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응원한다!
나는, 나를, 응원한다!
  • 승인 2014.03.2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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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후회되는 순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다보면, 반드시 포함되곤 하는 이야기가 자존심에 관한 것이다. 사람 사이에 후회 될 일이야 하도 많지만, 문제를 키우는 요인들은 십중팔구 자존심이다. 술자리나 카페에서 숱하게 오르내리는 연애사들. 그 수많은 사연들 중에서도 자존심은 늘 문제를 일으킨다. 사랑하는 오빠 전화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면서도 직접 걸지 못하고 애달프게 잠잠한 핸드폰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그 오빠들이 미안해 한마디 아끼다가 결국 헤어지자 소리치고 가버린 여친을 붙잡지 못하는 것도, 형편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오빠에게 그럴싸한 선물을 바라는 것도, 부담되더라도 차마 그건 너무 비싸다는 말을 못 꺼내는 오빠도, 그 행동들의 바탕이 되는 자존심이 없었다면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이야기다. 내가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은 마음, 친구들 앞에서 초라한 선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여자 친구에게 능력이 모자란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문제가 되고, 관계를 망친다. 연애뿐이겠는가. 자존심은 꼬장꼬장하게 자신을 펴며 때때로 남과 부닥쳐 갈등을 유발하고야 만다. 그 놈의 자존심이 뭐기에. 지고 싶지 않고, 얕잡아 보이기 싫고, 초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누군들 아니 그렇겠는가.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모든 자존심을 지켜내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자존심을 보호하고, 더불어 주장하기 위해 펼치는 예리한 기운들이 마치 칼싸움을 하듯 챙챙 부딪힌다. 그 칼싸움에서 밀리는 사람은 그 예리한 칼날에 상처를 입게 된다. 아끼는 사람이 다치는 것을 보게 되는 것도 상처로 돌아온다. 자존심이라는 건, 참 무서운 것이구나 생각한다.





자존심이 무서운 이유는, 단지 갈등으로 인해 관계에 상처를 만들기 때문만이 아니다. 자존심이란 자기 자신에게도 예리하게 벼려진 칼날로서 겨눠지기 때문이다. 물론 자존심에 긍정적 기능이 없는 건 아니다. 남에게 뒤지지 않겠다는 그런 자존심은 때로 자신을 발전시킨다. 자존심의 긍정적인 기능을 생각해보면, 몇 가지 떠오르는 전형적 이미지들이 있다. 라이벌과의 승부에서 지지 않으려 죽도록 노력하는 경우, 자존심 때문에 시작한 경쟁이 자신과 라이벌에게 어떤 보탬이 되는지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많이 겪고 들어왔을 것이다. 어떤 학습지에서는 ‘라이벌을 만들라’는 학습방법을 제시하기도 했을 만큼, 꽤 효과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유학 간 학생들이 언어도 부족하고 문화도 낯설어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경우도 그렇다. 사실 외국인 학생이 타국에서 상위권을 차지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나, 한국 학생들은 ‘자존심’이 상해서 그렇게 지낼 수만은 없었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독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공부해서 결국엔 상위권을 차지하는 원동력도 자존심이다. 자존심을 지키려는 사람은 쉬이 타협하지 않고 긍지를 지킨다. 자존심이 보통의 경우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마 이러한 긍정적인 면 때문일 것이다. 자존심이란 큰 힘이다. 자존심이 가지는 커다란 힘은, 좋은 쪽으로 사용될 때는 큰 도움이 될지 모르나 딱 그 만큼의 괴로움을 수반한다. 손쉽게 운용하기엔 너무 커다란 탓이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야 자존심으로 이 악물고 자신을 발전시켜나가는 사람들에게 나쁠 것이 무엇 있겠나 싶을 수 있으나, 자존심을 지키느라 자신의 마음 곳곳에 상처를 입은 것을 방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말 강철 심장이라 아랑곳 하지 않는 경우도 몇 보았지만, 대부분은 괴로워하고 어마어마한 압박감을 받는다. 그로 인한 소소한 위장 장애 같은 건 아주 흔한 일이다.

