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중독에서 벗어나길…친구야!
제발 중독에서 벗어나길…친구야!
  • 박신영 기자
  • 승인 2014.08.06 1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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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내 친구중 하나가 오래 교제해 온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티가 난다. 별로 할 말도 없으면서 괜스레 “뭐해?” 하며 잠잠하던 단체 SNS대화방을 활성화 시킨다거나, 평소 같으면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친구들의 답장 속도 따위에 집착한다거나 하는 그런 사소한 행동들.

오래 만난 만큼, 교제 기간 중에도 이별의 기미는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더랬다. 그러고도 한참, 그 이별의 징조조차 무뎌질 만큼 익숙하고 오랜 교제가 이어진다. 다행이라면 다행일지 모르겠지만 그 둘의 이별은,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먹구름처럼, 조용하고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한 존재감으로 틀림없는 미래를 예고하며 그렇게 다가왔다. 마침내 이별이 그 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 그들은 별로 놀라울 것도 없이 덤덤하게 그 이별을 받아들였다. 의연하고, 어른스럽고, 성숙해 보이는 이별이었다. 그 둘은 각자의 바쁜 일상 속으로, 홍차에 잠겨드는 각설탕처럼 깔끔하고 흔적 없이 녹아들었다. 우리(단체 SNS대화방의 멤버들, 헤어진 그녀와, 나와 친구들)는 그들의 어른스러운 헤어짐에 약간의 감탄과 존경을 보내며 이별과는 얼핏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는 축하를 건넸다. 그녀는 학생이거나 취준생인 우리들과는 달리 경제적으로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진짜 ‘어른’이고,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쿨한 이별이 우리네들의 미성숙한 것과는 뭔가 레벨이 다른 것처럼 느껴졌던 때문이다. 우리는 어쩌면 위로를 필요로 했을 그녀에게 미적지근한 축하만을 잔뜩 안겨줘 버린 것이다.




# 일러스트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그래봤자 동갑내기인 우리들의 정신 연령이야 고만고만한 것을. 그녀는 늘 손에서 놓을 줄 모르던 핸드폰을 괜히 만지작. 막상 핸드폰을 들여다보면 하루 종일 연락을 끊지 않던 남자친구의 빈자리뿐이므로 괜히 전에 없이 단체 SNS 대화방에 의미 없는 잡담이나 올리고 하는 것이다. 거의 하루 종일 그녀는 자신의 일상을 보고한다. 심지어 우리가 별달리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녀 스스로는 바쁜 일정에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남자친구에 대한 감정은 조용조용히 사그라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그녀의 행동은 그녀의 판단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지경이다. 이젠 남자친구가 없어졌음에도 그녀는 그 교류에 대한 습관, 그 의존을 아직 채 거둬내지 못한 것이다. 사라진 듯 보이는 홍차의 설탕이 단맛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천천히 정리된 그들의 관계에서도 오랜 의존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버렸다.

인간의 정신이라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나약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과소평가하는 것보다는 항상 대단하고, 과대평가하는 것보다는 항상 나약하다.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갈피를 잡질 못하겠다. 평범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에 의존해야 하는가. 의존이 없는 삶은 아주 이론적으로나 가능 할 뿐, 사실 우리는 그물처럼 엮인 수많은 의존 위에 살고 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균형 잡힌 의존과 교류를 통해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야 말로 구성원 간의 유대가 끈끈하게 형성될 수 있는 사회의 바탕이자, 그 구성원들 개인에게도 건강하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의존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나약하고, 무언가에 의존하는 것은 달콤하다. 부지불식간에 치우친 의존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의존하던 것의 균형이 깨지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사소한 것으로부터, 아주 위험한 것까지 도처에서 발견된다. 바로 ‘중독’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것에 불과하다. 지루한 시간을 좀 더 재미있게 보내게 해주는 것 정도에 불과했던 모바일 게임마저도, 제 시간에 접속해 정해진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로 중독되기 까지, 그렇게 복잡한 과정이 필요치 않다. 크게 의식하지 못한 채로 약간의 시간만 흐른다면, 서서히 그렇게 균형은 허물어져 버린다.

