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보통은 되나?
이 정도면 보통은 되나?
  • 박신영 기자
  • 승인 2014.07.16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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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웹상에는 다양한 커뮤니티들이 존재한다. 한 커뮤니티 내에 유입되는 사람들도 목적과 관심사가 제각각이지만 나름대로의 구심점을 형성하며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커뮤니티의 성격에 따라 개인적인 친목활동이 제한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커뮤니티들은 사용자간의 교류를 통해 활동하고, 그 교류과정에서 자연스레 의견교환이 이루어지며 일종의 유대감이 형성된다. 때문에 커뮤니티의 성격은 사용자들의 연령, 관심사, 성별, 성향 등에 따라 결정되며 어떤 커뮤니티가 이러한 사용자들을 대변하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을 때는 반대로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그 사용자들의 현재 상황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커뮤니티에 ‘인증놀이’가 유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력 인증이나 스펙인증, 월급 명세서 인증, 때로는 얼굴이나 몸매에 대한 인증도 올라온다. 이런 인증 놀이는 단순히 자신의 장점 등을 자랑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댓글로 자신의 인증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자 하는 바람이 인증놀이의 가장 큰 동기가 된다. 과연 내가 뛰어난 것이 맞는지. 내가 평범한 수준은 되는지. 떨어진다면 얼마나 떨어지는지를 익명의 공간에서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싶은 욕구가 내재되어 있는 새로운 놀이 문화인 것이다.




# 일러스트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커뮤니티 마다 자주 보이는 인증이 따로 있다. 사용자의 대다수가 20대로 이루어진 커뮤니티의 경우 스펙이나 외모(키 몸무게 포함) 등등이 가장 자주 보이는 인증이다. 10대의 경우는 성적과 대입, 30대는 직장이나 월급, 집, 차에 대한 인증이 많이 이루어진다. 대개의 인증 글에는 글쓴이가 ‘이정도 되면 보통은 되나?’ 따위의 코멘트를 하나쯤 더 달곤 하는데, 댓글을 통해 자신의 인증 내용을 평가 해주길 유도하는 질문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인증들이 사용자들의 불안을 가장 잘 대변해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20대 중에서도 여성 사용자들로 이루어진 커뮤니티의 경우에는 익명성을 위해 얼굴을 가려놓은 자신의 사진을 올리며, ‘뚱뚱한 편인가?’를 묻는 인증이 많이 이루어진다. 20대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인증을 통해 자신이 뚱뚱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혹은 얼마나 뚱뚱한 것인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가 인증놀이로 표현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인증놀이의 불안 반영은 꽤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불안감들이 인증놀이의 문화를 만들어내기에 이른 것일까. 이러한 의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선 인증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어째서 ‘평균’에 그렇게 집착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보통의 평균치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대충 절반 정도만 하면 성취할 수 있는 것이 평균치다. 아주 뛰어날 필요도 없고, 아주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크게 어렵지 않게 평균치에 도달할 수 있다. 현실의 평균이 이렇게 일반적인 평균이라면, 사람들이 평균, 보통에 집착할 필요도, 의미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평균에 속하기 위해 아등바등 목을 매고, 끊임없이 자신이 ‘보통’이 되는지 불안해 한다는 것은, 현실의 평균은 일반적인 평균 개념과 조금 다르다는 뜻이다. 당장 ‘중산층’의 기준만 해도 그렇다. 어지간한 재산 수준이 아니고서는 중산층이 되기 힘들다. 현실에서의 ‘보통’의 재산수준은 어느 샌가 뼈 빠지게 노력하지 않고서는 달성할 수 없는 정도로 높아져 있다. 보통과 평균의 수준에서 낙오되었다는 괴로움은 사람들을 더욱 노력하게 만들고, 그 결과 비정상적으로 높아져있는 평균치는 원래대로 회복할 방법이 없게 된다. 오히려 점점 더 높아져갈 뿐이다.

비정상적으로 과열되어 있는 교육열은 어떠한가. 조기교육의 연령대는 점점 어려지다 못해 아예 태교 때부터 시작되기에 이르렀다. 어린 아이들이라도 ‘요즘 애들 수준’에 따라가기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게 너무 많다.

