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말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 사람들은 말하기를 좋아한다. 사람마다 취향이 있어, 왁자한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둘이서만 조용히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천차만별이다.

분위기야 어찌되었든, 말하는 건 퍽 유쾌한 일이다. 말을 나눈다는 것은 마치 곤충들이 서로의 더듬이를 내어 서로를 탐색하는 것과 같다. 누군가와 말을 나눌 때, 이 보이지 않는 더듬이는 약간의 숨과 섞여 입 밖으로 나와 서로를 대면한다. 무술의 합을 맞추는 것처럼 던지고 받는 느낌, 내용, 속도, 무게를 가늠하며 나를 그려내고, 동시에 상대방의 정체를 더듬는다.

언어가 있기 때문에 지금의 인간이 있을 수 있는 건지, 인간이었기 때문에 언어가 없으면 안 되었던 건지 잘 알기 어려울 만큼, 우리는 말을 필요로 하고, 말에 의존하며 외부세계와 접해있다. 그래서 우연히 말하기 좋은 상대를 만나기라도 하면 뜻하지 않게 횡재한 기분이 된다.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말하고자 하는 욕구와, 들어주고자 하는 태도는 열쇠와 열쇠구멍마냥 아귀가 맞아 들어가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화가 되기 힘들다. 그래, 누구에게나 말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누군가에게 닿고 싶어서, 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소속감을 느끼려고, 때론 ‘수많은 대중’ 앞에서 말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내 말이 닿길 바라는 것이 연심(혹은 뭐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이라면, 내 말을 관철시키는 힘이 권력이다. 말이라는 단순한 행동은, 거의 모든 인간관계와 구조에 닿아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는 말을 통해 개인으로 존재하며 사회성을 느끼고, 더 나아가 지배력을 행사한다. 그 모든 욕구와 행동 삶의 방식에 닿아있다. 그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는지.




# 일러스트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말에 대한 복잡한 욕망만큼이나, 말하는 것에는 위험이 따른다. 모든 욕망들이 그러하듯. 말은 아무리 고귀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입을 벗어나는 순간 왜곡의 위험에 처한다. 관념을 정의내리기 어렵듯, 머릿속의 무언가가 고스란히 입 밖으로 뱉어지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전혀 왜곡 없이 무언가가 전달되길 바라는 건, 수도꼭지에서 얼음이 나오길 바라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왜곡된 말은 다시 한 번 그를 수용하는 사람의 생각을 통해 왜곡되고, 여러 사람을 통해 출력과 입력을 반복하는 만큼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왜곡된다.

그렇지만 말하기는 멈추지 않는다. 욕망은 위험을 감수해내고야 만다. 소문이 탄생되는 순간이다. 물론 소문이 이런 식으로 알음알음 생겨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악의라고 하면 악의라고도 할 수 있을까. 애초에 고귀한 생각조차 말로 뽑아져 나오는 순간부터 빠르게 왜곡되기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의도를 가지고 왜곡의 여지를 남겼다든지, 어떤 뉘앙스나 약간의 거짓을 가미한다든지 하면 왜곡의 속도는 보다 빨라진다. 더운 날씨에 음식을 꺼내놓는 것도 모자라, 약간 썩은 음식을 꺼내놓는 셈이다. 순식간에 방안은 썩은 내로 진동하게 될 것이다.

이런 구린내 나는 말들이 하이에나들을 모은다. 말은 보다 더러워지고 부풀려져서 계속해서 불어난다. 말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들이다. 단지 재미있다는 이유로도 충분히 자주 일어나는 현실의 이야기다. 뒤에서 안 좋은 얘기를 하고, 그 말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 말은 차근차근 퍼져나간다. 사람들의 욕망, 그 어두운 면을 타고.

유독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솔직히 인정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온갖 종류의 가십거리를 듣고 있노라면 참 재미있다. 재미라는 것은 참 여러 가지 이유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관음증적 호기심, 얘기를 나누는 당장만큼은 약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입지에 있다는 호승지심.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방과의 결속감, 동지의식. 뭔가 금지된 것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스릴도 한 몫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의 얘길 쉽게 한다.