‘중독’하면 쉽게 떠오르는 것들은 주로 담배나, 술, 게임, 도박, 향정신성 약물 따위겠지만, 그런 ‘위험한 것’들 말고도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에도 우리는 쉽게 중독된다. 너무나 사소하고 어쩌면 당연해서, 그래서, 우리는 균형이 무너져버렸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거나 때로는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린다. 친구이거나 가족일 수도 있고, 연인, 늘 마시는 커피나 자주 듣는 음악, 버릇이나 습관, 취향, 취미, 징크스, 나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들, 내가 삶을 영위하는 데 의존하는 모든 것들이 중독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이 이렇게 사소한 것들에도 이렇듯 의존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는가, 약간 씁쓸해져 버린다. 우리는 의존하며, 의존함으로써 살고 있다. 독립적인 삶이란 것은 얼마나 까마득한 이야기인가.

중독 자체가 나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나는 분명 중독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부 중독, 독서 중독, 연인이나 가족,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중독, 뭐 이런 것들은 흔히 중독 앞에 붙곤 하는 게임 중독, 약물 중독… 따위와는 달리 굉장히 건강해 보인다. 이런 ‘좋은 중독’들은 내 삶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는,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당장 나도 공부에 중독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딱히 마다할 생각이 없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중독이라는 것은 ‘얼마나 의존하는 가’가 아니라, ‘얼마나 균형이 무너져 있는가’로 판단된다. 그러니까 의존의 양적 문제라기보다는, 적정 양을 벗어나 있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가족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그 존재에 기대 아주 많은 안정감을 얻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의존으로 자신의 삶이 균형을 잡지 못한다면, 그 치우친 의존은 분명히 중독이고, 위험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연인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사랑이 자신의 삶의 균형을 무너뜨려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만든다면, 그에게 그 사랑은 중독이고, 위험한 것임에 틀림없다. 의존하는 것은 삶을 영위하는데 당연한 일이지만, 그 위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만 건강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이런 나의 의견은 ‘덜 사랑하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크고 깊은 사랑은 아름다운 가치이지만, 그에 대한 의존이 스스로의 기준에서 적정치를 벗어나면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연인의 사소한 반응에 따라 하루 종일의 기분이 좌우되곤 해서, 괜히 연인과 자주 싸워버리게 되는 사람의 예를 들어보자. 연인을 많이 사랑하고 그의 존재로 나의 삶의 가치를 실감하는 것은 훌륭하나, 연인이 삶의 전부가 되어 작은 행동 하나하나(연락이나 사소한 행동)에 자신의 삶이 휘청거린다면, 그 사랑과 자신의 삶 모두 위험하게 되고 만다. 이것은 사랑이 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의존이 도를 넘은 것이 문제다. ‘덜 사랑하세요.’가 아닌, ‘덜 집착하세요.’가 이 문제의 해답이다. 그 대상이 좋아 보이든 나빠 보이든, 지나친 의존에 대한 경각심은 늘 가지고 있어야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아주 쉽게 중독된다. 어떤 결핍 같은 것이 자석처럼 무언가를 끌어들이는 것 같다. 건조한 모래에 물이 빠르게 스미는 것처럼, 언제나 사람들은 갈증을 호소하고, 보다 많은 것을 바라고, 또 아주 빨리 중독된다. 중독은 너무나 흔해서 이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 딱히 문제의식도 없이 쉽게 빠져들고 쉽게 중독된다. 그 때문에 휘청거리는 삶을 구제받기 위해 더 중독에 빠져드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세상은 어제보다 오늘 더 자극적이고, 사람들은 어제보다 오늘 더 휘청거린다. 사랑하는 마음은 오늘날의 세상에선 ‘실시간으로 확인되는 메시지 수신 여부’, ‘위치 추적’따위로 변태되지만 무엇이 잘못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네의 정신은 과소평가하는 것보다는 언제나 굉장하지 않은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지 작은 여유인지도 모르겠다. 이 푸석푸석한 삶에서 어딘가에 의존할 대상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인지. 하지만 많이 의존한다고 해서 그 위안이 끝없이 비례해 커지는 것은 아니다. 의존하는 대상에 달려들기 보다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내 삶의 균형, 의존하는 것들에 대한 감사를 새기는 것이 내면의 갈증을 해결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씩 삶의 균형을 되찾아갈 힘을 가지고 있다.

내 친구가 부디 하루빨리 균형 잡힌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당분간 핸드폰은 좀 멀리 하는 것이 좋겠다. 당장 좀 허전한 기분이 들더라도, 지금은 조금 여유를 갖고, 오랜만에 가지게 된 혼자만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다 정리되고 나면, 또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법학전문대학원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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