끊임없이 노력해도 평균이하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은 애써 노력한 사람들의 사기를 꺾어 놓는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노력을 멈출 수 없다. 평균이하가 되는 것은 두렵고, 평균이 되는 것은 힘이 든다. 힘들어도 계속해서 노력할 것인가. 영원히 평균이하의 삶에 갇힐 것인가. 선택의 폭은 이렇듯 좁다. 모든 사람이 평균에 들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평균치는 높아지고, 그래서 다시 평균에 들기 위해 노력하고, 또 다시 평균치는 높아지고…. 끊임없이 순환하는 과정에서 평균치는 비정상적으로 높아져버리고 만다. 들어가는 노력은 과한 수준인데, 그 결과는 평균에 겨우 미치거나 혹은 아예 평균이하인 현실. 사람들의 삶에서는 ‘노력’만이 남고 ‘행복’과 ‘만족’은 보다 멀어진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조차 헷갈리는 상황이 오고 만다.

평균에 속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은 두 가지에서 기인한다. 높아져 버린 평균치와, 평균에 속하지 못할 시 불안한 심리. 평균치가 높아지는 것은 기이한 일이라지만, 어째서 평균에 속하지 못할 때 우리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평균이하로 살아가는 것이 실제로 불행한 것인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정말 깊게 고민하고 판단한 것이 맞는가. 사람들이 정말로 현실의 고통보다 평균이하의 삶이 더 불행하기 때문에 현실의 고통을 택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확신이 서지 않는다. 물론 평균이하의 삶이 평균보다 불편하고 불행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간단하게 성적이 하위권인 학생은 상위권인 학생보다 진학에 있어서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진학을 결정할 시기에 자신의 성적이 하위권이라는 이유로, 원하는 진로를 포기해야만 한다면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는가. 하지만, 우리의 불안감이 실제로 이런 구체적인 일을 막기 위한 것인가 생각해보면 또 늘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흔히 언급되는 ‘내 집 마련’ 같은 것들도, 전셋집을 전전하는 설움이 내 집 마련의 목표설정 주요 동기가 된다기보다는, 막연하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보통의 삶에서 낙오 되었다는 두려움이 동기가 되곤 한다.

실제로 나 역시 그러하다. 방학동안 진행되는 특강은 매일매일 시험을 치루고 상위 50%, 그러니까 딱 절반정도의 성적을 공개한다. 매일매일 치러지는 시험이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적으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이 선택과 마주하게 된다. 시험을 위한 공부(예컨대 내일 나올 시험 범위에 해당하는 문제집을 좀 더 본다든지)를 더 할 것인가, 내가 부족한 부분(기본서를 읽어본다든지, 전 시간에 틀렸던 문제를 더 공부해 본다든지)를 더 할 것인가. 단지 아무 효력 없는 쪽지시험일 뿐이다. 취지 자체도 내가 부족한 부분을 알고 보충하는데 있다. 내일 있을 시험 문제를 한 문제 틀리더라도 오늘은 부족한 부분을 확실히 알고 넘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성적이 공개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의연하기 힘들다. 50%안에 속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막연하게 공포를 준다. 평균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 시선, 그 모든 것들에서 안전한 울타리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 있어야만 비로소 안정감이 든다.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버린 평균치와, 이에 속하지 못하면 느끼는 두려움. 이 두 가지는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평균치를 더욱 높아지게 만든다. 경쟁은 과열되는데 승자는 없는 현실이 남는다. 성실함과 노력은 늘 훌륭한 덕목으로 인정되어 왔지만, 이러한 맹목적인 노력은 언제나 좋기만 한 가치는 아니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평균을 좇아 과열된 경쟁을 계속하다 보면, 결국 행복과 행복에 대한 진실 된 고민이 결여된 채, 의미 없는 노력만을 계속하다 끝내 과로사하는 사회를 발견하고 말 것이다.

지금이라도, 나 하나부터라도, 내 아이부터라도, 의미도 보상도 없는 이 미친 질주의 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평균에 집착하는 심리는 타인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평가하는 것에서 나온다. 나의 공부 성취도를 다른 이들의 성적과의 비교에서 찾으려고 하다 보니 남들이 하는 만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는 무의미한 에너지 낭비가 포함되어 있다. 평균치가 올라가 버린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을 얻기 힘들다.

해결책은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에 있다.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알게 되었다면 자신의 성취도에 대해 만족할 수 있다는 기준을 세우면 되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불안하고 두려운 도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정말로 행복하고 만족스런 삶, 더 나아가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미친 질주를 그만 두는 것이 옳다. 비정상적인 평균치에 목매여 무의미한 노력을 반복하는 사회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정리 되어야 한다. 나, 그리고 내 아이를 위하는 진정한 길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평균의 굴레에서 벗어날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법학전문대학원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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