자존심이란 부담스러운 힘을 버리려 노력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위의 사례들처럼 온전하게 지켜내는 것도 사실 어려운 일이지만, 자존심을 완전히 버린다는 것은 그보다 더 힘든 일이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 나는 마치 타국에 유학 온 학생처럼 막막함을 느낀다. 대학원의 사람들은 나이도 적지 않고, 아는 지식도 방대해서 사실 학부만 겨우 졸업한 나로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 어디서나 평균쯤은 해왔던 나였기에 평균 이하에 속하게 된 지금의 상황이 못 견디게 자존심 상한다. 그게 너무 스트레스라 사실 자존심을 포기하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아 괜히 마음만 상하고 있었다. 몇 년 씩 공부하다 온 동기들에 비해 당장 떨어지는 거야 지금 자존심 상한다고 단시간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거니와, 높은 벽에 상처받은 자존심은 오히려 나에게 우울함을 안겨줬다. 닿을 듯 말 듯, 이겨볼만 하다 싶은 상대를 두고서 자존심은 아주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지만 이번은 다르다. 상대가 안 된다는 생각 앞에 자존심은 목적을 잃고 오히려 나 스스로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다. 다행하게도 우울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꽤 긍정적인 편인 나의 성격에 감사한다. 사실 자존심을 버린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남들이 노력했던 지난 시간들, 그로 인한 나와의 실력 차는 당연하다. 그들의 노력을 따라잡으려면 그들이 지난날에 했던 노력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걸 인정한 후에도, 자존심은 여전히 쓰라렸다. 자존심의 성공사례만을 접하곤 하지만, 사실 물 밑에서는 이렇게 자존심에 잡아먹히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리라. 자존심에 집중할수록, 현실적인 노력 방법 대신 그들과 나와의 실력 차이 그 자체만이 선명하게 잡혔다. 생각보다 더, 자존심은 무서운 것이었다. 특히 실력 없는 자존심은 긍정적인 면이랄 것도 거의 없어 보였다.

성공한 사람들의 내면을 보게 된 건, 아마 내가 이런 문제로 조금 괴로워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스포츠스타 김연아. 그녀는 어떻게 정상의 자리에서 저토록 차분하고 태연하게 자신이 할 일에 집중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녀가 처음부터 정상에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정상에 섰을 때야 그녀의 존재를 알아챘기 때문에 그녀가 과거에 어떤 마음으로 어떤 훈련을 하며 살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성장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죽지 않을 만큼’ 노력했을 김연아 선수의 초기 시절에 비해, 정상에 오른 지금이 절대 더 평안하거나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으리라. 오히려 신경 쓰이는 것이 더 많고 압박도 더 심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앞에 구체적으로 목표가 되어주는 라이벌 없이,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도 싸워야 하는 외로운 길. 기대에 대한 부담감이 더해져 정말 그 어떤 때보다 무거운 정상의 자리에서 혼자 싸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참 차분하다. 성적이나, 타인의 평가 따위는 마치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그냥 무덤덤하게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그녀의 인터뷰를 봤다. 결과에 상관없이 만족한다는 그녀의 말. 나는 거기에서 그녀의 자존감을 느꼈다. 그녀는 정말로 자존심보다는 자존감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세상에는 이겨야 할 적들이나, 남들의 평가 이전에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가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절대적인 기준처럼, 남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인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것 같은 그런 눈.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세운 목표를 이뤄냈다면, 성적 같은 건 두 번째의 문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의연한 그녀의 표정에서 나는 나를 돌아봤다. 아마 그녀는 그렇게 계속 앞으로 나아가 왔겠지.

자존심이 타인을 기준으로 남들이 보는 나, 남들이 생각하는 나, 남들과 비교한 나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라면, 자존감은 나 그 자체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존심은 남보다 낮은 위치의 현재의 나를 사랑하기 어렵지만, 자존감은 나를 사랑하는 것부터 출발한다. 자존심이 칼이라면, 자존감은 사다리와 같다. 나도 남도 상처 입히지 않고, 한 칸 한 칸 올라가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나도 자존감을 가지려한다. 아직은 평균 이하, 답도 없는 학생이지만, 평균이하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오늘보다 내일 더 알고, 내일보다 모레 더 알고, 결국 3년 뒤에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해 있으리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고생할 나에게, 누구보다 스스로 가장 큰 동지가 되어주어야지. 연인을 사랑하듯, 애정 어린 시선으로 내 한걸음 한걸음을 지켜봐주고 응원해줘야겠다. 힘내자.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법학전문대학원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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