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태> 쓰레기로 만들어지는 시멘트 독, 신음하는 건설노동자들


현대인은 시멘트에 둘러싸여 있다. 도시는 물론이고 시골 역시 시멘트로 지은 건물에서 생활하고, 시멘트 위를 걷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정작 이런 시멘트가 법적 기준이 없는 각종 산업폐기물로 만들어지고 있는 점에 대해선 망각하고 있다. 일각에선 시멘트가 유독성 지정 유해물질보다 더 위험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각종 현대의 질병이 이런 시멘트의 유독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특히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더 심각한 상태에 처해있다. 시멘트 제조 과정에 첨가되는 석탄재와 폐타이어, 슬래그, 슬러지, 폐부동액, 폐유 등 유해물질에 적나라하게 노출돼있다. 하지만 기업이나 정부차원의 실태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조차 그 심각성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는 상황이다.





시멘트 위험성 ‘알아도 그만’

건설노동자들 사이에서 시멘트 독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시멘트가 몸에 닿아 화상이나 피부염을 일으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건설현장의 시멘트 독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온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은 “피부 질환을 많이 겪는데 당장 죽을병이 아니니까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병원에서 며칠 치료 받거나 현장에서 공사 담당관들과 금전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건설노동자들은 시멘트 독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시멘트 공정 중에도 이를 유념하며 일을 한다”며 “하지만 작업을 빠르게 진행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어서 주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장 노동자들은 고된 노동과 위험한 일에 놓여있다 보니 추락사 등 중대재해가 아닐 경우 달리 자신의 신체에 신경 쓰지 않는다”며 “그렇다고 해서 당국이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사안들에 대해 실태조사 한번 한 적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이처럼 건설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시멘트가 실제 발암물질을 함유하는 등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려는 산업현장과 정부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시멘트공장이 집중돼 있는 강원도 영월 주변의 지역주민에 대한 실태조사는 이뤄진 적 있지만 정작 ‘시멘트 덩어리’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관련된 실태조사는 전무하다. 박 국장은 “영월지역의 지역건강조사는 환경부에서 실시한 적 있지만, 지역주민 이외에 생산을 담당한 노동자들과 건설노동자들에 대한 조사는 진행된 바 없었다”고 꼬집었다.

한편 건설노동자들은 시멘트로 인해 피부병에 걸리더라도 막걸리로 소독을 하는 등 여전히 시멘트 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박 국장은 “노동자들은 시멘트가 옷으로 튀어 시멘트 독이 올라도, 막걸리를 발라 소독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사태의 심각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현기증 일으키는 노동자들

실제 시멘트 독 문제로 건설노조에 접수된 사건은 1건에 불과하다. 2008년 경기 지역의 한 신축공사 현장에서 최모(51) 씨가 추락사한 사건이다. 당시 최 씨의 사망 순간을 지켜봄 목격자들은 콘크리트 타설작업 중 현기증을 호소했고 구토 증세를 느끼다 발코니에서 구토하던 중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고 진술했다. 한국산업안전공단 측은 최 씨의 사망 원인을 콘크리트 타설 중 수화열로 인한 체감온도 상승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박 국장은 “최 씨가 숨졌던 이유에 대해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시멘트 냄새로 인한 구토증세가 아니었는지 의심해볼 수 있다”며 “여름엔 시멘트 위에 아지랑이가 필 정도로 냄새가 역하고 현기증을 유발할 때가 많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그저 피곤해서 어지러운 것이라고 위안하고 만다”고 토로했다.

특히 젖은 시멘트에 노출될 경우 유해성은 더 높아지게 된다는 지적이다. 시멘트에는 1급발암물질인 6가크롬이 함유돼 있고 중금속 물질로 잘 알려진 카드뮴(Cd), 납(Pb), 비소(As) 등이 함유돼있다.