피해자는 포위망을 좁혀오는 소문에 조금씩 질식해 감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은 다수에 숨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마법처럼 가해자를 숨겨주는 주문도 있다. ‘어디서 들은 건데’, ‘누가 그러는데’ 마법같이 이 주문만 있으면 소문의 근원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욕구는 충족시키면서 그 좋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나라는 것은 교묘하게 감춰준다.

때론 걱정한다는 듯한 얼굴이 가증스럽게도 다시 소문이 만들어지고, 부풀려지고, 예리하게 벼려지곤 한다. 칼날처럼 벼려진 말은 비수가 되어 누군가의 마음에 꽂힌다. 모르는 것이 아니나 모두들 쉬이 이야기 된다. 재미있음에도, 책임은 나에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이 있고 말이 있고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는데 그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 말은 위험하다. 일단 말 그 자체가 꽤나 변덕스럽다는 것이 위험하다. 나쁜 의도가 없다하더라도, 당장 말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난 순간 일이 나쁘게 흘러가지 않도록 꽤 조심성 있게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별것 아니라 생각했던 부분이 오해가 되고 오해는 내버려두거나 입을 거치거나 할 때 몸집을 불려 종국에는 무시할 수 없을만한 덩치를 자랑한다.

말에 다친 사람들은 그 별것 아닌 말들에 그렇게 큰 상처를 받은 것이다. 말을 옮기는 사람들, 말을 키우는 사람들, 말을 꾸미는 사람들. 각각이 가지고 있는 어떤 복잡한 욕구들(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거치는 동안 처음의 성질을 온전히 지니고 있는 말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말이 나온 자리에서 없어지지 않는 이상 왜곡을 최소화하는 건 포기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최소한, 말이 이만큼이나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두는 것만으로도 많은 부분이 예방된다. 내가 재미로 뱉는, 혹은 옮기는 말들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또 어떤 결과를 낳는지, 내가 그 결과에 얼마만큼의 책임이 있을지. 이런 반성들을 체화시키고 난 후에야 말을 조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난 그 정도의 군자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 누군가를 타깃으로 하는 얘기는 상당히 재미있고, 또 나같이 욕망에 약한 애들은 그 재미에 동참하고 싶은 유혹을 참기 힘들다. 발각될 위험은 적으니, 말을 보태는 일에도 서슴없이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먼 나중의 책임이라든가 하는 말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내가 그렇게 나쁜 일을 하고 있지 않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 의식적으로라도 내가 뱉는 말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상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내 말이 누군가를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는 반성이 때로 내게 별 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 때가 있다. 애초에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때로 싫어하는 대상에 대한 얘기라든가 하면 이런 유의 반성은 대체로 잘 먹히지 않는다. 어떤 억한 심정을 풀고 싶은 욕망이 너무 큰 탓이리라. 이런 식으로라도 흠집을 내고 말겠단 복수심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복수심 앞에서 저리 평화로운 반성이 어찌 힘을 쓰겠는가. 그래서 타인에 대한 나쁜 말을 하고 싶을 때면, 내가 이런 식으로 험담을 일삼는 사람으로 대화의 상대방에게 각인되는 것을 생각한다. 친구가 잠시 자릴 비운 사이 그 친구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면, 내가 얘길 나눈 상대방은 자리를 비울 때마다 나를 의심하게 된다.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말하기를 자제시키고 한 번 더 고심하고 말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성대를 울리기만 하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말인지라, 그 위험함을 간과하기가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성은 누군가의 인생을 망칠만큼의 파괴력을 지닌다. 다시 한 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제대로 살수가 없다. 어쨌거나 우리는 말을 하며 살아야 한다. 위험하지만, 쓰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것이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을 ‘잘’ 해야 한다. 말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란 개개인마다 맞는 방법이야 다 다르겠지만, 요는 하나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남에게 해가 되는 말은 결국 자신에게도 해가 된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자.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법학전문대학원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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