 했다.

‘나쁜 년이라고 욕해도 좋은데…’ 하고 꺼낸 그녀의 고민은, 어쩌면 갈등하는 여자로써 한번쯤 떠올려보았을 만한 내용의 것이었다. 과거의 남자 B씨는,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면 돌아오라’고 오늘까지 묵묵하게 기다려주고 있다고 한다. 친구는 A씨와 행복한 지금까지도, 때로 B씨가 눈에 밟힌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묵묵하게 자신을 기다려주겠다 말하는 남자를 두고, 새로운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결정인 것인지, 자신에게 과연 그럴 권리가 있는지, 어제까지 굳건하던 생각이 오늘이 되면 확신이 없어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서 A씨와 B씨 모두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 되어버린다고 했다. B씨에게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확실히 전했다고 했다.

하지만 내심, 그렇게 자신의 결심을 전했음에도 굴하지 않고 기다리겠다 말하는 남자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두는 것은 거의 무의식의 일이었다. A씨와 앞으로도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며 행복한 연애를 하고 싶은 것이 현재의 마음이나, 한편으로는 A씨 자신이 생각한 것만큼 신용할 수 없는 남자라면, 나는 B씨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스스로에게도 흠집을 낸,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끼어든다고 했다. A씨에게 실망을 하게 된대도, B씨에게 그제 와서 돌아가는 일 같은 건 염치가 없어서라도 하고 싶지 않은데도 오늘까지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게 맞는지 고민이 되는 자신의 심정이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왜 나는 B씨에게 돌아갈 생각이 없는데, 무의식적으로 A씨와 B씨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게 되는 걸까.’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게 맞는 건지, 나는 친구의 고민이 그렇게 나쁜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너는 어쨌거나 좋은 사람을 두 명이나 만났구나. 고맙게 생각하렴’ 하고 운을 떼며, ‘A씨와 사귀면서 B씨에게 돌아갈 것인지를 놓고 저울질 하는 게 아니니, 스스로 그렇게 죄책감 느껴도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는,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의문, 고민, 그리고 해답으로 향하는 그 모든 과정은 내 인생을 스스로 운전하게 해주는 삶의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매순간 그 해답이 같지 않다는 건 전혀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그때 그때,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그 방향을 향해 키를 조정하고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개인이 자신의 삶을 가장 주체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친구가 B씨에게 돌아갈 생각이 없어진 지금까지도 A씨와 B씨를 계속해서 비교하게 되는 까닭이 무엇일까 물었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생각이 정답도 아니고 이것이 친구에게 조언이 될지 참견이 될지 역시 친구에게 달린 일이지만, 나의 생각은 그렇다. 친구는 자신의 선택이 ‘옳은 지’ 확인 받고 싶은 것 같다. 친구의 인생의 배는 ‘보다 나은 행복’을 향해 자신을 묵묵하게 사랑해주는 B씨를 떠나 결국 A씨라는 새로운 사람에게 닿았다. A씨에게 닿은 지금, 친구는 B씨와 A씨를 비교해보며, 자신의 결정이 옳은 것이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다. 답을 내는 것은 힘들다. B씨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A씨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다르고, 그들과 함께 만든 행복은 수치가 아니기에 절대적으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1과 10 중, 어느 쪽이 더 큰가 하는 문제는 답이 명쾌하나, 노랑과 분홍 중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하는 문제는 답을 내리기 애매하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그런 말을 했다. A씨든, B씨든, 곁에 누가 있는가 하는 것이 친구의 행복한 삶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친구의 삶에 A씨와 B씨가 모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친구는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A씨와 B씨는 마치 선물처럼, 내 삶의 행복한 순간들에 함께 해준 것이다. 그때에 B씨가 곁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행복했던 순간들에 감사하고, 지금 A씨가 곁에 있기에 가능한 행복한 순간들에 감사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나의 삶’이 전적으로 어떤 남자를 만나는 가에 따라 행복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다보면, 나의 삶을 흘러 가는대로 두지 못하고 지나간 결정들에 미련을 두게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내 빛나는 순간을 함께한 대표적인 얼굴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평생 느껴보지 못했을 행복들도 함께 떠올려본다. 그렇지만, 그들이 없었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들과 함께하게 되어, 내 삶에 결국 등장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아쉬워하지 않듯, 내가 과거 어떤 순간에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다면 지금 내게 소중한 기억이 되어있는 사람들도 그런 아쉽지 않은 사람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과거의 선택이 어떻게 되었든, 나는 그 선택의 갈림길 어느 쪽에서든 소중한 사람을 만났을 것이고, 행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둘 중 어느 선택이 보다 나은 것이었나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와 함께 해주었고, 내가 결국 그들로 하여금 행복했다는 사실이다.

나와 함께 한 모든 인연들을 가벼이 여기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나와 함께한 모든 인연들을 선물처럼 여기고 감사하며, 그 은혜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자는 뜻이다. 그리고, 삶이 또 이렇게 흘러간다면, 억지로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려 애를 써보기 보다는, 감사를 새기고 자연스레 흘러가는 편이 낫지 않나 생각한다.

미래가 다가온다고 해서, 나의 얼굴에 과거가 사라지지 않듯이, 새로운 내일을 맞는다고 해서,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내 온 몸과 마음에 과거의 모든 사람을 담고 내일로 향하는 것이다.

나의 스무 살을 빛내준 소중한 사람들은, 오늘까지도 내 삶의 항해에 함께 해주고 있다. 그렇기에 혼자가 아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물처럼 살 수만 있다면. 과거의 미련을 버리고, 보다 행복한 내일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어디서든 이문동의 기억은 나와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마운 사람들도. 언제나 그리울 거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법학전문대학원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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