포함된 물질 중 특히 6가크롬은 인체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크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산업의학과 류현철 전문의는 “6가크롬은 피부에 강한 자극성 피부염을 일으킬 수 있고, 자극성 피부염은 화상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며 “피부 상태가 젖어있는 경우 피부의 방어막이 손실돼 쉽게 피부염이 유발될 수 있어 시멘트를 사용하는 노동자 작업 시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건설노동자들이 작업 환경 자체가 젖은 시멘트 작업공간으로 이뤄져있고 젖은 시멘트에는 수용성 6가크롬이 함유돼 있어 일반인보다 더욱 위험한 환경에 처해 있다”며 “시멘트와 관련된 노동작업 환경이 호흡기의 전 영역에 악영향을 미치고 피부 질환도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류 전문의는 또 “건설 업종에서 건강상의 문제는 접촉성 피부염, 피부궤양, 철과상, 화학적 화상 등이 있지만 이외에도 분진자체와 그 속에 함유된 6가크롬, 실리카 등으로 인한 폐질환, 진폐증, 폐암 등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류 전문의는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멘트로 인한 건강권 침해 실태 등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건설업 노동자 전체의 직종별 건강실태와 건강위해요소 등 총괄적으로 검토한 연구가 있었지만 시멘트 냄새로 인한 어지럼증 등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책 마련 시급

이처럼 산업 현장에서 시멘트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노동자들도 건설노동자들이다. 시멘트가 인체에 심각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실정임에도 관련 부처에선 쉬쉬하고 있을 뿐 대책마련엔 관심이 없다는 지적이다.

박 국장은 “국내 시멘트에 포함된 중금속이 중국산 시멘트에 비해선 수십 배에 이르고, 발암물질인 6가크롬이 일본에 비해 세배가 넘는다는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래 시멘트 제조 과정은 석회석에 점토와 규석과 철강석을 일정비율로 섞어 고온에 구워 만든다. 그러나 최근 만들어진 시멘트 중 천연 연료라곤 오직 석회석 하나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산업생산과정 중에 나오는 산업쓰레기들로 대체되고 있다”며 “한마디로 각종 쓰레기범벅으로 만드는 것이 오늘의 시멘트”라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시멘트엔 제철소에서 나오는 폐주물사, 전기 제련의 부산물인 슬래그, 하수 및 정수 슬러지, 심지어 소각장의 소각재까지 원료로 들어간다. 박 국장은 “더욱 충격적인 것은 원료 명목으로 점토와 규석 대신 들어가는 산업쓰레기만 아니라, ‘연료’로 사용되는 쓰레기들”이라며 “폐타이어, 폐전선, 폐고무, 폐비닐, 우레탄 등 생활 주변에 발생되는 모든 쓰레기들이 연료로 사용된다. ‘연료’라 하면 보일러에서 불을 때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시멘트를 만드는 과정의 연료라는 것은 소성로의 온도를 높여주는 연료인 동시에 원료가 된다”고 말했다.



# 분진



시멘트는 용광로라 할 수 있는 소성로에서 석회석과 다양한 산업쓰레기들이 섞여 1500도의 고온의 불에 구워지면서 만들어 진다. 시멘트가 구워지고 있는 이 소성로에 폐타이어를 비롯 모든 연소성 쓰레기를 직접 투입하는 것이다. 1000도가 넘는 뜨거운 불 속에서 구워지는 소성로 안의 돌들과 폐타이어 등이 함께 혼합되면, 폐타이어가 불타는 중에 소성로 안 온도가 올라간다. 폐타이어 등이 다 타고 남은 재는 자연스레 돌가루들과 섞여 시멘트가 된다.

보통 한 소성로에 투입되는 폐타이어는 1시간에 무려 450~800개 정도에 이른다. 한 마디로 타지 않는 쓰레기는 ‘원료’로, 타는 각종 연소성 쓰레기는 ‘연료’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시멘트 속에 중금속과 발암물질 비율이 높은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박 국장은 “시멘트 공장에 들어서면 눈앞에 가득 쌓인 각종 쓰레기들로 인해 이것이 쓰레기장인지 시멘트 공장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라며 “폐타이어와 폐전선, 고무종류를 비롯해 온갖 잡동사니가 뒤섞여 있는 쓰레기 더미들과 그 아래로 시커멓게 흐르는 침출수를 볼 수 있다. 이것이 오늘 국내의 대부분 시멘트 공장의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박 국장은 이어 “환경부가 제시한 사용가능 폐기물 기준의 문제점은 ‘부원료’라는 이름으로 시멘트에 들어가는 비가연성 쓰레기”라며 “말이 ‘부원료’이지 이 모든 쓰레기가 시멘트가 되니 그냥 원료다. 환경부는 이 쓰레기 안에 포함된 크롬의 기준이 1800ppm 이하면 무조건 사용 가능하도록 허가한다”고 꼬집었다. 시멘트의 유해성 논란이 끊임없이 일고 있는 가운데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건강보호를 위한 보다 근본적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김범석 기자 kin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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